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제가 가본 적은 없지만, 가서 그 바다를 보고 온 사람은 만나보았지요. 그 사람은 선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바다 속에서 들어갔다가 목욕만 하고 다시 나왔다고 그럽니다. 선인들만 그 바다 속의 물고기가 알아서 모시는 것이겠지요."
"혹시 그 사람이 몸이나 옷에 하얀물이 들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요? 다음은 요?"
진원성은 갑자기 마유친에게 들은 하얀바다가 생각나서 하얀물이 들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데시쵸키는 그 말을 무시하고 넘어갔다. 처음 듣거나 무관한 이야기였기에 그랬을 것이라 짐작되었다.
"제가 노래 한마디를 부를테니 들어보세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아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님 뒤따라 이제금 왔는데
되돌아가라니 그게 왠말이오
아리고 쓰리고 아리쓰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도 넘겨주오
서산넘어 지는 해는 지고싶어 지나
널 놓고 가는 나는 가고싶어 가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잘도 넘어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리쓰리요
쓰리랑 고개로 또 넘어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리쓰리요
아주 가는 님 그림자도 사라졌네
아리 아리랑 고개 고개 넘어
아리랑 고개도 사라졌네'
"이것이 우리 선비족들에게서 전해지는 노래입니다. 말은 옛날에 쓰던 말이라 저도 노랫말의 뜻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아리랑 고개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를 데려가 달라 떼를 쓰는 내용이라 합니다만. 이 노래를 오래 전에 왕족들 중에 누가 왕국의 백성들 앞에서 불렀는데 그 때부터 백성들이 많이 따라 부르게 되어, 지금 이 아리랑 노래는 왕국 백성들도 모두가 잘알고 있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곡조나 가사는 조금 바뀌었지만요." [티베트 아리지역에는 지금도 한국의 아리랑과 비슷한 민요 노래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저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니, 백성들도 곧잘 따라 부를 것으로 생각되네요."
"예, 천국이 없어지고 난 다음에는, 봉국이었던 나라 중에서 우리 선비족이 직계로 제사권(祭祀權)을 이어받아 하늘에 제사올리는 일을 맡아 하였답니다. 그러니 천자 즉 황제의 자격이 있는 것은 우리 선비족 뿐입니다. 그러나 각 봉국들이 서로서로 자기가 천국의 적통(嫡統)이라고 우겨대는 일들도 벌어졌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은 다 의미없는 일이 되었지요. 이미 천국에서 선인들이 가르쳐준 의식주 문화와 각종 예법과 지식들이 봉국에 고루 퍼졌으니 그래서 천국 선인들은 이제 할 일이 없구나 하고 자취를 감추셨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 거라 생각합니다."
"샴발라는 바로 선비족의 천국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천국이란 선인들의 나라이고요..."
"예, 우리 선비족은 누구나 천국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고... 이것이 샴발라 이야기의 끝입니다."
"저의 생각을 물으셨으니 말씀드립니다... 구게왕국이 지금 당한 형편은 결국 삼십 년이나 오십 년 후에 왕국의 수명이 다한다는 그런 말입니다. 이 말을 들으시니 좀 언잖으시지요.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단체나 나라나 그 모두가 사실 정해진 수명이 있다고 합니다. 잘못해서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빨리 죽는 경우는 있지만, 수명을 넘어서까지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정된 수명을 짐작하며,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구게 왕국은 지금부터 샴발라를 준비하여 백성들을 데리고 그 샴발라로 이주해 가십시오. 그러면 새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샴발라 이야기의 본래 의미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 불사들을 어찌해야 하는가요? 그 문제는 ..."
"그것은 왕께서 결정하도록 하시고, 샴발라를 준비하도록 하십시오. 이주해갈 백성들의 수를 잘 생각하시고, 필요한 것들이 많겠지만 시간을 들여서 미리 준비해서 이주를 해가시면 될 것입니다."
"으음... 예, 불사(佛寺)의 문제는 ... 활불님께서는 어찌되든 큰 관계가 없다는 말씀이군요... 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 중원으로 돌아가시면 어디에 머무르게 되는지요?"
"저는 하남 낙양의 적목단이나 산동 제남의 흑응회를 찾으면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만일에 말입니다. 우리 왕국에서 선비족 후손들 일만 명 쯤이, 샴발라라고 해두지요, 샴발라에 이주해 간다고 하면 준비를 꽤 해야할텐데 이곳 토번은 여러가지로 물목이 결핍되어서 준비가 여의치 못합니다. 활불님께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좋은 말씀을 한번 해주십시오."
"일만 명 정도라면, 홋수(戶數)로는 이천인데... 그 정도라면 흑응회에서 수재(水災)를 만난 동창부 만성들을 받아들여 돌보아준 경험도 있으니... 중원 산동성으로 저를 찾아 오셔서 한 일 년 정도 머무르면서 준비를 해가시면 될 것입니다. 힘이 되는대로 도와드리지요."
"우리 왕국에서 선비족 후손들 일만 명이 나라가 망할 것을 대비해 탈출해간다면 하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아직은 순전히 저 혼자의 생각입니다만, 귀족회의에 안건으로 올려서 가결되면 다시 활불님과도 상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선비족 후손들은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자리를 잡고 나라를 일으키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 새 땅에서 새로운 나라를 하는 것이면 준비를 여러모로 잘하는 것이 좋겠지요."
"중원에서 일만 명이 일 년 살면서 필요한 물목들을 준비해서 흥안령산으로 간다고 할 때에 황금을 얼마나 준비해야 할려나 부터 계산해야겠지요. 게다가 나라를 할려면 쇠붙이를 많이 마련해야할테니 ... 구게왕국에서는 쇠붙이 값이 비싸서 군병들 무장(武裝)의 값이 중원보다 많이듭니다만, 군병들은 백성 만 명 중 천 명정도가 될 것이지요."
진원성은 사부용에게서 국가시강 끝에 피난처를 한다면서 배운 것을 기억할 수 있어서 대답을 하였다.
"제가 선생님의 시강에서 배운 것은 군병 한 사람은 먹고, 입고, 무장을 하는 데에 1 년에 은자 60 량을 쓴다고 합니다. 군병 1 천 명이면 은 6만 량이 소용되는 거지요. 또 나머지 9천 명 보통 백성들은 먹고, 입고, 생활하는 데에 1 년에 은자 10 량을 쓴다고 합니다."
"흐음, 중원에서 군병들에게 들이는 무장비가 우리보다 훨씬 많구먼요. 그건 아마 군병 한 명당 무장을 많이 지급해서 그럴겁니다... 중원 기준으로 계산하니 은자 15만 량이 됩니다. 황금으로 치면 1만5천 량이군요."
"중원에는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만성들이 무장을 대량으로 살 수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좀 길게 두고서 천천히 준비해야 하지요. 우리 산동성 제남에 흑응회는 일만 명 정도는 수용할 땅이 있으니 그곳에서 준비하여 다시 선조들의 땅으로 이주해가시면 될 겁니다. 하지만 왕국의 귀족들이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런지요? 왕이나 귀족들이 왕국을 떠나면 모두 자기의 신분을 버리고 평민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일을 해야할텐데요? 고달프게 일하는 것을 받아들일지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왕국이 얼마 못가서 패망한다는 가정하에 하는 일입니다. 평민으로 돌아가는 게 싫다면 여기에 남아서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이니 모두 알아서 판단할 것입니다. 오늘 활불님을 뵙는데 예물을 미리 준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나중에 따로 전해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왕국의 국경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오십 리 쯤을 가야합니다. 또 우리 왕성(王城)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오백 리 더 가야 있습니다. 제가 국경을 벗어나 이곳에 와서 활불님을 만난 것은 저를 지켜보는 시선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불님을 만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왕국에선 제가 주목받는 위치인지라... 이곳 신산과 성호, 귀호 지역은 여러나라의 백성들 왕래가 많아서 관리가 어려운지라 우리 왕국에서 그냥 개방 지역으로 놓아두었습니다. 보통은 신산(神山 = 캉린포체산)을 순례하고는 다시 동쪽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많지요. 앞으로 여정을 말씀하여 주시면 ... 혹시 서쪽으로 가신다면 왕국의 군병들에게 호위를 좀 하도록 그렇게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병자들을 치료하면서, 백성들에게 찻물공양을 하면서, 수행을 하시는 승려들을 만나면 원차를 나누어 드리고 그렇게 서쪽으로 해서 중원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서쪽으로 행선을 잡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아무쪼록 편안한 여정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진원성은 긴 밤을 새우고, 새벽에 길을 나서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새날의 인시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진원성은 다시 아침의 일과를 시작하였다.
구게왕국의 원확길 대신과의 만남이 있은 후에 나흘 째 되는 날에, 뜻밖에 지아쿰렉이 나타났다. 지아쿰렉은 주위를 물리치고 진원성에게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예를 차린 후에 황금 오십 량(당시 금은환비는 1 : 10 임)을 내려놓았다. 지난 해에 지아쿰렉은 데시쵸키의 지시를 받고서, 진원성이 소문처럼 진짜 활불인지 확인하려고 찾았던 것임을 진원성은 이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아쿰렉을 통해서 데시쵸키 님이 진원성에게 전하는 말은 다음과 같았다. 지아쿰렉에게 왕국의 영역을 벗어날 때까지만 길안내를 해주도록 지시를 하였으며, 다른 일이 있으면 지아쿰렉에게 부탁하도록 하셨다는 것이었다. 진원성은 황금을 재물 담당인 유래타에게 넘겨주었다.
진원성 일행은 마팜쵸와 라낙쵸 근처에 머물다가 7 월 15 일이 되어서야 신산(神山)이라고 하는 캉린포체산으로 향해 출발하게 되었다. 신산을 순례하고서 서쪽으로 나아가기로 하였다는 소식에 병자들 중의 대부분과는 이제 이별을 해야 하게 되었다. 떠나는 병자들에게 원차를 하나씩 나누어 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제 일행이 가지고 있는 물목들을 헤아려보니, 식량 반달 분 정도와 황금 오십 량과 은자 오백육십 량이 있었으며, 원차는 이백 근쯤 남아 있었다. 이렇게 되니 원차를 사와서 장사를 잘하여 토번 여행은 공짜로 한 셈이었다. 처음에 준비한 원차 천 근은 은으로 바꾸었으며, 찻물 공양의 숫자도 삼만이 다 채워졌으니, 이리저리 원차를 거의 일천삼백 근을 소모한 셈이었다. 그리고 처음에 데려온 말 일곱 마리와 짐말 두 마리가 있었다. 이로써 토번의 땅에서 해야할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이제 다 끝난 것 같아서 후련하기도 하였으며, 또 토번의 행로가 이렇게 별 소득없이 끝나는 것인가 하는 허전한 느낌이 찾아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토번의 높은 설산과 신비한 호수를 본 것만 따져도 얻은 것이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었다.
진원성이 있는 두 개의 호수 근처는 바가(Parkha) 평원이라는 곳이었으며, 거기에서 멀리 바라보는 신산 캉린포체의 모습은 구름사이로 우뚝하게 보이는 것이 좀 몽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구름이 잡인들의 접근을 금지하는듯 느껴지기도 하였으며, 또 거대하게 우뚝하게 솟아있는 모습이 세상 전부를 지배하는 위대한 천신(天神)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이 얼마나 장엄한 모습인가? 신자들은 멀리서 신산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엎드려 절을 하게 된다고 한다. 진원성 일행은 절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모두들 경건한 마음을 갖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마음이 서로에게 전염이 되었는지, 유래타가 '대형님 저기 보이는 신산을 우리도 코라 순례를 합시다'라고 말하자, 모두들 좋다는 한마디씩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진원성 일행은 모두 함께 신산을 코라 순례를 돌기로 하였다.
[그림, 바가평원 멀리에서 캉린포체 산을 바라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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