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태감 장효기와 흑응회의 백시준, 초무량은 말을 타고, 4 월 17 일 즉묵현에 도착하여, 래주부 즉묵현부터 불용지를 보기 시작하였다. 연락을 받은 즉묵현의 아전(衙前)이 어린도책을 들고 안내를 해주었으며, 불용지라고 도책에서 짚어주는 땅과 들판에 나가서 실제로 손으로 가리키는 땅을 맞춰보면 안타깝게도 불용지라고 말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황당한 땅이 많았다. 전토는 4 년 정도 손을 보지 않으면 황지(荒地) 들판이 되는데, 보여준 땅은 십 년 이상 오래 손을 보지 않았으므로 도저히 전토라 부르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였다. 태감 장효기는 옆에서 처음에는 즉묵현의 아전(衙前)을 거들려고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마저 포기하였다.
다시 인접한 등주부 래양현에 들어가서 역시 래양현 아전의 안내를 받아 불용지를 보고 다녔으나 결과는 대동소이였으며, 이왕 간 김에 다시 문등현과 녕해주도 시간을 들여서 다 둘러보았다. 다시 제남에 돌아온 것이 5 월 14 일 이었으며, 흑응회의 내장원에서 백시준과 초무량은 장효기 태감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용지를 불하받는 데에 극력 반대를 표명하였다. 전토는 50 무를 기준으로 한 호가 맡아서 경작한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이만 경이라면 4만 호가 있어야 하며, 게다가 개간 첫 해에는 두 배의 인력이 소용되는데... 반대의 요지는 '어느 세월에 누구를 그곳으로 보내서 새로 개간하느냐' 는 것이었다. 만성 4 만 호를 어디서 어떻게 구해올 것인가? 또 10 년 동안 은자를 돌려받는다고 하지만, 과연 10 년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사하게 은자를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은자 200만 량을 너무 허무하게 잃어버릴것 같았다. 태감 장효기 역시 얼굴만 붉힌 채로 입을 다물고 진원성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며 생각을 하던 진원성은 한마디를 하였다.
"나는 그동안 성청에서 내준 자료를 세세하게 살펴 보았어요. 우리 흑응회는 래주부 즉묵현에서 오천 경, 등주부 래양현에서 오천 경, 문등현에서 오천 경, 녕해주에서 오천 경 합하여 이만 경을 불하받기로 하겠소. 단 우리 회에서 그 땅들의 상황을 살펴보았으니 그 땅을 받아서 사람을 모아와서 그곳에 가서 전토를 만들고 수확을 얻을 수 있게 최대한 조건을 잘 만들어 주시오. 이것은 백시준 회우님과 초무량 회수께 최대한 조건을 잘 만들라는 명령이오. 그리고 장효기 태감님도 실제로 그 땅을 보았으니 이제 우리편이 되어서 불하가 되도록 조건을 잘 만들어 주시기를 부탁하겠소이다. 또 한 가지 장 태감님에게 말씀드릴 것은 우리 회에 갖은 은자는 이백만에서 조금 부족합니다. 황금 6만 량과 은자 130만 량 뿐이니 어떻게든 이 은자 범위 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협조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걸 털털 털어놓으면 회에서는 장태감님에게 당례마저 드릴 여유도 없으니 그리 아시고 당례를 챙기시려면 이 범위 내에서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황금 6만 량과 은자 130만 량. 진 회주님 은자는 그것으로 되겠습니다. 지금 북경의 우리 태감들 사이에서는 황금 1 량은 은자 12 량으로 환 거래되고 있으니 황금 6만은 은자로는 72만 량과 같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저번에 3만 량을 빌렸다가 이자도 드리지 못하였으니 이번 일에서 저는 당례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은자가 부족하지 않다니 대행이군요... 저는 이만 경을 불하 받으면, 그것으로 만성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려는 것이니 나라에도 떳떳하고, 후손들에게도 떳떳할 것이오. 백 회우님과 초 회수님은 다른 말은 하지말고 나의 충정을 받아주시고, 장태감님을 모시고 일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오. 우리 흑응회가 불하를 받지 못해도 안되고, 또 받아서 일이 잘못되도 안되며, 불하를 받아서 개간이 잘되고, 나중에 세금도 잘 내게 되도록 그렇게 꼭 되어야 합니다."
진원성에게 시간의 여유가 많았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때의 진원성은 앞으로 일 년 반이나 길어도 2 년 안에 무엇인가를 이뤄야 하겠다는 촉박함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강하게 밀어부치게 되었던 것이다. 백시준과 초무량, 장효기는 진원성의 어떤 열기에 전염이 되었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백만 량이 있어서 그 생각만 하면 맘 든든했는데, 전 재산을 한번에 털어내는 것이 어쨋든 백시준이나 초무량에게는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또 장효기는 과거에 흑응회에서 삼만 량을 빌려서 오만 량을 벌었지만 그것을 흑응회에 말하지 않고 혼자서 이만 량을 독식하였으니 이제는 그것이 미안해서, 흑응회의 일에 협조를 하려고 맘먹고 있었으므로 말 한마디라도 협조적이었다. 이날 이후 장효기 태감은 자기의 일처럼 부성 안의 산동성청과 흑응회를 오가며 일을 도와주었고, 나중에 혼자 생각으로 나름 빚진 것을 얼마간 갚았다고 여겼다.
회수부와 장효기 태감은 이틀을 고심하여 한 장의 합의서를 만들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흑응회 회수부와 장효기 태감은 다음과 같이 합의하고 서명한다. 흑응회는 황금 6만 량과 은자 130만 량을 내어 매년 이십만 매 씩, 십 년간 소금으로 지급되는 염인 이백만 매를 매입하기로 한다. 이 염인은 전국 11 개 염구에서 각 염구 발행 염인 총수의 4 푼에 달하는 량이다. 이에 부대하여 산동성 산하 래주부 즉묵현에서 5000 경, 등주부 래양현에서 5000 경, 문등현에서 5000 경, 녕해주에서 5000 경, 총 이만 경의 불용지 전토를 불하받기로 하며, 이 중에 중급지(中級地)는 4 할, 하급지(下級地)는 4 할 이상 되어야 한다. (이 조건은 연속된 땅에서 전토 사이에 산등성이나 돌밭이 섞여있기 때문에 들어갔다.) 전토 불하 후 15 년이 경과하면, 1 경당 세금 총액으로 중급지는 년 2.5 량, 하급지는 년 1 량, 무급지는 면세로 산정하여 세금을 납부하기로 한다. 단 염인 대금은 전토 불하에 대한 처리가 완료된 후에 납부하기로 한다. 끝.' 진원성은 이 합의서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으며, 이렇게 장효기는 임무를 완수하여 산동성청에 합의서를 전달하였다.
산동성 순무는 장효기 태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문안 설명문을 작성하여 합의서에 첨부하였다. 합의서의 내용 중에 중급지, 하급지 구분은 중앙정부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지방 실무 관부에서 다루는 문제였기에,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 순무라는 직책은 민정과 형찰, 병무까지 겸하는 직위였으므로 호부와 병부, 도찰원에도 같은 내용의 설명문을 각각 보내게 되었다. 설명문은 다음과 같았다.
'... 합의서의 중급지, 하급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장효기 태감은 흑응회와 함께 4 개 주현의 불용지를 어린도책과 비교하며 답사해본 결과 전토라 하기에는 부적합한 곳이 많았으며, 이에 따라 흑응회에서는 농수용 하천에서 이 리 이내의 전토를 상급, 오리 이내의 전토를 중급, 십리 이내의 전토를 하급으로 분류하고 그것으로 전토의 량을 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즉 높은 언덕이나 바위 산등성이 돌밭을 전토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여기에서 중급지라 한 것은 사실상 병부의 둔전으로 사용되는 전토 중에서 불용지를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둔전에서 경작인원의 부족으로 민간 만성에게 소작을 주는 일이 많으며, 소작 만성이 부족하면, 상급지는 우선 경작이 되고, 중급지 중에서 다소간 휴경이 되는 것이지요. 합의서를 충족하려면 병부와 협의를 하여 상당량의 둔전을 흑응회에 넘기고 그에 따라 세금을 받는 쪽으로 해야할 것입니다. 즉 병부에서 흑응회에 장기적으로 소작을 주는 셈이 되겠지요. 이 문제는 호부에서 먼저 병부와 협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병부의 둔전은 중급지의 경우 평균 삼 년 중에 일 년은 휴경이 된다고 볼 것이며, 그렇다면 합의서에서 세량을 1 년에 2.5 량으로 정한 것은 적절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민간의 전토는 중급지의 경우도 거의 매년 경작이 되나, 하급지의 경우는 매년 전토의 절반은 휴경이 된다고 볼 것이며, 이로써 세량을 1 년에 1 량으로 정한 것 역시 적절하다 판단합니다. 이런 기준에 의하면 둔전의 중급지를 불하하면, 병부에서는 매년 둔전 중급지에서 얻을 은자를 15 년간 얻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으므로 군비재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병부는 이 점을 꼭 양지(良知)하여 주십시오.
부주의 불용지의 사정에 대해서도 말씀드립니다. 래주부, 등주부, 녕해주는 그동안 허액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애로 사항이 많았으며, 미납 세액 누적분도 48만 량에 이르고 있습니다. 금번에 허액분과 미납분을 일시에 무마할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니 4 곳 주현에 각 7만5천 량씩 30만 량을 내려주시면 부주의 입장에서는 행정의 처리에 어떤 어려움도 없을 것임을 양지하여 주십시오. 산동 순무 장무견 씀'
산동 순무는 사본들을 남기고, 이 문서들을 산동성청에서 파발마에 실어서 보냈으며, 5 월이 가기 전에 북경의 중앙정부에 전달되었다.
[1600 년대 당시의 미곡 생산량은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소설에서 적용하였습니다. 급지별 1 무(200 평)당 미곡 생산량은 상급지 1.5 섬, 중급지 1.2 섬, 하급지 0.8 섬이며 십 년에 한번은 자연 재해로 수확을 전혀 못하는 것으로 가정해보았습니다. 또 전토세는 1 무당 상급지 .20 섬, 중급지 .15 섬, 하급지 .10 섬 정도이며, 소출의 일할 약간 초과점입니다. 현대 한국의 미곡 생산량은 한국전체 5 년 평균을 보면, 논 1 무당 430 킬로그람입니다. 이것은 미곡 4.3 섬이고요, 다시 도정 후 백미로 환산하면 322 킬로그람이지요. 명나라 시절 1 석(무게 단위)은 71 킬로그람인데요. 소설에서는 편의상 쌀 1 섬(부피 단위)은 80 킬로그람으로 상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도정을 하지않은 미곡의 경우는 1 섬을 100 킬로그람으로 상정하였습니다. 즉 도정을 하면 무게 2 할이 줄어집니다. 현대에서는 미곡을 더 많이 깍아 도정하므로 미곡 100 킬로그람을 도정하면 백미 75 킬로그람이 나옵니다.]
[명나라의 미곡시세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봅니다. 현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모든 상품에서 운송료가 현대보다 아주 비쌌다는 점을 들어야 합니다. 소설에서 적용한 은자 한 량 당 미곡시세입니다. 경작지에서 미곡 5 섬 정도입니다만 호광성의 대량생산지에서는 그보다 낮았습니다. 인구밀집지역의 경우 4 섬이며, 북경의 경우는 고질적으로 미곡값이 비싼지역이며 3 섬입니다. 이것은 평년의 경우이고, 사회 혼란 시에는 미곡값이 가장 먼저 폭등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이 된 김에 은자 한 량의 가치를 생각해봅니다. 현재 한국의 시세에서 쌀 20 킬로가 오만 원이라고 보자면 쌀 80 킬로가 20 만원이고요, 은자 한 량에 미곡 4 섬의 경우면 은자 한 량은 80만원에 해당하는 돈이지요. 하지만 명대엔 쌀의 가치가 현대보다 2 배 이상 높았으므로 160 만원 쯤이라 보는 것이 옳겠지요. 명대의 인건비는 하루 품삯이 동전 25 문이며, 현대 한국의 일반잡부 일당과 비교하면 인건비가 헐하지요. 은자 한 량이 동전 1000 문 기준입니다. 때에 따라 은동 교환비율은 조금씩 변합니다만, 숭정제(= 명의 마지막 황제) 때에 동전을 일제 정비하여 구전을 녹여서 새로 동전을 만들고, 은자 1 량을 동전 1000 문으로 고정시키려고(고정환율)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하지요.]
진원성은 아린총관에게 아이를 하나 임신시킨 후에, 마지막으로 남은 두 총관은 좀 미루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두 총관은 의원공부를 배운다 하여 진원성과 함께 여행을 한 적이 한차례도 없었다. 그래서 진원성은 둘과 함께 긴 여행을 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줄 생각을 하였다. 의원이므로 아린총관의 임신을 가장 먼저 알게된 두 총관이 기다리는 듯하여 두 총관을 불러 진원성은 말했다.
"항주, 남해 두 총관은 머지않아 나와 함께 여행을 갑시다. 다른 총관들은 나와 함께 여행을 하였으며 추억을 만들고 재미를 보았는데 두 총관은 공부한다고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 말이오. 지금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여행을 할 형편이 아니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얼마 있다가 여행을 할 때에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해주겠소. 해녕총관에게 이런 사정을 말 전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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