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성 일행이 서안(西安)을 떠나 진주(秦州)를 향해 길을 제촉하고 있을 무렵, 낙양 적목단에서는 포획한 포로들을 달구는 일이 한창이었다. 단주 조무웅이 포로를 달군다고 표현하였는데, 달군다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시우쇠를 풍로(風爐)에 넣고 풀무질을 하여 쇠를 물렁하게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포로를 물렁하게 만들어 마음먹은 대로 주물주물 하겠다는 것이다.
5월 초순이 넘어가자, 오십 보, 백 보라 할 수 있게 다섯 장원의 포로들은 과반수가 적목단의 밀인재를 지킨다는 맹세를 하고 적목반점에 밥을 먹으러 오게 되었다. 이것은 스스로 산동성 어디의 무슨 장원 소속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자기의 장원에서 적목단에게 포로석방 협상을 해올 때까지 적목단의 지시에 순응하기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되니 나머지 절반도 보밀인재 맹세를 하는 것 역시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목책 밖으로 나가는 것은 떨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이때 쯤 포로들은 적목단에서 자기들을 죽일려는 의도가 없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며, 풀려나는 것은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라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자기들의 소속 장원에서 손을 써서 풀어주거나, 적목단의 우두머리인 적대형님이 돌아와서 선심을 베풀어 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니 자연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한다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밥먹을 때에 목책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 말고 나머지 대우는 여전하였다. 식사 후 목책안으로 돌아오면 두팔과 두다리를 묶이게 되었으며 적목단원이 1 대 1로 맡아서 행동을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의 위험은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으므로 포로들의 표정은 오히려 지키는 적목단원들보다 더 여유가 있었다. 포로들은 하루에 두 번 적목반점에 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적목반점에서 다른 장원의 포로들과 얼굴을 보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오가는 한마디 씩으로 서로의 형편을 알려주고 받게 되었다.
적목반점을 이용하는 사람은 공사장 인부들 250 여 명과 포로들 225 명으로 이미 반점을 넓혀 지었으며, 하루에 거의 500 명이 두 끼를 먹어야 하는 큰 규모였다. 반점 구조는 흑응반점과 비슷하게 되어져서, 총관은 객석과 주방 사이에서 높은 의자를 놓아두고 거기에 떡 버티고 앉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으며, 필요시 양쪽에 큰소리로 지시를 하기도 하였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야 하니 해녕총관 즉 난정은 반점을 하고싶은 소원풀이를 톡톡히 하게된 셈이었다. 반점에서 밥을 먹을 때에 포로들은 가급적 느릿느릿 젓가락을 움직였다. 다시 돌아가면 다시 장대에 손발을 묶여 지낼 생각을 하면, 밥그릇을 앞에 두고 한없이 앉아 있고만 싶은 그런 심정이리라. 하지만 공사장 인부들도 많이 이용하는 적목반점은 값이 싼 대신에 얼른 자리를 비워주어야 하는 그런 반점이므로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으며, 그래서 대부분의 포로들은 오가는 길에서 늑장을 부리기 일수였다.
포로 중 한 사람, 제남 오지회의 모기지는 과거에 난정을 따라 이곳 낙양 적목단에 왔던 적이 있던 사람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다시 이번에 오지회의 미곡가유지단 서군에 뽑혀서 오게 되었다. 그때에는 귀한 손님으로 대우를 받았으나 이제 신세가 바뀌어 포로가 되어있었다. 그동안 적목단원 중에 아는 얼굴이 있을려나 했다가 안문관 출신 늑대들에 둘러 쌓여 있어서 아는 얼굴을 볼 수가 없었기에 하소연 할 사람도 없이 지내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날 모기지는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누군가 자기를 알아보고 말을 거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아니 이곳에서 어떻게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하며 의아해 하다가 그 얼굴을 기억해냈다.
"여어, 너는, 거기 ... 너는 그 때 복양에서 방귀를 뀌려다 피똥을 싼 놈 아니더냐? 거 뭐라 오지회 무사라고 했지 아마... "
모기지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속에서 열불이 훅 솟구쳐 올라왔다. 포로 생활에서 정신적으로 시달린 지가 벌써 한달이 너머 가는가 싶은데, 그동안 어떤 억눌렀던 것이 그만 터져나오려 하였다가, 잠깐 감시자에게 들은 말이 생각이 나서 꾹 눌러 참았다. 그래서 한번 쳐다보고서는 모르는 척하고 발길을 돌리려 하였다. 지금 자신의 처지는 결코 말 댓구하는 것이 이롭지 않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다시 한마디를 덧 붙였다.
"오지회라구 큰소리는 탕탕 치는데, 결국 이곳에 붙잡혀 들어왔구먼. 에이 칠칠치 못한 놈들 같으니... 이 어르신 한테 한마디 댓구도 못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구만."
"이런 우라질 ... 아 네놈은 그 때에 복양에서 싸가지 없이 덤벼들다가 누구한텐가 한바가지 욕 먹고서 깨갱하면서 꼬리를 만 똥개 아니던가?"
"얼쑤... 이제 제대로 대답을 하는 것이 낙양 적목단에다가 피똥 한바가지 싸볼 생각이 들었나보구나. 오늘은 허리춤에 쇠붙이는 안달고 나왔고나. 그럼 이 어르신이 권법 한 수 가르쳐 줄까나?"
그 때에 복양에서 말리던 친구가 또 나서서 말렸다.
"지금 이 친구들은 잡혀와서 어려운 처지일세. 관두세, 관두자구... 참 오지회 형장, 이곳 적목반점의 총관이 그 때에 같이 복양에 왔던 그 소저라우. 어려울텐데 찾아가서 얼굴이라도 한번 뵈시우."
"아, 정말인가요? 아 그렇다면 ... 형장께는 정말 고맙습니다... 야 너 이노무 자식은 내가 형편이 바뀌면 그 때에 호되게 경 치를줄 알구 있거라. 오늘은 내가 참는다."
"야, 똥꾸에 피칠할 생각이 있으면, 이번 강도질 한 사건이 마무리 되면 나랑 너랑 한번 승부를 가리자. 너 나한테 권법을 한수 배울 뱃장이 있느냐?"
이 쯤이 되자, 둘의 입씨름을 듣고 주위에 포로들과 공사장 노부들과 적목단 감시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모여들자, 모기지 감시역의 적목단원은 별 일 아니라는 손짓 한 후 모기지에게 시간독촉을 다그치자, 모기지는 항상 뒤처지던 것이 이번에는 감시자를 앞서서 부랴부랴 목책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모기지는 두 팔 두 발에 막대기를 메달은 다음에 신속하게 그러나 은밀하게 한 사람에게 기어가 귓속말을 하였다.
"큰 공자님, 이곳 적목반점의 총관이 다름아닌 난정 아가씨라 그럽니다. 저는 아직 확인을 못하였으나, 말해준 사람이 바로 ... 믿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난정 아가씨에게 조금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지요?"
"뭐라구 ... 난정 누님은 제남 흑응회에 있다 그러던데 ... 내가 좀 있다가 적목반점에 가서 좀 알아봐야겠구나..."
오지회 임향주의 장남 임영재는 이때까지 버티고 있었는데, 이름을 바꾸어 대고서 이제 보밀인재 맹세를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목책을 나서자 감시자에게 적목반점에 가서 총관을 만나 임영재가 와있음을 전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이렇게 하여 난정은 해후하게 된 임영재를 통해서 다섯 장원에서 각각 한사람씩 가주의 아들 다섯 명이 일행 중에 섞여 숨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게 알려지는 것이 득이 되지 않으므로 동생이 다시 포로들 중에 섞여 있도록 말하였다. 그리고 적목단주에게 이 사실을 알게하였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동생을 구할 수 있도록 조치를 부탁하게 되었던 것이다.
5 월 17 일이 되자 서안부의 사부용 일행이 적목단에 돌아왔다. 그러나 적대형 진원성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서안에서 바로 토번 땅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적목단의 수뇌부는 적지않게 실망하였다. 난정 역시 사부용을 만나서 진원성의 토번행이 이루어진 전후 사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적목장에 예고없이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그는 기택의 부총관이었는데, 미곡가 유지단 서군 즉 산동성 대지주 다섯 장원의 포로들을 석방해달라는, 교섭을 맡은 사람이었다. 산동성의 다섯 가문은 기택에 모여서 이제야 기택을 대화창구로 하여 포로석방 협상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격에 맞는 적목단의 유총관과 한 식경쯤의 독대 후에 돌아갔다.
5 월 18 일 유시(酉時) 적목단 빈청의 방에서는 적목단주의 소집으로 회의를 하게 되었다. 제남으로 떠난 직할조 조수를 제외하고 각 조수들과 단주, 유총관, 해녕총관과 석도총관을 포함하여 모두 8 명이었다. 조 단주의 선창에 따라 모두 한 목소리로 보밀인재를 지키기로 선언하였으며, 그 다음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적대형님의 근황부터 들어보기로 합시다. 석도 총관님께서 자세하게 말씀을 해주시지요."
"예, 우리가 서안에 도착한 다음부터 말하겠습니다. 흑묘파의 친구들이 서안에 있었고, 그들의 도움을 얻어 바로 제단석을 찾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서안부 부터 찾기 시작하여 못찾고, 다시 연안, 경양, 한중 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결국 섬서성 전부를 모두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3 월 중순에야 마침내 한성(韓城)의 당가촌(黨家村)에 있는 신묘(神廟)에서 제단석을 하나 찾아내었지요. 그래서 그곳에 가서 자세하게 유래를 들어보았습니다만, 명쾌한 얘기를 듣지는 못하였지요. 다만 제단석 과두문의 탁본을 떠와 해석을 해보았는데 모두 열여섯 글자 였고, 그 중에 열네 글자는 식별이 가능하였으나, 두 글자는 끝내 식별하지 못하였습니다. 서안성 대흥선사의 주직이신 불과 스님의 해석에 따라서 적대형님은 미라레파라고 하는 선승의 제자분을 만나려고 토번으로 떠나신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탁본의 열네 글자는 무엇인가요?"
"예, 그 제단석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당가촌에서 이백 여년 전에 신묘를 지을 때에 누구로 부턴가 제단석을 사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전의 출처는 알수가 없고요... 그 제단석은 확실히 고대의 물건이라고 서안의 고문(古文) 전문가도 인정하였으며, 흑묘파에서도 인정하였습니다. 틀림없이 진시황제보다 몇 백 년은 더 오랜 물건이라고 합니다. 그 제단석을 신묘에 모셔 성립한 후로 당가촌은 대 지진에서도 피해가 없었으며, 재난과 재해, 역병 등에서도 빗켜나서 모두 제단석을 영물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합니다. 그들은 자세하게 묻는 우리들을 경계하며 잘 가르쳐주지 않다가, 대형님의 병이야기를 듣고서야 말해주었습니다. 제단석에 대왕신(大王神)이 임하여 계신다며, 엄청 신성시 하였습니다. 참 그 제단석 문구는 '일경지극 적산고고 삼?일? 백일승천(一逕至極, 赤山高孤, 三口一口, 白日昇天)'라 판독 되었습니다."
"그 문구가 무슨 뜻입니까?"
"불과스님의 말씀은 '하나의 좁은 길로 꾸준히 가다보면, 빨간 산을 만나는데 그 산은 아주 높아서 외롭다.' 그 다음은 해석이 안되고요, 그 다음은 '환한 낮에 하늘에 오른다'는 뜻인데, 바로 미라레파 스님이 백일승천을 하신 활불이시라면서, 그분의 제자를 만나면 대형의 병은 분명 해결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일승천이 무엇입니까?"
"그 말이 바로 해가 떠있는 하늘에서 하늘이 열리며, 사람이 둥둥 떠서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일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바로 미라레파 활불께서 그렇게 백일승천 하셨다 그럽니다."
"아하! 그거 참 믿기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석도총관님, 만약에 미라레파 활불의 제자를 만나서 병을 고치는 것은 좋은데, 만일 대형께서 하늘로 올라가버리시면 어떻게 하죠?"
"불과스님의 말씀은 그렇게 될려면 몇 십 년의 고된 수행이 필요한 일이랍니다. 아마도 몇 달 아니면 한 두 해 고생을 하시면 병을 완치하시고 돌아오실 거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적대형님은 5 월 1 일에 토번으로 떠나가셨습니다. 그 대형님 일행은 직할조의 유래타와 몽고족 하라하슨과 두 명 그리고 흑묘파의 소제 이렇게 총 6 명입니다."
"그러면 당분간은 대형님이 안계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적목단의 모든 행사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적목단과 흑응회는 시련을 당하고 있는 중이라 할 것입니다. 지금 조금 삐걱하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정말 잘해야 할 것입니다."
"유총관님 지금 산동의 다섯 가문에서 중재를 요청하여 기택의 부총관이 제시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제남부 내에서 흑응회는 미곡저가 판매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5 푼의 빈민들에게 한하여만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포로들 전원을 무조건 석방시키라는 것이지요."
"적목단이 하남부 내에서 미곡판매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슨 말이 없었는지요?"
"에... 그것을 물어보니 자기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시도 못 받았다고 대답 하였습니다. 즉 하남부 건은 일단 모르는 척하고 넘어갈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 짐작이 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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