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행(제4부)

제 088 회 세혼종성(世混宗盛)

금박(金舶) 2016. 11. 15. 11:43


서로 소회(所懷)를 정리하는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자 진원성은 하라하슨에게 말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했는데, 이렇게 가까이 속깊은 이야기를 나눈 때가 부족했지요? 오늘은 바람도 없고 말하기에 적당한데 또 다른 말도 다 털어놓으세요."


"그러면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말하지요. 우리 몽골족 아니 오래전 옛날부터 북쪽에 살아왔던 유목부족들은 하늘이 가뭄이나 혹한 같은 재앙을 내려줄 때면 남쪽으로 내려가서 중원을 약탈해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약탈 자체에 재미를 들여서 재앙이 없어도 약탈을 했을지도 모르지요. 부족의 이름이나 나라의 이름은 무엇이든 이런 운명에는 변함이 없었지요. 낙양에 가서 농사 짓는 것을 주로 하는 중원의 만성들의 생활을 살펴보니 우리 유목민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또 이번에 대형님을 모시고, 토번과 타클라마칸 사막과 우룸치, 쿠몰국, 가욕관 등 여정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이 배웠습니다. 유목(遊牧) 보다는 농경(農耕)이 사람 사는데 더 부(富)가 많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대형님께서 앞으로 큰 장사를 하신단 말을 들었지요. 그런 말씀 하신적 있지요?"


"우리 적목단과 흑응회가 먹고 살려면 장사를 크게 해야만 됩니다. 은자가 없으니 농사 지을 땅을 얼마 이상 살 수도 없고... 이 문제도 중원에 돌아가면 단주와 회주에게 상의를 하여 어떤 답을 찾아야 할 문제에요."


"제가 보니 유목민들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데 농경민들은 사람을 많이 가리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대형님은 부족을 가리는 분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요? 단원들은 명나라 사람, 준갈이 몽골사람, 구게왕국 토번 사람들이 섞여 있을텐데, 여러 부족 사람들이 모여서 단합이 잘 될지 어떨지 그런 걱정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안문관 늑대들도 있고요, 부족 간 차별이 생기면 단합이 잘되지 않을텐데요?"


"흐음, 하라하슨은 필요한 걱정을 할줄 아는 사람이구만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것도 말해보세요."


"징기스칸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징기스칸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만일 전투에 져서 도망치면 어디에서 모이라고 재집결지를 먼저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발주나 호수에서 19 명이 모일 수 있었지요. 발주나 맹세를 한 19 명은 모두 유목민으로 9 개의 부족 출신들이었으며, 그들의 종교는 여섯 가지였고, 그들의 말하는 소리(= 언어)는 다섯 가지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지요. 자기들끼리도 통역해주어야 모두 알게되는 것이지요."


"참 여러 부족들이 함께 모였구만요."


"예, 징기스칸은 회홀(회골, 위굴)국의 문자를 들여와서 의사소통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징기스칸 대법령은 회홀국의 문자로 처음 씌여졌다 합니다. 그리고 종교는 완전 자유로 하게 하죠. 그런데 이번에 쿠몰 왕국에서 겪은 경험으로 저는 회회교는 종교가 다르면 차별이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형님, 앞으로 회회교도(回回敎徒)들은 아무쪼록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생각은 부족이나 종교나 말이나 생김새나 그런 것을 구분하여 사람 차별하지 말고,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그것이 위대한 징기스칸의 생각입니다. 대법령에 종교에 대한 내용도 나옵니다. '제 11 조, 모든 종교를 차별 없이 존중해야 한다. 종교란 신의 뜻을 받드는 면에서 모두 같다. 제 16 조, 만물의 어떤 것도 부정(不淨)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만물은 애초부터 깨끗하며, 청정(淸淨)함과 부정함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 17 조, 모든 종교의 종파에 대해 좋거나 싫은 정을 나타내거나 과대포장하지 말고 경칭(敬稱)도 사용하지 말라.'고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회회교는 이런 뜻에 위배되기 때문에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여깁니다."


"우리 단의 단합을 위해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을려면,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들은 미리 차별하여 못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금방 말한 대법령에서 징기스칸의 생각은 아주 적당하다 생각됩니다. 나도 잘 기억해두어야 하겠어요. 토번에서 내가 배운 것은 종교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오히려 나라와 만성에게 폐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황제가 조정을 해야할텐데, 종교를 핍박하는 모양이 되어서는 반발이 심할테니 교묘한 수법을 쓸 필요가 있겠어요."


진원성은 손짓으로 하라하슨에게 잠시 말을 멈추라고 하였다. 혼자서 잠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토번에서는 왜 불교가 그렇게 과도하게 세를 떨쳤을까? 토번에서 들었던 일들을 곰곰 생각하니 세상이 혼란하여 살기 어려워질수록 각 종교의 종단은 더욱 성세(盛勢)를 누리는 것이다. 황제가 정치를 잘하면 나라가 좋아지고 그러면 종교의 세력은 다시 줄어질 것인지? 세상 혼란이 전부 황제 탓인가? 가뭄이나 홍수, 전쟁, 역병, 등도 있을 수 있다? 세상이 제대로 되어있으면 종교를 찾지 않을텐데, 진원성은 종교의 성세가 망국의 징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게 맞는 생각인지는 확신이 없으므로 낙양에 돌아가면 사부용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였다. 나중에 잘 기억하기 위하여 '세상의 혼란(混亂)이 먼저인가, 종교의 성세(盛勢)가 먼저인가?'를 줄여서 '세혼종성(世混宗盛)'이라 사자성어를 만들어 외워두었다. 잠시 후 손짓을 하여 하라하슨은 입을 열었다.


"예, 그렇습니다. 징기스칸도 그런 문제를 당한 적이 있지요. 징기스칸의 몽골부족은 본래 무당을 믿었습니다. 징기스칸이 어려울 때에 무당에게서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지요. 초원을 통일한 후 천제를 올릴 때에 통천무(通天巫 = 천신 天神 텡그리의 대행자로써 큰 무당을 말함) 코코추로 부터 '하늘에는 유일하고 영원한 지배자 천신 텡그리가 있으며, 땅 위에는 유일한 군주인 징기스칸이 있을 뿐이다'라는 예언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후로 몽골 밖의 여러나라를 정복하는 전쟁을 시작합니다. 나중에 징기스칸이 죽게 되어 후계자 칸을 세울려고 할 때에, 코코추는 자기가 텡그리 신의 대행자(代行者)라고 하면서 징기스칸의 정치를 간섭합니다. 이 말은 칸보다 신의 대행자인 자기가 더 높으며, 징기스칸도 자기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징기스칸의 뜻에 의하여 코코추는 자기를 추종하는 많은 무당들과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또 무당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 즉 종교에만 관련하도록 정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모든 종교는 평등하며, 정치와 종교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이지요."


"징기스칸은 종교 위에 올라섰다는 말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칸 위에 한 종교가 올라서면 종교는 평등할 수 없게 됩니다. 모든 종교가 평등해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평등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종교는 종교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당들을 많이 죽임으로써, 무당이나 다른 종교 법왕들도 다시는 칸의 뜻을 어그리지 않습니다. 대형님, 또 제가 중원의 말과 문화를 배우니, 중원인들이 유목민들을 오랑캐라고 깔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 중에 가장 큰 것이 부인을 맞아들이는데 절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목민들은 여자가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되면,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하늘의 재앙이 내리면 혼자된 여자들이 가장 먼저 약탈당하고 말지요. 그래서 부족 내에서 여자가 혼자 되면 결혼을 다시 하도록 주선을 합니다. 여자를 혼례 시키려면 양이나 말이나 이런 재물이 필요해지는데... 그런 점 때문에 피가 섞이지만 않는다면, 집안 내의 사람과 혼례를 올리도록 한답니다. 형의 아내가 혼자가 되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데리고 삽니다. 또 아버지의 후처를 아들이 데리고 살기도 합니다. 이런 관습은 유목민들의 부닥친 환경 탓이라 생각하시고, 오랑캐라고 깔보지 마시고, 또 차별하지 마십시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나는 아직 그런 일들은 들은 적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지요."


"유목민들도 혼자된 여자들이 탈없이 살수 있다면 굳이 그런 혼인을 하지는 않을 것이지요. 대형님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너무 기쁩니다. 이제 우리가 앞으로 지날 곳은 만인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대입니다. 우리는 강변을 따라가고 있는데, 만인대 역시 강주변 이곳이 주둔(駐屯)함에 편리하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이지요. 만인대는 적어도 말 이만 필과 양 15 만 마리를 키워야 하니 상당한 물길과 풀밭이 필요하거든요. 혹시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사람들인가 하고 물어오면 떠돌이 의사(醫師)와 심부름 꾼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차하르에 있는 리그덴칸을 찾아간다고 하면 왜 찾아가느냐 등등 말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대형님께서 병자를 한 두 명 치료해 주셔야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쉽게 고치지 마시고요, 한참 어렵게 고치는듯 해주십시오."


"그건 그게 좋겠구만요." 


"앞으로 며칠 내에 우량한 만인대가 있는 주둔하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갈 걸로 예상됩니다. 설마 젤메조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는 않겠지요? 만일에 만나면 아니라고 잡아뗄 준비를 좀 해두어야 하겠네요."


"젤메조가 우량한 만인대 출신이라 했지요. 그런데 하라하슨은 중원 말을 어디서 배웠나요?"


"저의 집은 대대로 상인 집안이며, 차하르칸이 머무는 도읍에 있는 상인학교에서 배웠습니다. 명과 장사를 가장 많이하고, 그 다음은 회홀, 여진, 토번과의 장사가 많지요. 그래서 중원 말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늑대가 되어서는 중원말을 아주 잘 써 먹었습니다."


"상인학교에서 배웠다? 중원 말 배우는 데에 얼마 동안 배워야 하나요?"


"1 년 정도 열심히 배우면 웬만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토번 구게왕국 아이들도 이제 잘할 수 있겠군요."


진원성은 하라하슨과 한번 속 깊은 이야기를 하고나자, 점점 어떤 사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친밀한 사이가 되어졌으며, 자주 대화를 주고 받았다. 며칠이 지나자 하라하슨은 진원성에게 먼저 말을 붙여왔다.


"대형님, 이곳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젤메조의 고향이 있는데, 젤메조의 처자식이 어찌 살고 있는지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저와 밸구대리 둘이서 젤메조의 고향 땅에 이틀만 다녀올까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 다같이 가면 어떨까요?"


"그것은 ... 아무래도 젤메조가 살아있는 것이 알려지면 어떨지 몰라서요. 젤메조만 이곳에 남겨두면 그것도 좋지 않으니 ..."


"젤메조가... 정 곤란하면 그리 합시다."


하라하슨은 젤메조의 고향 땅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다. 젤메조의 부족명은 호리헝이었고, 백호대를 낼만큼의 큰 부족으로, 모두 사천 여 명의 규모였으며, 행티산맥의 산 비탈을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들판이 각각 있었으며, 다시 십호 전후로 한 단위가 되어 함께 움직이며 목축을 하고 있었으므로 지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으면 헤멜 수도 있었다. 초장은 계절 따라 돌아가면서 말과 낙타, 소 같은 큰 짐승을 먼저 풀을 뜯기고, 그 다음에 양이나 염소 같은 작은 짐승을 풀 뜯기는 것이 순서였다. 하라하슨은 전투 중에 사망한 젤메조의 전우라고 하면서, 가족들의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은자 오십 량을 전해주고 돌아오기로 하였던 것이다. 하라하슨과 밸구대리는 말을 타고 호리헝 부족을 찾아갔으며, 젤메조의 처의 소식을 듣고, 또 아들 둘을 만나보고 하루를 지낸 다음 날 저녁 무렵에 돌아오게 되었다.


"대형님, 젤메조의 소식을 만나고 왔습니다. 처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고 이미 딸을 하나 낳았다고 하며, 할아버지 집에서 자라고 있는 젤메조의 두 아들은 아홉 살과 여섯 살인데 아홉 살 짜리 큰 놈은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대형님이 주신 오십 량과 우리 둘이 세 량을 더 보태어 53 량을 젤메조의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두 아들은 건강하던가요?"


"예, 둘 다 아주 튼튼해 보였습니다. 큰 놈은 벌써 품팔이로 양을 치는데 그 놈을 만나려고 산등성이와 풀밭을 이리저리 좀 헤메었지요..."


열 살도 못된 아이가 남의 양치기를 나간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어린아이가 겪었을 고초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젤메조의 집 형편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며, 젤메조의 처가 어디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것이 원인일 터였다. 만일에 이제금 전해주었던 은자 50 량이 그 전에 있었다면 젤메조의 집은 백 여 마리의 양떼를 소유한 몽골의 보통 만성으로 살면서 젤메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저녁식사 후에 하라하슨은 젤메조를 데리고 진원성의 천막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하라하슨의 통역으로 젤메조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대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말해보세요."


"아무래도 내일 모래 이틀만 제게 시간을 주십시오. 하라하슨에게 들어보니 두 아들 놈과 아버지를 한번 뵙고와야 하겠습니다. 처는 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홍교 라마에게 스스로 팔려서, 할아버지에게 은자와 함께 애들을 부탁하고 떠났으며, 두 아들은 아버지가 거두어 키우신 것 같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찾아가 뵙고 두 아들은 데려와야 할 것만 같습니다. 혹 두 아들을 데려오지 못하면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와야 할 것 같습니다. 대형님께서 제 두 아들도 적목단으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대형님, 두 아들을 적목단으로 받아주시겠습니까?"


"아들이 있으면 데려와서 키우는 것이 더 좋겠지요. 저는 무조건 환영합니다."


"예 정말, 대형님 감사합니다. 제가 적목단원으로 잘 키우겠습니다. 내일 새벽에 일찍 출발하여 갔다가 모래 저녁까지는 돌아오겠습니다."


"밸구대리와 함께 갔다가 오세요.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젤메조와 밸구대리가 천막에서 나간 뒤로, 진원성은 하라하슨으로부터 젤메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대형님, 젤메조는 이번 고향길을 지나치면 다시 언제 고향에 올 수 있을지요? 그래서 고향에 가서 아들을 데려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들을 데려오는 것은 좋은데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런데 스스로 팔았다는 말은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었다는 뜻이지요?"


"예, 너무 가난하여 자기를 노예로 파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비겁자 가족이라 멸시 받아 도움도 없었을 것이지요. 라마에게 붙어가면 멸시받는 일은 면하게 됩니다. 동족에게 배반당하고, 항복자라 누명쓰고, 가족들마저 비겁자 가족이라 멸시당하게 되다니, 대형님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