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월 27 일 저녁, 낙양성의 서부지역을 담당하는 정탐조원 한 명으로부터 적목귀(赤目鬼) 진원성은 편지를 전해 받게 되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것이었다. '적목귀에게, 10 월 30 일 사시(巳時) 성 서문 밖 열빈루(悅賓樓) 반점에서 기다리겠다. 이정진 씀.' 이정진이 편지를 보낸 것이라면 그것은 제남에서 죽은 이정진을 아는 사람 중 어쩌면 호공두 어르신이 보낸 것이었다.
진원성은 매일 아침 두 시진을 단원들과 함께 수련을 하면서, 단원들과 실전을 방불케하는 대련을 하여, 단원들의 전투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단원들끼리 수련을 하게한 후에, 서문 밖 열빈루 반점을 찾아갔다. 열빈루가 멀리 보이는 즈음에, 길가의 한 사람이 진원성을 향해 말을 하였다.
"적목귀 진원성이구먼."
"아, 호공두 어르신이시지요."
"응, 내 목소리를 금방 알아내는구나. 혹시 누가 날 알아볼까 하여 변장(變裝)을 했다. 그래 원성아 오랫만이다. 그동안 많이 컷구나."
"예, 이제는 더 크지 않아도 난쟁이 소리는 듣지 않을 정도가 되지요."
"흥, 그래 이놈아, 니 몸 속에 양기 말이다."
"그동안 어떻게 잘 지내셨어요?"
"그럼 잘 지냈지. 우리 저쪽으로 좀 걸어가 볼까?"
진원성은 호공두 어르신이 가르키는 곳을 바라보니, 얼마간 저자거리가 이어지다가, 그 다음은 전답들이 펼쳐진 사이사이로 이따금씩 마을들이 펼쳐져있었고 그 너머로는 낮은 산등성이들이 누워 있었다. 진원성은 호공두 어르신을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예, 그런데 어떻게 낙양성에 오셨나요?"
"이놈아 네가 쓴 편지보고 왔지, 여기에 와서 여러가지를 살펴보니, 네가 적절하게 편지를 써서 보냈더구나. 그렇게 항상 주의심을 잃지 않아야만 한다."
"예, 혹시 15 대 제자 방소형을 아시나요?"
"이름만을 들었단다. 그 제자가 죽었다는 말이지?"
"예, 이미 아시네요."
"편지 내용에 이정진의 이름을 썼으니, 죽은 사람 이름을 쓴 것을 보고 짐작은 하였다만, 여기 와서 조사해보고 사실을 알았다. 방소형이 죽은 것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을 해보아라."
진원성은 방소형과의 일을 말한 후에, 시체를 잘 살펴 본 그 일도 세밀하게 말하고, 시신을 북망산에 매장하였음을 말하였다. 호공두 어르신은 매장한 곳을 자세히 묻고는 정색을 하면서, 말하였다.
"잘들어라, 원성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난 평생을 쇄음수를 쓰는 달단 라마승 후계자들을 추적해서 죽이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 파의 운명도 역시 나와 똑같지. 지금 이 낙양에 그 놈들이 뱀처럼 굴 속에서 또아리를 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소굴이 바로 경가장이다. 그리고 오가장은 그의 협력자임이 밝혀졌다. 오단두란 그 놈이 추관의 명을 받아 방소형을 쫓게 해놓고, 경가장에 그 일을 알려서 방소형을 죽게하였다. 나는 요번 15 일에 경가장과 오가장을 치기로 정했다. 좀 시간이 촉박한데 그래도 하는 수 없었다."
"......"
"우리가 경가장을 감시하고 있는데, 요즈음 그들의 동태가 좀 수상하다. 경가장이 워낙 큰 땅을 갖은 대지주이지만, 그래서 추수가 끝난 곡식을 장원에 들여가고, 다시 선착장 창고로 옯기기도 하고 또 배에 싣고 떠나거나 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움직임 속에서 뭔가 좀 수상하여서 말이다. 우리 파 지원군이 모두 오기까지 마냥 기다리지를 못하겠단 말이다. 그래서 15 일 아침 인시(寅時 = 04 시)에 공격을 하기로 하였다. 물론 오가장도 그 때에 한꺼번에 친다. 다만 경가장에 있는 그놈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또 얼마나 높은 고수들이 있는지 모두 파악하지 못하여 불안하다만 ... "
"그러면 제가 뭘 도울 것은 없나요?"
"내가 너를 찾는 것이 그거야, 바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지난 9 월 말 경에 낙양에 와서, 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또 너의 모든 행적도 알아보았는데, 그 동안 네가 날랜 젊은 놈들을 확보해 놓은 것을 알게 되서 부탁을 하려고 한다. 아니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난, 심의파의 원로이지만, 내가 감추고 있던 진짜 신분은 대명천자국(大明天子國)의 호국감찰통정어사(護國監察通政御使)이며, 국적(國賊)을 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일을 하는 내 명령에 명나라의 모든 만성은, 설사 황족이라해도, 황제의 명령을 받들듯이 똑같이 따라야 한다. 원성이 너는 지금부터 열흘 남짓 남은 동안 준비해서, 동원 가능한 날랜 놈들 백오십 명을 골라 그 날 경가장을 포위하고 적도(賊徒)가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일을 맡아주어야 하겠다."
"예,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인데 응당 제가 도와야지요. 또 어르신 일이라니 명령이 아니고 부탁이라도 마찬가지지요."
"적도들은 아마 네가 동원하는 아이들 세 명 정도가 동시에 막아서야 한 명을 당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강하다. 이점을 꼭 기억해서 협력하여 고수를 당해낼 수 있도록 훈련을 하도록 해라. 혼자서는 그들의 일격에 죽고만다. 기한은 열흘 남짓 밖에 없다. 만일에 어느 정도 현장에서 일이 마무리가 되면, 다음에는 포위한 채로 담을 넘어들어와서 그 장원 안의 모든 건물을 수색하여, 돌계단 한 짝이라도 들었다 놓아보도록 하듯이 해야한다. 경가장 안에 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 명도 살려두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명이 하나를 당할려면, 그 놈들이 한 명을 공격할 때에 바로 다른 두 사람이 그놈을 맞 공격을 하여, 그놈의 공력이 한 군데로 한 명을 공격하게 놔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알았지?"
"세 명이 하나를 당할 수 있게, 공력을 분산시키게 훈련을 해야한다고요. 예, 잘 기억하겠습니다."
"그 날, 인시에 너는 이미 경가장을 포위하고 있어야 한다. 인시면 아주 깜깜한 때이니 주변 지형을 미리 잘 알아놓아라. 그러면 우리는 인시에 그들을 공격하여 전투가 벌어질 것이며, 그들 중 몇 몇은 마침내 당해내지 못하고 도망을 치려고 할 것이다. 그 때에는 원성이 너의 아이들이 그들을 잡아주어야 한다. 경가장은 저기 저 쪽에 보이는 큰 나무가 있는 그 남쪽 마을, 나무가 엄청 크구나, 한 사 장은 넘을듯 하지? 바로 그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장원이다. 가로 세로 육십 장, 사십 장 정도 이며, 총 일곱 채의 큰 건물이 있다. 나의 짐작으로는 그들의 수는 오십 명에서부터 칠십 명 사이일 것으로 본다마는, 그 때까지 우리 심의파 제자들이 백 명은 와주어야 할텐데..."
"......"
"방소형 제자를 죽인 놈은 쇄음수를 극성으로 익힌 놈이다. 어쩌면 그들 중의 상급 실력자이거나 어쩌면 우리 명나라에 있는 놈들 중에서 쇄음수 공력(功力)이 거의 최고로 높은 놈일 것이다. 어쩌면 나라도 쉽게 대적할 수 없는 자일 것이다."
"그토록 강한 놈이라면 차라리 ..."
"방소형의 육체 외피에 아무런 표식이 없다는 것을 보면 이미 쇄음수가 화경(化境)에 달한 것이다. 지난 번에 북경에서 그 놈들을 잡았을 때는 아주 뛰어난 고수가 없었더랬지.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만나기를 바라는데 ... 쇄음수는 단계가 올라갈 때에 주위에서 그 단계를 넘어오르도록 도와주는 더높은 수준의 조력자가 있어야만 한단다. 그런데 높은 놈이 여기 있다는 것은 이 곳이 쇄음수를 가르쳐 후계자들을 양성하는 수련도장이라는 뜻이다. 그 놈을 놓칠까봐 난 조바심이 난다."
"예, 가서 14 일 동안 잘 준비하여 어르신에게 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이번 일은 내 평생에 제일 중요한 일인 것 같구나. 원성아 잘 부탁한다. 그리고 네가 제남에서 한 일은 내가 모두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다. 참 일을 잘 처리하였더구나. 죽은 정진이 형도 하늘에서 웃음을 지었을게다. 여기 일이 끝나면 차분히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자구나."
"대보인 형은 못오나요?"
"아직 관문이 다 끝나지는 않았을텐데,... 글쎄 이번에 내린 것이 총동원령이니 아마 오기는 할텐데 15 일 까지 도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다."
"제자들이 많이 오도록 며칠 만이라도 공격날짜를 연기하면 안될까요? 아니면 관부에 군병들을 이용하면 더 좋을텐데요."
"나도 심사숙고를 하고 결정한 일이다. 관부에는 전날 저녁에야 통보를 할 생각이다. 미리 말하면 아마 그날로 경가장에 밀통질을 할테니 군병을 동원할 수는 없다. 또 일이 끝난 후를 생각해도 그렇고... 만약에 그 수괴(首魁) 놈을 놓치면 10 년 후에는 그들의 세력은 복구되어 다시 마찬가지이니, 이번에 그 놈을 꼭 잡아 죽여야만 한단 말이다. 그리고 이번 싸움에 이곳 낙양에는 동창의 당두 한사람이 나와서 살펴 본 후에, 싸움의 전말을 황제에게 보고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얼굴을 익힐 그런 여유도 없구나. 경가장 놈들도 눈에 불을 켜고 혹시나 하고 감시하고 있을테니, 아무쪼록 조심해야만 해야해. 또 우리는 이번 거사를 만성들에게는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보복극 정도로 알려야한다. 달단족과의 다툼이라고 실상이 알려지면 민심이 크게 동요하게 될 것이니 그 점을 염두(念頭)에 넣어야 하는 것이다. 알겠지? 그리고 나에게 따로 연락할 필요가 있다면 열빈루에 이정진 앞으로 편지를 남기면 될 것이다."
"관병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비밀이 유지되게 해야한단 말이지요?"
진원성은 호공두 어르신과 헤어져 돌아와서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어떻게 해야 무뢰 3 명이 내공을 익힌 고수 한 명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들것인가 하는 점이 만만치 않은 문제였던 것이다. 그것도 열흘 정도 밖에 여유가 없었다. 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던 무뢰들인 그들에게 어떻게 명분을 만들어야 경가장 포위 섬멸 작전에 탄로나는 일 없이 데려갈 것인가 하는 점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저런 사정 다 말한다면 그 다음날 바로 경가장에 그 말이 들어갈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호공두 어르신이 말한 내용을 생각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세가지였다. 비밀을 유지할 것이며, 여러 조직들이 모여서 하나의 단체가 된지 얼만 되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과연 두목인 적목귀 진원성의 지휘를 따라 움직여 줄지 그것도 의문이라 할 것이었다. 또 무뢰 세 사람이 쇄음수를 쓰는 고수 한 명을 당할 수 있도록 하나의 조로 묶어서 동시에 공방을 치루도록 해야할텐데, 과연 어떻게 이 세 가지의 조건에 맞는 해답을 찾는 문제였다.
이 때의 진원성은 가슴 속에 활활 불타오르는 숯덩어리를 품고있는 것과 같이 양기가 들끓고 있는 때라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적을 죽이고 공격하는 것만 생각하는 일종의 광분(狂奔)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정신적으로 아무리 어려운 조건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여 적을 쳐죽이는 것만 생각하는 그야말로 투기만만(鬪氣滿滿)한 상태였으며, 호공두 어르신을 돕고, 나라의 명령에 충성할 생각만이 머리속에 가득하였다. 진원성은 불퇴전(不退轉 뒤로 물러나지 않음)의 각오로 꼬박 이틀 연구한 끝에 좀 엉성하지만 하나의 계획을 만들게 되었으니 다음과 같았다.
첫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유소룡 총관 이하 모든 단원들을 끝까지 속이기로 하였다. 둘째, 적목단으로 통합되었으니 각 단원들을 하나로 묶는 단체훈련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셋째, 3 인 1 조의 전투조를 만들고, 그들에게 일기창법의 작야세만을 가르쳐서 공력이 부족한 대신 창으로 쇄음수 놈들을 상대하게 만들기로 하였다. 비밀 유지는 진원성 자신만 입을 다물면 될 일이었으며, 단체훈련과 창술을 가르쳐 쇄음수를 상대하는 것에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또 있었다.
3 명이 함께 움직여서 1 명을 제빨리 포위하고, 3 방향에서 동시에 일기창법 작야세를 펼치면 무공의 고수라 하여도 꼼짝 못할 것인데 과연 그것을 짧은 시일 안에 가르쳐서 효과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문제였다. 먼저 좀더 몸이 날래고 체력이 좋은 무뢰들을 골라내서, 3 명이 공방의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그 다음에는 적지 않은 수 150 명을 한 밤중에 이동시켜서 쥐도 새도 모르게 경가장을 포위하게 하며, 자기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도록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즉 이 문제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인 적목단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으며, 유소룡 총관과의 비무 후 반성할 때에 마음 한쪽 안개 속에서 무엇인가 놓친 일이 있는 것처럼 느꼈던 그것이 바로 이 문제 즉 하나의 단체로 융합시키는 문제였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호공두 어르신을 도웁기 위해서는 적목단은 하루 빨리 명실상부(名實相符) 하나의 조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만일 이 일이 끝까지 잘 처리된다면 원님 덕에 나팔분다는 속담처럼 적목단은 호공두 어르신 때문에 꼭 해야할 일은 하게 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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