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일단 협상을 시작해보자는 뜻만 전하였고, 우리의 눈치를 좀 살피자는 뜻인가 보군요. 우리는 기택에서 하남부 미곡판매에 대해서 어떤 제안을 할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제남부와 함께 하남부 마저 어떤 합의를 만들어 결판을 지어야지 나중에 따로 하남부 만을 다시 거론 한다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렵지요."
"단주님. 이번에 제남과 하남 두 곳을 함께 결정지어야 합니다."
"저도 이번에 함께 딱 결판 지었으면 하고 그리 생각합니다만, 산동은 우리가 약점을 잡고 있으니 가능할 것이나, 하남성 지주들이야 어떤 건덕지가 없으니 그들이 버티면 아무런 방도가 없습니다. 해녕총관님, 지금 해녕총관님의 동생 분, 오지회 향주님의 큰 공자님이 포로로 잡혀와 있지요?"
"예, 동생이 잡혀왔다는 것을 저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와 함께 다른 네 장원의 자식들도 잡혀왔으나 모두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무사들 속에 숨어있다 들었습니다. 지금은 저의 위치가 좀 어색합니다. 제대로 흑대형 님의 정식 처가 되지도 못하였고, 그렇다고 흑대형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 말할 수도 없고요, 마찬가지로 동생의 어떤 잘못이나 아버님 임향주의 잘못되는 것을 모른 채 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애매하고, 어떻게 생각하니 막연하고, 이도 저도 아닌 ..."
"지금 해녕총관 형님의 말씀은 앞으로의 혼사를 위해서 제남 임향주님 본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어차피 해녕 형님도 어서 빨리 흑대형님의 사람으로 낙인을 쳐야 한다 그리 봅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분 큰 공자님을 인질로 삼아, 임향주님과 거래를 할 때에 같이 해결을 하면 좋을텐데 무슨 방법이 없나 하고 연구를 해보고 있어요. 이번에 흑대형님이 임향주님에게 청혼을 하고, 임향주님이 허혼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해녕 형님은 법적으로도 흑대형님의 사람이 됩니다. 나중에 혼례를 못 올리더라도 그냥 흑대형님 집으로 들어와도 그것이 피치못할 사정이라면 허용이 되는 것이지요. 저는 여기까지는 거래조건으로 해서 그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오지회와 흑응회가 앞으로 친구가 될지 적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 쪽에서 자꾸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 그래서 해녕 형님 건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아요."
"단주님, 지금 산동의 다섯 가문에서는 다섯 명의 공자들이 포로로 우리에게 잡혀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참 좋은 기회입니다. 앞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니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공자 다섯 명이라 ... 당분간은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해둡시다."
"산동에선 제남부만 미곡을 팔고 있는데, 제남부 이외 다른 부의 지주장원에서 포로가 되어왔다는 것은, 우리 짐작 보다 더 큰 규모로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 생각되고요. 그렇다면 산동성뿐 아니라 하남성 역시 큰 규모라 그리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맞아요. 그건 중요한 사실입니다."
"지금 적대형님이 안계신데, 제남 해녕총관님 본가에 적대형님의 청혼문서(請婚文書)를 보내도 괜찮을까요? 그 쪽에서 혼인 당사자를 한번 만나자 그러면 곤란한 일이 생길텐데..."
"이번 강도 사건에서 하남부에서도 좀 어려운 일을 당하여서, 정식 사건으로 내보일 수도 없고, 마냥 안고 갈 수도 없고, 이미 시일이 상당히 지나서, 하남지부님께서도 어서 이 강도사건이 유야무야 되기를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이 때에 지부님께 적대형님의 중매쟁이가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하남지부님의 중매로 청혼문서가 들어가면, 해녕총관 본가에서도 두 소리 못하고 그냥 허혼문서(許婚文書)를 응답으로 내놓을 것으로 짐작해봅니다. 이로써 강도사건이 종결될 수만 있다면, 하남지부님은 청혼문서 하나 쯤은 바로 써서 사람에게 들려 제남으로 보내주실 것입니다."
"뭐 당사자가 낙양에 있는데 청혼문서를 제남으로 보낼 필요도 없지요."
"예, 포 정탐조의 말씀이 맞지만, 우리는 약자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까지도 내다보고 잘 판단해야합니다. 너무 강하게 나가면 나중에 그 부담을 우리가 더 져야 할 겁니다. 그러나 이번에 너무 약하게 하면 나중에 우리는 후회하겠지요. 그 때에 좀 더 세게 나갔어도 되었는데 하고요..."
"단주님, 전투조에서 한 말씀 드립니다. 모든 전쟁은 결국은 전투력으로 승부가 납니다. 이번에 겪어보니 경비짓만 하던 장원 무사들은 걱정 거리가 못됩니다. 우리 전투조 240 명이면 그들 천 명도 문제 없습니다. 하남성 쪽은 뭐니뭐니 해도 기택이 중심입니다. 우리 전투조가 하룻 밤을 타고 기택을 완전 솎아내 버립시다. 그러면 하남부도 굴복할 것입니다."
"그건 아니에요. 전투조가 방금 한 말은 전혀 엉터리입니다. 전투조수는 내말 잘들어야 합니다. 그런 말이 혹 부하들의 입을 통해서 안팎으로 퍼져서는 절대 안됩니다. 다시는 입밖으로 꺼내지 마시요. 알겠소? 그 말이 어떻게 새나가서 외부 타 장원에 들어가면, 지주들이 모두 모여 반 적목단 세력으로 담합해버리면 그것으로 모든 기회가 없어집니다. 그러니 절대 조심해야 합니다."
"예? 예... 단주님.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다른 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이곳 낙양만 해도 기택 뿐 아니라, 이번 강탈과는 무관한 여러 장원들이 있고, 그들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기택을 상대했다고 칩시다. 어떻게 그들을 솎아냈다 합시다. 그러면 우리 전투조는 몇 명이나 남겠소? 백 명? 백 오십 명? 적대형님은 바로 그것을 절대 하지말라 명하신 거요. 우리는 우리의 힘을 보여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산동성과의 협의도 '왜 그렇게 약하게 나오지? 아마 별 힘이 없어 그리하나봐' 이런 착각을 하게 하면 성공일 겁니다."
"단주님, 지금 황하 변에 짓는 새 장원에 은자를 많이 소모하고 있지요? 단의 내고가 얼마나 충실한가 궁금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포로들 속죄은(贖罪銀)으로 한 명당 백 량씩은 받을 수 있을텐데, 225 명 이라고 했지요? 모두 은자 22500 량은 받을 수 있겠는데요?"
"제가 말씀드리지요. 단의 내고는 항상 일만오천 량 전후에 기준을 두고 맞추고 있습니다. 즉 그 만큼의 여유를 남겨주고 새 장원에 은자를 투입하는 것이지요. 다행히 미곡 판매에서 당장에는 손해가 나지 않고 있기에 ... 새 장원은 올해에 먼저 대지(垈地)만 만들어지면 내년부터는 속도 조절하기가 쉬운데요, 그래서 대지가 다 만들어지는 년 말까지는 좀 속도를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밀어부치고 있지요. 단 운영에 은자가 부족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최악의 경우 일이 까칠해지면 한 명당 300 량씩 총 육만 량을 받아야지요."
"석도 총관님께 하나의 소식이 있습니다. 금번 월 초에 도착한 저보(邸報 : 당시에 경사의 육부 소식과, 황궁의 소식을 매월 단위로 편집하여, 중앙정부에서 지방 정부에 배포하는 소식지)에 보니 사 포정사 님께서 경사로 불려 가신 것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하남성의 부주현 관리들이 상당수가 ..."
"아! 그런 소식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정말 좋지 않은 소식이군요."
"여기 지난 달 중순 경 포정사님이 석도 총관님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나중에 한 번 읽어보세요. 다행하게도 우리 하남지부님은 이번에도 남으셨네요. 그래서 하남지부님은 경가장 전답을 마지막으로 잘 관리하여 마무리를 하시겠다 그러시면서, 애를 쓰고 계신다 합니다. 그런데 의창(義倉)을 열려고 준비하던 것은 세사태감들이 나서서 못하게 막았다면서 아주 낙담이 크시다 전해들었습니다. 그동안 뒤를 봐주시던 포정사 님이 물러나셔서 앞으로는 하시는 일마다 좀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다들 그럽니다."
"예,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여기까지가 지금 우리 적목단과 흥응회가 당면한 현실입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회의를 마칩니다. 그리고 삼일 후에 다시 모여서 회의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 중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과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그 다음에 두 번째로 해야할 일과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이 뭔지 하는 것을 모두 각자 열심히 생각해서 어찌 행동을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답도 생각해서 이 자리에 오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각 조수들은 자리를 떠나고, 해녕총관과 석도총관 둘이 남아있을 때에 조 단주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해녕 총관님과 석도 총관님께선 좀 이상하다 생각하실지 모릅니다만, 안문관 밖에서 조수들을 데리고 있을 적에 제가 하던 회의 방식입니다. 현재 상황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한 사람당 두 가지 씩을 준비해 오라고 하면, 그것으로 절대 부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수들에게 맡기면 좋은 해결책이 나왔었나요?"
"안문관 밖에서는 우리들은 명군병도 아니었고, 달단군병도 아니었어요. 양쪽에서 모두 가장 먼저 없앨려고 했었기 때문에 우리들끼리 더욱 단결해야만 하였지요. 게다가 수 년간 계속 도망치는 생활 속에서 적어도 두번씩 서로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을만큼 생사를 함께 했었지요. 누가 계획을 말했던 그 계획을 시행하면 모두가 함께 살거나 죽게되는 그런 일이 되기 때문에 계획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서로 계급장 떼고서 할말 다하게 되었습니다. 이 조수들은 그렇게 늑대부대 참장(參將 가장 낮은 장군으로 참모역임)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제가 지금 점잖케 표현해서 그렇지 사실 이들이 회의할 때에는 실제 전투만큼 격렬했었지요. 그래도 회의 끝나면 서로 의지하는 동료가 됩니다."
이렇게 회의를 끝낸 다음 사흘이 지나고 유시가 되자, 조단주 이하 8 명이 다시 모여 회의를 하였다. 보밀인재를 모두 한목소리로 외친 후 조단주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지금 우리 흑응회와 적목단, 다음부턴 줄여서 흑적단이라고 하기로 합시다, 흑적단이 당한 상황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하는 의견을 토의해보자는 뜻입니다. 이 자리는 어떤 책임을 따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지금의 위기,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를 이 때를 잘 이겨내보자 그런 뜻이니 아무 꺼리낌없이 말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중요하고 우선해야 할 일부터 두 가지씩 말하십시오. 안문관에서는 가장 문제를 잘 모를 것 같은 사람부터 먼저 말을 하도록 하였습니다만, 오늘은 탁자에 둘러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면 말하도록 하겠으며, 마지막에 해녕총관, 석도총관 두분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자 그럼, 이쪽 미곡조 이민구(李敏九) 조수(組首)부터 말해보십시오. 유총관은 기록을 해주세요."
"예, 단주님의 명에 따라 말합니다. 가장 중요하고 우선해야 할 일은 지금 장원에 포로로 있는 놈들 중에서 다섯 명의 공자의 인신(人身)을 구속하여 확실히 포로로 잡아두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두번째는 다섯 명의 입에서 하남부와의 연결이나 하남부도 강도짓에 관한 증거가 있을 것이니 그것을 찾아내도록 고문이라도 해서 꼭 물증을 확보하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여어, 이민구 말 잘하네. 사흘 동안 열심히 생각했나보네. 내가 말할라고 했는데 딱 먼저 말해놓아 난 할말이 없어졌구만."
"정탐조 포형은 또 나를 놀리려 하시는 말씀이지요. 여기 두 총관님도 계신데 놀리는 일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해녕, 석도 두 총관님은 좀 익숙지 않으셔도 보고만 계십시오. 관(=안문관) 밖에서 좀 거칠게 산 놈들이라 회의에서도 곧잘 농담도 하고 수틀리면 주먹질도 하는 놈들입니다. 자 다음은 옆에 전투조 고조수가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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