천로행(제4부)

제 090 회 꽃을 집어드니 미소 짓다(拈花微笑)

금박(金舶) 2016. 11. 17. 11:06


이틀이 지나고 석양이 지자 젤메조와 밸구대리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젤메조의 표정으로 두 아들을 데려왔음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는 것을 알수 있었다. 젤메조는 하라하슨과 함께 진원성의 천막으로 들어와서 돌아왔음을 보고하고, 아이들에게는 엎드려서 하는 큰 절을 하도록 시켰다. 아마도 돌아오는 길에 어디선가 잠깐 멈추었을 때에, 아이들에게 군신례로 절하는 것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진원성은 아이들이 이게 무엇인지 의미를 알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또 젤메조의 부탁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다시 지어주게 되었다. 큰 아이를 몽천(蒙天), 작은 아이를 몽지(蒙地)라 지어주었다. 이것은 몽골의 하늘과 몽골의 땅이라는 의미였다. 몽골의 관습에서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진원성은 젤메조에게 물어보았다.


"몽천의 어머니는 한번 찾아보지 않겠어요? 아이들에게도 어머니를 한번 보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어쩌면 생이별이 될지도 모르는데요?"


"아이들 에미가 어디에 있을지 알아는 봤지만, 저 때문에 길이 늦어져서 또 말씀드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러지 말고 아이들에게 어머니를 만나게 해줍시다."


"그동안 아이들 에미가 라마들 몰래 사람을 통해서 가끔씩 뭘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찾아서 은자를 내고 노예를 풀어주고 데려올 수 있으면 합니다."


다음날 진원성은 일행 모두를 데리고 몽천의 어머니 즉 라마의 법당인 게르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다행히 해질 무렵이 되어 라마의 게르를 찾아들게 되었다. 진원성을 의원이라 소개를 하였으며, 젤메조는 의원의 시중꾼이라 소개를 하고 관습대로 라마에게 은자 두 량과 원차 2 개의 예물을 드렸다. 그 다음 하라하슨의 통역으로 진원성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였다.


"저는 저의 부하인 젤메조의 처가 이곳에 노예로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자유를 사서 젤메조에게 돌려주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하브르입니다."


"하브르는 노예로 왔지만 한번도 노예로 대우받은 적은 없어요. 그리고 딸을 하나 낳았으니 이제 돌려줄 수 없습니다. 젤메조와 만나보는 것은 허락하겠소이다."


젤메조는 몽천과 몽지를 데리고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몽천은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눈물만 글썽였지만, 몽지는 어머니를 만나고 슬프게 울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 역시 눈물을 훔치고 말을 했다. 


"저는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내가 떠나면 이 딸을 누가 키우겠습니까? 또 이 딸을 데려간다면 여기 남은 아버지 라마는 슬퍼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젤메조는 곧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진원성은 은자 열 량을 꺼내서 속량은(贖良銀)으로 라마에게 건네고 두 아이의 어머니의 예속을 풀어주었다. 이것은 하브르가 언제든지 떠나고 싶을 때에 떠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몽천과 몽지는 어머니와 마지막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으며, 진원성 일행은 옆에 천막을 치고 하룻밤을 지내고 내일 떠나기로 하였다.


라마는 저녁 식사 후에 함께 차를 마시자고 하며, 진원성을 초대하였다. 이것은 라마가 진원성을 특별히 우대한다는 뜻이며, 하브르에 대하여 무리없이 처리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는 일이었다. 하라하슨을 통역시켜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소소한 이야기가 있은 후 진원성은 가욕관에서 수위장군이 자기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라마에게 복을 청하게 되었다.


"활불님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었으니 큰 영광입니다. 이렇게 인연이 되었으니 저에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그러면 내가 부처님의 법력을 빌려 축복을 내려주리다. 앞으로 시주님이 주장하는 만사가 부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아서 부처님의 큰 은덕으로 형통 하기를 축복합니다. 광명주(光明主) 비로자나불."


"예,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되었으니 하나만 묻겠습니다. 깨달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오랫동안 깨닫기를 바라고 바라면 깨닫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인연이 닿아야 하겠지요."


"인연이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깨닫으면 인연이 있는 것이요, 깨닫지 못하면 인연이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중생은 다 깨닫도록 되어있으니 혹 깨닫지 못할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깨닫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을까 그것만 걱정하면 됩니다."


"글을 몰라서 경을 한 자도 읽지 못하고, 주위에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없어서 불법을 한마디도 전해듣지 못한 사람도 깨닫을 수 있습니까?"


"그럼요, 깨닫는 데에는 어떤 장애도 있을 수 없습니다. 깨닫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지요. 내가 시주께 하나의 고사(古事)를 말해주지요. 부처님께서 일흔한 살이 되시어, 영취산(靈鷲山)에서 일만이천 명의 아라한(阿羅漢)을 모아놓고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법하실 때의 일입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에 일이군요."


"아라한(阿羅漢)이라함은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는 자(者)란 뜻입니다.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는 사람이지요. 이때에 모인 아라한들은 오늘은 무슨 말씀을 가르쳐주실까 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을 겁니다. 부처님은 아무말 없이 연꽃 한송이를 손으로 들어 보이셨습니다. 아라한들은 이게 무슨 뜻인가 하고 모두 의아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의 특별한 제자인 가섭존자(迦葉尊者)만이 무슨 뜻인지 알고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불법이 글이나 말로써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 어떤 물건 만으로도 전달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글이나 말이 없었던 아주 오랜 전일지라도 불법은 전해 내려왔을 것이니까요. 귀머거리이면서 장님이라 할지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 그렇군요."


"이것을 사람들은 '꽃을 들어올리니 미소를 짓네(염화미소 拈花微笑)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말을 듣고, 경전을 읽고서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농부는 어느 가을에 맺은 벼 한톨을 보고서, 양치기 소년은 양들이 싸놓은 똥 사이에 피어있는 들꽃 한송이를 보고서, 싸움꾼은 쌈박질하다가 상대가 퍼붓는 쌍욕을 듣다가 깨닫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깨닫고자 애타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가능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한가지 더, 법당에 가서 보자면 연꽃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무슨 뜻이 있나요? 탕카에서나, 불탑, 천장에 그려진 단청, 돌계단에서도 연꽃을 많이 새겨 넣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깨달음을 간절히 원하면 마음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고 합니다. 이 꽃을 부처님이 태어나는 모태(母胎)라고 하며, 반드시 꽃잎이 여덟 장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여덟 장 연꽃 위에 부처님이 앉아계시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지요."


"여덟 장의 연꽃이 부처님이 태어나는 모태인데 마음 속에서 그 연꽃이 피어나는군요?"


진원성은 이 말을 한 다음 하라하슨이 통역을 하는 사이에 불과스님을 떠올렸다. 불과스님에게 노골적인 질문을 해서 잠시 곤궁에 빠뜨렸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그 방법으로 해서 신선이 되신 분은 아주 많은가요?'


'예, 아주 많아서 얼마나 되는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지요.'


'아, 그러면 저도 한번 배워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 불과 스님은 이미 신선이 되셨나요? 아니면 얼마 후에 신선이 될 예정인가요?'


'... 저는 ... 복연(福緣)이 없어서 아직 부처신선이 되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언젠가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원성은 나중에 찾아가서 신선되는 법 즉 호흡법과 손모양과 진언을 배웠으며, 이제금 불과스님을 잠깐 그리워 하였다. 그런데 라마는 그것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먼저 말하였다.


"저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 몇 장의 꽃잎이 달리는지 직접 겪어보지 못하였습니다만, 경전에 여덟 장의 꽃잎이 달려있다 하니 그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 연꽃 모태 위의 부처와 여덟잎 만다라]


[종경록(宗鏡錄)에서는 8엽 연꽃을 사람의 심장에 비유하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묻기를 어찌하여 연꽃은 오직 8엽뿐인가? 일체의 범부(凡夫)는 비록 마음이 있는 자리를 스스로 알지 못하나, 심장에 자연히 8판(八瓣)이 있어 연꽃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주·객관의 모든 사물이 서로 응하여 융합하는 이치를 알고, 손에 인(印)을 맺고, 입으로 진언(眞言)을 외고, 마음으로 본존을 생각하는 수행을 하여 마음의 연꽃을 피게 하면 그것은 곧 삼매(三昧)의 열매이므로, 이 8엽 연꽃을 본다면 곧 득(得)과 이(理)가 상응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꽃 - 청정한 불국세계의 꽃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2000. 5. 01., 돌베개)] 


진원성과 하라하슨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진원성은 인시에 일어나 주변 들판을 두 시진 동안 달리면서 초원의 풍경을 감상하였으며, 다시 짐을 꾸리고 본래의 여정으로 돌아갔다. 헤어지면서 제일 어린 몽지만 눈물을 보였고 젤메조와 몽천은 숙제를 해결한 사람처럼 말끔하였다. 진원성은 이렇게 마무리한 것을 다행이라 여겼으며, 다시 길을 제촉하였다.


이제 진원성의 일행은 6 명으로 늘었으며, 말은 한 필이 늘어 아홉 필이 되었다. 나날이 동쪽으로 가는 길은 헤르렝 강을 따라 가는 길이었으며, 혹시 만인대 군병을 만나면 궂은 일이 있을까하여 좀 피하는 길을 택하여 나아갔다. 젤메조는 몽지를 자기 앞에 태웠으며, 몽천이는 혼자 다른 말을 타고 갔는데 온통 흡족한 표정이었다. 품팔이 양치기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든든할 것인가? 몽천, 몽지 두 아이는 금방 일행들에게 친숙해져서 잔심부름도 곧잘하고, 하라하슨에게 중원 말도 몇 마디씩 얻어배우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진원성과 하라하슨은 몇 마디씩 주고 받기도 하는데, 하루는 진원성이 하라하슨에게 말했다.


"염화미소란 말은 틀린 것 같아요? 뭐가 좀 맞지않아요."


"무슨 말인가요? 글자나 말로만 불법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 말이 아니에요.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올리신 뜻은 글자나 말로만 불법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 가르치기 위해서 하신 행동이 아니란 말입니다."


"......"


"결과적으로 그렇구나 하고 나중에 알게 되었을테지만, 당시에 부처님이 연꽃을 들었던 이유는 그것이 아니에요.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는데, 매를 맞으면 아프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매를 때렸다고 알아서는 곤란하지요. 아버지가 왜 매를 들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하지요."


"아차. 대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부처님이 연꽃을 드신 것은 달리 가르침을 주시려고 한 것이며, 그 가르침을 알고서 가섭존자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생각해야 맞습니다."


"하라하슨 나는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서 무엇을 가르치려 하셨을까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요. 부처님이 가르치려 했던 그게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저의 짐작으로는 ... 연꽃은 더러운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지만 이렇게 깨끗하고 아릅답다는 것을 보고 배우라는 뜻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라하슨의 말은 '깨달음은 연꽃을 닮았다'는 말이에요. 더러운 속세에서 살지라도 깨달음은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답다 라고... 하지만."


진원성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그냥 숙제로 남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