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용전토 불하 문제로 한창 바쁘던 5 월 3 일에 진원성이 머물던 내장원 빈청에 청년 2 명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들은 1 년 몇 개월 전에 동전 밀무역을 하면서 얻게된 사나다노부시게(眞田信繁)의 시동(侍童) 두 명이었다. 중원의 말을 배우라고 명하여 학숙에 맡겨둔 것인데, 오늘 뜻밖에 나타난 것이다. 당시에 열입곱 살이라 하였으나 키도 작고 어린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키도 좀 컸으며, 더 어른스러워진 것이 대견해보였다.
"오호, 너희들이 오늘 왠일이냐?"
"대형님, 안녕하십니까? 오랫만에 뵙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무슨 일이든 해야할 것으로 생각하여 왔습니다. 그동안 말도 배우고 여러가지 물정도 익혔으므로 이제 주군을 도와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할 것이기에... "
"참 노부... 노부시게 라는 장군이 1 년 안에 찾아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은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예, 그때에 이미 정해진 일이었습니다. 당시 우리와 헤어질 때에 우리는 노부시게님과는 영영 이별을 하였습니다. 이미 그 때에 노부시게 님은 전쟁에서 죽을 각오를 하셨으니, 아마도 그 때에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노부시게 님은 죽을 자리에서 값있는 죽음을 맞이하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아! 그때에 이미 ..."
"예, 이미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며, 주군에게 돌아가서 자기의 역할을 모두 하셔야할 입장이기에 저희 둘에게 대형님을 잘 모시라고 말하셨습니다."
"그 때에 왜국에 돌아가서 죽음을 택했다는 말이구만. 흐음, 너희 둘은 이제 말을 잘하는구나. 재주가 좋군."
"한자(漢子)를 알고 있어서, 중원 말을 배우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이름을 송이와 랑이라고 했는데, 누가 송이냐?"
"제가 송이입니다."
"너는 송이, 너는 랑이, 두 사람은 혼인을 했느냐?"
"아닙니다. 일본에 있을 그 때는 몇 년간 전쟁이 계속되어 혼인할 여건이 아니었고요?"
"그러면 이제 혼인도 하고, 중원에서 계속 살아야 할테니 내가 이름을 지어주마. 송이 너는 장강에서 따와서 강송(江松)이라 하고, 너는 황하에서 따와서 하랑(河郞)이라고 하지. 유래타 오너라... 유래타, 이 두 사람을 너의 부하로 두고 가르쳐라. 이젠 말을 잘하는구만. 이름은 이쪽이 강송이고, 이쪽이 하랑이다. 여기 유래타 형이다. 무엇이든 물어보고 배워라. 래타 이 두 사람을 회원으로 올려서 월례가 지급되게 하고, 회의 일을 배우게 해라."
5 월 20 일 오후에 진원성을 찾아온 사람이 또 있었으니, 그는 작년 1 월 동전밀무역에서 만났던 미쓰(光) 선수(船首)였다. 중원사람처럼 꾸미고 옷을 입으니 누구도 왜국 사람인 것을 알 수 없었다. 진원성은 우선 송이와 랑이를 불러오게 하였다. 인사를 하고 앉아 찻물을 나누니 진원성에게 무량한 감개가 찾아왔다. 미쓰 선수의 말을 듣고, 결국 원수를 찾아내었으며, 하늘의 도움으로 그 원수를 갚고, 자기의 조상으로 부터 남겨진 황금과 족보를 얻게 되었다는 생각을 잠시 되새겨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미쓰 선수도 잠시 지난 일을 생각하는듯 하였다. 미쓰 선수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노부시게를 태우고 오사카로 돌아갔으며, 그 이후 왜국은 전쟁이 발발하여 노부시게와 그의 시동들과 그가 이끈 수천 명의 부대는 전멸 당하였던 것이다. 토요토미의 하나 남은 자식 히데요리와 어머니는 함께 자결로 생을 마쳤다고 하였다. 그래서 토요토미 가(家)는 완전히 멸망하였으며, 도쿠가와 가(家)가 대장군(大將軍 쇼군)으로 확고한 지위를 굳히고, 막부(幕府) 권력을 잡았던 것이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 딴 생각을 하다가 다시 눈을 부딪게 되었다.
"미쓰 선수님, 그 노부시게님은 돌아가셨나봅니다. 오지 않으신 것을 보니..."
"예, 작년 5 월 6 일에 노부시게님과 시동들과 수 천 명의 부대원 모두가 전멸을 당했습니다. 한 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부자의 목숨을 위험하게도 했다 합니다만, 숫적으로 워낙 차이가 나니... 이 소식을 전해야 하겠기에, 저는 제남에 와야 하였지요. 사실 작년 1 월에 이미 형세는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노부시게님은 죽을 곳을 찾아가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때에 노부시게님은 진회주님과의 대화에서 깨달으셨다 합니다. 도쿠가와 가(家)가 전쟁을 미루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는 토요토미 가(家)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무너질 것임을 알고서 자기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뿐임을... 그러니 본국으로 서둘러 돌아가서 빨리 승부를 짓는 것이 조금이라도 유리함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진원성은 송이와 랑이를 내보냈다. 옆에 있던 둘은 오가는 대화를 소리없이 듣고있다가 콩알만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둘은 헤어질 때에 들었던 그대로 사나다 노부시게 장군의 휘하에서 죽지못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두 사람이 되었음을 알고 눈물을 흘린 것이다. 미쓰 선수는 진원성과 일 이야기 하기 전에 따로 두 사람에게 자기가 들은 마지막 전투의 모습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송이와 랑이는 토요토미가(豊臣家)의 세상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았으며, 돌아갈 곳이 없으니 이제 흑응회의 사람이 되는 수 밖에 없었다.
미쓰 선수는 송이와 랑이의 나가는 뒷모습을 처연히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왜국에서는 도쿠가와(德川)씨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무역 일에도 변수가 생겼습니다."
"왜국에서 일어난 무슨 변화 때문인가요?"
"예, 도쿠가와는 남만인(南蠻人 = 왜국에서 포르투칼,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의 사람을 야만인이라 부르는 총칭, 중국에서는 홍모귀 紅毛鬼 라고 불렀으며 이는 야만인보다 더 못한 귀신취급을 하였던 것이다.)과의 무역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남만인들은 야소교(耶蘇敎 천주교를 야소교라 부름) 선교사를 데려와서 포교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여 허락 받았는데, 신자들을 충동질하여 반란을 꾀하다가 들통낫고요, 남만인들은 선교사들까지 모두 쫓겨났으며 신자들도 많이 죽고 야소교 포교도 금지 되었습니다."
"야소교가 무슨 종교입니까?"
"중원에 있는 회회교와 비슷한 종파라 합니다. 야소교는 남만인으로부터 전해진 것인데 토요토미가는 야소교 두목들이 전해주는 물목들을 받으려 친하게 대했으나, 도쿠가와 가는 야소교를 박멸하였습니다. 도쿠가와에선 야소교 신자들이 반란을 꾀했다고 말하고 탄압하였으며, 야소교는 탄압을 하기에 반란을 일으켰다고 말하고 있으니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지요."
[서기 1612년 막부 직할령에 크리스트교 금지령을 내렸는데 이는 에도막부가 내린 최초의 크리스트교 금지령이었다. 서기 1614년부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으로 교토, 오사카 등 에도막부의 주요 직할 도시에서 크리스트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포기하였고 일부는 마카오와 마닐라로 추방되었다.]
"제가 불교가 성한 토번 땅을 지나며 배운 것은 종교가 성해지면 나라의 몫으로 갈 세금을 종단이 가로채게 됩니다. 그래서 왕과 종단의 법주와 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토번에서도 왕과 불교종단의 법주 간에 싸움이 벌어질 판이었지요."
"그 말씀을 듣고보니 생각이 납니다. 왜국에선 세금이 중원보다 훨씬 높습니다. 중원은 농작의 소출에 1 할을 기준으로 산정하지만 왜국에선 3 할을 기준으로 산정하지요. 3 할을 기준하여 세금 걷는 관리들의 월례와 운반에 필요한 비용과 중간에 손실이 발생할 것도 감안하면 5 할을 넘어 6 할에 근접합니다. 이렇게 되면 농자(農者)들은 반쯤 죽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야소교는 1 할을 교단에 바치라고 한답니다. 그러니 야소교 농자들은 결국 다이묘라는 관리들에게 항거를 하게 되었으리라 봅니다. 야소교도들은 단합이 잘되니 금방 떼를 지어 항의를 하고 반란으로 발전하였을 겁니다."
"야! 왜국은 세금이 엄청 무겁군요.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갈수 있을까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예, 그래서 왜국은 백성들은 아주 가난하고, 중원의 노예보다 못한 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야소교를 몰아내고 남만인들과의 교역도 중지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포도아(포르투갈)국 사람들이 왜국의 은을 명나라에 가져가서 명나라의 물목을 사와 왜국에 팔고, 큰 이익을 얻었는데, 이 길이 막혔으니 우리 무역하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났지요. 이런 일이 있으면 몇 십년은 명과 무역이 중지 됩니다. 이제 우리 왜국 배가 바다로 나가서 물목을 들여와야 합니다. 현재는 왜국과 조선국 간의 무역만이 정상적으로 허용이 되고 있으니 이것을 알아두시고요... 저는 진 회주님께 피혁 무역을 좀 하자고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이것은 왜국 관인(官認 정부에서 인정받은) 무역입니다."
[서기 1609 년 조선국은 은의 필요성에 의하여 임진(壬辰) 년 조왜전쟁 이후 끊겼던 왜국과의 무역을 정상화하였다. 광해군은 명나라에서 화약 등 무기재료 구입에 필요한 왜국의 은이 무척 필요하였다. 일부는 명국 사신에게 뇌물로 줄 은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국은 자국을 침략한 왜국의 사죄도 받지 못한채로 급히 왜국의 국교정상화 요청을 받아들였다.]
"가죽 무역을..."
"예, 양가죽과 말가죽 등 가죽 수요가 좀 많습니다. 매 년 한 30만이나 40만 장 쯤이요. 저 북쪽 몽골이나 여직에서 들여와야 할텐데... 우리가 명국과는 사이가 좋지 않으므로 발해 저 북쪽으로 들어가면 직접 배가 들어가면 세 번에 한번은 걸려서 몽땅 물목을 뺐기고 생명까지 장담할 수 없지요. 그래서 진회주님께 함께 해보자 그러는 것입니다."
"흐음,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은자는 전번에 그런 은자겠지요."
"예, 하지만 진 회주님은 은(銀) 연로(鍊爐)와 장방(匠方)을 갖추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시세는 왜국의 은(銀)으로, 가죽에 손상이 없는 상급 피혁, 무두질이 잘된 양가죽은 은자 한 량에 열 장이고, 소나 말 가죽은 석 장입니다."
"그런데 왜국에선 양을 키우지 않나요? 그리고 왜 그리 가죽이 많이 필요할까요?"
"왜국에서는 식량이 부족해서 중원처럼 초지(草地)를 모조리 전토(田土)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또 왜국에선 가축들이 왠지 성(盛)하지 않습니다. 가죽은 용도가 무궁무진하고요, 군병들의 피복과 신발, 장식에 많이 사용합니다. 도쿠가와 대장군의 왜국정부는 각 봉국들에게 성과 저택을 짓고, 군병을 유지하는 데에 많은 은자를 들이도록 해서 저축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그럽니다. 또 가죽으로 군병들을 치장하는 것을 유행시켜서 봉국들은 자기 군병들을 가죽으로 치장을 하여야 됩니다. 다들 그리 하는 데에 자기 봉국만 하지않으면 한마디로 군병기세가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가죽을 대장군 정부에서 독점 수입하여 큰 이문을 붙여서 각 봉국들에게 팝니다. 봉국의 재정을 약화시키는 방법이지요. 이해하시겠지요?"
"예, 하지만 봉국들이 우리는 좀 아껴서 대비하자 그러면 안될까요?"
"왜국은 오랜 전쟁으로 백성들이 모두 평화를 그리워하는 데다가, 도쿠가와 가문이 장악하여 이미 평화 분위기로 바꾸었으니, 그나마 군병을 유지하려면 그렇게라도 군병들의 사기를 맞춰줘야만 하는 것이지요. 옆에 있는 봉국의 군병들과 비슷하게 치장을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철포(鐵砲)가 불을 내품고, 피가 튀고 살이 잘려나가는 판이라면 그런 문제가 없겠지만, 평화시에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군병들의 기율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 이렇게 대세가 바뀌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요."
"흐음, 바뀌는 대세를 막을 수 없다. 예, 그렇군요. 미쓰 대인, 잠시 후에 우리 상가를 함께 둘러보시고,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가죽를 한번 살펴 보시지요. 우리는 서쪽 하미에서 들어온 것과 북쪽 커얼친에서 들어온 것들이 있는데... 그런데 물량이 그렇게 많다니 그것을 과연 어떻게 해야 감당할 수 있을런지는 좀 생각이 필요하겠습니다."
"잠시 후 살펴보고 함께 연구를 해보기로 하십시다. 1 년 이란 시간이 있으니 준비를 천천히 하면 되지요. 피혁은 왜국에서 들여가는 것이고요, 또 이런 게 있는데요?"
"잠깐 기간이 1 년이면 지금이 5 월이니까 내년 5 월까지 마피, 우피, 양피들을 준비해야 하는 건가요?"
"내년 9 월에 교주(膠州)에서, 전번 동전무역에서 처럼 그렇게 했으면 합니다."
"내년 9 월이면 시간을 맞출수는 있겠군요. 흐음. 미쓰 선수님 제가 평소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아신다면 좀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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