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사인묘(제6부)

제 025 회 전 세계의 공장

금박(金舶) 2017. 2. 20. 12:35


진원성은 가는 곳마다 오전에 한 시진 정도를 도착한 곳의 지형과 물정을 살피며 공부를 한 탓으로 어렸을 때에 배를 타고 북상하였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장강을 건너기 전 양주성에서 느낀 소감은 남쪽에 있는 만성들의 수가 월등하게 많고, 생활수준도 높음을 알 수 있었다. 길거리에 건들거리는 무뢰 놈팽이도 비단 옷을 입고 있었으니, 이것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진원성은 별탈없이 6 월 20 일 물에 둘러쌓인 소주성에 도착하여, 성 밖 서쪽에 있는 은광객점(銀光客店)이란 이름의 곳에 들게 되었다. 다음 날이 되어 진원성은 두 총관을 데리고 성내로 들어가서 먼저 비단 옷을 두 벌 사입혔으며, 자신도 비단옷을 두 벌 사입었다. 그 동안은 말을 타고 오느라 아주 실용적인 면직 옷을 입었지만, 거지도 비단옷을 입는다는 소주의 거리에서 비교해보니 너무 초라해 보인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소주 성내의 거리들을 함께 구경하였다. 해질 무렵 시원한 그늘이 지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거리에 가득차게 되었으며, 그들 틈에 거닐다가 반점 한곳에 들려서 저녁식사를 사먹었으며, 그 다음은 거리 구경은 하였다. 저자거리는 견직, 면직류를 파는 가게들이 수십 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으며, 그 이외에도 온갖 물건들이 거리에 가득하였다. 


진원성은 우선 은자 한 량을 동전으로 바꾸었는데, 제남에서는 은자 한 량을 동전 950 문으로 바꾸었는데, 소주에서는 동전 900 문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소주가 은 값이 더 싸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은으로 계산하는 객점의 유숙비를 생각하면 제남보다 비싸지 않았으니 동전의 값만 올라간 것이라 할 수도 있었다. 그 다음 저자거리를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사람들은 유등을 하나씩 들고서 시원해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저자 거리들은 군것질할 것들을 잔뜩 늘어놓은 노상들이 유등(油燈)을 밝히고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진원성 들도 유등 하나를 사서 사람들 속에 어울려들수 있었다. 어렸을 때에 동전으로 과자를 사먹었던 기억을 하여, 그곳을 찾아가서 셋이서 과자를 사먹었으며, 두 총관이 너무 맛있다고 하자 따로 네 개를 싸들었다. 멀리서 보이는 휘주회관 이관주님 댁이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고서, 거리구경하다가 객점으로 돌아왔다. 소주성은 야간에도 성문을 개방하고 있음은 미리 알아두었다.


아린과 하미 총관은 면직옷과는 다른 비단 옷을 입은 것에 아주 만족하였다. 옷을 입지않은듯 가벼운 데다가 감촉이 부드러운 것 하며, 눈을 현혹하는듯 광택이 나는 것이, 또 휘황한 채색이 잘 되있어서, 그동안 입었던 면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잠자기 전에 하미총관은 무척 흡족하였던지 한마디를 하였다.


"대형님, 제가 이옷을 입으니까, 꼭 선녀가 된 기분이에요. 보시기에도 아주 이쁘지요? 아린형님과 저와 비교하면 둘 중에 제가 더 이쁘지요?"


"으이구, 대형님, 하미아우가 아직 철없어서 또 실수를 하네요. 그냥 하미가 더 이쁘다고 말해주세요. 그런데 오늘 먹은 과자는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입에 들어가니 살살 녹으며 달콤하고 미끈한 맛입니다. 하나 먹으니 하나 더 먹지 않고 버티지 못하겠네요. 걸어오면서 하미하고 두 개씩 나눠먹었는데, 없어졌다고 대형님 서운해하지 마세요. 내일도 있으니까요."


"대형님, 이곳 소주 거리는 모두 부자들만 사는가봐요. 그 많은 사람들 얼굴표정에 모두 여유가 있고, 저녁에 나들이 하는 사람들 모두 식구들과 그냥 구경 나와서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하미에서 살 때와 비교하면 제남은 아주 살기좋은 것 같았는데 여기는 제남보다 더 살기좋은 곳인가봐요. 대형님 소주 사람들은 어떻게 모두 부자가 되었을까요? 그게 참 궁금해요?"


다음 날 진원성은 인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한시진 하고서, 뛰어다니다 거리의 새벽시장을 만나게 되었다. 새벽시장은 누에고치부터 견사를 사고 파는 곳으로 이른 아침에 반시진 정도 잠깐 섰다가 없어지는 것이었으며, 여기에서 견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져온 것을 팔고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다. 수많은 남정들이 나와서 누에고치와 누에고치에서 뽑은 원사(原絲누에고치에서 바로 뽑은 실), 연사(撚絲 꼰실), 원단(原緞 염색하지 않은 견직 필)를 사고파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염색하는 것은 좀 더 대규모의 작업시설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이 하기에는 곤란하여서 염색을 하는 최종단계를 맡는 상방은 직조를 하는 장소를 방문하여 원단(原緞)을 직접 수거 구매해갔으며, 또 매(每) 단계는 이런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분업으로 구성되어졌던 것이다. 진원성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염색 공정은 오폐수가 문제가 되어 소주성을 감싸고 흐르는 물에 악취가 진동하였으며, 소주 관아에서 염색 공창(工廠)들을 아예 물 오염의 피해가 없는 먼 곳으로 내몰았다.


이것은 진원성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옆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는데, 그들은 자기가 소화해낼 수 있는 만큼 하루에 작업할 것을 사들여가서, 자기가 맡은 부분을 전담해서 해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 오가는 말에서 이 일이 매일 계속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고, 몇 근 또는 몇 십 근씩 일정한 금액이 정해져 있는지, 거의 흥정도 없이 거래가 되고 있었다. 누구나 솜씨만 있다면 이 시장에 참여하여 자기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것이다. 


진원성은 내일 새벽에 아린총관과 하미총관에게 이 새벽시장을 구경시켜주려고 생각 하였다. 특히 하미총관이 이것을 구경하면 사람들이 생계를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다. 진원성이 보기에 공주로써 자라온 하미총관은 아직도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대형님 소주 사람들은 어떻게 모두 부자가 되었을까요? 그게 참 궁금하네요?' 이렇게 묻는 것에, 진원성이 '소주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라오'라고 답한다고 해도, 하미총관은 어쩌면 '소주 사람들이 왜 열심히 일을 할까요?' 라고 다시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진원성은 이번 여행에서 하미총관에게 이점을 가르쳐야만 앞으로 총관들이 모두 뜻을 합하여 주모로써 역할을 할 때에 외톨이가 되지않고 어울려서 본인과 회주부 모두에게 나쁜 영향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진원성은 이 관주님이 보통은 오전에 출타를 하지 않고 장원에 계시는 것을 알기에 진시 반 쯤에 맞춰서 옛날 자기가 지내었던 곳을 찾아갔다. 대문 앞에서 사람을 찾으니 문지기 아저씨가 나왔는데 모르는 얼굴이었다. 진원성이 먼저 말을 건냈다.


"저기... 관주님 계신가요?"


"예, 누구십니까?"


"진원성이라고 하는데, 진원성이라 들으시면 아마 틀림없이 아실텐데요. 한번 말씀드려주시겠습니까?" 


"그럼 잠깐 기다려 주시지요."


진원성은 잠깐 기다렸으며, 문지기 아저씨가 얼마 후에 나와서 말하였다.


"누구신지 이름을 듣고도 모르시겠다 하십니다."


진웜성은 이 관주님이 너무 오래되어 기억을 못하시나보다 하고 생각하였으며, 다시 말하였다.


"아마 제 이름을 기억 못하시나 봅니다. 너무 오래 되었으니까요. 십이 년 되었거든요. 제 얼굴을 보시면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 때에 관주님을 모셨으니까요?"


문지기는 다시 안으로 들었갔나가 나와서 진원성을 빈청으로 안내하였다. 안에는 이 관주님을 닮았으나 이관주님이 아닌, 짐작으로 장남 이병궐이 분명한듯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진원성을 누군가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병궐 형이세요? 저 진원성이라고 십이 년 전에 범대인 모시고 심양 표행길에 영원성에서 잠깐 얼굴을 뵈었었는데, 기억 못하시겠지요?"


"영원위(寧遠衛)에서 근무할 때에 범대인하고 같이 왔었다? 그 꼬마라는 말이구나. 이제야 생각이 나네. 그런데 네 이름이 뭐라고..."


"진원성이라 합니다. 제남에 사는데, 소주에 오게 되어 범대인님의 소식도 알고 싶고, 관주님의 소식도 알고 싶고, 또 꼬마 아가씨의 소식도 알고 싶어 잠깐 들렀습니다."


"으흠, 우선 아버님은 이제 나이가 많이드셔서 뒷전으로 물러나셨고, 내가 관주의 자리를 이어서 맡았다. 지금 아버님과 범대인께서는 장사를 하시려고, 열흘 전에 배를 타고 나가셨다. 이제 십여 일 정도 지나면 돌아오실텐데, 그때까지 네가 소주에 있을거라면 아마 만나뵐 수 있을거야. 그리고 내 여동생은 사 년 전에 남경으로 시집을 갔다."


"아, 그렇군요. 제가 미리 연통을 한 후 방문했어야 하는데 예고없이 찾아뵈어 긴 시간 말씀드리지 못하겠군요. 오늘은 이만 물러가고, 다시 열흘 쯤 뒤에나 들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이 관주 장원에서 나온 후에 곰곰 생각해보니, 진원성 자기가 어렸을 적에도 관주님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어떤 나라와 밀무역을 하셨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이번에도 그런 일이지 않는가 하는 짐작을 문득 해보았다. 객점에 돌아와서 두 총관을 데리고 오늘은 말을 타고서 소주 인근의 만성들이 사는 마을들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셋이서 소주성 인근의 저자거리를 벗어나니, 먼 언덕과 가까운 전토가 뽕나무로 온통 가득하였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뽕나무가 벌판 가득 경작되고 있을 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진원성은 아린과 하미 총관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린, 하미, 이거 보시오. 이렇게도 많이 뽕나무를 심어 키우다니 참 대단하구만요. 아린총관이 보기엔 어떻소?"


"참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먹을 양식은 어디 다른 데에서 사오나 보지요?"


"뽕나무를 키우면, 미곡 농사를 짓는 것보다 두 배가 이익이랍니다. 그러니 뽕나무를 너도 나도 심는 것이겠지요."


"대형님, 이 뽕나무가 비단 실을 만드는 누에를 키우는 것인가요?"


"그렇소. 하미총관이 지금 입고 있는 비단 옷을 만드는 실을 뽕나무에서 얻는다오. 북쪽의 산동성에선 누에를 많이 키우기가 적당치 않아 뽕나무를 많이 심지는 않아요. 뽕나무는 그야말로 은자를 만들어주는 나무라 할 수 있소. 기후가 맞으면 우리 회에서도 뽕을 많이 심을텐데..."


"......"


"소주 이곳은 이미 비단을 짜는 일로 모든 만성이 먹고살 길을 찾았나 봐요. 내가 새벽에 나가보니, 새벽시장이 열리고 있었어요. 내일 새벽에는 나와 같이 새벽에 열리는 시장을 구경해 보기로 합시다."


"대형님, 새벽시장에서 무엇이 볼만한가요?"


"하미총관의 질문이 아주 적절하였소. 우리는 새벽시장에서 만성들이 각기 비단을 짜는 일을 각각 단계별로 나누어 하면서 그속에서 자기의 노동을 팔아 이익을 얻는 것을 볼 수 있다오. 나는 오늘 새벽에 이것을 보고서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소."


진원성은 자기의 소감을 자세하게 아린과 하미총관에게 설명하였으며, 아린과 하미총관의 반응에서 자기가 느꼈던 놀라움을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원성에게 놀라운 일이 왜 두 총관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을까 하는 점은 진원성이 풀어야할 숙제가 되었다. 기쁨이나 슬픔은 몰라도, 놀라움이란 미리 놀라라고 말하고 난 후에 놀라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저녁이 되어서야 진원성도 자기가 놀란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으며,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여 두 총관은 놀라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진원성은 새벽시장에 모인 만성들이 단계별 중간 산물인 물건을 사고팔면서 그렇게 흥정이나 시비가 없이 진행할 수 있음이 비단의 각 단계별 물목의 품질을 평가하는 데에 동일한 즉 통일된 안목을 갖고 있음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즉 모든 만성들에게 잘 알려진 표준품질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따따부따 할 것도 없이 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소주부(蘇州府) 호주부(湖州府) 인근의 견직과 태창주(太倉州)와 송강부(松江府)의 면직에서 일반화된 기술수준은 이 즈음에 수공업으로 발달할 수 있는 한까지 극도로 발달하여, 견직과 면직 모두 역사상 최고의 품질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하나의 마을 단위로 만성들이 직조의 방법을 정하여 통일시키고, 어떤 문양이나 특징을 만들어 원단에 넣어서 자기들의 고유한 상품명을 붙여서 좀더 고가로 팔 수 있도록 하는 상술까지 일반화 되었던 것이다. [당시 자료에서 마을 이름을 상품명으로 붙여서 무슨 직이니 무슨 포니 하는 이름으로 거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최근 한국에서 통닭 튀기는 프렌차이즈가 생겨난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통닭 튀김 등록상표가 2백 개라든가 아니면 4백 개라든가?]


이 때에 명나라의 만성들은 대부분 소리를 듣고서 은덩어리의 순도를 알아내는 것에 도통하여 있었으며, 또 소주, 호주 인근의 만성들은 남녀 할 것 없이 견직의 전단계(全段階)에서 있게되는 중간 산물의 품질까지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고, 태창주나 송강부의 만성들 역시 면직에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마지막에 이룬 기술 평준화와 그 기술들이 이제는 일반화된 기술로 전락하고, 마침내 하나의 지방 전체가 하나의 공장이 된 것처럼 하나의 기술 표준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그리고 직조에 참여하는 모두가 개인의 자격으로 일련의 활동에 참여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술 수준이 전세계를 석권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명나라 말기의 중원은 전세계의 공장이었다. 철, 비단, 차, 고급자기, 미곡 등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80 % 이상이었다. 특히 고급 비단과 고급 자기에서는 독보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