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성 일행이 제남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이렇다할 일은 없었다. 그 중 하간부 동광현의 창안반점에 다시 들어서, 경운단의 하소치 단주와 만나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눈 일은 기억해둘만 하였다. 창안반점에 들어서자 눈썰미 있는 점소이는 진원성을 알아보고는 다시 특별한 손님으로 대우를 해주었다. 그래서 전에 묵었던 방과 옆 방을 정해 들었으며, 어느새 연락을 받고서 저녁에 맞추어 하소치 단주가 부단주 한 명을 데리고 찾아들었다. 아마 하단주가 점소이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여덟 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흑응회주님,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예, 길이 외줄이라 배를 타지 않으면 이길로 가게 되어 있으니, 하단주님을 뵐 수 밖에 없지요. 점소이가 어느새 연락을 했구만요?"
"동광현이 우리의 안마당인 셈인지라... 경성에 가셔서 볼일은 잘 마치셨는지요? 여기 함께 하신 분도 소개를 해주시지요. 참 우리 소개를 제가 다시 한번 올리겠습니다. 저는 동광현에서 일을 시작해보려고 경운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경운단 단주 하소치 입니다. 옆의 이 친구는 부단주로 있는..."
"제가 부단주 김차전(金車全)이라 합니다. 회주님 잘 지도해 주십시오."
"여기는 우리 회에서 조그만 일을 하나 맡아 해주실 분으로 거인(擧人)이십니다. 또 여기 두 아이는 내가 좀 가르쳐서 일꾼으로 만들려고 데려가는 길이고요."
"이찬 이라 합니다. 경성에서 진 회주님을 뵙고 일 한 가지를 맡게되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두분은 칼을 지니신 걸로 보아..."
"아, 이것은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작은 칼입니다. 우리들은 몸을 함부로 내놓아야 하다보니 누구나 칼 한 자루 씩은 가지고 다니지요."
"이 회우님께서는 달리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세상이 좀 어지러우니 간데 마다 강짜부리는 놈들도 많고요, 저도 칼 한 자루 감춰서 가지고 다닙니다만, 그러려니 하고 봐주시지요." [명대엔 관인을 살상하는 죄를 지으면 끝까지 쫓겨야 하였습니다. 거인도 관인으로 인정받았고, 무뢰들도 거인이라 하면 존중하고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회주님, 제가 이번에 제남을 혼자 구경갔다 왔습니다. 흑응회를 한번 둘러보고 왔지요. 정말 어마어마 하더군요? 다시한번 회주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바로 덕주 옆까지 흑응회에서 미곡저가판매 일을 하고 있더군요. 우리 단원들끼리 상의를 해 보았는데, 경운단에서 이곳 하간부에서도 미곡저가판매를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주님께서 조언을 좀 해주십시오.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어떤 점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지?"
"미곡판매 일을 얼마나 알아보셨는지 모르지만 사실상 지부님의 허락을 얻고서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즉 하간부 지부님의 소관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 따지고 보면 하간부에 있는 대지주들의 뜻인 셈이지요. 미곡을 싸게 팔면 대지주들이 가장 먼저 싫어할 것입니다. 그리고 반발을 해오겠지요. 이것을 어찌 하시렵니까?"
"누구나 미곡을 팔 수 있고, 파는 값이야 파는 사람 맘인데..."
"두 번째는 미곡을 조달하는 일입니다. 어디서 미곡을 들여올 생각입니까? 하간부 내의 지주들은 저가판매를 한다면 미곡을 내주지 않을 것입니다. 즉 어떤 이유로 미곡 저가판매는 허용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미곡까지 대주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지요. 그러므로 하루이틀 하고 말게 아니라면 미곡공급처를 확보해둬야 하지요."
"미곡은, 흑응회는 어디서 공급을 받는가요?"
"우리 흑응회는 등주에서 자체 생산분 미곡이 매년 5만 섬 정도가 나오고 있으며, 그것으로 조달을 하고 있습니다."
"흑응회에서 우리에게 좀 나눠주실 수는 없는가요?"
"우리는 지금 제남부에만 매년 오만 섬 정도 팔고 있고요, 안타깝게도 여분이 없습니다. 이 일에 찬동하는 지주를 만나지 못하면 미곡을 당겨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 그러면 우리는 어려워지는데..."
"세 번째는 미곡 저가판매는 하면 할수록 적자가 쌓입니다. 그러니 그 적자를 보전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흑응회는 다른 일에서 벌어들인 것으로 매년 조금씩 손해나는 것을 벌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자가 나면 곤란한데요. 다른 일로 은자를 벌어들일 방도도 없으니."
"흑응회는 자체 생산한 미곡을 좀 시세보다 낮게 파는 것으로 가름을 하고 있지만, 미곡조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운단에서는 아마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미곡판매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관아에서 빈민들을 위해서 펼칠 구제사업이라 할 것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흑응회에서 하게 되었지요. 어떤 분은 이런 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 저에게 미친 놈이라고 말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회주님 어떤 방도가 없을까요? 회주님이시라면 좋은 방법을 조언해주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습니다만..."
"제가 생각을 해보니, 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려면, 하간지부님께서 마침 이와 유사한 일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시고 있는데, 그에 맞춰 하단주님께서 찾아가 이런 일을 제안 내놓고 허락을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곡저가판매는 대지주들에게 단기적으로 보면 손해가 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만성들이 기근이 들어 모두 도망가면, 지부님에게는 세금을 낼 만성들이 줄어져서 손해가 되고, 그 다음에는 대지주들도 자기네의 미곡을 소모해줄 만성들이 부족해지고... 결국 지주들에게도 손해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지부님을 잘 설득해보시면 어쩌면, 작년 말에 한해(旱害)로 만성들이 어려웠고, 지부님과 대지주들도 어쩌면 이런 저가판매 같은 일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한번 도전해볼 가치는 있을 것입니다. 말을 잘 만들어서 지부님을 설득해낼 수 있어야 하지요."
"회주님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정말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도움말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잘 연구해서 지부님을 만나뵙고 가부간에 결말을 짓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한 후 경운단 하단주와 김 부단주는 식사를 끝내고 돌아갔다. 진원성은 옆방에 든 진입본과 해대로 두 아이를 욕탕에 담구었다가 비누칠을 하여 깨끗이 씻어서 옷을 갈아 입혔다. 두 아이들은 지금은 어리둥절 하였지만 진원성 주인이 자기들을 단순하게 노예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멀지 않은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었다. 몸을 씻어주면서 진원성이 물었다.
"로아, 본아 너희들 마차 안에서 둘이 뭐라고 자꾸 말을 하던데 무엇 때문이냐?"
"예, 그것은 이 회우님께서 무슨 수수께끼 문제를 내셨는데요, 누구에게 도움 받지 않고 우리 둘의 힘으로 답을 맞추면, 상을 주기로 하셨어요. 그래서 둘이 상의를 하느라고 말을 많이 하게 된 것이에요."
"흐음, 수수께끼가 좀 어려운 모양이구나."
"예, 대답할 기회가 한번 밖에 없답니다. 그러니 정답을 확실하게 알아내서 단 한번 만에 알아맞춰야 하지요. 제남에 도착할 때까지 알아맞춰야 합니다."
"나도 궁금한데 나에게 문제를 알려주면 안될까?"
"그것마저 하지말라고 회우님이 그러시니 할 수 없이 제남에 도착하면 그때에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흐음, 그래... 그럼 기다려야겠구나."
그 다음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진원성은 물담은 욕통에 들어가서 있는데, 해녕부인이 지난번 처럼 통에 들어왔으며, 해녕부인을 잘 씻겨서 내보내자, 다음에는 북경부인이 벗고 들어왔다. 진원성은 북경부인은 욕통안에서 좀 만져보았더니 지난번 보다 불과 반 달 사이인데도 몸무게가 한 근 이상 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진원성은 그래도 모른척하며, '끼니마다 한 숟가락 씩 더 먹어야 하겠어요' 라고 말해주었다. 본인도 입맛이 자꾸 당기는 대로 많이 먹고 있었으며, 많이 먹는 그 점을 좀 쑥스러워 하였는데, 진원성은 그 점을 알고 있었다.
5 월 20 일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이것이 이번 여정의 마지막 저녁식사였으며, 내일은 흑응회에서 저녁을 먹게 될 것이다. 일행 여섯 명은 모두 제각각 다른 여행 소감이 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진원성은 '휴우, 무사히 끝나게 되어 다행이다, 두 부인을 모시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또 해녕총관은 '진랑과 둘이서 황성을 말타고서 한바퀴 돌다니... 이번 여행은 정말 평생에 뜻깊은 추억이 될 것이야'. 또 북경총관에게는 '나는 대장군을 아들로 두게 되었으니 그 이상 바랠 것이 없구나'하는 정도일 것이다.
이찬 회우는 두 아이에게 이제 수수께끼의 답을 말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여섯 명이 있는 마지막 저녁식사 자리에서 문제를 다시 한번 말을 하고, 두 아이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고 정답을 말하겠다고 하였으며, 문제를 설명하는데 다음과 같았다.
"옛날 이야기에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염라대왕 앞에 서서 심판을 받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천당으로 가는 길로 안내해주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렇게 되어 있다고 하네요. 겉보기에 전혀 다름이 없는 똑같이 생긴 문이 두 개가 있고, 이 문은 바로 하나는 천당, 다른 하나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두 문 앞에는 두 귀신이 문지기로 있답니다. 죽은 사람은 두 문지기 중에 한 귀신을 택해서 천당으로 가는 문이 어느 것인지를 한번만 물어서 문을 골라 들어가면 됩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단 한번만 물을 수 있다고 합니다. 천당으로 들어가는 문 ...? 하고 물어서 어디로 들어가면 되지요."
"......"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지기 두 귀신은 각각 특성이 있는데, 한 귀신은 묻는 말에 항상 정직하게 대답을 해주는 귀신입니다. 다른 한 귀신은 묻는 말에 항상 거짓으로 대답을 해주는 귀신입니다. 이러니 어느 문이 천당으로 들어가는 문인가요? 이렇게 단순하게 물으면, 옳은 대답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단순한 질문으로는 곤란하지요. 이 수수께끼는 귀신에게 단 한번 어떻게 물어보아야 천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알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귀신에게 물어야할 질문을 알아맞추는 것입니다. 진 형께서도 또 두 부인께서도 모르시면 생각을 해보시지요."
본아와 노아는 그동안 서로 묻고 답하기를 많이 연습했으나 끝내 답을 알아맞추지 못하였다. 그리고 북경총관도 진원성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는데, 해녕총관이 답을 말해 맞추었다. 그 대답은 '옆 문지기에게 천당에 가는 문이 어디냐 물으면 어느쪽이라 대답할까요?' 였다. 진원성은 문제를 듣고, 분명히 문지기 두 사람을 엮어서 대답을 하게 만들어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질문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해녕총관은 답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이찬 회우가 답을 해설하여 주었으며, 시간이 지나자 두 아이도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문지기 두 귀신 중에 누가 참말을 하는 문지기냐를 알려고 해서는 답을 알 수 없습니다. 두 문지기가 한 사람은 참말을, 다른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조건을 하나로 묶어서 하나의 대답으로 나올 질문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두 문지기 중에 누구에게 물어도 이 대답은 항상 지옥에 가는 문을 알려주게 되는 게 중요한 점이지요. 정말로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이런 문지기가 있다면, '이 옆 문지기에게 천당에 가는 문이 어디냐 물으면 어느쪽이라 대답할까요?' 이렇게 묻고 답과 다른 쪽의 문으로 들어가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나중에 죽어서 해녕총관님께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흐음, 재미있는 문제로군요."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참말과 거짓말이 섞여 있으면 결국 거짓말이 이기는 것이라고, 그러니 세상은 점점 나쁘게 변해가고, 사람은 옳은 길 택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요.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참말은 하나이지만 사람을 통하여 전해지면서 거짓이 섞여들 가능성이 만들어지고요, 여러 사람을 지나면 여러가지의 다른 거짓말이 만들어질 수 있고, 그래서 거짓말은 종류가 많아지게 된다고요."
"그것은 이 회우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서 싸우거나 대립이 되는 의견들은 반드시 양쪽의 의견을 모두 잘 들어 살핀 후에 결정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두 가지 중에 먼저 들은 말에 호감을 더 많이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말을 먼저 듣게 되기를 부처님께 기도해야 하겠지요."
"먼저 들은 말에 더 호감이 가는 것이군요. 진 형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 그 말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것은 옳고 그름이 명확하겠지만, 어떤 일에서는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야말로 호감이 기우는 것을 선택하는 일도 많으니까요? 두 편이 나뉘어 싸운다면 소문을 먼저 많이 내는 편이 이기게 되는군요. 저도 하나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감생들 사이에선 이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도록 말해집니다. '서로 의견이 반대되는 정적(政敵)일지라도 힘을 합하면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도 있으니 서로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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