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월 19 일 진원성, 유래타, 구찰 부회수 외 경비대원 4 명을 더하여 일행 7 명은 점심 식사를 한 후 말을 타고 흑응장원을 나섰다. 이번에는 총관들에게 낙양에 가는 이유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그냥 낙양을 둘러보기 위해서 갔다온다고 말했다. 이것은 진원성에게 이제 살생에 대한 심적 부담이 꽤 있었으므로 그것을 총관들에게 까지 전해주고 싶지 않았음이다. 항상 그랬듯이 진원성의 아침 수련 때문에 낙양 가는 길은 매일 오후 두 시진 씩 말을 달리기로 하였으며, 매일 저녁에 숙소에서 진원성과 구찰, 유래타 3 명은 낙양에서의 정가장 습격작전을 토의하였다. 그러나 별로 말할 것이 없는 단순한 계획이었고, 진원성이 정가장에 혼자 들어가서 대부분의 처리를 하는 것이어서 그 뒷감당 만을 하는 것이기에 구찰 부회수는 자기의 역할 면에서 좀 아쉬워 하였으며,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진원성은 이것이 좋은 기회다 싶어서 구찰 부회수에게 말을 좀 시키고, 배울만한 것을 배우기로 하였다. 구찰 부회수는 준갈이 부족이지만 쇄음수를 배우는 대신에 글공부를 하고 밀정대 조직을 관장하였으므로 과거를 치룰 형편은 못되었으나 아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사흘 째 밤부터는 평소 궁금했던 것을 구찰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유래타 역시 옆에서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낙양에 도착하기 까지 몇일 동안 저녁이후 시간에 연이어 벌어졌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 부회수 님, 작전이랄 것도 없이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면 될 것이니, 저에게 시강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저는 배운 것이 부족하여 항상 공부하신 분에게 배우려 합니다."
"그건 안될 말씀입니다. 어떻게 제가 대형님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냥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으세요. 아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답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번 기택 장원 적몰했을 때부터 대형님에게 심복하였습니다. 기택에서 몰수한 은자를 풀어 섬서, 산서, 하남 만성들을 구제하셨다는 것을 청랑밀정대에게서 나중 전해 들었지요. 그 일은 흑응회가 단순한 상방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참으로 대형님이 든든하게 느껴졌지요."
"그건 뭐 ... 제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혹 이것을 대답해 주실 수 있을런지요? 그동안 제가 몽골의 위대한 영웅 징기스 칸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는데, 시간이 되니 징기스칸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지요. 징기스칸은 전쟁을 잘하여서 싸울 때마다 승리를 했겠지요? 어떻게 승리를 거두었는지 전쟁 비결이랄까, 징기스칸의 위대한 점을 좀 설명을 해주시지요."
"대형님은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징기스칸은 위대한 지도자인 것은 맞지만, 전쟁에서 항상 이기지는 않았습니다. 일생에 세 번은 전쟁에서 지고 두 번은 거의 죽을 지경까지 갔으니 전쟁 비결이기 보다는 천운(天運)이 따라서 대칸(大汗)이 되신 것이라 봐야지요."
"천운이 따라서, 운이 좋아서 대칸이 되었단 말인가요?"
"예, 보통 사람은 한번만 실패를 해도 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런데 세 번이나 전쟁에 지고도 살았으니 운이 좋은 것이지요. 우리 몽골인들은 마음 속으로 모두 징기스칸을 존경하고 있습니다만, 징기스칸이 세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저는 징기스칸이 뛰어난 분이지만, 그 보다는 운이 좋은 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석도총관은) 옛날 시강에서 복장(福將) 이야기를 하더니 그런 말인가 보네요."
"징기스칸은 복(福)을 불러들였습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복이 굴러들어올 때까지 오래 기다린 것이지요. 오래 기다리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오기 마련입니다. 그 때에야 움직인 것이지요. 복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기다릴줄 모르는 사람은 복이 찾아와도 모르니 복을 꽉 잡지 못합니다. 제가 대칸에 대해 공부한 바가 있고요, 오늘 대칸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니 징기스칸의 위대한 점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위대한 점... "
"우선 징기스칸의 어린 시절은 부족장 즉 칸의 아들이었지만, 어렸을 때에 아버지를 잃고, 부족에게서 버림받고 일가족 9 명이 도망을 쳐야하는 신세에서 출발합니다. 이 때가 여덟 살 때였지요. 그리고 죽을 고비를 한 차례 넘기고, 20 년이 지나자 자기의 부족을 되찾아 부족장이 됩니다. 이 때, 나이 27 세 까지의 이름은 테무친(鐵木眞)이고요, 이 시기까지가 잃어버린 칸의 자리를 찾는 첫 번째 기간이었지요. 두 번째는 몽골의 각 부족들과 전쟁을 치루어 서로 누가 누구에게 귀부(歸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간입니다. 몽골은 부족들 끼리 서로 세력이 강한 부족에게 귀부하여 서열을 결정하게 됩니다. 물론 이과정에는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이 때에 징기스칸은 세 번 패하고,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모든 몽골부족을 통일하여 부족간 서열을 확정하여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며, 대칸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세 번째는 천하에 유일한 대칸이 되었으니, 대칸의 위엄을 천하에 보여주는 정복 전쟁을 시작하여, 몽골 밖으로 군병을 이끌고 나가서 전쟁을 하였으며, 이 때부터는 백전백승이었습니다. 이렇게 테무친, 칸, 대칸, 세 기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테무친, 칸, 대칸..."
"첫 번째 시기는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지요. 이 때는 징기스칸은 아직 위대한 칸이 아니었고, 살아남으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무림치는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나중에 위대해질 수 있었습니다. 즉 나중에 위대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시련을 겪고 인내를 배우는 시기였지요. 저는 징기스칸을 통해서 위대한 사람도 처음부터 위대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징기스칸이 배운 것은 위대해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저는 이것을 생각원칙(生覺原則)이라 부르며 다섯 가지로 간추려 보았습니다. 인내(忍耐), 자립(自立), 철저(徹底), 정의(正義), 친화(親和)."
"인내, 자립, 철저, 정의, 친화..."
"인내라는 것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치 물이 흘러가다가 깊은 곳을 만나면 그곳을 다 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채운 후에 다시 넘쳐서 다음으로 가듯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일 중에는 서둘러야 할 일도 있고 서둘러도 실익이 없는 일이 있습니다."
"물이 흘러가는 것을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네요."
"다음에 자립은 다른 사람에게 굴종하거나, 자만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 말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으며, 또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난 것도 없다는 믿음이지요. 자립이란 고립(孤立 떨어져 서있음)이 아니고, 의립(依立 의지해 서있음)이 아니고, 위립(位立 위에 서있음)도 아니고, 병립(竝立 나란하게 서있음)하는 것이며, 연립(聯立 서로 도와 서있음)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물이 흐르는 모양을 살펴보시면 빨리 이해가 됩니다. 주위에 물이 있으면, 그 물과 합하여져서 그 물이 가는 길도 도와주고, 그 물을 끌어들여서 나의 길을 함께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생각해봐야 하겠군요."
"노예들은 자립하지 못하며, 자만하는 사람은 자립을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그 다음은 철저입니다. 물은 흘러가면서 자기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절대로 놓치지 않고 찾아가서 다 채운 후에 다음의 길을 갑니다. 징기스칸은 전쟁에 임할 때에 철저하게 적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철저히 연구했던 것입니다."
"아 이번에도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생각해봐야 하겠군요."
"다음은 정의(正義)입니다. 징기스칸은 자기의 어렸을 때에 겪었던 어려움의 원인이 사람의 탐욕 때문이었음을 깨닫고, 사람들이 욕심을 부릴 일에서 바른 정의를 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여겼으며, 그것을 지켰습니다. 그것을 지켰기 때문에 위험에 빠지기도 했으나 바꾸지 않았습니다. 징기스칸에게 귀부한 부족들은 모두가 평등하게 희생을 바치고, 공훈에 따라 노획물을 나눌 수 있었으며, 이것이 내부의 배반자가 나오지 않는 방법이었지요. 어떻게 하든지 전혀 배반자가 없을 수는 없지만요, 이것 역시 물이 흘러가는 것을 살펴보면 알 수 있지요. 물은 고일만한 웅덩이의 크기에 따라 그만큼 씩 물을 고인 후에 넘쳐서 다른 곳으로 갑니다. 징기스칸은 적일지라도 충신을 만나면 죽이지 않고 살릴려고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충성이 정의이기 때문이지요. 적 중에서 배반하여 징기스칸에게 옮겨붙는 사람은 약속한 대우는 해주었지만 가까이 두지는 않았습니다."
"또 이번에도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생각해봐야 하겠군요."
"다음은 친화(親和)입니다. 징기스칸은 부하들에게 믿음을 주고 속내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니 부하들도 징기스칸을 믿고 따랐지요. 겉모습은 주군(主君)과 종신(從臣)의 관계였지만, 속으로는 형제와 같았습니다. 형제와 같다는 말은 두 사람이 속으로는 자립한 사람으로 서로를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물의 흐름을 생각하면 짐작할 수 있지요. 물은 맑은 물을 만나면, 함께 맑아지고, 훍탕물을 만나면 함께 흐려지고, 짠물을 만나면 함께 짜지며, 똥물을 만나면 함께 똥물이 됩니다. 이것이 친화입니다."
"다섯 가지 모두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위대함이었군요. 그런데 마지막에 똥물을 만나면 같이 똥물이 된다면, 친화될 수는 있겠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은데요?"
"징기스칸은 흙탕물이나 똥물을 만나면, 먼저 그들에게 깨끗해지기를 명령했으며, 그 말에 따르면 친화하였으나, 그들이 거절하면 멸절시켰습니다."
"그랬군요. 오늘 난 물의 흐름에 그토록 깊은 뜻이 있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징기스칸은 그런 깨달음을 어디에 글로 적어서 후손들이 읽어보도록 하였겠지요?"
"대형님, 징기스칸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위대한 점은 글을 모르는 것과는 상관 없는 일입니다."
"흐음, 징기스칸이 글을 몰랐다니, 나도 고작 천자문만 배웠을 뿐인데... "
"제남에서 복왕이 경성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대형님은 처음 금족령 이야기를 듣고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내가 들은 것이 모두 진실이라면 복왕은 아마도 좀 억울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짓이 좀 섞여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생각하였지요. 왜냐하면 무려 십 몇 년 동안 황태자가 있는 경성에 머물러 있었으면서 그것이 황태자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것조차 몰랐을리는 없을테니까요."
"그것은 대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황자들은 황태자가 세워지면 젖을 떼게 되면, 또는 적자(嫡子)가 없을 때라도 열 살이 되면 책봉(冊封)을 받아서 경성을 벗어나도록 되어있지요. 그것은 황태자를 보위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 신료들이 황태자파와 복왕파가 나뉘어서 대립하게 된 빌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료들끼리 대립하는 짓이 오래되면, 대립의 원인이 사라진 후에도 대립은 없어지지 않고 남아, 오래토록 우환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황제가 크게 잘못한 것이지요. 저는 대형님께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만일에 대형님께서 복왕이 황태자가 되는 것을 지지하는 신하(臣下)였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정치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않으려 합니다만..."
"오늘 대형님께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으니 물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한번 대답을 만들어 보시지요."
"물의 흐름과 복왕을 황태자로 만드는 일을... 연관을 지어보라는 말이지요?"
"예.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복왕이 황태자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일은 하늘의 뜻이니 복왕께 먼저 경성을 떠나 낙양으로 와서 황태자가 되는 것을 마음에서 접어버리라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복왕을 지지하는 사람으로는 그리 말을 할래야 할 수 없겠구만요."
"그렇습니다. 복왕이 황태자가 될려면, 복왕이 경성을 떠나야만 하였지요. 그리고 나서 수작을 부려도 부려야 했을 것입니다. 복왕이 경성이 있으니 황태자파에서도 경각심을 풀지않고서 황태자를 보위하였을테니 복왕에게는 황태자가 될 기회가 사실상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복왕은 자기 휘하에 쓸만한 지낭(智囊 꾀주머니) 막우(幕友) 한 사람도 없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기 주위에 쓸만한 사람을 거느리지 못한 것을 보자면 복왕은 아예 황태자가 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고 욕심이 있으면서 자기를 도와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였다면 능력이 아주 부족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일 뿐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러니 황태자가 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대형님 그렇지 않습니까?"
"정신 바짝차리고 황태자를 보위하고 있으니 빈틈을 노리기 어렵다, 그 말은 맞는 말입니다. 두 사람이 맞대결로 싸울 때에는 주먹으로 상대를 한 대 치려면 얼마나 힘드는지... 상대가 모를 때에 기습하여 한 대 때리는 것이 훨씬 쉬운 것과 같지요. 이것은 구 부회수의 지적이 맞는 말입니다. 오늘 부회수에게 좋은 말을 들었습니다."
"아까 대형님께서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도 물의 흐름에 비추어 보자면..."
"아 그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잘못 되었어요. 물은 자기가 정치를 만나면 정치와 사귀고, 전쟁을 만나면 전쟁과 사귀고, 장사를 만나면 장사와 사귀어야 한다 그 말이지요?"
"예, 바로 그 말 입니다. 물은 자기가 흘러가는 곳에 무엇이 있더라도 그것을 회피하지 않지요. 그냥 흘러가서 만날 뿐입니다. 오늘 마침 기회가 좋으니 대형님께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 한 가지 더 할렵니다."
"무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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