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체(제3부)

제 063 회 방음수(防陰手)를 쓰다

금박(金舶) 2016. 8. 19. 08:33


"그렇소. 진짜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가짜를 만들어 채워넣은 것이오. 본래의 천뢰신공은 그 무공에 맞부딪힌 상대가 공격자의 의도에 아주 순순하게 따라오게 하는 그런 공능이 있다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어찌 그런 무공이 있겠는지요? 저는 그런 무공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고요, 제가 갖고 있는 무공 역시 그런 무공은 아닙니다. 제가 사부님께 배울 때에도 시간이 촉박하였지만 그런 중요한 것은 가르쳐주셨을텐데 저는 못들었거든요? 그 점은 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천뢰신공을 가져가서 수련하면서 우리 공동파의 어떤 기법을 적용하지 못하여 그런 공능이 누락되었는지도 모르겠소이다. 하여튼 진소협이 우리에게 협조를 하여서 무공의 법문과 구결을 알려주어 공동파가 그것을 바탕으로 천뢰신공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시기를 부탁하겠소?"


"저로써는 도장(道丈)께서 말씀하신 것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군요. 제가 익힌 무공이 공동파의 천뢰신공과 비슷한 점이 설사 있다하더라도 가능성만을 가지고 무공 구결을 말하라니, 그것이 만일에 천뢰신공이 아니라면 저는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지 않습니까?"


"진소협이 정 그런 뜻을 내세우신다면, 나는 진소협께 하나의 제안을 하겠소이다. 천뢰신공이 공동파의 실전무공인지 아닌지를 더 따지지 말고, 공동파의 소양신공과 진소협의 무공을 서로 맞바꾸자는 제안을 드리겠소이다. 그러면 진소협은 소양신공이라는 강력한 무공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공동파와도 앞으로 서로 밀접한 신뢰관계를 형성하여 장삿길에서나 또 다른 강적을 상대하는 데에서도 아주 큰 협력자를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서야 조방도인은 속마음을 밝힌 셈이었다. 나이 어린 진원성의 높은 무공이 욕심이 나는데, 마침 사부와의 연대가 약하고 소속된 문파도 없거나 모르는 것이 분명하니 이거야 말로 임자없는 보물이라고 해야하지 않는가 말이다. 진원성은 잠시 생각하였다. 길을 가다가 임자없는 물건을 주웠을 때에 그것을 슬그머니 자기 소유로 하는 일처럼 조방도인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 또 상황이 나빠져서 혼천일기공을 가르치려해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난감하였다. 게다가 소양신공을 가르쳐준다니 만일에 공동파 아닌 누가 소양신공을 알고있다면 공동파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 사람을 죽일텐데, 진원성은 소양신공을 가르쳐준데도 거절해야 한다고 순간 생각하였다. 


이게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않는 일이 분명하였다. 진원성은 조방도인의 속셈을 파악하고는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돌아가라고 한다고 그냥 돌아갈 사람들이 아님은 두말의 필요도 없었다. 불가불 이제 무력대결을 한판 벌여야 할 참인데 진원성이 가장 두려워할 상황은 부하들의 안위였다. 그래서 조방도인에게 말을 하였다.


"저는 소양신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으며, 또 공동파의 다른 무공을 본 적도 없습니다. 게다가 소양신공을 갖고 싶은 마음도 없으며, 오로지 장사를 크게 일으킬 생각만 하고 있지요. 하지만 사부님이 남겨주신 무공을 그냥 넘겨달라는 말씀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저와 경신주법으로 대결을 하여 승부를 걸고 그에 따라 제가 지면 저의 무공을 내어놓고, 공동파가 지면 공동의 소양신공을 내어놓기로 하십시다. 그러면 제가 무공을 내어놓더라도 누가 보기에도 명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진소협은 나와 경신주법을 겨루자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마소저에게 전에 벌였던 경신주법 대결을 들어보셨는지요? 마소저는 저와 이미 한번 겨루었고, 여기 대사형이 한번 겨루어 만일에 제게 진다면, 제가 또다시 도장어른과 경신주법을 겨루어야 하니, 차라리 처음부터 도장어른과 경신주법을 겨루자는 말입니다."


"허 허 허, 진소협은 좀 화통한 데가 있구려. 좋소, 좋아. 내가 오랫 만에 주법을 한번 시전해보지. 겨루는 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그것은 마소저와 겨루었던 전과 같은 방법으로 저기 보이는 봉우리까지 달리는 것입니다. 저기 9 부 능선에 큰 바위가 보이는 저 봉우리외다. 얼추 십 리는 너머 되어 보입니다만,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처음에 십 장(약 30 미터) 정도를 내가 앞서 출발하고, 봉우리에 가서도 그 만큼의 간격이 남아있는지 아니면 더 벌어졌는지로 승부를 가리자는 것인가?"


"그렇지요. 이미 마소저에게 이야기 들으셨다면 요령은 똑 같지요. 여기 대사형도 있으니 처음에 떨어진 거리만큼이 유지 되었는가 아니면 더 가까워졌는가 하는 것을 판정해줄 것입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첫째와 다섯째는 뒤로 따라와 혹시 간격에서 오차가 있나 없나를 잘 따져보기 바란다."


"두 제자분 들이 나의 뒤를 따라오는 것은 적어도 5 장 뒤에서 따라오도록 해 주십시오. 가까이 따라오면서 내가 뛰는 것을 방해한다면 나는 결과에 승복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승부는 승패를 떠나 정당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것도 받아들이겠네. 나중에 그점을 빌미삼아 승복하지 않으면 곤란하니 말이야. 제자들은 반드시 오 장 이상 떨어지도록, 이것을 기억해두어라, 알겠지?"


"소제형, 유래타, 그리고 하라하슨 등은 따라오지 말고 여기에 남아 기다려라. 아마도 내가 수 십 년 수련하신 도장어른을 이기기란 쉽지않을 테니까, 여기서 그냥 편히 쉬고 있으란 말이다. 알겠지?"


"예, 그렇게 하지요."


"제가 '출발'이라 말하면 먼저 도장께서 출발하시고요, 적당히 거리가 떨어지면 제가 '출발한다'고 말하면서 출발합니다. 그 뒤로 제자분들은 적당히 떨어져서 따라오기를 바라오."


"출발"


"...... 나도 출발이오."


마유친과의 주법비무할 때보다 거리가 더욱 멀었는지 일각이 훨씬 지나서야 봉우리에 도착하였으며, 조방도인은 나이가 좀 많이 먹은 노도장인데 수련을 얼마나 충실하게 해왔던지 기력이 출중하여 마유친 보다 오히려 더 잘 달렸다. 진원성은 한번 펼쳐보았던 주법이라 처음부터 기량을 맘껏 발휘하였으며, 이에 봉우리에 도착해서 보니 조방도장에게 지지는 않았음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조방도장은 자기가 졌다고 생각을 하였으며, 그러나 자로 젠 것도 아닌데, 자기가 이겼다고 억지 부려보기로 이미 마음을 먹고 있었다. 뒤에서는 금방 대사형과 마유친이 진원성을 쉬익 지나쳐서 봉우리 끝에 기다리는 조방도장에게 달려갔다. 


진원성도 이미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 하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으므로 속도를 줄여가며 봉우리에 올랐다. 진원성이 도착하자, 사제지간 3 명은 단전이 백도를 끓고 있었으며, 숨을 헐떡이며 기다리다가 대사형이 무어라 명을 받았는지 입을 열었다.


"진소협, 이번 비무는 우리 사부님께서 한 발짝 만큼은 앞섰다고 판단이 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겠소이까?"


"잠깐, 한발짝으로 이기고 짐을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이번 비무는 비겼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남은 힘으로 서로 잡아당기기를 하여 누구의 힘이 많이 남았는지를 가지고 승부를 정하기로 합시다. 내가 조방도장의 손을 잡고, 서로 당기면 그 뒤에 두 제자분이 조방도장의 다른 손을 잡고 또 다시 손을 이어잡아 당겨서 도와준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오. 제자인 두 분 모두 아주 지쳐보이니 말이오. 어떻소이까?"


"그것으로해서 진소협이 승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조방도인은 이미 자기편에 승산이 많음을 알고서도, 슬쩍 상대에게 선심을 쓰듯 말했다. 조방도인은 자기 뒤로 대사형과 마소저를 세우고 손을 꼭 잡아 연결한 다음, 진원성과 오른 손을 맞잡았다. 진원성과 조방도인이 서로 손을 맞잡는 순간 맥이 연결되었으며, 이미 뜨거울대로 뜨거워진 조방도인의 단전에서 회오리치던 기운은 어떤 인력에 끌려서 조방도인의 팔을 통해 진원성의 손바닥으로 빨려가는 것이 아닌가? 조방도인은 강력한 인력(引力)이 자기의 진기를 끌어당겨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순간 '으앗'하고 신음성을 질렀다.


이에 뒤에 있던 대사형과 마유친은 역시 단전이 거의 끓어오르던 중에 급히 서로 간에 손바닥과 손바닥을 맞잡고 끌어당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손을 잡는 순간 강한 인력에 의하여 조방도인 쪽으로 진기가 빠져나가는데 이것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즉시 독문기법(獨門氣法)을 동원하여 저항하며 막아보려고 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줄줄 세어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손을 떼어보려고 하였으나 그것마저 마음대로 되지 못하였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세 사람은 진원성에게 단전의 공력을 점점 빼앗기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던 소제 일행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말을 몰아 올라와서 보니, 소제는 이것이 무슨 일인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바로 자기 흑묘파 일행이 당했던 바로 그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먼동이 밝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조방 도인과 두 제자들은 새벽이 되어서야 자기들이 진원성에게 깨끗하게 당하였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 때에 조방도인은 후회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새벽이 되어 진기로 엉킨 것이 풀리자 조방도인은 자기의 사십 여 년 모은 공력이 모두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으며, 대사형은 이십 년, 마유친은 십 년의 공력이 모두 사라짐을 알게 되었다. 


조방도인과 두 제자는 산봉우리에 퍼질러 앉아서 망연히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다. 진원성은 조방도인과 두 제자를 한 사람씩 차례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러면서 혼천일기공을 일으켜서 그들에게 한 방울씩의 진기를 넣어주고는 말하였다. 


"조방 도장님과 두 제자분은 애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공력을 천천히 빨아내어 경맥이 손상되지는 않도록 하였습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면... 공력을 조금씩 쌓아나가면 언젠가 오늘 잃어버린 공력보다 더욱 높은 공력을 갖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유친 소저는 이 만큼 공부를 하기가 참 쉽지 않았을 터인데 ... 그래도 양강(陽强)의 공력이 모두 없어졌으니, 이것을 버린 김에 다시 평범한 여인네의 길을 가는 것이 어떻겠소? 소양공을 연마하지 않고서 지내면 아마 2 년 이내에 원래의 여자가 나타날 것인데, 스스로 잘 판단하시오. 세 분에게 내가 몸의 회복에 도움되도록 몸을 치료하는 진기 한 조각씩 베풀었으니 그리 아시오."


"제가 여자가 된다는 말은 정말인가요?"


"아마 확실히 그렇게 될 것이오. 여러분들은 앞으로 닷새 정도는 힘이 풀어져서 거동이 다소 힘들것이나 그 후가 되면 다시 보통 사람만큼의 기력을 찾을 것이오. 그 때에는 다들 알아서 갈길을 가면 됩니다. 내가 지금 갖은 병은 공력을 펼 수는 있으나 마음대로 거둘 수가 없는 병이라오. 나와 공력이 엉켜서 결맥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은 천천히 공력을 뽑아내서 상대의 경맥을 보호해주는 일 밖에 없으니... 그래서 처음 마소저를 상대할 때에도 가까이에서 공력 겨루기를 극력 회피하였는데, 그대들이 나쁜 마음으로 내게 접근하였으니 그렇게 당하게 된 것이오. 나의 공부는 천뢰신공과는 아무 관련도 없음을 조방도인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오. 그렇지요? 그대들이 원한다면 나를 따라와도 좋소. 내가 내 병을 고치면 공력을 원래대로 해줄 능력도 생길 것이라 기대해보며, 그때에 그대들의 공력을 다시 원상복귀하여 줄 생각이 있습니다만, 그대들이 판단하여 알아서 하시오."


"참으로 면목없이 되었지만, 진소협께서 말씀하신 일에 틀림은 없는가요?"


"그렇습니다. 사실대로 말하고 돌아가시라고 했다면, 조방도인께서는 그냥 돌아가셨을까요? 아니면 끝까지 저와 우리 일행을 괴롭혔을까요? 저는 그 선택권을 조방도인에게 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제가 수를 부린 것이오. 이것은 내가 공력을 마음대로 거둘수 없는 병을 앓게 되면서, 혹시나 하여 준비해둔 비장의 한 수 였지요.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로 써먹은 것입니다. 여기 소재형이 첫 번째로 당한 것이고요."


"아, 이게 무슨 꼴인가?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


조방도인은 장탄식을 거푸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