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혼(沸流魂)

#35. 얼음위에 타는 사랑 - 3

금박(金舶) 2015. 9. 17. 07:36


  벽려혼은 한술 더 떴다.


  "그래, 청주 제왕 벽려혼보다는 청구국 황제가 훨씬 난데 백제 제황도 그 못지않아. 백제 제황 벽려혼 하면 멋있게 들리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때 막 만찬장에서 내전으로 돌아오던 백제 황부인 김총이 그들의 말을 엿듣게 되었다. 가야부인이라고도 하는 김총은 본래 가야국 공주였다. 그런데 임오년(382년)에 왜군이 신라를 치러갔다가 신라 대신에 가야를 쳐서 가야 땅을 뺏은 일이 있었다. 그러자 가야 왕실은 백제로 망명하여 근구수 제황에게 읍소하였고 근구수 제황은 가야를 되살려 주기로 결정했는데 당시 왜왕은 근구수 제황과 왜국 신공여황 사이에 태어난 여기(餘奏; 중평제황, 침류왕의 이름)였다.


  근구수 제황은 가야국의 공주로 하여금 왜국왕 여기의 비빈으로 시집을 가도록 하여서 여기는 가야부인을 얻었고 군령을 어기고 신라 대신 가야를 쳤던 왜장군을 파직하였다. 그리고 1년 뒤 383년 5월 근초고 제황이 서거하자 여기는 백제 제황으로 올랐고 왜국은 여기의 이부형(異父兄)인 응신천황(백제 계왕의 후손; 신공여황의 전남편, 중애천황의 아들.)이 통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384년 여름 중국으로 들어온 여기, 즉 중평제황은 가야부인을 동반하였던 것이다.


  "황부인(皇婦人)이 드셨습니다."


  가야부인의 시녀가 벽려혼에게 말을 걸어서 돌아보니 이제 18살의 가야부인 김총이 서 있었다. 벽려혼은 그들이 벽려혼과 장영이 나눈 이야기들을 엿들은 것을 알고 씩 웃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엿들은 것을 제황에게 고하면 벽려혼과 장영은 곤경을 치를 것이었다. 역모라고 그들의 목이라도 치려고 하면 동모성벽을 넘어 청주까지 날아가야만 할 것이었다. 장영은 등골이 시려웠다. 그런데 황부인은 그들의 반역스런 말을 못들은 척하였다.


  "네가 청주자사 벽려혼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황부인."


  황부인은 벽려혼을 뜯어보았다. 백발백미인데 야성적으로 보였다.


  "벽려혼은 이미 결혼했다고 들었다. 첫부인은 친나라 공주이고 그리고 또 백제 공주와 결혼한다지?"


  "그렇습니다."


  벽려혼은 그 말밖에 할 것이 없었다. 벽려혼은 장영에게 눈짓하고 내원에서 물러 가려는데 황부인이 말했다.


  "따라 오너라."


  청운검 장영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황부인이 돌아보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제군태수 장영입니다."


  황부인은 장영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장영은 미소년같은 얼굴이었다.


  "장영은 성혼을 했느냐?"


  "아직 미혼입니다."


  "그럼 잘됐구나. 너도 따라 들어와라."


  황부인이 앞장서서 내당으로 들어갔다. 벽려혼과 장영은 황부인을 따라서 동모성의 내전으로 들어갔다. 낯선 곳이므로 벽려혼과 장영은 내원의 이곳저곳을 눈길로 살폈다. 다음에 이어진 황부인의 첫마디는 두 사람을 난감하고 창피하게 하였다.


  "남자애들은 말이야, 도통 씻는 것을 몰라."


  벽려혼과 장영은 각자 자기 성에서 몸을 씻었지만 이틀을 말을 타고 동모성으로 달려왔고 그 후 씻을 곳도 마땅히 없었고 몸에 땀냄새가 났다. 그래도 한겨울인데 정말 땀냄새가 나는지 서로 킁킁거렸다. 장영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고 벽려혼은 황부인 탓을 하였다.


  "나는 못맡겠는데 황부인께서 예민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황부인이 초승달같은 아미를 찌푸렸다.


  "얘들아, 이쪽은 제왕 벽려혼이다. 그런데 좀 깨끗이 씻겨야겠다. 백발백미백염이라고 들었는데 눈밭에서 뒹굴다온 누런 강아지처럼 보이지 않니?"


  벽려혼이 코를 꿰인 황송아지처럼 얌전하게 황부인과 시녀들을 따라 두 사람이 들어선 곳은 황부인의 욕실이었다. 내전 욕실의 나무 욕조는 상당히 큰 것이었다. 이는 중평제황이 왜국에서 쓰던 것과 똑같이 만든 것으로서 향나무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향나무 욕조 안에는 황부인의 여동생인 가야공주 김란이 옷을 다 벗고 목욕중이었고 다른 시녀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도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향나무 욕조 안에 더운 물을 한 번 채우면 황부인이 먼저 씻고 다음에 여동생인 김란이 씻고 또 시녀들이 씻은 후에 물을 버리는 게 보통이었다. 가야공주 김란은 목욕 중에 황망히 몸을 가리려고 물 속에 다시 들어갔는데 물에 노란 유황 향유를 타서 몸은 보이지 않았다.


  "란 공주가 있었구나. 여기 이 사람은 청주자사 제왕 벽려혼이니 란 공주, 네가 깨끗이 씻겨서 내보내라. 그리고 이쪽은 제군태수 장영이다. 마찬가지로 깨끗이 씻겨라."


  황부인은 향나무 욕조가 바라보인 대나무 의자에 의젓이 앉았다. 벽려혼과 장영은 김란 공주의 여체를 보지 않으려고 급히 황부인 쪽으로 돌아섰다. 이때 시녀들이 두 사람의 양 팔을 잡았다.


  "전하, 옷을 벗으시게 도와드리죠."


  "잠깐, 잠깐. 나 이대로 돌아서서 있을 테니까 저기 저 공주가 옷을 입고 나가면 그때 시작하지. 그리고 난 아무도 안 도와줘도 혼자 씻을 수 있어."


  벽려혼이 시녀들의 손을 뿌리치고 나가려는 찰나에 가야공주 김란은 욕조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욕조를 나왔다. 그녀는 몸을 가리기 위해 옷을 찾아 입기는 커녕 알몸인 채로 물방울이 상큼하게 매달린 싱그러운 몸매로 버티고 서서 벽려혼과 장영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고놈, 산도적 같이 생겼네. 빨리 벗어 봐."


  이제 15살의 가야공주 김란은 약간 검어보이는 갈색 피부지만 아주 매끄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길고 굵으면서 삼단처럼 윤기있는 검은 머리카락이 가슴을 지나 허리까지 내려왔는데 허리는 잘록하고 가슴은 영양이 좋아서 동그랗게 융기하여 유방은 뾰족하게 치켜올려져서 매끄럽게 빠진 세모 모양이었고 치모는 아직 가는 솜털로서 엉성하였다. 그리고 눈썹은 넓고 긴데 그녀의 길고 가는 눈매는 웃음을, 아니 교태를 머금고 있었다. 코도 오똑하고 입술도 길었는데 입술은 얇아서 살짝 바깥으로 벌어졌고 그 사이에 하얀 이가 고르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 앞에서 벗은 몸을 드러내고 용감무쌍한 것이 15살 소녀 답지않게 남자를 이미 잘 아는 것이었다. 청운검 장영은 자기가 부끄러워서 눈을 돌렸다.


  "내가 벗겨 줘?"


  김란은 벽려혼에게 다가와 그의 장갑을 먼저 벗겼고 발밑에서는 시녀들이 그의 장화를 벗기고 있었다. 벽려혼은 황부인과 김란, 장영 앞에서 알몸이 되어갔는데 바지가 먼저 벗겨지자 김란이 소리를 질렀다.


  "야, 제황보다 크다."


  그제서 벽려혼은 그 소녀를 여자로 만든 것이 중평제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들 그의 물건에 집중한 사이에 벽려혼는 치우갑을 벗어서 내리고 겨드랑이 치우손을 등뒤로 숨긴 채로 뒷걸음쳐서 욕조 속으로 들어갔다. 무엇보다도 그의 용비늘을 숨기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이다. 잠시후 시녀들이 욕조 속으로 손을 넣어 그의 몸에 비누를 칠하고 씻기기 시작했다. 비누도 왜국 화산 온천에서 가져온 노란 유황 가루를 섞어만든 비누였다. 벽려혼을 씻기는 도중에 김란이 아직 알몸인 채로 욕조 옆에 다가와 쪼그려 앉아 한 팔을 욕조에 괴고 벽려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손을 불쑥 욕조 속으로 넣어 그의 물건을 만졌다.


  "어휴."


  "음"


  두 사람은 탄성과 탄식을 내질렀다. 벽려혼는 정신이 멍멍하였다. 가야공주 김란은 아직 유부녀가 아니지만 그래도 유부녀처럼 전혀 부끄러움이 없지만, 이미 황부인이 된 가야공주 김총은 무슨 맘으로 자신이 목욕하는 것을 대나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빤히 지켜보는지 알 수 없었다. 여동생인 김란을 자신에게 맺어 주려고 하나?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아무튼 장영은 다시 고개를 돌려서 벽려혼이 목욕을 하는 것을 넋을 잃고 보았다. 아니 그보다는 그 옆에 있는 김란의 몸매를 훔쳐보았다. 그런데 잠시후 장영의 뒤에서 황부인 스스로 옷을 벗어 내리기 시작하였다. 황부인의 화려한 의상은 사실 별 것이 없었다. 겉으로는 짙은 붉은 색의 비단이지만 몸의 굴곡이 잘 드러나는 것이 얇은 비단옷이고 그 안에 받쳐 입은 것도 없었다. 아무리 겨울이지만 그까짓 추위가 여자의 몸매를 드러내는 본능을 덮을 수 없었다. 따라서 옷을 벗는 것도 단지 매미처럼 한꺼풀 벗어내리면 그만이었다.


  벽려혼이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앞을 쳐다보니 장영도 따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황부인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이었고 천천히 욕조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18살의 김총은 동생 김란과 비슷한 갈색 피부이지만 밝은 갈색이었는데 이는 가야 궁실이 서남아시아의 아유타국에서 비롯된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생과 그녀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로서 머리카락이 전혀 달랐는데 김총의 머릿결은 가늘면서 윤기있었고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는 숱이 많아서 넓게 퍼져있어서 얼굴이 환하게 드러나고 눈썹은 길고 눈도 크고 흰자위가 길었다.


  눈두덩도 크고 움푹 패인 것이 겁이 많아 보이지만 전형적인 인도 미인의 눈이었다. 또 그녀의 입술은 약간 도톰하면서도 입이 컸고 그의 코 앞에 진수성찬처럼 다가든 황부인의 유방은 둥글게 솟아올라 터질 것처럼 두드러졌고 그 아래로는 비단결같은 미끈한 몸매로 이어졌는데 벽려혼과 장영은 도무지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여기가 어딜까? 중국 대륙속의 전설속의 별천지? 도화선경인가?


  "너, 내 아들을 삼고 싶다."


  황부인 김총이 말했다.


  "아들? 그럼 돌아가신 우리 선왕의 부인이 되시려고?"


  벽려혼이 엉뚱하게 묻자 황부인이 노하였다.


  "내가 왜 죽은 사람을 책임져? 그냥 너 하나만 내 양아들을 삼는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나는 어미 없이 태어났소이다. 아니 어미 배를 찢고 어미를 죽이고 태어났지. 살모사처럼."


  벽려혼은 흑호루 강변에서 부서져버린 목선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살모사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황부인 김총이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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