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성은 여기까지 듣자 다시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묻게 되었다. 혹시 자기가 심체에서 파란 색을 본 것처럼, 그 누구도 심체에서 그 파란 색을 보았을 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항주에서 추 형의 집에서 구경한 그 청자 색갈을 꼭 고집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가품이라던 파란색도 아주 훌륭하던데요. 전 그게 이상합니다. 높은 하늘이라 해도 조금 덜 파란 색도 있을 수 있고, 좀 어둡거나 더 밝은 색조도 있을 수 있는데 어찌 꼭 그 파란 색을 고집해야만 하는지요? 하늘은 수시로 그 색갈을 바꾸는데, 그래서 하늘의 파란 색도 수십 수백 가지가 될터인데 꼭 그 파란색이어야만 할 이유가 뭐냐 그거지요?"
"흐음, 진 회주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그 파란색을 아십니까?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토번 땅과 저 북쪽 달단족 땅까지 다녀보았으며, 많은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고 푸른 하늘을 볼 때가 어쩌다 있었지요.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더 이상 푸를래야 푸를수 없는 파란 색, 밝음과 어둠을 모두 제거해버린 순수한 파란색을 어쩌다 볼 때가 있었으며, 그게 바로 청자의 그 파란색 입니다. 하지만 자기로 그 파란색을 꼭 나타내야만 한다고 하기에는 이유가 뭔가 부족하지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수 백 년동안 포기하지 못한 이유?"
"대방공께서 살아계실 당시, 한 청년이 대방공을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 청년은 나중에 대방공의 숨겨진 아들이며, 이름 자가 철(喆)이라고 밝혀집니다만. 그게 아마 아들로써 아버지 대방공을 생전에 마지막으로 대면한 것일테지요. 그 청년은 30 여 년 후에 초(楚)나라 사람이 되어 다시 한번 고령땅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 추가에게 어떤 하늘 색이 진짜 파란색인지를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이와 같은 색으로 황제를 위한 청자를 만들어라 한 것이지요. 저도 집안에 내려오는 책을 읽고서 알게되어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방공의 아들이 이름이 철이라니, 왕철(王喆)이군요. 그 이름이 왕철. 초나라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다니, 초나라는 어느 나라지요?"
"그때는 송나라가 금나라에게 쫓겨서 남쪽으로 내려와 있었으며, 원래 송나라가 있던 땅에는 금나라의 식민지 초나라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추인걸은 땅에 막대기로 그림을 그려 초나라를 설명해 주었다. 초나라는 금나라가 북송을 남으로 쫓아내고 그자리에 세운 식민위성국이라 하였다.
[그림 서기 1150 년 경 중원강역도]
"왕철은 무슨 이유로 파란색 청자를 만들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글에 나오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 때에 왕철은 도교에 귀의해서 도사(導師)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합니다."
"왕철이 도교에 귀의를 했다고요? 하지만 청자와 도교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초나라에서 국경을 넘어 고려국으로 오자니 도사로 위장한 것 아닐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진 회주님 이제부터 저는 우리 집안의 비밀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회주님은 우리 집안 비밀을 지켜주시겠다 약속해주시겠습니까? 아직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오늘은 말을 하게 될테니 비밀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시지요?"
"예, 약속을 지키겠으니 걱정 마세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집안은 거상(巨商)이었답니다. 왕건의 아버지는 어느날 오래된 책자 하나를 얻는데, 그것은 고구려부족의 글씨로 작성된 것이었고, 거기에는 하늘에 제사 올리는 것에 대해 기록해놓은 것이었지요. 그 천제를 올리면 함께 제사를 올린 모든 사람이 죽을 때까지 배반하지 않는 충복이 된다 합니다. 왕건의 아버지는 이 책을 중원글자로 번역하고, 왕건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하나씩 준비를 하였답니다. 먼저 옛 고구려의 후예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을 찾다가, 아들 왕건을 후신라에 반기를 든 반란군 김궁예 장군의 휘하에 참여하도록 만들죠."
"전 역사를 모르니 우선 잘 들어두겠습니다."
"왕건은 김궁예 장군 아래에서 군공을 많이 쌓고서 신망을 얻었지만, 당나라 후예라는 것이 알려져서 배척도 많이 받았습니다. 김궁예장군이 신하들의 신망을 잃고 물러나자 신하들은 왕건을 대장군으로 추대합니다만, 이 때에도 3 할의 유력자들이 왕건을 등지고 떠나갔다 합니다. 역시 다른 부족의 사람을 왕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죠."
"맞아요. 그것이 당연하지요."
"고구려에는 본래부터 하늘에 제사 올리는 법이 있었나 봅니다. 어떻게 그 법을 잃었지만요. 그러므로 왕건은 고구려 왕족이 아니지만, 고구려 왕족이 알아야할 핵심적 사항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장 고구려 왕족 다운 존재인 거죠. 김궁예 장군을 내쫓고 왕건이 대장에 올랐을 때에 비로서 그 사실이 최측근 들에게만 비밀리 알려지기 시작해요. 그렇게 알려지기만 해도 왕건은 각 지방 호족들, 유력자들을 충복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충복들은 충성바치는 대신 자기의 딸과 혼인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권력에 대해 지분을 미리 확보하자는 의도지요. 이로써 왕건은 영원한 제국은 얻지 못했지만, 고려 제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혼잣말로 - 이것은 어쩌면 가욕관 노인에게서 듣다만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구만.) 그래서요?"
"그리고 그 다음부터 각 유력자들, 충복들은 미래의 지분을 가지고 서로 종횡으로 연합분산을 하며 권력을 다툰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제국에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 형제들의 혼인이 난무합니다. 가내혼(家內婚)이라 하는데, 삼촌 간 혼인 등도 다수 나오고요."
"이거 참... 명나라 홍무제께서 왜 고려국을 역사에서 지우려 하셨나 의도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비밀을 지킬 수 밖에 없겠습니다."
"영원한 제국 이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았나 봅니다. 고려 황실에서는 백 년이 넘도록 책에 나오는 하늘 제사를 올린 황제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즉 진정한 천자가 나오지 못한 거지요. 이래서는 권력에서 누수현상이 나오게 되지 않겠습니까? 왕철의 할아버지 즉 대방공의 아버지 숙종(15 대 황제임)은 6촌 이내의 가족은 혼인하지 말라고 볍령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요, 대방공 역시 왕씨와 정략 혼인을 합니다. 왕철은 대방공이 타성씨의 여자와 밀합하여 혼외로 얻은 자식입니다. 정략결혼이 아닌 결과의 왕씨가 왕철입니다. 대방공은 왕철에게 영원한 제국에 대해 공부하라고, 고구려 글로 씌여진 원본 책자를 복제해서 주었고, 왕철은 어떻게 고구려 말과 글을 배워 책을 중원 문자로 다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고려국 태조 왕건이 남긴 비서(秘書)를 왕철이 얻었으며, 그리고 왕철은 아주 노력을 많이 했겠군요."
"왕철은 아마 과거에 번역된 것 중에 잘못된 것들 마저 고쳐 번역하고서 자기가 진정한 천자가 되리라 작정하고서 우리 고령의 추(秋) 가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천자의 색에 맞는 파란색의 청자를 만들어달라 다시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십여 년 후에 우리 추 가는 청자를 기어코 만들어 냈지요. 하지만 이후 왕철은 고려제국 천자가 되지 못했는지 고령을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왕철은 다시는 추가에 찾아오지 않았군요. 왕철은 그 후에 어찌 되었을까요?"
"그야 모르지요. 추가는 그 때부터 청자를 만들어 고려 황실에 꼭 필요량만 납품하였고 그 이상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고려 황실에서는 처음엔 다른 도자기와 같이 값을 메겼지만 점점 값을 올려 주었지요. 청자는 바라보고 있으면 점점 빠져들게 되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추 형의 집안과 청자에 관련된 사연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비밀 꼭 지키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습니다. 오늘 뜻밖에 처음으로 비밀을 털어놓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가슴에 박혀있던 돌맹이 하나를 뽑아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뿐해진줄 알았다면 진작에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을 것을 ... 이제는 진짜로 도공(陶工) 일을 부담없이 버릴 수 있겠습니다. 다른 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습니다."
"추형에게 저의 의견을 잠깐 말씀드릴 터이니 마음에 안드시더라도 그럴려니 해두십시오. 항주에서 추형께서 도공(陶工)에 대해서 설명하실 때에 저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본래 누구나 도공이 될려고 하지 않는데, 도자기를 자꾸 만들고, 흙과 불을 자꾸 만지다 보니 어느 새 도공이 되고 싶어진다는 것을... 지금 추형은 도공 일을 버릴 수 있겠다고 하셨지요. 그러면 지금부터 무엇이든 해 보십시요. 무엇을 해보시렵니까? 제가 한 가지 일을 추천해도 될까요?"
"예, 회주님께서 무슨 일이든 하나만 추천해 주십시오."
"제 생각에는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라 봅니다. 무엇을 택해서 배우다 보면, 그리고 점점 더 그것을 하다보면 마침내 그것이 진심으로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떤 일은 노력과 성취가 간격이 좁아서 금방 성취를 이루고 금방 만족을 느낍니다. 어떤 일은 노력과 성취의 간격이 넓어서 성취가 어렵고 만족과 기쁨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즉 빠르고 늦을 뿐이지 형세는 같은 것이지요. 또 성취가 빠른 것이선 만족이 적고, 성취가 늦은 것에선 만족이 큽니다. 그런 점에서 성취가 빠른 도공이나 이곳 보타관음사에서 부처님을 모시는 성취가 아주 느린 스님들이나 형세는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추형에게 저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진 회주님은 지금 무엇을 이루려 하십니까? 그리고 왜 그 목표를 이루겠다 생각을 하셨는가요?"
"나의 경우는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냥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그렇게 빡세게 갑자기 세상이 내게 밀려들었지요. 일곱 살 때였는데 나는 죽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눈앞에 닥친 일을 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지요. 지금에 와서는, 나의 목표는 원수를 갚는 것, 그 다음에 내가 이끄는 회가 장사를 잘해서 내 처들을 밥굶기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주면 하는 바램이 있고요. 그 다음에는 불우한 만성들에게 적선을 많이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목표가 된 것 같습니다. 나의 경우는 내가 뭘 어찌 하겠다가 아니라 이리저리 몰리고 몰리다가 보니 이렇게 되어져 있더라는 것이죠."
"저는 집안의 소망을 내가 이룰 수도 없고요, 아니 없을 것 같고요. 그렇다고 집안의 소망을 저버리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고요. 하지만 이제부터 무슨 일인가 해야지요."
"추형에게 건방진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저는 과거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훌륭한 여러 부처님 제자들이 좋은 말이라 그러시니 좋은 말이라 해두지요. 색즉시공이라면 파란색 청자를 만드는 일도 사실 아무 색도 없는 도자기 만드는 일과 같은 일이 됩니다. 또 공즉시색이라면 아무 색도 없는 도자기를 만들어도 그것이 파란색 청자든, 붉은색 적자든, 초록색 녹자든, 하얀색 백자든, 검은색 흑자든, 아무거라도 만드는 일과 같습니다. 추 형이 지금까지 한 일 중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아? 그건 역시 도자기 만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도자기의 가치는 도자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도자기가 아무리 훌륭해도 산 골짜기 어느 땅 속에 묻혀있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지요. 청자의 가치는 황제가 알아주어야만 가치가 있었지요. 어느날 만일 황제가 이것은 별게 아니다 라고 말하면 그 순간 청자의 가치는 별 볼 일 없어집니다. 가치라는 것도 색즉시공이라는 거죠. 저는 추 형에게 우리 흑응회에서 함께 일해보길 권합니다.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 보십시오."
"흑응회의 일을 하자고요?"
"우리 회는 피난처를 만들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면 수많은 만성들이 도탄에 빠질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회는 만성들을 받아들여 보존했다가 세상이 정돈되면 다시 세상에 내보낼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누구에게 이익이 되나요?"
"만성들에게 이익이 되고요, 명나라에게 이익이 되지요. 그러면 황제에게도 이익이 될테고요. 어쩌면 추형은 도자기에 파란색을 입하는 일 대신에 흑응회에서 세상에 파란색 입히는 일을 함께 하게 된다 생각할 수 있지요. 이게 공즉시색이 되는 거죠."
"세상을 파랗게 만든다, 청자를 만들듯이..."
"추형께서 앞으로 며칠동안 잘 생각해보시고 다시 이야기를 합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아무려나 저를 위해서 해주신 말씀이니 고맙고요, 또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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