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혼(沸流魂)

#50. 황하(黃河)의 결투 - 2

금박(金舶) 2015. 11. 18. 08:30


  벽려혼은 중평검을 받고 일어서서 곁에 있던 사비공주에게 다시 주었다. 그녀가 간밤부터 기왕에 사용했으니 계속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사비공주, 그대가 이 검을 맡아 보관하시오. 한산성에서 잃어버린 홍학검보다 묵직하고 훨씬 나을 것이오."


  대방왕이 말했다.


  "중평제는 이미 왜국으로 향하셨소. 다시 군사를 일으켜 백제 본토를 수복하고 그리고 다시 중원으로 돌아오실 것이오. 그동안 벽려혼이 제황을 대리하여 청주와 기주, 동청주, 서주의 대륙백제를 다스리는 것이오."


  "알겠소. 중평제의 뜻을 새기도록 하겠소."


  여러 장수들과 함께 술상에서 어울리던 벽려혼이 벌떡 일어났다.


  "자, 여러 장수들, 그동안 수고 많으셨소. 흑천왕, 공천왕, 장천왕, 장영, 그리고 여기 없는 필치. 또 낙릉궁주. 사비공주, 대방왕 전하. 모두모두 수고하셨소. 그리고 나와 함께 말을 달린 청주 병사들도 지금 성내 어디선가 우리처럼 실컷 술도 먹고 있겠지만,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 전사한 병사들을 위하여 후일 크게 제사를 지내주지 않을 수 없소."


  "맞소이다."


  "또한 그들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청주 백성들이 잊지 않도록 할 것이오. 또한 전쟁터에서 죽지는 않았어도 또 많은 병사들이 부상을 입고 지금 술도 못먹고 시름하고 있을 것이오. 그러한 병사를 지금 장수된 자가 돌보지 않으면 그들이 장차 장수들을 위해 목숨 받치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나는 더 취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위로하고 돌아오겠소."


  "인군(仁君)이로군."


  부상을 입어서 오른팔을 못쓰는 벽려혼이 되어서인지 벽려혼은 부상 입은 아군 병사들이 전과 달리 더욱 측은하게 보였다. 전에는 그저 재수없이 다친 아군 병사들로만 보였는데 이제는 그의 가슴까지 아픔이 전해오는 마치 수족(手足)같은 부하로 여겨지는 것이다. 벽려혼이 일어나 부상병들을 순시한다고 하니 다른 장수들도 모두 따라 일어났다. 그리하여 벽려혼은 다리가 잘려서 신음하는 병사의 다리의 상처 끝에 참기름을 부어서 직접 씻어주고 다시 술을 한잔 권하여 그 아픔을 위로하였다.


  "보라, 노병이여. 나도 오른손이 불구가 되어 쓰지 못하지만 오늘 전쟁은 이길 수 있었다. 그대는 다리 하나를 잃었지만 대신 그대의 가족을 구한 것이다."


  "제왕 전하, 오늘 다리를 잃었지만 장차 내가 다리 뻗고 죽을 곳을 찾았습니다. 제왕 전하께 목숨을 받치겠습니다."


  흑천왕은 한쪽 눈이 먼 병사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술 한잔을 권했다.


  "마셔라."


  "아뿔사 장군. 염라대왕이라는 장군을 멀리서만 흠모했습니다. 저를 죽을 때까지 시종으로 써주십시오."


  "그래, 눈 하나면 나의 시종으로 충분하다."


  부상병들도 비로소 그들의 흘린 값진 피에 벽려혼과 흑천왕의 보답을 받아서 화통하게 술을 들이켰다. 모든 아픔이 승전의 기쁨 속으로 용해되었다.


  벽려혼은 평원성 성밖까지 나가서 들판에 거두어진 많은 벽제 병사의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 더 많은 선비족 시체와 그리고 또 여기저기 부상을 입어서 신음하는 선비 병사들을 보았다.


  "장천왕. 성밖에 선비족의 시체를 따로 거두어 모두 한 곳에 묻어 장사지내고 또 다쳐서 쓰러진 선비족 병사가 보이면 그대가 잘 거두어 치료하고 서주 낭야왕에게로 내려보내도록 하시오. 그러면 독천왕이 그들을 요긴하게 쓸 것이오."


  "알겠습니다."


  "아참, 사비공주가 어딜 갔지?"


  벽려혼이 둘러보니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사비공주는 물론 찰거머리같던 낙릉궁주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벽려혼은 순간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스쳐갔다.


  "장천왕, 당장 낙릉궁주와 사비공주를 수배하시오."


  "성중에서 쉬고 있겠지요."


  "그럼 다행이고, 그렇지만 두 사람이 성 밖으로 나갔는지도 모르니 장천왕이 성루 위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 보시오."


  장천왕은 본래 다리가 길어서 걸음도 누구보다 빨랐다. 장천왕은 대뜸 성루 위로 뛰어올라가서 망루에서 두 여자를 찾아보았다. 마침내 불길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확신한 벽려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서둘러 말 위에 올라탔다.


  "장천왕, 두 사람이 보이시오?"


  장천왕이 망루에서 대답했다.


  "서쪽 황하를 향해 말 두 마리가 달려가고 있습니다."


  벽려혼은 장천왕이 가르쳐 준대로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장영과 공천왕도 벽려혼을 따라 말을 달렸다. 흑천왕이 영문도 모르고 같이 말을 달려 쫓아가며 물었다.


  "전하, 무슨 일인지요?"


  "사비공주가 위험하오."

  

  벽려혼과 흑천왕, 공천왕, 장영, 그리고 뒤늦게 장천왕이 말을 타고 쫓아가보니 평원성 서쪽 야산을 지나 황하변의 갈대밭을 지나서 흙먼지가 휘날리는 모래 평원에 두 여자가 보였다. 황하를 뒤로 하고 두 여자는 백사장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다. 그들은 내려서자마자 각기 무기를 꺼내어 그들끼리 약속한 혈투를 벌이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미 여러날 전에 오늘이 오면 결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으므로 긴 말이 필요없었다. 낙릉궁주는 취운검을 쥐고 [허이청교]로서 먼저 수비를 갖추면서 서서히 사비공주의 급소를 찌르며 공격해 들어갔다. 사비공주도 그에 맞서서 중평대도로서 [황조탈각]을 쓰면서 가볍게 낙릉궁주의 공격을 피했다.


  "흠, 제법이군."


  낙릉궁주가 말하자 사비공주가 맞받았다.


  "너보다는 한 수 위다."


  사비공주는 낙릉궁주의 취운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지 못하고 중평대도를 믿고서 맞섰다.


  "정말 그런지 볼까?"


  낙릉궁주는 치우검법 이초식인 [정이결구]로서 차근하게 사비공주를 몰아갔다. 사비공주도 한단계 올려서 여제검법 이초식인 [비연초우]로서 맞서야 했는데 사비공주의 제비처럼 날랜 기습으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껑충 차오른 낙릉궁주의 가죽신 끄트머리가 사비공주의 중평검에 베어졌다. 낙릉궁주가 약이 올라서 한 단계 수법을 올려서 치우검법 삼초식인 [지이이물]을 펴며 사비공주의 보검과 자신의 취운검을 부쳐서 밀어부쳤다. 힘은 사비공주나 낙릉궁주가 막상막하지만 취운검이 기교를 부려서 사비공주의 보검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사비공주는 낙릉궁주의 취운검의 검망 속으로 갇히자 평면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바로 그순간 사비공주는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켜서 낙릉궁주를 약간 밀어내고 동시에 여제검법 삼초식인 [백구조어]를 통하여 하늘로 솟아오르며 다시 하늘로부터 낙릉궁주에게 한점으로 폭사해 들어갔다. 그러자 낙릉궁주는 다시 수비로 바꾸어 [허이청교]로서 서둘러 방어하였는데 취운검과 중평보검이 점으로 부딛쳐 폭음을 내고 서로 떨어졌다. 


  어느새 낙릉궁주의 머리가 산발이 되었고 삼단처럼 고왔던 그녀의 공주머리가 허공에 풀풀 날렸다. 사비공주의 갈매기검초식은 낙릉궁주의 머리카락을 채간 것이었다. 사비공주는 낙릉궁주에 비하여 백전 노장이었다. 그녀가 사정을 두지 않았으면 낙릉궁주는 지금쯤 머리카락이 아니라 목이 날아갔을 것이었다. 사비공주가 낙릉궁주에게 말했다.


  "자, 내가 네 목숨을 한번 살려주었다. 하지만 기왕에 머리카락이 깎였으니  너야말로 출가하여 조용히 중이 되어라. 깊이 참회하고."


  낙릉궁주는 다시 눈에 파란 불이 켜졌다. 기필코 이번의 치욕을 갚기 위해서 치우검법 사초식인 [덕이제인]으로서 사비공주의 가슴을 베고 들어갔다. 사비공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도 패배를 시인하지 않느냐?"


  사비공주는 다시 한번 하늘로 솟으며 외쳤다.


  "일학붕천"


  사비공주가 다시 하늘에서 학과 같이 날개를 펴고 허공에서 바람개비처럼 돌면서 낙릉궁주의 머리 위로 거꾸로 칼을 앞세워 내려앉았다. 그러나 낙릉궁주는 [덕이제인]을 펼치며 그 자리에서 그녀 스스로도 뱅글뱅글 돌았다. 어찌나 빨리 취운검이 돌아가는지 낙릉궁주의 두팔이 점차 허공에 평행으로 날아오르며 낙릉궁주의 머리 위에서도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데 위에서 바람개비처럼 떨어지는 사비공주와 중평검이 그만 낙릉궁주의 회오리치는 취운검에 부딪쳐서 퉁겨나갔다.


  "으아악"


  사비공주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떨어진 곳은  마침 말을 타고 달려든 벽려혼의 앞이었다. 벽려혼은 말에서 몸을 날려서 땅바닥에 내려서며 사비공주를 받아드니 사비공주가 비록 정신을 잃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이게 뭣들 하는 짓이냐?"


  벽려혼이 소리쳤다. 벽려혼이 소리지르자 사비공주가 놀라서 잃었던 정신을 차렸다.


  "전하, 좀 어지럽소."


  사비공주가 혼자 서려고 비틀거렸다. 낙릉궁주는 사비공주를 노려보았다.


  "사비공주, 이번에는 내가 너의 목숨을 한번 살려주었다. 그러니 이제 서로에게 아무런 빚이 없다. 이제 오로지 남은 것은 둘 중 하나가 진짜로 목숨을 던지는 것이다."


  벽려혼이 그들 싸움에 끼어든 것은 이때였다.


  "멈춰라, 낙릉궁주. 사비공주와 결투를 하려면 그 전에 먼저 나와 결투를 하라?"


  "부마, 지금 그 계집을 편드는 거야?"


  낙릉궁주가 버럭 화를 내었다. 벽려혼은 누구를 편들기보다는 약자편이었다.


  "시끄럽다. 사비공주는 나의 왼팔이다."


  "왼팔? 병신이 된 오른팔이 아니고? 좋아, 그 왼팔! 거추장스러울테니 내가 잘라주지. 그리고 내가 대신 왼팔을 해줄 것이야."


  낙릉궁주는 취운검의 마지막 초식 "개물교화"를 믿고서 벽려혼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낙릉궁주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사비공주를 저승으로 보내 버리고 벽려혼으로 하여금 낙릉궁주에게 경외심을 가져서 앞으로 다시는 바람을 못피게 하고 첫부인인 부림에게 갈 때도 낙릉궁주에게 열심히 빌어 허락받고 겨우 가게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 물론 허락할 리 없지만. 벽려혼은 단호한 얼굴로 비류혼도를 꺼내 잡았다.


  "나는 내 왼팔로 사비공주 하나면 만족한다."


  벽려혼이 서서히 비류혼도를 꺼내 단단하게 잡는 것을 보고 낙릉궁주가 이를 깨물었다.


  "부마, 부마는 여자들 일에 끼어들지 말아. 내전의 일은 내전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야."


  사비공주가 정신을 올바로 차리고 다시금 모래바닥에 떨어진 중평대도를 찾아서 거머쥐었다.


  "전하, 물러서요. 내가 다시 맞서 보겠어요."


  사비공주가 앞으로 나가려고 하자 벽려혼이 왼손으로 비류혼도를 모래 위에 거꾸로 꼽아놓고 다시 그 맨손으로 중평대도의 검날을 잡아챘다. 벽려혼은 손이 하나기 때문에 비류혼도를 땅에 놓아야만 중평대도를 잡아챌 수 있었다.


  "안돼, 사비공주."


  중평대도는 이름이 대도이지 실제는 검이었다. 중평검의 양쪽 칼날을 움켜잡은 벽려혼의 하나 남은 손바닥이 상할까 봐서 사비공주는 즉시로 중평검을 잡아채서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벽려혼이 다시 말했다.


  "취운검은 상세의 신검이야. 같은 신검이 아니면 절대로 맞설 수 없어. 일반 보검은 취운검에 닿으면 그 즉시로 다 타버리고 말아."


  낙릉궁주는 그 사이에 천천히 [개물교화]를 끌어올렸다. 취운검이 달아오른 벽력진기로 인하여 파란 형광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낙릉궁주의 눈도 차츰차츰 파랗게  빛나고 취운검도 퍼렇게 타올랐다.


  "벽려혼, 어서 물러서. 그렇지 않으면 부마도 용서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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