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사인묘(제6부)

제 012 회 왕준서의 기념은표(記念銀標)

금박(金舶) 2017. 2. 10. 09:58


"그래. 참 너는 지금 일 끝나면 방에서 나와 어디에서 자냐?"


"나는 정해놓고 자는 데가 있는데..."


"내가 전번에 그랬지 건강하게 잘 있으면 은자 천 량을 상금으로 준다 그랬지. 내가 이번에 오면서 길에서 생각을 해보니까 너에게 여기 경성에서 머물 집을 하나 사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아주 작은 집 말이다. 그리고 너도 혼인을 해야하지 않겠니? 그럴러면 집이 있어야 할테고..."


"나... 내가 혼인을 해? ... 그건 아직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 집 사는 것은 내가 삼촌하고도 상의를 해야되요. 삼촌은 사실상 나의 아버지와 같으니, 상의를 드려야지? 또 혼인하는 것도 물론이고. "


"내가 북경에 오게되면, 너랑 같이 그 집에 머문다면 무슨 삼촌이니 두부장수니 소금장수니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원성 형, 우리 방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어디에서든 소금장수 두부장수 이렇게 말을 해야만 되요. 그리고 형과 형수님들끼리 이 이야기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리 말씀하셔야 되요. 누가 어디에서 무슨 말을 빼앗아 들을지 모르니까요. 아시겠어요? 또 형이 북경에 온다해도 얼마나 있겠어요? 그것은 너무 낭비가 될 거야. 그냥 반점에 머무는 것이 더 나을거야?"


"그래. 아무튼 삼촌에게 한번 말씀드려 보거라. 집을 사면 집에서 너를 돌봐줄 부인이 아니면 하녀라도 있어야 할테니. 그래 여자 노예를 사서 하녀로 두는 것이 좋겠다."


서로 이야기를 줄이고 저녁식사를 빨리 끝내자, 함께 객방으로 들었다. 왕준서는 옆방으로 가서 오줌받이를 갈고 나와서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왕준서는 두 형수를 보고 말했다.


"두 형수님, 원성이 형이 혹시 저의 말을 하던가요?"


"그냥 간단히 한마디로 북경에 동생이 있는데 만나본다고만 했으니, 그 동생이 어떤 동생인줄 알 수 있겠어요?"


"저는 황궁에서 일하는 환관이에요. 그래서 몸이 조금 부족하답니다. 이 말도 형이 하지 않았나요?"


"예, 하지 않았어요. 참 대형님도 너무 하셨네요. 좀 미리 말씀을 해주시지..."


"그러면 제가 이걸 보여드려야겠네요. 이것이 제가 원성이 형을 만나 의형제를 맺은 기념품이에요. 자 보세요? 은으로 만들었는데 아주 멋이 있지요?"


"'진원성, 왕준서를 만나 형제를 맺었다. 만력 30 년 모월 모일'이라 써있네. 만력 30 년이면 지금이 만력 42 년이니까 12 년 전이네요. 그 때는 아주 꼬맹이 시절인데... "


"작년 겨울 원성이 형이... 12년 전에 만든 기념품은 나무로 만들어져서 깨졌고, 다시 형이 만들어 주신 것이에요..."


왕준서는 12 년전에 북경의 어느 무관에서 일어난 일을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해녕과 북경은 처음듣는 이야기라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해녕은 진원성과 왕준서가 그 물건이 달려있고 없고의 차이 뿐이지 사실상 같은 형편인 것을 짐작했으며, 아마도 두 사람은 그런 점이 상통하여 의형제가 되었으리라 짐작해보았다. 물론 그 때의 진원성은 아직 자기에게 그런 불구(不具)가 있음을 모르던 어린 시절이므로 해녕의 짐작은 맞지 않았으나 두 사람이 만난지 얼마 되지않아 의형제를 맺은 이유로는 그럴듯 했다. 해녕총관이 진원성에게 말했다.


"대형님, 오늘 이 기념은표(記念銀標)를 보니까 생각이 났어요. 우리 부인들에게도 이 기념은표를 하나씩 만들어 주세요. 거기에는 총관들의 본명이 들어가야 하고요, 총관들이 원하는 한마디의 약속을 글로 세겨주셔야해요. 어때요?"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해녕은 무슨 약속말을 원하나요? 말해봐요, 날짜는 오늘로 하고요...내일이라도 만들어 줄테니... 북경도 말해보구려?"


"저는 대장군감 아들 두 명을 내려주시기로 한다고 글귀를 넣어주세요?"


"아우는 욕심도 많구만, 두 명이라니... 대형님 전, 죽음이 올 때까지 저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말을 적어주세요? 그리고 다른 총관들 몫으로도 하나씩 만들어서 글귀를 새길 곳은 빈채로 두고 ... 제남에서도 글귀는 새길 수 있으니 ... 제가 동생들에게 북경 구경 선물로 하나씩 나눠 주어야지요."


"응, 알았소. 그럼 모두 열 개를 만들어야 하겠구만."


"원성이 형. 지금 형수님이 열 명이나 된단 말인가요?"


"지금은 아냐. 앞으로 열 명이 될 예정이야. 그러니까 미리 준비를 해두겠다는 것이지..."


"두 형수님 그러면 이 말도 아직 듣지 못하셨지요? 형이 아들을 두 번째로 낳으면, 그 아들은 저에게 양자로 주겠다고 말한 것을 요?"


"대형님, 참말로 그런 약속을 하셨습니까?"


"에 그게... 준서 동생이 아이를 갖을 수 없는 몸이니까 내가 그런 약속을 한 것이에요. 그런데 왕 동생이 혼인을 하지 않아서 아직은 양자를 받을 수가 없어요.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합시다."


"대형님, 저는 기념은표에 적을 말을 고칠랍니다. 대장군감 아들 둘이라 했는데 셋으로 고칠랍니다. 혹시 아들 하나를 잃더라도 둘은 남을테니..."


"원성 형, 이제부터 낙양 두부장수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두부장수? 아, 복왕부... 이 이야기는 먼저 경가장 이야기 부터 말해야 되겠구만. 그 전에 제남에서 내가 흑응회 회주를 할 때였는데, 조그만 사고를 치고서... 낙양으로 도망을 했지. 낙양에서 다시 쌈박질을 하면서 무뢰들을 평정하여 낙양을 결국 제패하였을 때인데... 그 때 내가 낙양에서 만든 조직이름이 적목단이었어요. 낙양성에는 대지주가 세 명이 있는데 그 중에 경가장이라는 곳이 가장 큰 지주였어요... 그 때에 나는 명나라 홍무제의 통정어사라는 분을 만났고, 그 어르신이 경가장을 토벌한다고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그것을 도왔고, 그 때에 그 전쟁에서 모두 수 백 명이 죽었는데, 적목단원들도 몇 십 명이 죽게 되었으며, 나도 큰 부상을 당하였지요. 아무튼 그 댓가로 통정어사님으로부터 은자 이십만 량을 얻고, 낙양성 보호사업을 할 수 있게 허락을 받게 되었다. 참 이 인연으로 어시님과 나는 의형제가 되었어."


"형, 보호사업이 뭔가요?"


"그것은 낙양의 모든 만성들을 무뢰배들과 도적들에게서 보호해준다는 것이야. 나는 그 댓가로 일 년에 이만 량을 만성들에게 걷어들였지요. 그 때에 여기 해녕이 적목단에 와서 반점을 열고 장원 주택공사하는 데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내가 없는 동안에 기택이란 곳에서 수작질을 하여서 보호사업을 뺏고, 우리 단원 다섯 명을 죽이고 내 부인을 납치하였던 것이다. 내가 작년에... 6 년 만에 돌아와 보니까, 그런 일이 벌어져 있는 것이에요. 나로써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통정어사님에게 연락을 하고서 허락을 받고 기택 그 놈들은 모조리 죽여버렸지요. 그래서 다시 보호사업을 되찾았고, 미곡저가판매 사업도 하게 되었으며..."


"형, 미곡저가판매는 또 뭔가요?"


"그것은 내가 아주 가난한 만성들을 위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미곡을 파는 것을 말하는데, 많이 할 수는 없으니, 일 년에 한 부에서 오만 섬 정도만 팔도록 시킨 것이지. 지금도 제남부와 하남부에서는 그 걸 오만 섬씩 하고 있어요. 이것은 내가 통정어사님의 칭찬을 받았던 일인데, 가난한 만성들을 위해서 해야할 일이라서 내가 고집을 부려서 해나가고 있는 일이야."


"흐음, 그러니까 그게 손해를 보고 싸게 파는 것이지요? 원성이 형이 참 대단한 형님이시구만요."


"나는 통정어사의 뜻을 관철시켜야 하였고, 또 악덕지주를 징계를 해야하였어요. 그래서 통정어사님에게 연락을 하고 기택을 토벌하려고 낙양에 가서 보니까, 하루 전날에야 저녁 무렵에 기택을 경비하려 들어가는 몇 십 명의 장정들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그들의 목숨을 살릴려고 꾀를 낸 것이... 이건 소주총관이 꾀를 도와준 것이에요. 낙양성이 저녁 유시에 문을 닫는 것을 이용해서 그들을 성 내에 발을 묶어야만 했어요. 그럴러면 그들이 거부하지 못할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그래서 두부장수 총관 이름으로 거짓 명령을 내렸어요. 그들이 두부장수의 시녀를 희롱하였으니 범인을 색출해야한다고 전원 두부장수 집에 들어와서 얼굴 확인을 받아 범인이 아님을 밝히도록 한 명령이었지요. 이로써 그들 약 7십 여 명의 생명을 구한 것이에요. 아마도 사후에 그런 상황을 두부장수 총관도 짐작하게 되었을 것이에요."


"형 그렇다면 복... 두부장수 두목이 형의 뒷조사를 한 것은 그 때문은 아닐 거야. 제가 들은 것만으로는 큰 문제 없는데, 아무튼 삼촌에게 한번 물어봐야 하겠구만요. 흑응회를 조사하면 소금장수들도 뭔가 제대로 알게 될 것이고요, 만일에 어떤 문제가 되면 통정어사에게 먼저 물어본 후에 형을 다시 찾더라도 찾을테니. 이건 소금장수들이 무슨 사건이 있을 때면 기본적으로 관련자들을 한번씩 조사해보는 통상적 일이라 생각하면 되겠군요. 그러니 아직은 좀 그대로 내버려두고 지켜보는 것이 좋아요."


"그래? 나도 이렇게 너에게 털어놓으니 속이 좀 가벼워졌다. 소금장수들이 내 뒤를 캔다고 알게되니 기분이 좀 안좋더라고... 삼촌에게 흑응회 문제를 좀 알아봐달라 말씀드려서 뭔가 알게 되면 내게 편지라도 보내줘야 한다."


"응, 그건 염려마. 내가 재빨리 편지할테니까. 만일에 편지가 늦을 것 같으면, 형이 알려준대로 내가 사람을 직접 제남으로 보내기라도 할테니 걱정마."


"그래, 알았다."


"형, 오늘 나 여기서 잘려고 하는데 침대가 둘 뿐이네."


"저쪽에서 두 형수가 함께 자라 하고, 이쪽에선 너와 내가 함께 자자구나."


"누가 알면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난 문제없지만 형에게..."


"내가 점소이들 입단속을 잘하마. 걱정하지 마라. 내일부턴 침실 두 개 있는 객실로 옮겨야 하겠다. 내가 북경에 있는 동안은 너는 매일 나한테 와서 잠자야하지 않겠냐?"


"그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형 내 친구 중에 왕민(王敏)이라고 있는데요. 내가 형 자랑을 좀 했더니, 형을 한번 만나게 해달라 그러는데, 내가 내일 왕민이를 데려와도 될까?"


"흐음, 그건 좀 생각해볼 문제다. 어떻게 만난 친구냐?"


"민이도 부족한 몸이고, 나와 같이 방에서 일하고 있지. 삼촌이 가끔 만나는 분 중에 왕안이라는 태감어른이 계시는데, 민이는 왕안 어른을 모시고 있어. 나하고 가끔 목욕탕도 함께가는 그런 친구야. 우리들 사이에선 목욕탕을 함께 가는 사이라면 아주 친하다는 뜻이야. 황성 안에 우리 환관들만 들어가는 목욕탕이 있거든. 물론 태감 어르신들은 황성 밖에 목욕탕을 ... 내가 형과 맨처음 만날 때에 무관 옆에 있던 절, 그 절에 딸려 있는 좋은 목욕탕에 가시지만 우리들은 가난하니까... 우리 통정(通貞 - 어렷을 때에 거세를 하여 평생 여자와의 관계가 전혀 없는 환관을 통정이라함) 환관들은 사실 대부분 고아들이고, 그래서 아무런 인간관계가 없어서 모두 외로워하고 있지. 왕민이도 형이야기를 듣고 나를 부러워하면서 형을 보게 해달라고 한 것이야."


"민이라는 친구가 어떤 도움을 바라고 있는 것 같구나. 실패해도 준서 너에게는 어떤 피해를 주지 않을 그런 생각을 하니까 네게 말하지 않고서 또 다른 믿을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야."


"민이가 나를 못믿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구나..."


"이것은 못믿고 믿고의 문제가 아니야. 민이가 너에게 어떤 비밀을 이야기했는데, 준서 네가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면, 그렇게 되면 쓸데없이 말을 했기 때문에 친한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 될 수 있단 말이다. 사람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야... 준서 네가 민이 이야기를 내게 풀어놔봐. 어쩌면 민이의 사정을 알수 있을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