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성은 칼날 같은 아픔이 아직 열일곱 번이 남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첫 번째의 위치를 지났다는 기쁨이 지나가자 바로 걱정이 몰려들었다. 얼마나 아플까 하는 걱정이 아니라 언제 남은 과정을 다 끝낼까 하는 걱정이었다. 첫 번째까지는 약 열 달 정도가 걸렸다고 본다면 계산을 해보니, 열일곱 곳이면 일백칠십 개월이 되고, 약 15 년에 해당이 되는데, 15 년이면 자신의 나이는 스물셋이 되어야 하니, 만일에 그때까지 키가 자라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난쟁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자 공부에도 독이 있다고 하는 법문을 무시하고, 앞으로는 잠을 아예 자지 않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때마침 담장 너머로 들리는 울음소리 원망소리 때문에도 잠을 잘 수 없기도 하였고, 또 십이월 들어서자 밖에 일이 많아지셨는지 관주님은 출타가 잦으셔서, 진원성은 낮에 정 졸리면, 아무도 없는 빈청에서 새우잠을 잠깐 자고,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하였다. 하루에 한 시진을 공부하면, 6 개월이 걸리지만, 하루에 여섯 시진을 공부하면, 한 달이면 될 거라는 단순한 계산법대로 되기만 한다면 이야, 좀 고생이 되더라도, 독이 좀 되더라도, 참고서, 이겨내고서, 해야 하는 것일 터였다.
== 서기 1601 년 ==
12 월과 원단(元旦)을 지나고, 1 월 하순이 되자 빈청에 손님들이 많아졌고, 진원성은 손님들이 웃는 얼굴이지만, 실상은 괴로운 일이 꽤 많아서, 돌아서면 찡그리는 얼굴로 금새 변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비단을 짜는 일은 실만 있으면 일년 내내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누에고치의 실은 가을부터 겨울에는 나오지 않았다. 자연히 겨울 들어서면 직방은 일이 줄어서 베틀을 수리하거나, 새로 베틀을 들여놓거나, 창고 물품을 정리하고, 물목을 장부와 맞추어보고, 일년 장사의 손익을 맞추어보고, 직방 전체를 대청소를 하면서, 그렇게 보내었고, 직공들도 한숨 돌리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때였다.
진원성은 밤마다 호흡공부에 진력을 쏟았다. 공부하다가 단전이 답답하면 나가서 창술을 하고, 다시 돌아와서 공부를 하다가 단전이 또 답답해지면 나가서 창술을 하고 이렇게 밤을 꼬박 세우며,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로 12 월에 다섯 개의 위치를 또 만나게 되었고, 1 월에는 두 개의 위치를 만났다. 그러자 왼손도 힘이 제대로 써지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창법을 하면서도 한쪽 손이 원활하지 못해서 창법이 잘되었는지 어떤지는 참 말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진척이 보이자 진원성은 용기가 났다. 마지막으로 뒷목에서 여덟 번째를 만난 그 날이 일월 십일이었으니, 이렇게 되면 새해 3 월이 가기 전에 열여덟 곳의 위치를 전부 만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뜻 밖에 아홉 번째의 위치는 시간이 지나도 만날 수가 없었다. 초조해 하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오로지 공부를 계속해가는 수 밖에. 그러고 보니 1 월 중순이 되자 담 넘어 들려오던 울음소리도 없어지고, 이소저는 이제 밤에 따로 지내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된 모양이었다. 전족을 하면 두 달 정도는 죽을 만큼 아프다고 하며, 그 후로도 2 년을 쇠로 만든 신발을 신고서 발의 크기를 줄여가야 한다는 말을 진원성은 정문 아저씨에게서 들었다. 전족을 시작하여 처음 두 달은 너무 아파서, 어머니가 말 안 듣는 딸을 마구 때려서 어느 집안에서는 어머니에게 맞아서 죽은 딸도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진원성은 이제 가장 많이 아프다는 두 달을 넘긴 이소저가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2 월이 되자, 관주님은 빈청에서 일을 보시는 날이 많아졌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았다.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짜맞추어보니,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내려온 광감세사 환관이 소주부성에 왔다고 하였다. 환관의 이름은 손륭(孫隆)이었다. 그리고 데려온 부하 환관의 이름은 황건절(黃建節)이었고, 소주부에서 무뢰들 13 명을 골라서 그 중에 정원복(丁元復)을 대장으로 삼고, 그 아래에 12 명을 징세리(徵稅吏)로 고용하여, 소주성 6 개 문에 징세소를 설치하고, 한 문에 징세리 두 명이 상주하여, 수로와 육로로 들어오고 나가는 물목을 조사하여 바로 세금을 징수한다는 것이었다.
세금을 못 내겠다고 하면 물건을 못 나가고, 못 들어오게 막는다고 하였고, 그것 때문에 시비가 되어, 징세리에게 두들겨 맞고, 피 흘리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징세리들은 부성 밖 서쪽에 있는 민간 직방들까지 조사하러 다니며, 세금을 부과하고 현장에서, 세금을 걷어간다고 하였다. 성 안 직방으로 들어오는 연사(누에고치 실의 한가지 종류)는 작년에 생산된 것으로 성안의 직공들에게는 생명줄 같은 것인데, 그것이 세금 때문에 못 들어오고 다시 물러나니, 직공들 중에서 절반은 일이 없어서 놀고, 절반 정도만 일을 하게 되어, 수입이 없는 직공들은 휘주회관 같은 경우는 관주님이 수입이 없는 직공들에게는 쌀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
2 월 26 일이 되자, 손님들 3 명이 빈청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비단장사를 하는 다른 상단의 분들인데 진원성이 그 동안 얼굴을 알아보았던 휘상과 진상 말고도, 노상, 절상, 용유상의 대표들이라 하였다.
"이관주님, 이거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직기 한 대당 매달 은전 세 푼씩 세금을 내야한다니 이거야 원... "
"세금이 얼마든 실이 있어야 일을 하는데, 실을 구할 수가 없어요."
"실 한 근에 이십 문을 세금으로 내면, 그 어느 실 장사가 당해내겠습니까? 지금 그 실들이 작년 여름이나 가을에 돈 주고 사들였다가, 실이 귀해지는 이 때에 좀 비싸게 팔아보겠다고 내놓는 것인데 오히려 세금내면 더 손해인 것을......"
"진상(晋商)들은 자금이 많은 곳이라 실을 작년에 많이 들여 놓아서 아직도 베틀을 돌리고 있기는 하다 합디다, 마는 거기도 열흘, 길어야 열흘 밖에는 못 간다 합니다. 게다가 비단을 만들면 나가면서 또 세금을 내야 한다니 이거야 원."
"황궁과 거래가 많은 진상들의 직방에서도 난리가 아닙니다. 내직조국이 황궁에서 쓸 것을 구입해 가는 데에도, 통과세를 내야 한다고 해서 진상 필 관주가 손 태감을 찾아가 말을 했답니다. 황궁에서 사가는 비단인데 세금을 또 내야 하냐구요. 그랬더니 자기는 그것이 지옥으로 가든, 월궁으로 가든 알 바 아니고, 그저 문을 지나면 통과세를 내야한다 하여, 혀만 차고 물러섰다 합디다."
"그제는 우리 상단에 거래하던 상인이 비단 한 필당 통과세 이십 문을 내야 한다고 해서, 비단을 가져가려던 사람이 다시 직방으로 물건을 가져왔어요. 허 허."
"직기 서 너 대 들여놓고 비단 짜는 기호(機戶)들은 이미 대부분이 일손을 놓았다고 합니다. 그네들이야 당장 한 필 짜서 돈을 사고, 그 돈으로 다시 실을 바꾸어, 다시 한 필 짜는 식으로 돈을 돌리는데 갑자기 세금을 두들겨 맞으니 이문이 없어져 버린 것이지요. 손을 놓을 수 밖에요."
"작년 12월에 만나 회의를 하였을 때에 갑론을박만 하다가, 그냥 부딪혀보자고 했던 것이 패착(敗着)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 때에 무슨 대책을 세웠어야 했어요."
"지나간 이야기는 접어두시고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걸 이야기 해 보십시다."
"어떻게 비단을 만들면, ... 그것이 다시 또 나가면서 세금을 내다니 그런 법은 없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새 실이 나오려면 아직도 달포는 더 기다려야 하겠지요."
"아니지요. 금년에는 늦게까지 북풍이 있어서, 뽕잎 싹이 늦는 걸 생각해야지요, 아마도 두 달은 넉넉하게 기다려야 할 걸로 보입니다."
"이 관주님은 어찌하시렵니까? 관주님 직방은 아직 직기 절반은 돌아가고 있지요."
"전들 별 수 있겠습니까? 절반은 일을 쉬고 절반만 돌려서 질질 끌어 왔지만 오늘 내일이 한계입니다. 이제 손을 들어야지요. 그제 지부님을 찾아 뵈었지요. 손 태감에게 말이라도 다시 한번 해달라구요. 그랬더니 지부님이 이미 손 태감에게 말을 하였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손태감이 자기 목을 어루만지며, 이 모가지가 안 떨어지려면 이 방법 밖에는 딴 도리가 없구먼요, 하더랍니다."
"......"
"직공들은 혹시나 하며, 우리 상인들 눈치만 보는데, 돌아가서 뭐라고 하지요?"
"실 들여오면서 낼 세금을 우리가 부담하고, 비단을 만들어서 팔 때의 세금도 우리가 부담하면, 차라리 우리가 낼 세금으로 직공들 쌀 사주고 폐업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어차피 이렇게 세금을 내고는 비단 장사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저도 돌아가서 금년 신사(新絲) 나오는 때에 다시 직방을 열기로 하고, 임시로 직방을 폐쇄한다고 해야 되겠습니다."
"......"
"그리 되면 직공들이 다시 직방 나올 그때까지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뭐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현재 상태로는 신사가 나와도 상황이 개선될 거라고는 장담을 할 수 없어서 그것도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리 봅니다."
"문제는 많은데, 그 답은 아무데도 없으니......"
"모처럼 찾아 뵙기는 하였으나, 담화의 끝이 명쾌하지 못하고, 심려만 드렸습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저도 이제 할만큼은 하였다 그리 생각하였습니다. 직공들에게도 어제 실상을 이야기 하였구요. 이달 말에 직방을 당분간 폐쇄한다 말을 하려 합니다. 당분간이 아니라 사실 언제까지가 될지 기약도 없지만 말이지요. 떠나는 직공들 쌀 말씩이라도 나눠주려고 준비시켜 두었습니다."
"허어 참 그거....., 이제 돌아가봐야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예, 살펴들 가십시요."
"얘야, 손님들 가시니, 가마들 대령시키거라."
이 때에는 진원성은 관주님의 장원 생활이 일 년이 되어서 장원 내의 하녀들이나 다른 가노들이나 가마를 드는 사람들과 정문을 지키는 사람들과도 이제 친하여져서, 가끔은 동전 몇 푼을 들여, 먹을 거리를 아저씨들에게 사드리기도 하고, 소식도 주고 받는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소주부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이 아는 만큼은 진원성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진원성이 친화성을 타고난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하였지만, 사실은 진원성에게 더 친하여 둘 필요가 있는 것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진원성은 잘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원칙은 높은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서 높아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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