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월 2 일 미시(未時)에 맞춰서 진원성은 목욕탕이 있는 절 앞으로 가서, 왕준서를 만나 절의 어느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왕준서의 상전(上典)인 왕충(王忠) 태감을 마주하게 되었다. 진원성은 허리까지 숙여서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왕충 태감은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그동안 준서의 의형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번 만나기를 오래 기다렸는데, 오늘에야 보게 되는구려."
"처음 뵙습니다. 진원성입니다. 왕 동생의 아버지 같은 분이시니 제가 삼촌이라 불러도 될까요?"
"아! 그거 좋구만. 하지만 어디가서 그랬다는 말은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진대인은 통정어사님의 부하이니 내가 아래로 둘 수는 없고 해라를 할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에 만났다면 내가 쉽게 해라를 했을 터인데, 내가 어제 옛날 문서를 뒤져서 호국감찰통정어사(護國監察通政御使)에 대해서 알아보았어요. 통정어사는 황제를 처벌할 수만 없고 나머지 황태자 이하 황족들까지 모두 처벌할 권한이 있는 비밀품계인 걸 알게 되었고, 통정어사의 부하들 역시 품계가 없으나 신료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그런 위치라오. 준서와 진대인이 만났을 때는 아주 어릴 때였는데, 그 때에는 어사님과 진대인은 아직 관련이 없을 때였지요?"
"예, 그렇습니다. 저는 신료니 품계니 하는 것도 잘 모르는 사람이니 삼촌이 조카에게 대하듯이 그렇게 대해주세요, 또 제가 통정어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비밀을 엄수해야 하도록 되어있는데... 이게 밝혀지면 곤란한데... 아무튼 어르신을 저도 삼촌으로 모시겠습니다."
"하 하 하, 정말 시원하구만요. 정 그리 말하니 내가 오늘만 준서의 형이라 생각하고 대하겠소? 그래도 될런지..."
"삼촌 앞으로도 계속 그리 대해 주세요. 그것이 저와 준서에게 편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네. 날 삼촌이라 부르면 나는 진대인을 조카라 불러야 되는데... 조카는 이번에 북경에 무슨 일로 왔는가?"
"준서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도 없고요, 또 다른 일도 좀 있고 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준서, 이놈이 복이 많은 놈이구만. 이렇게 좋은 형을 두고 있으니 말이오. 흐음, 준서에게 말을 들으니 조카는 저 멀리 두루 돌아다니고 왔다던데. 막북(漠北 고비 사막의 북쪽을 말하며 외몽골임)의 사정은 어떻던가? 달단족들의 사정은 바로 초원의 사정과 같고 초원이 풍성하면 달단족도 풍성한 것인데."
"제가 둘러보던 때는 지금부터 2 년 전부터 1 년 동안 막북에 있었던 셈인데, 그동안 초원은 비가 왠만큼 와주어 초원의 풀들이 평작(平作) 이상은 되었습니다. 그러니 달단족들은 배골아 죽는 만성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준서, 넌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막북의 사정은 초원의 풀들이 말해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평작 이상이라면 앞으로 3 년은 먹고사는 데에 문제가 없을 것일세. 초원이 생산해 내는 풀은 겉보기 보다 훨씬 힘이 크다네. 말이나 양들이 별 것 없는 풀을 뜯는데도 그게 얼마나 신통한지 일 년에 금방 떼가 늘어난다네."
"예, 제가 둘러보았는데 양들이나 말들을 거세시키는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풀이 좋아 새끼들이 많이 태어났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죠. 그리고 제가 주로 둘러본 곳이 만인대(萬人隊) 주둔 지역들이었는데 대체적으로 평화롭고 어떤 군병의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황교와 홍교 간에 서로 교세를 넓히려는 경쟁이 치열한 것을 느꼈습니다."
"달단족들 만인대가 모두 여섯일텐데, 토번의 라마들이 막북에도 많던가?"
"만인대 속의 게르들 겉에 라마 표시의 치장을 한 것들이 눈에 자주 보였습니다. 달단족들이 사는 천막 집을 게르라 하는데 그들은 게르의 출입구에나 또 상부에 색있는 천으로 치장을 많이 합니다. 라마들이 머물고 있는 게르는 그것을 밖에 표시하는데 그래서 밖에서 지나면서도 알수 있지요. 황교와 홍교는 그 치장의 색갈이 달리 나타납니다."
"홍교와 황교 간에 투쟁이 있다는 뜻이구만."
"예, 만인대 별로 황교가 우세한 곳과 홍교가 우세한 곳이 있습니다만, 정작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
"황교와 홍교가 서로 달단의 어린이들을 데려다가 글을 가르치고 불법을 가르치는 데에서 경쟁을 하게되니, 결국 달단족들 중에 글을 배운 만성들이 자꾸 많아지는 것이지요. 이 말은 달단족들이 얼마 후에는 커다란 힘을 낼 수도 있게 된단 말과 같지요."
"그건 정확한 안목이야. 준서와 나이 차가 없어서... 어사님의 부하로써 갖출 자격을 갖춘 사람이구만요. 우리 대명의 자료에는 초원의 크기로 봐서 달단 족들을 40 개 부로 보고 있어요. 여기에서 1 부라는 것이 군병 만 명을 낼 수 있는 크기라 보면 되고, 그러니 달단족들은 최대로 많으면 만성들의 수가 400만 명이며 실제로는 오할이나 육할 정도일 것이니 만성들의 총수는 240만 명 정도일 것이며, 군병으로 동원할 남정들의 수는 아무리 많아도 24만 명이라 할 것이오. 그 다음은 달단족들이 갖고 있는 마필(馬匹) 수만 따져보면 달단족들의 군세는 결정되는 것이네."
"아! 그런 내용이 이미 우리 대명에 조사되어 있었군요?"
"그거야 당연하지. 그래서 대명은 달단족들의 마필 수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연구해낸 것이 말 값을 비싸게 쳐주는 것이었네. 원성 조카도 알고 있겠지?"
"예, 말 한 필 값이 은자 두 량이 적당하다면 은자 만 량으로 오천 필을 살 수 있는데, 은자 열 량으로 말값을 쳐서 천필 만을 계속 사주면 달단족들은 말 천필에다가 조금 더 붙여서 키우게 된다는 것이지요. 즉 말 값을 비싸게 쳐주면 오히려 말을 많이 키우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알게 된 것 중에 또 한가지는 달단족들과 여진족들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여진에 누르하치라는 족장이 나서서 아주 강력한 통치를 해가며 힘이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지요."
"조카의 안목은 그것도 놓치지 않았구만. 여직(女直 여진 女眞을 여직이라고도 함)은 그 크기가 13 부로 만성들의 수는 130만 명이고, 최대로 낼 수 있는 군병이 13만 명이라네 역시 그것의 육할을 보자면 8만 명의 군병을 낼 수 있을 것이네."
"달단족의 군병 3만 명이 여진족 군병 만오천 명을 기습하여 이기지 못하고 패퇴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여진의 군병 8만 명이면 그것을 막아내려면 적어도 대명 20만 명의 군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강하고 사나웁단 말이지요."
"조카의 걱정은 이미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는 내용이라네."
"아! 벌써 알고 계시군요?"
"우리 대명은 1000 개의 주현(州縣)이 있어. 즉 달단이나 여직의 부로 보자면 1000 개의 부가 있다는 말일세. 우리가 최대로 군병을 내면 천만 명을 낼 수가 있으며, 명은 국력이 충실하여 팔할을 치면 800만 명을 군병으로 낼 수 있는데, 힘을 모으지 않으니 약해 보이지만, 힘을 모아쓰면 달단이나 여직이나 근본적인 걱정거리는 아니라네."
"대명은 1000 이고, 달단은 40 이고, 여진은 13 이라는 말이지죠. 그렇군요. 참 삼촌께서 저를 보자 그러셨다고요. 가르침 주실 일 있으면, 말씀하시지요?"
"무슨 꼭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준서의 형이라 하니 만나보고 싶었으며, 그 머나먼 곳을 둘러보았다니 그 점도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고 궁금하였고, 게다가 통정어사님의 일을 함께 한다니 내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네."
"어르신이 보기에도 원성이 형은 대단하지요?"
"삼촌, 그리고 준서야. 제가 통정어사와 연결된 일은 비밀이어야 합니다. 이게 알려져서 좋을 일이 없지요. 그러니 이제는 어디에서도 그 말을 꺼내지 마시라고 부탁드리겠어요. 준서 너도 알겠지?"
"응, 나는 이제 어디에서도 그런 말을 하지 않을테니 걱정마. 난 태감 어르신에게만 말한거야. 그 밖엔 한마디도 안했어."
"삼촌께 한가지 묻겠습니다. 동창이 제 뒤를 조사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카가 통정어사님과 연결된 일은 이제부터 모르던 일로 하자고, 그게 서로에게 좋지. 그리고 동창에서 뒤를 찾아보는 것은 의례적인 일일뿐이니 걱정할 건 아니네. 내가 한번 제독을 만나게 되면 물어보겠네만 별일은 아닐게야. 내가 자넬 만난 김에 이거 하나 물어봄세. 지금 우리 황실에 먹구름이 좀 끼어 있는데, 이것을 통정어사님께선 어찌 보고 계시는가 하는 걸세."
"먹구름이라니 그게 무엇이지요?"
"이게 오래된 일인데 황태자와 복왕 간에 힘겨루기일세. 아니 두 황자간 겨루는게 아니라, 신료들이 두 파로 나뉘어 서로 경쟁을 하는 것이지. 이 경쟁이 시간이 오래 될 수록 서로 깊은 상처와 흉터를 남기게 되는 문제라, 어사님이 이것을 아신다면... 조속하게 수습지어 주실수 있다면 하고 소청이라 드릴 마음일세. 자네가 이 문제를 어사님께 전해주면 좋겠네만?"
"삼촌께서 저를 보잔 것이 바로 이 문제였군요?"
"그럼, 이것은 정말 지금 이 나라의 중요한 문제일세."
진원성은 병장국 태감이 자기를 만나기를 바란 뜻이 이것임을 알게 되었다. 후세에 국본지쟁(國本之爭)이라 칭하는 이 문제는 이미 20 년도 더된 오래 전부터 있었던 문제이며, 즉 호공두 어르신이 살아계셨을 적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진원성은 준갈이부족의 쇄음수를 쓰는 청랑대가 황금씨족 내부의 갈등에는 간여(干與)하지 않았다는 것을 참고하여 답변을 하였다.
"어사님이 아마 알고 계셨던 문제일텐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음은 황실 내부의 일은 황제 폐하께서 직접 처결해야할 일이므로 손댈수 없다고 하신 거라 짐작합니다. 이 이상은 저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황상께서만 처결하실 수 있는 일이란 것을 나도 알고 있지만, 보고있자니 너무 답답하여 행여나 하고 말하였던 것이네. 그냥 없었던 일로 해두게... 참 아이 두 명을 사서 호위로 키우겠다고 그랬다면서?"
"예, 준서에게도 한 명 붙여주면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저의 장원에도 제가 장기간 비울 때에 지켜줄 사람이 하나 있었으면 해서요."
"그 아이들에게 무술을 3 년 가르치겠다고 하였는가?"
"예, 제가 직접 권술을 기르칠 수도 있지만, 제가 좀 바쁘니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합니다. 3 년 정도면 왠만큼 배울 수 있다 생각합니다."
"조카가 권술을 잘하는가 보네. 십 몇 년 전인가 그 때에 준서가 내게 권술도장에 다니겠다고 해서 보내준 적이 있는데, 준서는 얼마 안되서 포기하고 말았지."
"삼촌, 그게 인연이 되어 준서와 제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지요. 저는 지금 왠만큼 권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이렇게 되었으니 제가 삼촌의 몸을 한번 만져볼께요?"
"나를, 내 몸을 만져본다고..."
"예, 제가 만져보면 건강에 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요? 자 손목을 줘보세요? 저는 의원은 아니지만, 맥을 잡아서 좀 알수 있거든요. 흐음... 삼촌은 몸이 좀 좋지 않으신데요. 흐음... 오늘은 목욕을 하실 때에 찬물로만 하세요. 뜨거운 탕에는 들어가지 마시고요."
"난 뜨거운 탕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건 삼촌이 몸에 양(陽)이 부족하니 그래서 그런 것인데... 흐음... 어때요? 뒷골이 좀 시원하지요?"
"양이 부족한데 왜 뒷골이 시원할까? 방금 뭐가 내 몸에 들어왔지?"
"예, 제가 조금 양(陽)을 보충해드렸어요. 얼마간은 이걸로 도움을 얻으실텐데... 근본적인 방도는 좀 더 연구를 해봐야겠구만요. 이것도 누구에게 말하시면 안됩니다."
진원성은 남성을 제거한지 오래되어 그것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몸이 훼손된 것이므로 별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더 연구해보겠다고 말을 해두었다.
"알겠네. 누구에게 말할 필요는 없는 일이지. 그리고 준서에게 집을 사준다는 말을 했다는데, 혼인 이야기도 하고... 준서에게는 나중에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물려주려고 하니 그 걱정은 하지말고, 준서 혼인 문제는 이 삼 년 후에나 시키려 하는데, 좀 두고 보세."
"예, 오늘 준서와 같이 서직문 밖 어느 절에 가보려합니다. 삼촌께서 허락해 주셔야 하지요?"
"그건 내가 심부름 시킨다는 것을 쪽지에 적어서 준서에게 주었으니 성문 출입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게야."
"삼촌에게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도와주시라고 부탁을 드릴 수 있을지..."
"무슨 말인데 해보게. 내가 도울일이 있다면 도와줘야지."
"제가 장래에 큰 배를 타고서 먼 나라들과 큰 장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큰 배도 큰 배지만 배 위에 대포를 싣고서 다녀야만 해적들을 물리치고, 장사를 해낼 수가 있지요. 그래서 저는 큰 배 만드는 일과 대포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 알아보고 어떻게 이 일을 추진해야 할까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흐음. 우리 대명은 해금(海禁 바닷가에 빙둘러 철조망을 치는 것)정책을 오래 해오다가, 이제 시박사(市舶司 해외무역과 배를 관리하는 관청) 몇 곳을 남해 쪽에 열어서 무역을 하고는 있는데, 내각에서도 이 문제는 좀 신중한 편이네. 왜냐하면 우리 대명이 갖춘 대포와 화약의 기술은 아주 높아서 그것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서는 안될 일이거든. 하지만 무역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또 무역을 막으면 해적들이 더더욱 난리를 치게 되니, 허용하고 말았는데, 아무튼 조카가 신중하게 다루어야할 문제일세. 내 밑에 병장국(兵仗局) 일을 돕는, 이름이 위조(魏朝)라는 태감이 있어. 내가 미리 이야기를 해놓을테니 준서를 통해서 위 태감을 만나보게."
"형, 위조 태감은 병장국의 차석(次席)이신 분인데, 어르신을 잘 도와주시는 분이야."
[황궁 내에 환관 조직은 24 개 아문이 있었으며, 각 아문마다 수석을 장인태감(掌印太監 장인태감이란 호칭은 처음에 황제의 어보를 관리하는 태감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이라 불렀다. 또 장인태감이 유고 시에 혼란을 막기 위하여, 제도로써 뒤를 이을 차석을 미리 정해두고 있었다. 이것은 유사시에 일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황제가 차석을 통하여 수석을 감시 조정하는 것으로, 환관조직을 확실히 지배하는 방편이 되기도 하였다.]
"아, 그래, 삼촌, 이 무역 일은 통정어사님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어찌 되었던 제가 어사님과 연결되었던 일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잊지마세요. 생각해보니, 위태감에게 저를 소개하실 때에 하실 말씀이 아직 적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좀 나중에 제가 적당한 감투를 하나 쓰고서 다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군요."
"적당한 감투를, 흐음. 그래 참 신중해서 좋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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