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성과 왕준서는 서편문을 통해서 성 밖으로 나갔다. 수문병(守門兵)들은 왕준서의 복장을 보더니 그냥 통과를 시켜주었으므로 진원성은 돌아올 때에도 잘 봐달라고 은전 1 푼을 주어서 자기의 얼굴을 잘 기억시켜 두었다. 가는 길에 왕준서는 진원성에게 물었다.
"형, 혹시 삼촌을 만나서 기분이 상했어? 우리 어른께서 형에게 황태자를 도와서 복왕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뜻으로 만나자고 하는 줄은 난 몰랐어? 그냥 내 형이라니, 그래서 만나보려는 것인줄만 알았어요. 형을 이용하려 했던 거라 섭섭해 하지 마세요."
"응, 섭섭하지 않다. 삼촌의 황태자를 걱정하는 충성심이 얼마나 큰지 알겠더라. 하지만 내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니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었다. 넌 걱정 마라."
근 한시진 걸려서 도착한 조그만 절은 밖에서는 절집 같아 보이지 않았고, 명판도 붙어있지 않아서 절이름을 알 수 없었으며, 들어가보니 작은 명판이 있어서, 승덕사(承德寺)라는 절이름을 알 수가 있었다. 이곳이 전문적으로 환관을 공급하는 곳이므로, 그것은 일반 신도들의 출입을 가급적 줄여보자는 뜻일 것이다.
본전(本殿) 앞의 제법 큰 뜨락 둘레에는 아이들이 이곳 저곳에 둘씩 셋씩 흩어져 앉아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진원성과 왕준서가 나타나자, 둘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진원성들은 측전(側展)에 있는 곳에 가서 누구에게 용건을 말하여, 아이들을 맡고있는 승려 두 사람에게 안내되고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곳 승덕사에는 지금 아이들이 모두 37 명이 있습니다. 아이들 나이는 일곱 살에서 열두 살이며, 데려가시는 값은 은자 오십 량 씩입니다. 시주님들께서 원하는 나이를 말씀하시면 그 나이에 맞는 애들만 데려와 앞에 세워 놓고 고르시도록 하지요."
"이곳 승덕사에서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을 시키는 것이 있나요?"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치고 그 이외에 명심보감(明心寶鑑) 같은, 밖에서 어린애들이 배우는 책들을 읽도록 가르칩니다마는, 여기에는 아이들이 가장 오래 있어봐야 육개월 정도이니 고작 천자문 만 배워 나간다고 보면 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천자문도 배우지 못하고 나가게 되지요. 또 어떤 아이들은 배우기를 싫어해서 천자문을 못배우기도 하고요. 어떤 분은 글을 모르는 아이를 원하시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애들은 한 두달 만에 천자문을 모두 배우고 외우는 아이도 있지요. 또 이곳이 절이기는 하지만 부처님 말씀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을 데려가는 분이 불교를 싫어하는 경우도 자주 있기 때문인데요. 아무튼 윗 어른을 잘 모시고, 주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을 가르치는 교육은 매일 한 시진 씩 외우기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기의 현재 상황을 잘 알아듣도록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왕 아우는 아이가 몇 살 쯤 되면 좋을 것 같은가?"
"형 생각대로 하세요. 저는 형의 의견대로 따를께요."
"궁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몇 살 아이들이 많은가?"
"궁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나이가 어린 일곱살 짜리들이 많지요. 하지만 지금 형은 궁에 들일 아이를 찾는 것은 아니잖은가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고, 아홉 살 아이들은 몇이나 있는가요?"
"아홉 살짜리는 여섯 명인데요?"
"그럼 여섯 명을 만나보기로 하지요."
"잠시 차 한 잔 드시면서 기다리시지요. 금방 볼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정말 뜨거운 차 한 잔을 식혀가며 마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 여섯 명이 들어와서 한 줄로 늘어섰다. 들어오면서 보았던 낡은 옷을 벗기고 어느새 알몸에 두루마기 옷만 입혀서 데려왔다. 아이들은 모두가 귀엽고 어여쁘게 생겼지만, 얼어서 표정이 없고마치 인형처럼 보였다. 진원성은 아이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 아이들을 기감으로 살펴보니 그 중에 기가 원활한 두 아이를 고를 수 있었다. 진원성이 두 아이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어서 이를 보니 이가 고른 편이라 판단이 맞음을 확인하고 다시 두 아이의 옷을 모두 벗기고 두 손과 두 발이 온전한지, 몸에 다른 흉터는 없는지, 그리고 권술 배우기에 좋도록 주먹이 큰지를 살피고, 양물을 잘라낸 흔적도 살펴보았다. 아직도 꿰멘 자국 사이로 붉은 금이 그어진 것처럼 남아 있었으며, 바로 얼마 전에 수술하여 잘 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수술이 잘못되면 수술자국 역시 깔끔하지 못한 것이다.
진원성은 몸값 일백에다 오십 량을 더하여 내놓았다. 두 아이는 돌아가서 옷을 갈아 입고, 친구들에게 작별하려 갔으며, 그 사이에 진원성은 절의 주지(住持)스님에게 안내되어 갔다. 따로 오십 량을 시주한 것에 대한 예로 같이 차 한잔 마시자는 청이었다. 진원성이 먼저 합장을 하여 예를 갖추었다. 다탁을 마주하여 앉아서 바라보니 주름진 얼굴에 의례적인 미소가 어려 있었다.
"소승은 이 절을 맡고 있는 솔금(率今)이라 하외다. 시주님이 부처님께 시주를 많이 주셨으니, 저도 시주님 앞날에 좋은 일 있기를 빌어주는 것이 제가 해야할 일입니다. 또 그래야 여기서 데려간 아이들도 좋은 일이 있을테니까요. 신분이나 이름을 모르더라도 대면하여 뵙고나면 복이 잘 빌어집니다. 그래서 모시고 차 한잔 나누자 청하였지요."
"예, 그러시군요. 저는 이름이 진원성이며, 산동 제남의 흑응회라고 상방을 하고 있습니다. 데려가는 두 아이는 무공을 가르쳐서 3 년 후에 경호를 맡기려 합니다. 그러니 아이들 걱정은 내려두시지요."
"예, 시주님은 아주 정대하신 분이라 걱정을 덜었습니다. 저는 저 아이들에게 불법은 가르치지 않았으나, 모든 사람에겐 영성(靈性)이 있다는 말은 가르쳤습니다. 불성(佛性)이라 하면 불법을 말하는 것이니 말하면 안되지만, 영성이라 말하면 불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 도학하시는 분들에게도 큰 탈은 없지요."
"아이들에게 영성이 있다고 가르치셨군요. 저는 배운 공부가 짧아서 독서인도 아니고 유자(儒者)도 아니니 어떻든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데려가는 사람들이 종교를 까다롭게 가리는 모양이지요?"
"예, 가끔씩 있었지요. 그래서 지금은 사람에게 영성이 있으니, 그 영성을 저버리지 말고 잘 가꾸어가면서 살아라 그렇게만 가르칩니다."
"하나가 궁금합니다. 영성이 있다고 가르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요?"
"영성이란... 사람이 죽어도 죽지않고 남아있는 것으로, 태어나기 전 전생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며, 또 내생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육체는 껍질이며 영성이 진짜 자기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진짜 종교입니다."
"영성이 있다고 가르치면 삶이 달라질까요?"
"그렇습니다. 영성이 있다고 믿으면 사람은 본질적으로 악해지지 않습니다. 가끔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선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영성이 없는데 영성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인가요? 왜 있다고 가르쳐야 하나요? 영성이 진짜 있는 거라면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요?"
"사람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갖은줄 모를 수도 있지요. 또 영성이란 있는지 없는지 알기 어려워서, 없다고 믿으면 없는 것 같고,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 같고, 그러니 먼저 있다고 가르쳐주는 것이 아주 긴요합니다."
"예, 그렇군요. 도교나, 불교나, 유교나, 회회교나 모두가 영성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요?"
"아니에요. 그건 진 시주님이 잘못 아신 것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사교(邪敎)가 반드시 섞여 있습니다. 사교란 마귀(魔鬼)에게 점령당한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만든 종단이지요. 그러므로 정교(正敎)와 사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그 구분은 바로 사람에게 영성이 있다고 믿느냐 아니냐 이것이지요. 사교의 목적은 정교처럼 행색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하려는 것은 사람을 지배하고 노예로 만들어 착취하는 일입니다. 진 시주님께서 사교교주가 되면 어떻게 교리를 만들어야 사교의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사람을 지배하고 노예로 만들어 착취하는 일을 잘하려면, 그야 자기들이 노예인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노예로써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어야 할테죠. 반항할 엄두도 내지못하게 만들어야지요."
"반항할 엄두도 내지못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야 처음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태어났다고 믿게 해야지요."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는가' 라는 공안(公案)이 있는데, 여기서 불성이란 영성이라 바꿔 말해도 같습니다. 그런데 두말할 필요없이 개에게는 불성이 없으며, 성불할 수 없습니다. 또 개는 사람에게 어떤 대우를 받아도 반항할 생각을 못합니다."
"사람을 개로써 태어났다고 믿게하면... 목적을 달성하게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 방도로 사람에게 영성이 없다고 가르치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에게 장악당한 사람들이 모인 사교집단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교집단에선 자기들이 믿는 신을 믿음으로써 그제서야 영성을 얻게 되며, 영원한 삶을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즉 사교를 믿으면 영성이 없는 개에서 영성이 있는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믿게 합니다. 이런 사교는 어떤 종교든 다 갖고 있는데, 그것은 그 종교를 믿는 교단시무자 중 일부가 타락하여 교리를 왜곡하고, 자기들이 교도를 지배하려는 음모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종교에 다 그런 사교가 섞여있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영성을 갖고 태어났다고 가르쳐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 한마디를 가르쳐 주면 그 사람은 자유인이 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말도 있지요. 실제로 어떤 종교, 어떤 종파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자유인이냐, 노예 즉 개냐, 정교냐, 사교냐? 이게 진짜로 중요하지요."
"정교냐? 사교냐? 자유인이 되느냐? 노예가 되느냐?"
"모든 사람에게 영성이 있으면 모든 사람은 평등해집니다. 하지만 영성이 없으면, 그 다음에는 신분이나 재산, 기타의 조건에 따라 불평등해지며, 불평등을 거부할 아무런 건덕지도 없게 됩니다. 사교에 빠져 이렇게 노예가 되면, 그 다음은 개같은 인생이 되고말지요. 아 이거... 진 시주님에게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오늘 제가 뜻밖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송구합니다. 밖에서 다들 꽤 기다릴텐데요?"
"예, 뜻밖에 생각해봐야할 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솔금 스님이라 하셨지요. 제가 나중에 더 나눌 이야기가 생각나면 찾아뵈어도 될까요?"
"물론 환영입니다. 자 일어나시지요."
절집 별실에서 진원성은 왕준서와 두 아이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였다. 두 아이들은 처음에는 부자연스러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는 모양이었다. 진원성이 키기 좀 큰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너 말고 이쪽?"
"전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주인께서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그럴까? 정말로 잊어버렸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지 아무려튼 좋다. 억양을 들어보니 남쪽 소주나 항주 근처가 아닐까 싶은데... 너의 이름은 입본(立本)으로 하자. 이 뜻은 근본을 세운다는 뜻이다. 성은 흐음... 진(陳)으로 하자. 진입본, 네 이름은 이제 진입본이다."
"예, 진입본입니다."
"또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해대로(海大老)입니다. 어머니가 많이 아파 약값으로 빚이 많아져서 제가 팔려왔습니다. 열심히 주인을 모시겠습니다."
"해대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그대로 쓰도록 하자. 너의 주인은 여기 내 동생이다. 그렇게 알아라."
"예."
"내 이름은 진원성이라 한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동생의 이름은 왕준서라고 한다. 우리는 의형제이기 때문에 성이 다르다. 준서야. 이 아이들에게 너도 한마디 하려무나."
"난 왕준서라고 한다. 이렇게 만난 것도 전생의 인연탓이겠지. 반갑다. 래생(來生)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 서로 도와가며 잘 살아보자. 나는 황궁에 있는 사람으로 너희들과 같은 흉터가 있다. 당장부터 함께 살지는 못하고 삼 년 후부터 함께 살게 될테니 그리 알아라."
"예, 삼 년 후에."
"여기 형님은 산동 제남에 사시는데, 진입본 너는 제남에서 살게 될 것이다. 당장부터 함께 살지는 못하고 삼 년 후부터 함께 살게 될테니 그리 알아라."
"예, 삼 년 후부터."
진원성은 식사후 두 아이들을 데리고 남아있는 해를 아껴서 부랴부랴 성으로 되돌아 왔다. 아이들의 걸음이 늦어서 진원성과 왕준서는 한 아이 씩 등에 엎고서 두 발을 열심히 놀렸으며, 서편문에서는 나갈 때에 얼굴을 익혀놓은지라, 이미 닫힌 문을 다시 열어서 들어올 수 있었다. 술시가 되어 땀을 흠뻑 흘린 진원성과 왕준서가 객점에 들어서니 해녕과 북경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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