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말을 앞두고 흑응회 내부는 상하 모두가 떠들썩하였다. 무역의 규모가 커져서 무역해야할 물목의 량이 엄청 늘어났다는 소식이 회수부에서 각 대의 하부로 알려졌으며, 제남부 아문으로부터 흘러나온 소식, 즉 흑응회가 산동성 동쪽에 불용지 이만 경을 불하받게 되었다는 말은 제남부 아문으로부터 담 밖으로 퍼졌으며, 그 소식은 오래지 않아 흑돈대의 회원들을 통해서 흑응회 전체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 내년부터 중원 각 11개 염구에서 흑응회가 소금장사를 새로 시작한다는 소문도 통물 장원의 소금장사들 입으로 부터 전해졌나왔다. 이러면서 흑응회 의사청에는 각 대의 대장들이 출입이 많아지고, 내장원 빈청으로 진원성을 찾아오는 대장들도 줄을 이었다. 찾아온 대장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하다보니 진원성은 누구나 생각하는 과정이나 결과는 비슷하다고 알게 되었다. 즉 알게된 어떤 일의 조건이나 환경에 대한 정보의 량이 다를 때에는 판단이 달라지지만 정보가 같다면 서로 토의하고 시간을 두고 연구하다보면 결론은 거의 동일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에 관련된 정보를 모두 공개해주고 서로 토의하게만 하면 회수부와 대장들에게 맡긴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음을 진원성은 알게되었다. 앞으로 10 개월 정도 후면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루 두루 생각을 굴리다가, 지금 이 순간에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흑응회에서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흑응회에서 십 년이나 십오 년 후에 일어날 일 중에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면 그게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원성은 숙고 후에 두 가지를 자기의 역할을 정하게 되었다. 하나는 향후 십 년이나 십오 년 쯤 후에 흑응회가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설명해 알려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회원들이 모두 욕심을 제어하도록 정해주어야 하리라는 것이었다.
진원성은 흑응회원들이 회의 규모가 갑자기 커지게 되니 이것이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기회가 되지 않겠나 기대를 하는 회원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응신제에 참가하지 않은 회원들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흑응회는 규모가 커갈수록 응신제에 참석한 회원들의 비율은 줄어질 것이며, 그에 따라 자기 이익을 우선해서 생각하는 회원들이 많아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진원성은 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이 하나의 발전 기회(機會)이기도 하며, 또 하나의 몰락 위기(危機)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응신제에서 독수리를 받지 않은 회원들은 진원성이 아주 잘 알고 있는 바 길거리에 흔히 볼수 있는 무뢰들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안전과 이익만 보장되면 무슨 짓이든 할수 있는 사람들인 것을 진원성은 잘 알고 있었다. 무뢰들은 회원을 일시적 신분이라 생각하며, 여차지 하면 은자를 챙길 기회를 잡아 먹고 튀쳐갈 생각만 하는 존재였다. 회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이런 무뢰들을 순치시키는 작업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야생마를 잡아와서 길들이기를 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인 것이다. 무뢰들에게 욕심을 줄이고 회에 소속되어 장기간 일하다가 은자 100 량을 채우면 나가서 건강한 만성이 되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회가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런 내용을 회주부 회수부에 말해주고 그 다음부터는 회주부, 회수부에서 방도를 만들어 각 대와 대장들이 방도를 따라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것은 회의 간부들이 한 계단 씩 스스로 생각을 해서 스스로 그것을 이뤄나가도록 하는 것이, 시간을 오래 들여서 서두르지 않고 굳건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때때로 오후에 내장원 빈청으로 진원성을 찾은 회수부 사람들과 해녕총관과 석도총관에게 진원성은 2만 경의 땅을 피난처로 만들어 건강한 만성을 키워내는 일과 회원들의 마음에서 무뢰들의 탐욕을 어루만져서 회원으로써 정상적인 욕심을 갖도록 교육을 해나가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 훈계 하였다.
12 월 24 일 오후, 밖은 바람이 거의 없고, 날씨가 봄이 가까워져서 포근하였으며, 그래서 물기 많은 눈발이 비치고 있었다. 진원성이 머무는 내장원 빈청에 미곡저가판매 즉 제남부 미급대를 맡은 소제가 찾아왔다. 진원성은 반가워서 오랫만에 보는 소제의 손을 잡고 맞아들였다.
"소제형, 어서 오세요. 이제 아주 봄날씨가 되었지요."
"예, 대형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네요."
"소제 형님과 함께 토번 국을 여행한 것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입니다. 오늘 오신 까닭은 ... 무엇이든지 말씀해 보세요?"
"대형님과 만나 인연을 맺고 함께 해온 것이 벌써 8 년 차 입니다."
"8 년, 정말 그렇게 되었군요. 낙양 북쪽에 망산 어디에서 만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요. 세월이 빠르다고 하더니 정말이네요."
"대형님, 제가 흑묘파라고 작고 보잘 것 없는 문파지만, 제가 그곳의 선열(先烈 = 윗대 어르신)을 모셔야할 책임이 있는데, 보잘 것 없다기보다는 좀도둑이라고 해야 하겠지만요. 흑묘파가 그동안은 죽은 사람들 덕분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산사람들에게 신세지면서 살아갈 길을 대형님께서 열어주십시오. 흑묘파 사람들이 제대로 살길을 찾아야 저도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 되고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예, 맞군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 흑응회가 이제 먹고살 거리가 많아졌으니 흑묘파 사람들을 불러다가 함께 먹고 살도록 하면 안될까요?"
"소제 형이 말씀 하신 것인데 그렇게 하시지요. 마침 동쪽에 불용지를 2만 경이나 받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왠만큼 많은 수라도 나눠줄 땅 걱정은 할 필요 없습니다."
"그게... 흑묘파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요, 또 흑묘파는 좋은 목적은 아니나 공부를 꽤 한 사람들이니 농사짓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게 했으면 하는데요?"
"무덤 파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일텐데요. 좋아요. 소제 형의 생각을 말해보세요? 무슨 일을 하게 하려는지요. 우리 흑응회에서는 하는 일 거리가 대부분 농사일만큼 힘들고 어려울텐데..."
"예, 힘이 드는 것은 들더라도 월례가 좀 많았으면 하는 ... 그러니까 어려운 일이더라도 월례가 더 많은 일이 없을까 하고요. 흑묘파는 대형님 말 따라 섬서성 도굴권을 인수해서 매년 은자 이천 량을 버리고 있습니다."
"아! 그게 있었지요. 섬서성에서 도굴사업은 상황이 어떻습니까? 해 마다 은자 이천 량만 들어가고 돌아오는 것은 없나요?"
"아직 섬서성에 흑묘파가 진출을 하지 못하고 은자만 허비하고 있다합니다. 흑묘파는 크지않은 단체라서 8 년에 일만육천 량이 쌓이니 힘들게 되었다고 하네요. 또 대형님에게 기를 빼앗긴 사람들이 흑묘파에선 차기 중추세력인데 그들이 모두 힘을 잃었고 해서 사람 키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요. 물론 당시에 흑묘파에서 잘못한 점이 크지만, 제가 대형님께 귀의하여 모시기로 했으니, 대형님이 흑묘파를 좀 살려주십시오."
"섬서성의 도굴 사업은 타산이 맞지 않는가요? 아니면 당장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사람이 있으면 할만한 건가요?"
"사람만 있다면 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장이 어려우니 어떻게 할 수가 없는거죠."
"소제 형님, 그럼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까요? 저도 흑묘파에는 뭐든 좀 해주고 싶어요. 기운을 다시 돌려주기로 했는데 못하였으니?"
"해마다 이천 량쯤 남길 수 있는 일감이 있다면 좋을텐데요. 그러면 당장 매년 들어가는 은자를 감당하면, 시간을 두고 사람을 키워서 섬서성 쪽도 흑묘가 장악해야죠. 그럴려면 월례가 많은 자리로 상당수를 만들어주시면 하고 부탁드립니다."
"월례가 많은 자리라... 그것은 좀 후에 우리가 무역선을 띄우면 그 때에 무역선을 타는 회원들에게는 월례를 좀 더 많이 주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배를 타는 것은 위험이 많으니 월례도 많이 줘야하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할텐데요. 미리 좀 배타는 걸 배우기도 해야하고요."
"그것은 위험한 일이지 않은가요? 무역선들은 서로 노략질을 하면서, 또 대포를 쏘고 전쟁을 한다던데요. 여차하면 바다에 빠져서 물고기 밥이 되고요."
"무덤 파는 일도 위험한 일이지 않나요? 또 월례를 좀 더 많이 줘서 대우를 달리 해줘야 할 일은 급체포 일이에요. 편지를 빨리 전달하는 일. 구찰 부회수가 급체포 일을 아마도 조만간 시작할텐데, 흑묘파 식구들이, 남정들이 모두 몇 인가요?"
"급체포 일도 쉽지는 않을 일이지요. 참 회원들이 저축하는 은자가 백 량이 넘으면 다시 회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예, 그렇지요. 우리 회에서는 100 량에서 그 이상은 보호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명나라의 만성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은자 백 량이면 시골에 중상급 전토 50 무를 살 수 있으니 일가족이 먹고사는 것은 충분해요."
[명나라 때에는 난리가 일어나거나 대흉년이 오면 일시적으로 물가가 폭등했으나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며 은 가치는 잘 지켜졌다고 평가됩니다. 은자 한 량에 미곡 4 섬 전후로 은 본위제도의 화폐가치는 지켜졌으며, 그래서 땅 속에 은자를 파묻어두는 것도 훌륭한 저축방법이 될수 있었습니다.]
"나가지 않고 회에서 계속 살면서 저축도 계속하는 방법은 없나요?"
"예, 그것은...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은자에 욕심을 내고, 결국 피난처가 아니라 돈벌이가 우선인 저자거리로 변하고 말겁니다. 계속 살기는 살되 은자를 더 모으지는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는 은자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덕을 베풀고 명예를 벌기 위해서 일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흑묘파 식구들은 지금 호패도 없이 세금도 안내며 살고 있지요?"
"예, 뭐 그렇지요. 호패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슨 벼슬은 아니잖아요? 세금낸다고 해서 돌아오는 것도 전혀 없고요."
"제가 흑묘파 일에 간섭할 일은 아닙니다만... 호적도 없이 산다는 것은 이곳 피난처에서는 어렵습니다. 앞으로 흑응회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미래의 일이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흑응회에서 은자를 채워서 나가는 사람들은 가고 싶은대로 갈 것이고요, 남을 사람은 명예를 얻기 위해 월례없이 일할 것입니다. 그 명예가 얼만큼 쌓이면, 명예가 높은 사람들을 흑응회에서 별도로 대우를 할 것입니다. 그러니 흑응회는 함께 고생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와서 살아야 하고요, 회에서 집을 주고 병치료도 왠만큼 해주고 아이들 글도 가르쳐주고요, 그 이상도 할 수 있으면 해주려 할 것입니다만, 개인들이 저축을 많이 할 수 있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 다 은자를 벌어들이는 것에 집중하게 되서 분위기가 버리게 됩니다. 소재 형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지만 회의 한계를 말씀드렸으니, 그 한계에 맞춰서 뭐든 말해주세요. 그러면 가급적 형의 말을 받아 들이겠습니다. 우리 회의 각 대장들 그리고 간부들은 은자의 한도가 높지만 그것은 자기 아래 부하들을 위해 쓰거나, 회에 일이 발생하면 회를 위해 내놓겠다고 약속한 것이니 자기 것이라 할 수도 없지요."
"흐음, 그렇군요..."
"소제 형님이 원하신다면 하남부 낙양성의 보호사업을 관련해서 할 일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남에는 지금 조 부회수가 있는데 이번에 무역 일을 맡게하고, 낙양 회원들도 모두 철수시켜 불용지 개간으로 돌려야만 부족한 자리를 그나마 채울 것 같아서 그리 할 생각이에요. 조 부회수님과 상의를 해야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낙양에 있는 화선파니 몇 개 파가 있는데 그들을 연대(連帶)로 묶어서 낙양 보호사업을 해서 먹고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떨까 나 혼자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 낙양에 무뢰들도 상당부분 없어지고, 그들도 호패를 받아 혼인도 하고 자식도 낳고 사람답게 살수 있지요. 매년 은자 이천 량 정도는 빼서 섬서성에 들어가는 은자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고요."
"그들에게 보호사업을 시키고 우리 회는 은자를 매년 얼마씩 상납 받고서 그리한다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사이좋게 먹고 살면서 낙양 만성들에게 보탬이 되라는 것이지요. 무뢰배들이 없어지면 만성들이 살기가 좋아지니까."
"그야 그놈들과 만성들에게는 좋겠지만요. 우리 회에는 좋을 게 없잖아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요?"
"낙양에 무뢰들이 먹고 살면, 하남부에서는 그만큼 피난해야할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우리 회에 피난올 사람도 줄어질 것입니다."
"우리 회의 불용지 개간할 사람도 부족하다면서요?"
"우리 회에 들어올 피난민이 한 명도 없다면 명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낙양에서 화선파, 동전파, 쌍부파, 흑묘파 네 곳이 연대하여 보호사업을 잘하고, 거기서 남는 은자로 미곡판매사업까지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호패를 차고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고요. 소제 형님이 낙양에 가서 보호사업 일이 정착되도록 맡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대형님, 제가 낙양에 가서 서 너 달 머물면서 4 개파들이 연합으로 보호사업과 미곡판매사업을 잘 굴러가게 만들어 놓고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시지요? 그러면 제가 흑묘파에 엮인 인연도 청산이 될 것입니다."
"넉 달로는 좀 시간이 부족할 거에요. 대신에 이번에 소제 형은 흑묘파와 인연을 모두 정리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의 대답은 꼭 해주세요. 내가 어찌해서 흑묘파 사람들의 진기를 없애고, 가능하면 돌려주려 했으나 그리 못하게 되었으니 그 점도 좀 미안하고, 그러나 이번이 모두 청산할 기회입니다. 더 이상은 안되요. 소제 형님은 이번 일로 흑묘파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흑응회에 말뚝을 박아야 합니다. 그리 하시겠습니까?"
"예, 대형님 그리 하겠습니다."
"예, 좋습니다. 내가 회수부에 말해 놓을테니, 소제 형님이 직접 낙양에 일 년 간만 있다가 돌아오세요. 낙양에서 4 개 파들이 모이는데 그들 사이에 서로 협조가 잘 되도록 분위기 만드는 것을 잘 연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실패하여 낙양이 시끄러워져도 흑응회도 소제 형도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기로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소제가 돌아가고, 연이어 지금래(= 지아쿰렉)가 들어왔다.
"지금래 의원 형, 어서 오십시오. 오랫만입니다."
"예, 대형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여러가지 좋은 소식이 들려서 아주 다행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잘 되어야 하겠지요. 무슨 말씀 하시려고 오셨는지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 구게왕국에서 사람들을 좀 많이 보내라고 연락을 할려고 합니다. 이번에 불용지를 아주 넓게 받으셨다고 해서요. 이때에 구게 왕국 사람을 좀 많이 받아들이게 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구게왕국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 별탈없이 잘 적응하고 있으니까요."
"금래 형 생각은 몇 명이나 부르면 좋을까요?"
"해마다 15 세 이상 남자 400 명, 여자 400 명 씩, 그에 딸려오는 나이 어린 애들은 수에 넣지 말고요. 물론 그 쪽 형편이 어떨지 답을 받아봐야 확실하지만요?"
"뭐 얼마 안되는데요. 10 년 만 그렇게 하세요. 10 년 해봐도 8천 명밖에 안됩니다. 불용지 개척은 백회우님이 책임을 맡게 되요. 백회우님께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으세요. 백회우님께서 특별히 거부할 이유는 없다 생각되지만요."
"예, 알겠습니다."
"금래 형께서도 백 회우님을 따라가서 회원들 병에 걸리지 않도록 돌봐주세요. 한 명이라도 아프면 일손 부족한 판에 더욱 힘들어지니까요. 백 회우님과 잘 협의를 해야합니다. 지금 의원들 중에 동쪽으로 갈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으려나? 금래 형이 시간을 두고 잘 포섭을 하세요."
이런 식으로 흑응내장원 빈청에는 흑응회의 간부 이상 급 회원들이 수시로 들락거렸으며, 회수부와도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새해를 사흘 남겨두고 하남에서 조무웅 부회수가 두 대장과 함께 도착하였으며, 문등현에서는 유소룡 부회수가 하국상 대장과 함께 도착하였으며, 이로써 흑응회의 모든 대장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의를 오래 하여도 여러가지의 문제점만 도출이 될뿐, 쉽게 가닥을 추려내는 기미는 없었다. 이런 상태는 하나의 가정에서 어떤 것들을 결정한 후에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가정을 하고 또 결정을 하는, 즉 단계의 혼선에서 유발되는 것이며, 이것은 부작위로 많은 정보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하려 할 때에 흔히 겪게되는 혼란 현상이었다. 혼란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정리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흑응회는 새해를 맞이하였다.
'염강책(제7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052 회 흑응회의 조직변신 (0) | 2017.09.18 |
---|---|
제 051 회 마지막 단배식(團拜式) (0) | 2017.09.12 |
제 049 회 흑응회 확장을 결정하다 (0) | 2017.09.08 |
제 048 회 토지 하사 약문 (土地 下賜 約文) (0) | 2017.09.08 |
제 047 회 제남에 돌아오다 (0) | 2017.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