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남에 돌아온 진원성은 이제 흑응회 내장원에서 총관들과 어울리며 조용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에 항주총관과 남해총관은 각각 딸과 아들을 낳았으며, 두 아이에게 아과(娥果)와 숙인(淑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진원성은 젖먹이 자식들과 총관들을 함께 만나는 시끌벅쩍한 시간들도 아주 귀중한 순간임을 생각하면서 순번대로 날짜에 맞춰서 총관들의 침실을 찾아들었다. 이것은 얼마남지않은 동안에 총관들과 대화를 많이 하자는 뜻이었다. 또 자식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자는 뜻이었다. 기체가 완성되어 가는 데에 따라서 이제는 겉으로 부드러운 위엄이 드러나서, 그것을 보고 총관들은 얼마간 이상하다는 눈치를 채었다. 특히 소주총관은 가장 일찍 알았는데 그래도 아무말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제 얼마 후면 대형활불 진원성이 멀리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다.
진원성은 흑응회의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먼곳에 있는 회수부에서 오는 업무 관련 서신이나 회의록도 읽지 않았고, 총관들과 회의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피했다. 가끔 찾아오는 청랑대 대원들의 몸을 한번씩 점검하여 혹시 남아있을 쇄음수 기운을 검사하여 없애는 일도 끝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새'가 찾아들었다. 검은 새란 몸집이 검은 새를 말하는데, 눈을 감고 몸 속의 기체를 바라보면, 기체의 어느 먼 하늘에서 검은 한 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가까이 다가와 기체의 위에 내려 앉았으며, 두 발로 기체와 심체를 꼭 잡고 부리로 머리 위에 나와있는 빨간 색 뿔을 쪼아대는 것이었다. 이렇게 검은 새가 한 차례 쪼고 날아가면, 빨간 뿔은 좀 말랑말랑해졌다가 조금 더 자라는 것이었다.
검은 새가 찾아오는 것은 정해진 날이 없이 찾아오는데, 뿔이 자랄수록 머리 꼭대기의 백회혈(百會穴)이 아프기 시작하였다. 검은 새는 뿔이 왠만큼 커지자, 부리로 뿔을 물고서 한참 머무르다가 떠나곤 하였으며, 이제서야 검은 새의 부리는 엄청 뜨거운 것이며, 그 열이 뿔로 전해져서 뿔이 물렁해지고, 자라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은 새는 자기의 몸이 너무나 뜨거워서 온 몸이 검게 탄서 숯처럼 된 것도 알게 되었다. 진원성은 검은 새를 관찰하던 중에 결국 검은 새의 꽁무니 쪽에 감추어진 세 번째 발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검은 새는 두 발로 기체와 심체를 움겨쥔 다음, 마지막에 꽁지에 있는 세 번째 발로 심체 속에 있는 또하나의 무엇을 움켜쥐면서 부리로 뜨거운 기운을 빨간 뿔로 보내서 물렁하게 만드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원성은 이것이 기체를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이해 하였다. 그리고 진원성은 가욕관의 노인에게서 가욕관 밖에 있을 때에 들었던 삼족오(三足烏) 이야기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기(天氣)가 모일대로 모여서 기체(氣體)가 완성되었다는 표시라고 씌어져 있었다네. 그러면 천국에서 천제님 즉 옥황상제님이 보내준 새가 내려와서 그 천손을 천국으로 데려 올라갔다네. 그 영조(靈鳥)는 크기가 일 장 쯤이며, 일두삼족(一頭三足)을 갖었다네. 그래서 그 새를 삼족오(三足烏)라고 부르는데, 신선이 다된 사람은 이 때에 육체를 벗어버리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은 온몸이 하얀 천을 둘러쓴 것처럼 그렇게 하얗게 변한다고 하네. 그래서 기체와 심체와 영체를 갖고서 그 새를 만나며, 그 새는 입의 부리로 그 사람의 뿔을 물어채고, 세 발로는 그 사람의 기체와 심체와 영체를 각각 움겨쥐고서 하늘 높이 날아서 어디로 사라져버리니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는 땅에 남아있는 사람은 알 수가 없지. 사람들은 삼족오가 하얀 마포를 둘러쓴 사람을 낚아들고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가끔 구경하곤 하였다네.'
[그림 기체와 삼족오, 고구려 시대의 묘실에 그려진 삼족오 그림 고구려에선 죽은자의 영혼을 삼족오가 이끌어 가주기를 염원하는 의미로 묘실에 삼족오를 그렸다.]
7월 8 일, 공동파에 무공 배우러 갔었던 진입본과 해대로가 돌아왔다. 부족한 몸이지만 그래도 삼 년만에 덩치도 많이 자랐으며, 무공도 얼마나 배웠을 터였다. 내장원의 빈청에서 둘을 맞이하여 삼 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았다. 진원성은 두 아이들의 마음이 이제 잘 정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공동파의 무공을 배우고, 몸 속에서 진기의 흐름을 느끼기 시작하면, 거기에서 부터 주위 상황을 파악하고, 자기가 배우는 무공의 가치를 인정하며, 무공을 잘 배워서 한 사람 몫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되는 것이었다. 평생 걸려서 수련할 공부 목록을 받아가지고 산을 내려왔으며, 다른 파의 무공들의 수법들에 대해서도 배우고, 특히 큰 무림세력인 소림파, 무당파, 화산파 들의 무공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 배웠음을 알수 있었다.
진원성은 두 아이를 하나씩 손으로 만져보았다. 이제야 진기가 조금씩 단전에 모이는 단계였으며, 다행히 잡스런 기운은 섞이지 않은 것이 정통의 공부법을 잘 배운 것 같았다. 이렇게 정통으로 배우면 처음에는 늦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진기가 쉽게 붙는 것이었다. 진원성은 아이들의 몸 속에 진기가 흐르는 길을 혼천기를 미리 흘려가면서 알게해 주었다. 이렇게 길을 알고 있으면, 자기가 어렸을 적에 몰라서 고생했던 그런 과정을 겪지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칠 일을 함께 보내고 진원성은 해대로를 북경의 왕준서에게, 진입본을 창주의 마고성 설이에게 보냈다. 흑응회에는 경비대(警備隊)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하간부 창주의 마고성은 아무래도 지켜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던 것이다. 여비를 챙겨주고,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창주와 북경에 들릴 것이니 그때에 만나자'는 전하는 말을 외우게 한후에 떠나보냈다. 특히 마고성의 설이 때문에 걱정이 남아 있었는데 진입본을 보내고 나니 좀 걱정이 덜어지게 되었다.
7 월 25 일에는 심의파의 대보인 형에게서 기다리던 편지 답장이 도착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흑응회 진원성 아우 보거라. 내가 몸에 이상이 생겨서 치료를 하고자 하남부 등봉현(登封縣) 소림사(小林寺)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 이유로 너의 편지는 몇 군데를 거쳐서 내게 도착하느라 많이 늦어지게 되었는데, 혹시 시기를 놓치는 그런 일이나 없었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당분간 소림사에 머무를 예정이니, 나를 만나려거든 소림사에 와서 보인(寶引) 화상을 찾거라. 나는 소림사에서는 보인이라 부르고 있다. 대보인 씀. 정사년(丁巳年) 7 월 2 일'
진원성은 이번 금국, 왜국과의 무역 일을 모두 마무리 짓고서야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바로 편지를 써서, 조천표국을 통해서 하남부 등봉현 소림사로 보내게 되었다.
'보인 스님께, 보인 형, 내가 형을 볼 일은 시기가 좀 늦어져도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꼭 만나야만 합니다. 이곳 제남에서 일이 있어서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10 월 말 경 소림사로 찾아 뵙겠습니다. 혹시 그동안 또 어디로 가시게 되면 제가 뒤쫓아 갈 수 있게 소림사에 연락처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제남 흑응회 진원성 씀. 정사년(丁巳年) 7 월 25 일'
8 월 3 일 하미에서 물목을 실은 가득 실은 마차 30 대가 도착하였다. 길 안내와 행수와 경비무사와 마부 등 총 183 명이 지난 4 월 20 일에 하미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니 석달 열흘이 걸려서 장장 육천 리 길을 온 것이었다. 물목을 잘 챙겨서 창고에 들이고 183 명은 임시로 숙소를 정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9 월 초 무역이 끝나고 10 월 초 경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하미총관은 고향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 고국의 소식을 물었으며, 자기가 낳은 아들을 데려가서 보여주고 고향에 돌아가면 부왕에게 말 전해주도록 하였다.
이번 출항은 경비대에서 거복(巨福)이 응범선의 경비대장으로 진원성과 동행하기로 했다. 거복이는 온몸을 둘러쌓는 철갑옷과 투구를 미리 준비해서 응범선에 실어두었다. 이미 다음 출항 때에 따라 나설려고 준비한지가 오래 되었으며, 갑옷과 투구를 입고서 진원성 앞을 막고 서있으면, 대포는 몰라도 화총의 탄환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진원성의 호신용 방패가 스스로 되겠다는 것인데, 거대한 덩치에 갑옷을 입혀놓으니 껌벅거리는 두 눈이 없었다면 이게 사람인지 쇳덩어리 인형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제가 이 갑옷을 입는 것은 젓가락질 세 번 할 시간이면 됩니다. 전쟁이 나면 제빨리 갑옷과 투구를 쓰고 나올테니, 형님은 제 뒤에 계시면 절반은 안전할 것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지휘를 하십시오. 전에 주신 은자에서 갑옷과 투구, 철퇴와 방패도 준비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진원성은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타난 거복이를 거절하지 못했다.
8 월 16 일 진원성은 응범선을 타고, 제남에서 대양진(大洋鎭)을 향해 출발하였다. 응범선에는 흑응회에서 커얼친 부에 보내는 정례교역 물품과, 하미에서 왜국으로 갈 양피와 마피가 실려 있었다. 응범선에는 선부들이 25 명, 경비담당이 45 명 타게 되었으며, 대포 대신에 상하 좌우 조정이 가능한 큰 쇠뇌를 두 대 준비하여 배 앞에 거치시켰으며, 조총 대신으로 활을 마련하여 지참시켰다. 시일이 여유가 있었으므로 진원성은 먼바다로 나간 후에 응범선으로 항해 연습을 시키고서, 또 무인도를 만나서 그것을 표적으로 쇠뇌를 가지고 석환(石環)쏘는 훈련을 실시하였으며, 사정거리는 1백 보에서 2백보 사이였다. 쇠뇌는 다섯 명이 하나의 조가 되어, 좌우 상하를 조정해야 하였으며, 그 사이에 석환을 재어서 목표물을 맞추도록 하는 연습이었다. 경비 담당 45 명은 아홉 조로 나뉘어 조마다 다섯 발씩 석환쏘는 연습을 하게 하였다. 돌의 무게를 달리하여 먼 곳은 작은 돌로, 가까운 곳은 무거운 돌로 쏘게 하는 것이 요령이었다. 바람 방향이 좋지 않아서 응범선은 8 월 27 일에야 대양진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응범선 돛에 그려진 독수리 모습을 보았는지, 선착장에 십여 명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응범선의 뱃줄을 지주(地柱)에 메어주었다. 진원성이 내리자, 금국의 군병들의 대장인듯 한 사람이 나와 유창한 중원말로 진원성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요. 흑응회에서 오셨지요?"
"예, 흥응회의 진원성입니다."
"예, 이름은 전해들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전 정백기(正白旗)의 잉굴다이( = 용골대 龍骨大)입니다. 중원식으로 용골대 라 불러주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배에 남을 분들은 남고 다른 분들도 함께 오르십시오. 쉴 곳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용 대인이시라고... 보아하니 이번에 모든 건물과 시설을 새로 지은 걸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창고 100 여 동과 선부들 머물 막사 50 동, 경비병 초소와 막사 50 동, 외에 부속 건물들, 부두 시설, 도로 등 지난 1 년간 2400 명이 고생을 좀 하였지요."
"그런데 중원 말을 아주 능숙하게 하십니다."
"예, 무순(撫順) 근처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중원인과 자주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원말을 왠만큼 하게 되었지요."
"나하고 거의 동년배인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저는 병신년(서기 1596 년임) 생입니다만... "
"오 그래요? 난 갑오년(서기 1594 년임) 생이니 두 살 차이군요. 상하 다섯 살 까지는 친구라 했으니 앞으로 잘 지내보십시다. 참, 범문정이라고 심양성에 내 아우가 있는데 용대인과는 동갑입니다. 기회가 있으면 소개를 해주겠소이다."
"범문정이라고요. 예, 감사합니다. 우리는 창고에 모든 물목들을 가져다가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커얼친에서 온 물건도 창고에 있고요. 저쪽에 줄세워져 쌓여 있는 것이 앞으로 물목을 옮길 마차 500 대 입니다. 참 커얼친에서 자이상(塞桑) 왕야가 와 계십니다. 이번 일이 중대하고 처음 있는 일이라 직접 오셨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오랫 만에 뵐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내 동생인 거복 대장입니다. 바다에서는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니 전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죠."
"거복 대장님, 저는 용골대 입니다. 중원글자로 풀이하면 제 이름도 큽니다만, 정말 장대 하십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그냥 형님 옆에 가만히 있을터이니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편히 말씀 나누십시오."
"여기 대양구는? 선착장 만드는 것은 대목(大木)이 제일 중요한데, 여기는 좀 허술합니다?"
"부두를 지을 대목을 구하려다가 구하지 못해서, 우리가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만들면서 몇 가지 배웠는데, 없애고 다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국에서 대목을 구하려다 실패하고, 요동 서쪽에서 구하려다 실패했고요, 교통은 아직 통하고 있으나 요즈음 명국 군대의 감찰이 심합니다."
"금국이 나라를 세웠다는 말을 전해들었는데, 나라를 세운 그것이 앞으로 무역일을 하는 데에 좀 방해가 될 것으로 짐작되지만 어찌될런지요?"
'염강책(제7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078 회 전국옥새를 마음 속에 찜하다 (0) | 2017.11.23 |
---|---|
제 077 회 홍타이시에게 전국옥새 이야기가 전해지다 (0) | 2017.11.23 |
제 075 회 허균은 광해왕을 만나다 (0) | 2017.11.17 |
제 074 회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 (0) | 2017.11.17 |
제 073 회 호민 정여립(鄭汝立) (0) | 2017.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