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월 7 일 호부낭중 원세진은 산동성청에서 복왕당(福王黨) 사람인 산동순무와 제남지부를 만나고 있었다. 해가 바뀌면서 고하를 따지지 않고 지방관들은 물갈이가 되었으며, 그래도 여전히 노른자 같은 고위직에는 대부분 태자당(太子黨)이 아직 진출하지 못하였다. 원 낭중은 속에 있는 말까지 털어놓으려고 주위를 물리치고 순무와 지부만을 불러 자리했던 것이다.
[순무(巡撫) - 명·청 시기에 지방을 순시하며 군정(軍政)과 민정(民政)을 감찰하던 대신으로서, 이 관직은 명나라 초기인 1391년에는 임시로 설치된 것이었지만, 1421년부터는 정식 관직이 되었다. 당시의 순무는 대개 진사(進士) 출신이 담당했으며, 지방에 파견되면 승선포정사사(承宣布政使司)와 제형안찰사(提刑按察使司),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의 업무를 총괄하면서 매년 조정에 들어가 업무를 보고했다. 청나라 때의 순무는 도찰원(都察院) 우부도어사(右副都御史)의 직함을 겸하게 되면 종이품(從二品)이었지만, 병부시랑(兵部侍郞)의 직함을 겸하게 되면 정이품이 되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걸음을 하셨으니 무슨 일이십니까?"
"내각의 방 수보 대신 심부름입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작년 12 월 양회염구 포 염운사가 도망친 사건 뒷감당을 하는 문제 때문입니다. 관고에서 빈 은자가 자그마치 삼백만 입니다. 그래서 제가 염상(鹽商)들과 잘 타협을 해서 이백만으로 조정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원세진은 순무와 제남지부에게 자세한 상황을 전하였으며, 산동성 순무는 등주부, 래주부, 녕해주에서 불용 전토 이만 경을 마련하고, 제남지부는 흑응회를 잘 만져서 이백만 량을 갖고 있는지 조사한 다음에 그들에게 이백만 량을 내놓고, 염인 이백만 매와 이만 경의 불용지 개간을 맡도록 조정을 해달라는 요지였다. 순무와 제남지부는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잠시 입을 다물고 머리 속으로만 복잡한 계산을 해보고 있었다. 이런 큰 일에는 구경하는 사람에게도 국물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지사라 여겼으므로, 어떻게 하면 순무와 지부도 은자 얼만큼을 챙길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우선 제남지부는 세사태감 장효기를 불러서, 진원성을 만나보도록 부탁을 하였다. '혹시 아직도 불용 전토 이만 경을 불하받고 싶어하는지, 만일에 그렇다면 이백만 량을 내고서 염인 이백만 매를 구입하면서 부대조건으로 딸린 전토 이만 경을 불하받는 일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하는 것을 알아봐 주세요.' 그래서 태감 장효기는 흑응회를 방문하겠다는 명첩을 보내고는 다음 날 흑응회를 방문 하였다.
3 월 13 일 오후 미시 경 흑응회 내장원에는 진원성과 초 회수, 백 회우가 장효기 태감을 맞아, 서로 수인사를 나누고 앉아, 찻물을 따른 후 대화를 하였다. 장효기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여 목을 가다듬고서 입을 열었다.
"험... 어험... 지난 번에는 은자를 빌려주어서 작지않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항상 고맙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하여간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오늘은 지부님의 의중을 전달하자고 찾아뵈었습니다. 먼저 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만... 흑응회에서는 아직도 불용 전토 이만 경을 불하받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갖고 계시면, 이번에 좋은 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씀이 있어서 말이지요. 어떠신가요?"
"우리 흑응회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불하 받기를 원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번에 정부에서 무슨 변화가 있는 모양입니다..."
"예, 이번에 호부에서 주관하여 일을 하는데, 그 일에 협조하여 주신다면 부대조건으로 불하 건을 상주하여서 폐하의 허락을 받도록 해보자 그런 뜻을 지부님께서 제게 말하여 흑응회의 뜻을 알아보라 하셨지요."
"흐음... 호부에서 하는 행사... 에 협조를 ... 어떻게 협조를 하라는 것인지요? 무슨 은자를 좀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예, 은자를 좀 내시라고... 아니지요. 은자를 좀 많이 내야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은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호부에 은자를 꿔주는 셈치고, 십 년 걸려서 조금씩 되돌려받으시는 것이니 은자를 그냥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빌려줬다가 전부를 돌려받는 것입니다."
"은자를 좀 많이 빌려달라는 말씀이신데 도대체 얼마나 빌려드려야 하나요?"
"은자 이백만 량입니다마는..."
"흐음 이백... 이라고요."
"으흠, 대형님 이백만이라니 이건 좀... "
"장 태감님 이건 서로 믿음이 먼저 전제되어야 할 문제입니다만, 작은 돈도 아니고, 우선 장 태감께서 어떤 일인지 말씀을 자세하게 해주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 이것은 호부에서 은자가 필요해서 행하는 일입니다. 호부에 염인이 이백만 매가 있는데, 이 염인은 내년부터 10 년 동안 해마다 이십만 매씩 소금으로 바꿔내줄 염인입니다. 이것을 호부에게서 이백만 량을 내고 사는 것이지요. 그러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10 년 간 나누어 이자까지 돌려받는 셈이지요. 은자 한 량 넉 푼 짜리 염인 1 매를 한 량에 사는 것이니 싸게 사는 것이지요. 이제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염인을 사라, 그러면 전토를 불하해준다는 거군요. 전토 불하하는 것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전토를 어떻게 불하해 주신다는 말인가요?"
"예, 오늘은 흑응회의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려고만 하였으니 더 이상 말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요. 이제 알았으니 돌아가서 흑응회는 전토 불하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있다고 보고 드리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면 보고 드린 후에 다시 한번 연락을 주시면 그 때 뵙기로 하지요."
세사 장효기 태감은 곧 바로 돌아가서 제남지부에게 보고를 하였다. '흑응회의 의사를 타진해본 결과 전토 불하에 대해서 아주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빨리 불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어야, 염인 판매 역시 잘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보고를 받은 제남지부는 즉시 지난해까지의 세수자료를 가져오라고 해서, 등주부, 래주부, 녕해주의 자료를 확인해본 결과 년간 세량은 67천, 63천, 30천 량이었으며, 전토불하가 이루어지면 허액분은 어차피 없어질 숫자이므로 무시하고, 미납 누적분을 확인해본 결과 183천, 156천, 140천 량이 되어 총 479천 량이었다. '휴우 많기도 하군...' 당연한 일이지만 기운(起運 상위 관부로 올리는 세액)의 적체는 없었다.
제남 지부는 다음날 바로 산동성청에 가서 순무에게 경과보고를 하였다. 순무는 세량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생각을 하였다. '성의 세수 총 90만 량에서 군비(軍費)로 들어가는 것은 1 년에 15만 량이고, 거의 그 만큼이 둔전에서 들어와야하는 것이므로 산동성의 군비는 1 년에 총 30 만 량 전후이고, 군병들의 수는 약 일만칠 천 명 정도 되는데, 아마 둔전에서 들어오는 군자금은 7만 량도 못되겠지. 둔전의 전토량은 등주, 래주, 녕해 세곳 합하여 48천 경 정도군. 이중에 7 할은 아마도 풀밭이 되어버린 지가 오래일텐데... 해방대들의 주둔지는 해안가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니, 둔전도 해안 가까운 낮은 지대에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농수 공급이 용이한 낮은 곳 즉 둔전이 가장 좋은 전토가 될 가능성이 많았다.
순무는 등주지부, 래주지부, 녕해지주에게 공문연락이 아닌 사신(私信) 편지를 쓰게되었다. '금번에 호부의 협조요청을 받아, 산동성에서 불용 전토를 민간에 불하하여 허액분과 미납분을 대폭 줄이려는 계획을 추진중입니다. 작년의 자료에서는 등주부, 래주부, 녕해주 3 곳 부주(府州)의 자료가 가장 악성이 많은 것으로 판단되어 이번에 그 문제를 협의하고자 합니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귀 부주의 불용전토의 실태를 파악하시고, 등주부에서 일만 경, 래주부에서 오천 경, 녕해주에서 오천 경을 불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있는 편지는 파발마를 타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금년에 새로이 임용된 지부, 지주 지방관들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업무실태를 파악해가느라 분주할 때였으며, 가장 골머리가 아픈 일이 바로 허액분과 미납분 세액인 바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하고 고민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받은 순무의 편지는 어떤 변화를 꾀할 기회가 될 수 있기에 나중에 어찌될망정 일단은 무조건 가능하다는 답신을 보내게 되었으며, 불용전토의 실태에 대한 상세한 자료까지 첨부하여 보내왔다. 통상 불용전토를 불하하게 되면 3 년이나 5 년의 유예기간을 둔 다음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다시 3 년이나 5 년 세금을 잘 납부하면 소유권을 이전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4 월 2 일 산동순무는 답신을 받은 후에 속으로 '미납분 세액이 48만 량인데 호부로부터 이것의 절반이라도 내놓게 해서 부주에 반은 주고, 나머지 반을 내가 쓸 수 있다면 참 좋겠구먼' 하는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장효기 태감을 불러서 다시 흑응회와 접촉을 하도록 지시 하였다. 장효기는 다음날 오후 흑응회 내장원 빈청에서 진원성과 초 회수와 백회우를 만나게 되었다.
"그간 평안 하셨습니까? 불용 전토를 조사하려다 보니 거리도 멀고하여 시간이 좀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순무님의 지시로 세 부주에서 불용 전토 현황을 보내왔고요, 그 중에 각 현 별로 자료를 살펴보신 다음에 불하의 조건을 이야기해 보기로 합시다. 일단은 등주부에서 일만 경, 래주부에서 오천 경, 녕해주에서 오천 경 합하여 이만 경을 불용지 불하의 대상으로 잡았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소작을 놓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 연달아 붙어있는 전토가 좋지요. 이곳저곳 뿔뿔히 흩어져 있다면 그것을 관리하기가 어려우니... 가급적 연결이 된 곳이어야 하는데... 그런 전토가 있을려나 모르겠네요."
"초 회수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불용지라는 것이 토지 주인마다 사정이 다른지라 연달아 있기는 사실 쉽지 않아요."
"혹시 우리가 그 전토를 한번 직접 살펴볼 수는 없을까요? 우리 회가 이미 등주부 문등현에서 불용지 불하를 받아서 식민하는 곳이 있으니 기왕이면 그곳과 이어진 곳이면 좋겠는데요?"
"진원성 회주님의 말씀도 초 회수님의 말씀과 같은 말씀인데요, 전토의 중간중간에 불용지가 섞여있는 것이고요, 통째로 불용지가 있기는 어렵지요. 오 경 이나 십 경 크기로 점점이 퍼져있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돌아가서 지부, 지주님께 편지를 보내서 불하받을 전토를 보러간다고 말하면 구경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효기는 돌아가서 이야기를 전달하였으며, 아무래도 땅을 직접봐야만 그 다음 진행이 될 것이기에 결국 장효기가 흑응회의 백시준 회우와 초무량 회수를 인솔하여 래주부, 등주부, 녕해주를 다녀오기로 하였다. 이 때는 호부의 독촉 때문에 산동순무도 시간을 아껴야 하였고, 흑응회도 어떤 변수가 생기기 전에 빨리 마무리 지을 욕심이었으므로 서둘러 일정을 잡고 추진하였다.
'염강책(제7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021 회 왜국 무역상 미쓰(光)가 찾아오다 (0) | 2017.06.20 |
---|---|
제 020 회 불하받을 땅을 정하다 (0) | 2017.06.08 |
제 018 회 흑룡(黑龍)은 가장 어린 용종(龍種)이다 (0) | 2017.06.08 |
제 017 회 혼자만의 문제는 없다 (0) | 2017.06.08 |
제 016 회 갈성과 추인걸이 찾아오다 (0) | 2017.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