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럼... 우선 주원장이 노비출신인 것을 말해야 합니다. 지금 명나라의 전토 중에서 동서로 절반을 나누면 당시에 동쪽은 고리국이고, 서쪽은 원국이었지요. 또 송국이 있던 남쪽도 원국이고요... 주원장의 태생지는 고리국의 지명으로 해남(海南)이며, 큰 호수의 남쪽이지 않을까 하는데, 지금 남직예나 호광 어디일텐데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에 고리국은 노예제도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습니다. 그래서 권세가 들이 큰 땅을 점유하여,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농장을 하였지요. 특히 남직예, 호광성은 그런 작태가 심한 곳이었습니다. 주원장은 그런 곳 중 어디에서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을 것입니다. 이렇게 짐작하는 것은 주원장의 어린 시절이 좀 정확하게 나온 책이 없어서 짐작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즉 노예라 출생지 기록이 정확하지 못한 거죠. 주원장이 어렸을 때에 주원장 가족의 열 두 목숨 중 네 목숨이 남고 여덟 목숨이 죽었던 일이 벌어졌어요. 당시에는 땅 전체에 천재(天災)가 떨어졌는데 그게 무서운 돌림병이었지요. 전체 만성 열 중에 둘이 죽었던 것입니다. 이 때에 주원장은 형 하나와 동생 둘이 남고 나머지는 모조리 흑사병(黑死病)에 걸려 죽었으며, 이름없는 산비탈에 가마니로 둘둘말아 매장하였을 것입니다. 지주들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니 도와주기도 어떤 한계에 달하였을 것입니다."
[14세기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페스트(= 흑사병)가 창궐하여 전 세계 인구의 이 할 이상 몰살하였다.]
"엄청 비참한 일이군요."
"주원장의 누이동생 둘은 외가로 가고, 본인은 절에 들어가서 배고픔을 면하려하나 절에도 먹을 것이 떨어지고 맙니다. 하는 수 없이 주원장은 행각승(行脚僧)이 되어 세상을 떠돕니다. 그러면서 이모저모 세상을 살피게 되지요. 그 이후로도 가뭄과 한파가 연달아 온 땅에 기근이 계속되어 마침내 나라가 지탱 되지 못할 지경에 다다르며, 곳곳에 만성들이 난리를 일으킵니다. 그들은 머리에 빨간색 베를 둘렀다하여 홍건적(紅巾賊)이라고 부르게 됩니다만... 주원장도 도리없이 난리 속으로 들어가며, 만성들끼리 서로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죽게되는 처참한 상황으로 몰립니다. 각지의 부자들은 자체 경비무사를 고용하여 자기의 장원과 창고를 지키고, 난병들은 그것을 공격하여 털어내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상황이 변해가는 과정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주원장이 아니라도 좀 머리가 깬 사람이면 이 참혹한 현실이 과연 부처님의 뜻이란 말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원장은 중이었으나 불교신자가 되지못한 겁니다."
"부처님의 뜻은 아니겠지요."
"주원장은 난군의 중간 두목급이 되고 마침내 한 부대의 지휘자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주원장은 이때에 중대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공격에 성공하고, 부자의 사병들이 지키는 장원과 창고를 털어내면서 매번 느낀 것은, 그 창고를 조건없이 풀었다면 난민들이나 부자들 모두가 싸우지 않고, 목숨을 버리지 않고, 굶주림을 넘기고서 살아날 수 있을만큼 창고에 쌓여있는 양곡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서 주원장은 부자들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품게 됩니다. 당시 원국과 왕골국은 대농장체제로 다수의 노예들이 있었지요. 이렇게 하여 주원장은 원국과 왕골국 섬멸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삼게 되는 거죠. 흑사병과 연달은 기근 때문에 원국과 고리국은 나라가 흔들리고, 농장과 노예제도가 흔들거리다가 무너집니다. 가뭄과 한파가 계속되니 농사를 지을수 없었고요, 부자들은 노예들을 공밥 먹이는 대신, 속박을 풀어 조건없이 밖으로 내보내지요. 그러면 이들도 선택의 여지없이 난병(亂兵)이 되는 것입니다."
"굶어죽느냐, 강도질하다가 죽느냐의 선택이군요."
"왕골국은 대농장에 사병 수천 명이 있어서 작은 나라라 할수 있었고 감히 상대할 수 없었지요. 처음에 주원장은 왕고리국이 있던 곳에서 장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은 남송이 있던 곳이며, 원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곳입니다. 원국 사람들이 정착한지 수십 년이 지나 원국 사람들이 대지주가 되어 권세를 누리고 있었으나, 그들은 사병 규모가 수백 명 정도였으니, 주원장 난병에게 맞서기가 두려워 주원장에게 얼마간 양보를 합니다. 일부는 북쪽으로 도망을 갔지만, 일부는 주원장의 난병부대에게 양곡을 베풀고 댓가로 감투를 받으며, 호응하기도 합니다. 당시에 주원장과 같은 난병 무리는 진우량(陳友諒)과 장사성(張士誠)의 부대가 있었으며, 이들 역시 고리국의 땅에는 가지못하고, 원국의 땅에서 활동하는 주원장과 마찬가지의 신세였지요. 이 때에 진우량과 장사성은 동맹연수하여 주원장을 잡아 죽이기로 하고, 강서성(江西省) 포(파)양호(?陽湖)에서 대전을 벌였으나 천우신조로 주원장이 이기게 됩니다. 이로써 주원장은 대세승기를 잡게 되어 명황제(明皇帝)가 되며, 홍무(洲武) 원년(元年 서기 1368 년 임)인 이때부터 북쪽으로 원국과 고리국 땅을 침범하게 됩니다."
"고리국은 왜 그동안 침범하지 못하였는가요?"
"그 전에요... 대형님 이것은 궁금하지 않은지요? 왜 진우량(陳友諒)과 장사성(張士誠)이 연맹하여 주원장을 죽이려 하였을까 하는 것..."
"아, 그렇지요.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나요? 세 명이 있으면 결국 둘이 힘을 모아 한사람과 대결을 하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그 이유는 진우량과 장사성의 난병들과 주원장의 난병들은 좀 달랐습니다. 주원장의 부대는 지주들이 양곡을 군량미로 내고 합류해도 그 이유 만으로 대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본인의 능력에 따라 큰 재목에게는 큰 장수를 맡기고, 작은 재목에게는 작은 장수를 맡기는 편이었지요. 이로써 난병들 사이에도 주원장의 인기가 높아지고 군률이 서며, 난병들의 움직임도 규율이 잡혔습니다. 자연히 세력도 강성해져 갔지요. 이와는 달리 진우량과 장사성의 부대는 양곡을 많이 바치면 높은 장수에, 바친 것이 작으면 작은 장수에 임명하였으며, 이에 따라 그동안 전공을 세운 장수들과의 형평이 문제가 되어 군세가 커지는 데에서도 차이가 있었고, 이렇게 주원장은 소위 외톨이가 된 셈이에요."
"주원장은 군대를 이끄는 지휘자 뽑는 법을 잘세웠군요. 부회수는 혹시 우리 흑응회에서 정한 회원들 간의 차별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요? 회원, 갑수, 소장, 대장, 부회수, 회수 별로 회원은 은자 백 량, 그리고 급이 오를수록 3 배씩 많아지는 것 말이에요?"
"우리 회의 급에 따라 한계를 정한 것은 잘했다고 봅니다만, 그것을 시행하는 데에서 잘해야 할 것입니다, 즉 하기에 따라서는 어떤 갑수는 회원은 백 량인데, 갑수는 삼백 량 밖에 안돼? 이렇게 불만이 될 수도 있고요, 또 그 반대로 만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것은 회원들이나 누가 회원에서 빠져나갈 때의 문제와 급이 올랐다가 징계나 어떤 이유로 급을 다시 떨어뜨려야 할 때에도 잘해야지 그게 아니면 불만투성이로 변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회우님과 회수님과도 많이 이야기했고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심지어 주원장에게 귀속했던 지주가 주어진 감투가 작다고 화를 내고 다시 장사성이나 진우량에게로 옮겨간 사람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지요. 이렇게 주원장은 둘의 연합군과 대적하였던 거죠. 다시 주원장이 왕고리국을 밀고 북으로 올라갈 때부터 이야기를 합니다. 아까 물으셨지요. 고리국은 왜 그동안 침범하지 못하였는가?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문입니다. 먼저 제가 대형님께 하나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유래타 회원도 스스로 회수부라 생각하며 잘듣고 답을 생각해 보게나."
"예, 잘 듣겠습니다."
"대형님께서 흑응회원 2500 명을 동원해서 어떤 전쟁을 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은자 오백만 량을 얻게 된다고 해둡시다. 이 은자량은 나중에 숫자를 바꿔보기로 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하면 이길 경우에는 은자를 얻지만 회원의 삼 할을 잃게되며, 만일에 지는 경우 회원의 8 할을 잃게되고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봅니다. 대형님 이런 조건이라면 전쟁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조건이 좀 달라지면 다른 조건에서 전쟁을 진행하시겠습니까?"
"흐음, 나는 ..."
"잠깐만, 대형님은 이미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니까, 그전에 유래타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지요."
"저의 생각에는 은자가 오백만 량이라면 이게 작은 돈이 아니잖아요? 오백만 량이면 나라를 할수도 있는 돈인데, 가능성이 있다면 쉽게 포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흑응회 같은 큰 조직을 이끌려면 많은 은자가 있어야 하는데요... 삼 할의 손실이라면, 이길 방도만 확실하다면 저는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길 방도가 확실하지 않다면 결코 해서는 안된다 봅니다."
"이제 대형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나는 회원들의 손실이 열 명 이내이고, 이길 방도가 확실하다면 전쟁을 할 것이오. 하지만 열 명 이상 희생이 있다면 승리에 대한 보상이 얼마가 되든, 이긴다 하더라도 그 전쟁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오. 이건 내가 은자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어서일 거요. 그런 점에서 나는 흑응회의 대형으로써 좀 자격이 없다고 생각이 되오."
"대형님의 자격에 관한 말씀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주원장은 바로 삼 할 정도 군병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고리국을 침범하지 못하였습니다. 몽골이 왕골을 일곱 차례나 공격하고도 끝내 그냥 항복만을 받은 채로 나라를 살려둔 것 역시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왕골은 나라의 군병들과 함께 귀족들의 사병부대의 전투력이 좋아서 삼별초군 처럼 잘 싸웠으며, 조건부 항복이었지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거든요. 무조건 항복을 하라고 하면 최후의 한 명까지 항전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격하는 쪽에서는 이겨도 그 손해를 감당하기 어렵거든요."
"이겨도 큰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 항상 마지막 전쟁은 아니니..."
"홍무제가 북침을 해갈 때에 당시 고리국 왕실의 절반은 친원파(親元派)였습니다. 몽골은 공주를 왕골의 왕에게 시집보내서, 그렇게 백 년을 몽골족과 혼인하였으니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주원장이 연구해낸 왕골의 강성함을 깨뜨리는 방법은 적정분열책(敵情分裂策)입니다. 그 전까지는 명국은 '송국을 이어받고 원국을 몰아내겠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해왔으나, 원국이 물러나고 남송국 땅을 다 차지하자 이제부터는 '원국을 이어받고 고리국을 몰아내자'라고 말을 바꿔서 합니다. 왕고리국 내에서는 분란이 일어나고, 결국 일부 왕골들은 북쪽으로 도망가서 해동반도에 들어가 새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일부는 그대로 고리국에 주저 앉습니다. 이렇게 왕고리 세력이 1 차로 약해집니다."
"......"
"또한 몽골들 역시 일부는 북쪽으로 도망가서 원래 동족이 머물렀던 땅으로 가고, 일부는 고리국에 남게 됩니다. 그러나 명국과 왕골국이 전쟁을 하여 주원장에게 잡힌 왕고리 포로들 중에서 몽골 사람은 살려주고 왕골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번만 하면 그것이 소문나고 둘 사이는 얼마 못가서 서로 의심하고 분열되고 맙니다. 이런 방식으로 약한 몽골과 강한 왕골을 분단시켜서, 고리국을 차츰차츰 먹어들어 갑니다. 주원장은 이것이 군병의 희생을 최소화하여 적을 무너뜨리는 방법임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이렇게 투항해 오는 사람을 받아들이면서, 물론 군병을 동원하는 전쟁도 함께 했었지만, 이런 술책이 없었다면 그 희생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원장은 참으로 심계가 깊은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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