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왕고리국과 멍고리국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왜국 침공 이야기로 돌아와서요... 멍구리, 왕구리가 왜국에 쳐들어갔다가 큰 손해를 보고 돌아왔는데, 고작 포로로 젊은 아이들 일천오백 여 명을 잡아온 것 뿐이었습니다. 그 중에 남 녀 이백 명씩은 왕구리에게 주고 나머지는 멍구리가 차지했습니다. 어험, 대형님 이렇게 바다는 아주 위험합니다. 대형님이 무역을 하려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일에만 회의 모든 힘을 다 쏟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이지요. 조금씩 무역을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 조금씩 ... 처음에는 조금씩 그렇게 시작해야지요. 아 어찌 될려나, 갈 길은 참 멀구나... 참 그런데 왕고리국은 언제부터 있던 나라인가요? 배를 짓는 것은 목수라 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배를 지어본 경험이 있어야 하나본데, 내가 목수대장에게 배라는 것이 별거냐? 물 위에 떠다니는 집일 뿐이지 않느냐 하고 강변을 부려 보았더니, 아주 질색을 하던데... 어찌 한꺼번에 그리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었을까요? 참 이해가 안되네요."
"왕고리는 지금의 북직예, 산동, 남직예, 절강, 하남, 산서, 호광, 강서 등 바다와 큰 호수들과 황하, 장강을 끼고 있는 땅을 영유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왕구리 전에는 그곳에 대진국과 신라국이 있었고, 그 전에는 고구리,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계속 고리족들이 영유하였던 곳이지요. 그러므로 큰 물 가에서 자연 배를 짓는 일들을 많이 해왔던 것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한번에 큰 배 수 백 척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왕고리는 항복 후 국력을 크게 상실하였고, 그 다음부턴 감히 반항할 꿈도 꾸지 못합니다. 남정이 전사(戰士)가 한번 되면 그들은 전사로 죽어야 하는 괴물로 변합니다. 전쟁이 없으면 오히려 위험덩어리인 거죠. 그래서 큰 전쟁이란 마지막에는 항상 전투력이 막강한 전사들을 얼마간 소모시켜야만 전쟁의 끝을 보게 되죠. 원제국은 송국을 멸망시킨 후, 몽고리 병사, 송국 병사, 왕고리 병사 연합군 20만 명을 만들어 두 번째로 왜국을 침공합니다.(서기 1281 년임) 이때에도 왜국 점령에는 실패했지만, 전사들을 소모시켜 없애고, 송국, 왕고리의 국력을 크게 소모시킬수 있었지요. 원제국의 입장에서 큰 성공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는 멍고리의 징기스칸인데, 부회수님은 왕고리국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시작했지요?"
"이야기가 하다보니 좀 엉뚱한 곳으로 흘러왔네요. 제가 걱정하는 것은 왕고리국 처럼 왕권이 흔들려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대형님한테 드릴려고 말을 꺼냈던 것이에요. 왕씨는 고리국을 세우면서 뭔가 국기(國基)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건국한 황제 태조 왕건은 각 호족들의 딸을 무려 수십 명을 부인으로 맞아들이며, 지방 호족들은 왕권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계속 지방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호족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될 수 없었던 것이죠. 대형님은 스스로 권력행사를 아래에 자꾸 미루시고, 어떨 때는 스스로 아랫 사람처럼 손수 일을 하시려들고 그러니 위엄이 서지를 않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어떤 놈이 나서서 의례히 그러려니, 아니면 오히려 자기가 주인장 행세를 할려고 들지도 모른다고 걱정되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 속에 걱정은 그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우리 준갈이 부족은 흑응회 속에 녹아없어졌는데 엉뚱한 놈이 나서서 주인노릇을 한다면 그거야말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지요. 대형님, 그렇지 않겠습니까?"
"흐음, 부회수님. 이제 그 걱정은 없어졌지요... 또 하나, 내가 석도총관에게서 옛날 시강을 들을 때에 들었던 게 있는데, 그때에는 중원대륙에 왕고리국이 있었다는 말은 없었어요. 그래서 좀 이상하군요. 명국을 세우신 홍무제께서는 만성들을 많이 걱정해주셨으며, 정치를 아주 잘하셨다고 들었는데... 내가 들은 것을 말해볼테니 맞는가 한번 들어보세요?"
"무슨 말인가요?"
"명국을 세우신 홍무제께서 정치를 잘하셔서, 농사를 짓는 만성들이 내는 세량(稅糧 세금으로 내는 양곡)이 엄청 늘었다고 합니다. 원나라 때에 걷어들인 세량이 미곡으로 일 년에 1200만 석이었는데 명나라 들어와서 홍무 18 년 수치는 2000만 석을 넘어가고요, 홍무 26 년 수치는 3200만 석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량이 늘어나는 것은 첫째는 농자(農者)가 늘어나서 미곡의 생산량이 증대하였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전토의 넓이가 그만큼 증가하였다는 것이고요, 셋째는 관리들과 지주들이 농간을 부려 도중에 빼먹는 세량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홍무 27 년 28 년, 당시 황제에게 직간(直諫)하는 상주(上奏)들 중에는 군량미나 세량미가 창고에서 썪어가는 일에 대해 어떤 조치나 지시가 빨리 내려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고리국이 530 개 현을 차지하고 있었다니... 갑자기 엉뚱한 말을 들으니 정리가 잘 안되서 그렇지요."
"대형님이 들으신 수치는 맞습니다. 저의 짐작으로 지금도 명국의 세금은 전부(田賦 전은 전토에 과하는 세, 부는 부역을 말하며 인두세임) 세량을 합해서 은자로 300만 량 전후이며, 아마 원제국 시절과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명국 초기에는 은자 값이 더 좋았으니 은자 한 량에 미곡 여덟 섬을 치면 2400만 섬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때나 지금이나 2500 만섬 정도가 의미있는 기준이고요. 그 절반 정도를 원국에서 걷었다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홍무제는 몽골과 왕골을 북으로 밀어내면서 조금씩 전토를 차지하여서 해가 지날수록 세량이 늘었을 것이며, 년년 대풍(大豊)이 들면 일 년에 3200만 섬도 가능할 것입니다. 대형님께서 보시기에 1200만 섬이 3200만 섬으로 늘어난 것이 왕골이 차지하고 있었던 530 개 현의 땅을 더하지 않고서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농부의 숫자는 갑자기 두 배로 늘 수가 없습니다. 또 열심히 개간을 한다해도 농지도 갑자기 두 배로 늘 수가 없고요. 중간에 세리들이 빼먹던 것을 아무리 줄였다해도 그렇게 미곡 생산량, 세량이 폭발적으로 늘 수는 없다고 봅니다." [명나라 홍무제 때의 세량을 분석하여 고려가 중원에 있었다고 추정하는 필자의 의견을 도입하였습니다.]
"흠... 가만히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네요. 왕고리국의 530 개 현의 전토가 더해지지 않고 그만큼 늘기는 불가능이겠네요. 내가 그 시강을 들었던 것이 지금부터 6 년 전 열여섯 살 때이니까, 흐흠 그 때는 그것이 꼭 맞는 것 같이 들렸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부회수님 말이 옳아요... 그렇다면 또 다른... 내가 전번에 소주 항주에 갔을 때에 고리국 사람, 추인걸이라는 한 사람을 만났었는데, 그분의 조상님들은 도자기 만드는 도공(陶工)으로 몽골의 도읍에 잡혀가서 죽었다합니다. 그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청자 도자기의 비결이 있는데 그것을 어디에 써서 감추어 놓았을텐데 몽골의 도읍은 어디였나요?"
"몽골의 도읍은 카라코룸인데, 망해버린 원국이 도망을 쳐서 카라코룸까지 갔을 때에 명국의 주원장이 보낸 추격대가 그곳에 따라와서 도읍을 깡그리 불태워버렸습니다. 아무것도 남지않게 철저히 부셔버렸어요. 다시는 몽골이 일어설 수 없도록 완전히 폐허를 만들어 버렸답니다. 그 때에 몽골이 새워놓은 큰 집들과 모아놓은 각 나라의 책들도 모조리 불타버리고 재화들도 노략질 되거나 불타버렸지요.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찬란했던 도시가 순식간에 재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 도공이 어디엔가 감춰놓았다 해도 되찾기는 불가능일 겁니다."
"흐음... 그건 아쉽네요. 왜 그렇게 불태워 버릴까요? 남겨두면 누가 차지하든지 좋을 것인데... 홍무제가 몽고리에겐 아주 나쁜 황제가 되었군요. 저는 석도총관에게 공부를 배우면서 시강에서 명국 태조 홍무제를 아주 훌륭하신 황제라고 배웠습니다. 지금도 정말 훌륭하신 분이라 생각하고 그 어르신의 말씀대로 후손 황제들이 나라를 했다면 명국 만성들이 나라가 무엇인지 세금이 얼만지 신경쓸 일도 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홍무제도 역시 위대한 황제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전쟁이란, 서로 적이 되면 무슨 짓이든 하게 되는 거죠. 명국 황제는 당시에 몽고리 황제와 황태자를 암살하려고 북으로 자객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준갈이 청랑대는 명 황제가 북으로 보낸 살인자 자객(刺客)들을 색출하여 죽이고, 황금씨족을 보위하느라고 총력을 기울였던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자객들이야말로 군대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던 것입니다.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죽게되면, 그 다음 후계자들이 서로 권력을 잡으려고 내분에 휩쓸리게 되며, 그 다음 자멸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에, 청랑대는 당시 황제 토곤테무르와 황태자(= 원 순제와 소종임)를 지키느라 온 힘을 다하였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대형님이 권좌에 딱 정착을 하셨다는 그런 느낌이 아직 없고, 또 아직 대형님의 후계자도 없는 마당에 뭔가 저의 느낌으로는 이게 조금은... 뭔가 말로 하기에는 뭐하지만 아무튼 아니다 싶은 것이 있단 말입니다."
"부회수의 말이 이해가 됩니다. 이제 부인들 4 명이 수태를 하여 자식들이 태어나니 다음 달 부터는 내장원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회수부가 주인이 되어 일을 잘해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 흑응회는 회원들의 마음 속에 검은 독수리가 자리를 잡았어요. 그러니 걱정할 것 없어요. 부회수 마음도 이미 독수리가 들어갔으니 나는 걱정 없습니다. 구 부회수도 걱정은 버리고서... 내가 하나 더 물어 봅시다. 부회수는 공부를 많이 했나본데 어디서 공부를 배웠나요?"
"저는 우룸치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북경성으로 옮겨져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공부를 했지요. 청랑대는 한 집에서 한 사람씩만 회밀음종을 배울 수 있게 했기에, 저의 형님께서 청랑대가 되시고 저는 공부를 배운 것이지요. 경성 내에 불사(佛寺)에 머물면서 공부를 했는데, 책이 아주 많이 있었고 저는 많은 지식을 배울수 있었지요. 내가 그 절을 떠난 후에 그 절은 공격을 받아 모두 불타서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하나 더 물어 봅시다. 홍무제가 재상(宰相) 호유용(胡惟庸)과 양국공(凉國公) 남옥(藍玉)을 처형하면서 탐욕에 빠진 부자들을 모조리 잡아죽여서 명나라 초기에 만성들이 땅을 공평하게 나눠갖고 농사를 지었다고 하였는데, 물론 수많은 생명이 죽었지만, 그래도 홍무제가 나라의 기틀을 잡으려고 스스로 악역을 자청한 것이라 할 것이지요. 이것만 보아도 홍무제는 위대한 황제인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하자면 홍무제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해야합니다. 벌써 시간이 좀 늦었는데 짧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이 홍무제 이야기는 중요한 이야기이니 짧게 하지말고 길게, 자세하게, 내가 잘 알도록 말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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