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석환과 철환]
진원성 일행은 다음날 정해현을 통해서 영파의 객점으로 돌아왔다. 진원성은 무인도의 은자를 가져올 방법을 연구하였으며, 낙양에서 기택을 칠 때처럼 호가호위(狐假虎威) 수법을 한번 더 써볼 요량을 하였다. 호가호위란 마치 배후에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진원성과 추인걸은 함께 영파부성 안에 있는 표국 중에 우선 부강표국(富强驃局)을 찾았다. 진원성은 어렸을 때에 함께 했던 두사람을 기억했으며, 먼저 용표두님과 엄표사 님에 대해 묻게 되었다. 이것으로 부강표국 사람은 얼마간 경계심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답을 듣고보니 세월이 세월인지라 엄표사님은 표국을 그만두시고 고향으로 가셨다고 하며, 용표두님도 은퇴를 하시고 항주 인근에 살고계신다는 소식이었다. 진원성은 항주에 가면 한번 찾아가려고 위치를 알수있는 방도를 기억해두었다.
이제부터 진원성은 표국에서 배를 빌려 보타산까지 갔다오려는 것을 상담을 하였으며, 이곳에서 바로 은을 찾아와 영파에서 회표로 바꾸어, 제남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였다. 다시 언제 이곳으로 은을 찾으러 오는 것은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진원성은 부강표국의 영파지점에서 총관을 맡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저는 배를 한 척 빌려서 물목을 운송하려 합니다만..."
"먼저 물목의 종류와 량을 말씀해 주시고, 어디에서 어디까지 물목을 옮겨가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물목은 은자입니다. 량은 ... 오십만 량이라고 해두지요. 영파에서 배를 끌고 나가서 주산 열도의 보타산에 가서 싣고 이곳 영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곳 영파의 절상회관에서 회표로 바꾸어 경성으로 가져가려 합니다."
"은자 오십만 량이면 누구라도 어떻게 된 은자인가 하고 궁금해할 큰 돈이군요. 저희 표국에서 굳이 어떻게 얻은 은자인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알려주시면 일 처리에 조금 용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밀히 처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곳을 찾은 것입니다. 비밀할 필요가 없었다면 영파부 아문을 찾았을 것입니다."
"관에 계신가요? 산동 제남부 흑응회라고 하셨지요."
"예,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여기 호패(戶牌)를 보십시오. 사후에 문제가 되면 제남의 흑응회 진원성이 감당할 것입니다. 저는 영파부나 시박사에서도 이 일을 알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비밀을 지켜서 일을 처리해 주실 수 있습니까?"
"관아를 속이는 것이 좀 꺼림직한데요..."
"만일에 관아에 알릴 바에는 영파부를 통해서 이 일을 하면 되지요. 그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어떻게, 해주시겠습니까?"
"예, 하지요. 배 한 척을 여유 날짜 5 일을 더해 열닷새 빌리는 것으로 하고, 표사 8 명에 수부 10 명, 당례는 은자 백 량으로 하지요. 다만 관병아졸들의 눈가림에는 따로 손을 써두어야 할텐데, 거기에는 따로 은자 백 량을 부담하셔야 합니다. 선금으로 백 량 그리고 나중에 백 량을 내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급적 빨리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와 여기 동료가 함께 그 배에 타고 갔다 오겠습니다. 여기 백 량을 우선 받고, 거래계약서를 만들어 주시지요."
총관은 서기를 불러서 계약서 꾸미는 일을 지시하였으며, 이제 기다리는 동안 주변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되었다.
"진 대인께서는 혹시 며칠 전 영파 앞 바다의 사고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무슨 사고였습니까?"
"아직 못들으셨군요. 무역선 25 척이 물목을 싣고 가다가 용오름에 맞아서 화물을 모두 잃고 배도 15 척 이상 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마 밀무역인 것 같습니다. 여기 영파 앞 바다는 본래부터 휘주상단에서 관리하던 곳이었는데, 물론 표면적으로는 영파시박사 관할입니다만. 사실은 휘주 출신 해적들이 관리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휘주상단이 관리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영파부 아문에서 사고 이후로 취한 태도를 보자면 밀무역으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아! 엄청난 사고가 있었군요. 그런 큰 사고가 있었다니 사람들이 많이 죽었겠군요?"
"예, 쪼개지지 않은 배에 탄 사람들도 절반은 바다에 떨어져서 죽었고, 산 사람들도 부상당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모르긴 하지만 약 육칠백 명은 불행을 당했을 것이지요. 흐음 그런 중에도 우리 부강표국으로서는 이번에 참말 다행한 일이었지요."
"다행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휘주상단은 우리 부강표국과 오랫동안 거래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무역에선 우리가 계약을 못 따고, 양주(揚州)에 있는 은마표국(銀馬驃局)에서 일을 맡았는데 사고가 났으니, 우리 표국으로선 일을 맡지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지요."
"예, 부강표국으로선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고가 나면, 뒷 수습이 어찌 되는가요? 표물도 표물이지만, 무역선 15 척이면 그것도 엄청난 손실인데요?"
"그것은 계약 건마다 내용에 따라서 하게 되어있지요. 보통은 표국에서 표물의 책임까지 모두 지는 것으로 계약합니다만, 천재지변(天災地變)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진대인 계약 건도 그렇습니다. 휘주상단이 왜 갑자기 양주의 은마표국을 택하였는지 모르겠어요? 은마표국은 생긴지 얼마 안된 중(中) 아니 소규모(小規模)의 표국이며, 어쩌면 이번에 조달한 무역선들도 임시로 빌려댓을 것입니다. 그 뒷감당이 아마 무역선 한 척이면 척 당 적어도 오천 량씩은 쳐야할텐데... 25 척이면 그만으로도 12만 량 손해일 것이며, 중 소규모의 표국은 팔 구 할은 거덜이 날 큰 손실이지요. 물론 물주인 휘주상단의 피해도 엄청날 것입니다. 아마도 오십만 량이나 그 이상 될지도 모르지요."
"처음에는 25 척 중 15 척만 없어졌다고 하시더니 이젠 25 척 모두 손해라고 하시는군요?"
"그게 배는 한번 큰 타격을 입으면, 배 이음새가 헐거워져서 허물고 다시 지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 목재를 일부 재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모두 손해인 것이지요."
"아, 그렇군요. 모두 엄청난 손실이군요. 그런 무역일에서 표국이 받는 당례는 얼마나 되는지요? 저도 장삿일에 관심이 많다보니 궁금해서 묻습니다만..."
"무역선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미곡 오천 석 싣는 3 돛 범선입니다. 이 배는 새로 짓는다면 은자 일만 량이 듭니다만, 수명이 7 년 정도이니 고선(古船)이라 평균 5천 량씩 손해라 본 것이에요. 그 배를 기준하면... 아마 이번에 은마표국에서 동원한 배들도 이거였을테지요. 과거 우리가 휘주상단의 일을 맡을 때는 항주에서 출발하여 주산열도까지 갔다오면 두 달은 걸린다고 보는데 한 척당 은자 오백 량씩을 받았을 겁니다. 25 척이면 12500 량이니 표국에서는 욕심이 나지요."
"그렇게 시일이 많이 걸리나요?"
"물목들을 올리고 내리는 데에서 시일이 많이 걸리고요, 때로는 마지막에 물목을 넘기고 받는 데에서도 시간이 걸리기도 하답니다. 홍모귀들도 트집이 심해졌거든요, 이제는 약을대로 약아져서요. 막힘이 없이 제대로 진행하면 한달이면 되는데. 우리 표국으로서는 늦어질 것도 감안하여 계약하는 것이지요. 물론 더 늦어지면 그에 따른 조건도 있기는 하지만요."
진원성은 이렇게 계약을 마치고, 내일 아침 묘시에 관병의 눈길이 못미치는 해변 후미진 곳에서 만나 일찍 출발하기로 하였다. 되돌아나오는 진원성의 머리 속에는 이관주님과 범대인이 그 사고에 당하셨을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순간 스쳤으며, 곧이어 이번에 챙기게 되는 은자가 해상에서 불의의 사고가 없었다면 휘주상단에 가야할 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공교롭게 이번 사고에서 이관주님이나 범대인에게 불행이 닥쳤더라도, 진원성이 휘주회관 두분에게 미안해할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후에 일들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6 일 후에는 은자를 회표로 바꾸어서 진원성 일행 4 명은 항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4 일만에 항주에 도착하였다. 진원성은 선물을 준비해 부강표국의 용표두님도 잠깐 찾아갔으나 출타중이라 그냥 돌아왔으며, 이제 추인걸과도 작별하게 되었다. 소주로 출발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항주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진원성은 이번의 일을 추인걸과 두 총관에게 말해주기로 하였다.
"이번에 보타산에 갔던 일은 참 저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보타산에 가보라고 추천해준 추 형에게 고맙고요, 또 보타산에 가자고 말한 두 총관에게도 고맙다는 뜻을 전합니다. 보타산에서 마지막 날 제가 인시에 일어나서 수련을 하고 묘시 경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에 해 바로 남쪽에 있던 낙가산 부처님이 벌떡 일어서서 저에게 북쪽 섬에 가보라고 손짓으로... 저기 섬에 가보라고 하는듯 하여 헤엄을 쳐서 그 섬에 갔으며, 그곳에서 은자가 가득 담긴 상자 몇 백 개를 발견하였습니다. 관음보살님께서 좋은 일에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것이라 생각하였지요. 은자가 총 39만6천 량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피난처 만드는 일에 사용하기로 관음보살님과 약속했습니다."
"진회주님 정말 헤엄을 쳐서 그 섬에 갔다가 오셨나요? 그 바다에는 사람을 물어뜯는 교어(鮫魚 상어)가 아주 많다고 하였습니다만?"
"설마 관음보살님이 저를 교어먹이로 만들기야 하시겠습니까?"
"대형님, 관음보살님께서 대형님의 소원을 들어주시려고 도와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마 저의 소원도 들어주시리라 그렇게 확신이 듭니다. 보타산 관음보살님은 영험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대형님, 저의 소원도 들어주실 것 같아요. 그리고요... 우리가 함께 있었으니 우리에게도 은자를 조금 나눠주시면 안되나요?"
"하미 총관은 어디 은자를 쓸 곳이 있나요? 내게 말하면 들어보고..."
"형님들 선물도 사야하고... "
"그것은 소주에 가서 떠나기 전날에 함께 준비하도록 합시다... 추인걸 형에게는 은자 백 량을 당례로 드릴테니, 집을 좀 수리하시고 홀어머님을 편히 모시도록 하세요. 또 언제 시간이 되면 제남에 한번 놀러 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추 형을 소개해주신 형님의 친구분 진명 행수님께도 안부인사를 전해주십시오."
추인걸은 고마움을 표하고 돌아갔으며, 진원성은 예상 밖의 일로 날짜를 까먹게 되어 경덕진에 가는 것도 취소하고 사흘 후에 갈성이 기다리는 소주에 도착하였다.
소주에 와서 우선 갈성을 잠깐 만나서 약속을 정한 후, 바로 이관주님의 장원에 들려보니 짐작한 바와 같이 항주에서 이미 이관주님과 범대인의 실종소식이 전해져서, 이관주님 댁은 초상집이 되어 있었다. 또 해상사고 수습의 일 때문에 너무나 바쁜 관주 장남 이병궐은 상주의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2남 이병기는 멀리 타향에 있는듯 보이지 않았고, 3 남인 이병만이 주로 빈소를 지켰다. 진원성은 관주인 이병궐을 잠깐 만나 간단하게 위로의 말 몇마디하고, 빈소에 있는 3남과 이번 사건에 대해 말을 주고 받게 되었다.
빈소(殯所)의 이관주님 신위가 모셔져 있는 옆에는 영정이 한 장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그 영정이 이관주님의 영정이려니 생각하였다가, 이내 그것이 창주의 응조문 무관에서 본 그림 족자인 것을 기억하였다. 그것은 응조문에서 송나라 악비 장군의 초상이라고 들었었다. 그런데 왜 이관주님 위패(位牌) 옆에 악비장군의 영정이 있는 것일까 궁금하였다. 보통 이렇게 영정이 있을려면 조상님들 중에 위대한 한 분일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이관주님은 악비 장군과 먼 친척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명나라는 충효를 절대가치로 떠받드는 유교국가로써, 송나라 악비장군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악비장군의 영정을 많이 복제하여 여러 곳에 걸어두는 일이 많았다.]
"갑자기 일을 당하셔서 참 위로의 말 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찾아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누구신지요?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 하여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저는 십 년 전, 관주님이 노예로 저를 사오셔서 2 년간 제가 관주님 시중을 들었던 진원성이라 합니다. 형도 그 때에 몇 차례 뵌 적이 있었지요."
"오라, 맞네, 네가 진원성이구나. 이제 기억난다. 그 동안 어디에서 살았느냐?"
"저는 산동 제남에서 살고 있으며, 지금은 흑응회라고 상방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 남행 길이 있어 예전에 모시던 관주님과 범대인께 안부라도 올리려고 찾아뵈었더니 불행한 일이 있어서 놀랐지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를 잘 가르치고 아껴주시었는데요. 저로썬 아버지와 같은 분들인데..."
"그래, 안타깝지만 어떻게 하겠냐?"
"이번에 상단에 물목들도 피해가 크겠지요? 저도 옛날 관주님 따라 항주로 해서 영파에 갔다온 적도 있지요."
"상단에 관한 일은 큰 형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거의 모르지. 형이 수습을 잘해야할텐데..."
"저기 관주님 신위(神位) 옆에 있는 분은 송나라 악비 장군님이시죠? 왜 악비장군님의 족자가 여기에 걸려 있나요?"
"그게 모르는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집의 가문이 청해(靑海) 이씨(李氏)인데, 우리들이 바로 악비장군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게 사 오백 년 전 일인데, 악비장군은 송나라 때에 명장이신데 모함을 받아 큰 아들과 함께 옥중에서 돌아가시고, 그 아들 4 명은 멀리 청해지방으로 도망을 쳤다."
"청해지방이면, 섬서성 서쪽 청해가 있는 곳입니까?"
"당시에는 동쪽에는 고려국이 있었고, 북쪽에는 여진족의 대금국이 있었고, 대하국도 있었고, 청해 근처에는 여진족 중의 어떤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 청해 여진족들에게 도망쳐가서 신분을 감추고 성을 이씨로 바꾸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 청해 이씨가 생겨난 것이다. 악비장군님은 그래서 우리 청해 이씨의 조상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 청해이씨는 송나라에서 악비장군의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송나라에 돌아오지 않고 청해근처에서 살다가 송나라가 망한 후에야 고려국에 귀화를 하여 고려국의 남경인 양주성(楊州城)으로 돌아왔다. 그 후손들이 바로 우리 집안 이씨들이다." [역사에서는 대금국의 여진족들을 서여진이라 부르고, 대청국을 일으킨 여진족들을 동여진이라 부릅니다.]
"예, 그런 숨은 이야기가 있어서 악비장군님이 여기 빈소에 오셨군요."
"네가 어린 나이인데 상방을 일으켜 이끌어간다니 참 대단하구나. 나중에 상이 끝나면 다시 큰 형과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하도록 해라. 오늘은 이만 가보고 알았지?"
"예, 형도 고생 수고 하세요. 가볼께요."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건국이 힘을 보탠 이지란 장군은 청해이씨이며, 고려국 공민왕 때에 고려국에 귀화한 여진족으로 역사에 나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천로행 - 제 056 회> 에 자세하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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