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치우동의 수련 - 2
"치우의 후인이여, 고통스러 견딜 수가 없거든 포기하고 치우갑을 가지고 떠나라. 청석을 뒤집으면 쑥이 있으니 배불리 먹고 기운차려서 떠나도록 해라. 방."
이것은 유방이 처음 이곳에 들어와서 맛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알 수 있는 글이었다.
"삼칠일이 지나면 청석을 세워 놓고 대주천을 하면서 청석을 바라보아라. 대주천이 끝났을 때 눈을 떠서 청석을 보면 머리 위에 마늘 하나가 생겨난 것이 비쳐지리라. 그것이 허극정생의 경지이다. 궁."
한고조 유방의 글은 병을 주고 태조대왕 고궁의 글은 약을 주는 것일까? 여비는 다시 치우의 글을 만났다.
"[정극지만(精極智滿)]은 천부경 81자를 물속에서 수련하는 것이다. 샘물에 거꾸로 처박혀서 전신을 물속에 담그고 삼칠일간 대주천을 계속하라."
"껍질이 홀랑 벗어지는 아픔이 있을 것이다. 방."
"온천물에 살결이 고와져서 여자들이 무수히 따를 것이다. 궁"
치우의 유지는 간결하였다. 그러나 물속에 숨도 못쉬면서 21일간 거꾸로 처박히는 일은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아무튼 여비는 쑥을 한줌 씹어 먹고 나서 시키는 대로 샘물 속에 거꾸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숨이 막혀서 오분도 안되어 다시 벗어나왔는데 거꾸로 바져나오는데 만도 몇분이 걸렸다. 그러나 다시 들어가서 물 속에서 5분씩 대주천을 계속하고 나와서 일분 쉬고 또 들어가니 하루가 쉬이 가버렸다. 일주일이 지나자 이번에는 피부가 물에 퉁퉁 불어서 껍질이 벗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유방이 말한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주일쯤 되자 거의 모든 피부가 벗겨져 나가고 붉은 속살만 남아 몸시 쓰라렸다.
여비의 살거죽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 물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십일이 되자 손바닥, 발바닥의 껍질 마저도 훌렁 벗어져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숨막히는 것이 사라졌다. 그가 먹은 쑥으로부터 뱃속에서 공기가 만들어져서 폐부로 들어가는지 전혀 숨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몇시간이고 물 속에 박혀 있다가 나와서 다시 쑥을 먹고 들어갔다. 얼마후 쑥에서 시원한 기운이 폐부로 옮겨가는 것을 느꼈다. 쑥에서 공기가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은 눈으로 볼 수도 있었다.
쑥을 먹고 물 속에 들어가면 뱃속에서 만들어진 공기가 먼저 경혈을 타고 살갗 밖으로 새어나와 얼굴과 물 사이에 얇은 공기층이 만들어져서 쓰라림이 없어졌던 것이다. 결국 쑥을 다발로 삼키고 여비는 물 속에 거꾸로 들어가 대주천을 스물네 시간 계속하였다. 손바닥이 간질거리더니 손바닥 껍질마저 벗어지고 발바닥 껍질도 벗겨져 버렸다. 그리고 양 발바닥의 용천혈(龍泉穴)에서 실같은 연기가 새어나와 샘물 위에 거품을 터뜨렸다. 그 거품 터지는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물 속에서 울려서 여비는 눈을 뜨고 물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정극지만(精極智滿)]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여비는 하루를 푹 쉬었다. 아직도 언제 수련이 끝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여비는 서둘러 다음 네 번째 죽간을 펼쳤다.
"[허극정생]은 공기로서 정기를 모아 단전에 쌓는 것이고 [정극지만]은 음식에서 정기를 빼어 공기로 만드는 역과정이다. 다음의 [지극덕융(智極德隆)]은 이제까지 네 몸 속에 샘물로 축적된 수기(水氣)와 쑥으로 축적된 목기(木氣)에다가 새로이 금기(金氣)와 토기(土氣)를 심어 하나로 융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는 사금(砂金)을 매일 정오에 한종지씩 먹고 사금이 하초에 이르면 단전의 진화(眞火)로서 녹여서 네 몸 속에 용해하여 흡수하는 것인데 일년간 수련하면 입술이 금빛으로 변하고 피부는 백자의 빛으로 변한다. 출관하면 즉시 [지극덕융]의 연마를 시작하도록 해라. 그후로는 대주천시에 백회혈을 통하여 오색의 꽃이 세 개가 피어나고 용천혈을 통하여 두 개가 피어나니 이를 오기조원의 경지라고 한다. 궁."
여비는 [지극덕융]이 치우의 것이 아니라 태조대왕이 만든 내공심법의 기록인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동굴 속에서 당장 내공의 완성을 이룰 수가 없으므로 다섯 번째 죽간을 펼쳤다.
"이제 투구와 취운검을 가지고 출도하라."
여기까지가 치우의 진전이자 보물이었다. 여비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마침내 동굴을 나가는구나. 그러나 뒤에 유방의 글이 이어졌다.
"샘물 바닥에 투구가 들어 있고 그 안에 장화가 들어있으니 역시 천잠사와 교룡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 너의 다리를 보호할 것이며 장갑도 있으니 너의 팔을 보호할 것이다. 가죽 장갑과 가죽 구두로서 치우권각법을 연마하라. 치우권각법은 무예의 근본이니 소홀히 하지 말 것이다. 권각법의 첫 번째는 [응지무강(應地无疆)]이니 땅을 쳐서 입지를 단단히 하라. 두 번째는 [이상견빙(履霜堅氷)]이니 서리 같은 눈빛으로 적을 쏘아서 적의 눈을 얼음처럼 굳게 하라. 세 번째는 [직방대(直方臺)]이니 육방(六方)을 차례로 쳐나가라. 사방은 권으로 이방은 각으로 치는 서른 여섯가지 동작이다. 네 번째는 [함장가정(含章可貞)]이니 머리의 투구로서 적의 급소를 치는 일곱가지 방법이다. 다섯 번째는 [괄낭(括囊)]이니 양쪽 겨드랑이 날개로서 공격하는 다섯가지 방법이다. 여섯 번째는 [황상(黃裳)]이니 소매깃과 바지깃으로 적을 살상한다. 황상은 오기조원의 경지에서 가능하다. 다섯가지 권각법을 수련하고 마치는 데에는 열흘이 걸린다. 방."
유방도 치우가 남긴 내공심법에 맞게 권각법을 개발하여 여기에 남겨놓았는데 따로 이름하지 않고 치우권각법이라고 하였다. 교룡 장갑은 팔을 보호하고 또 권법의 위력을 증가시켰는데 손가락의 바깥 두 마디가 장갑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고 팔뚝은 끈으로 조이게 되어 있어서 그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라도 찰 수 있었다. 장화도 장단지를 보호하도록 끈으로 조이게 되어 있고 바닥은 철판이 박혀 있었는데 가죽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구리로 만든 치우의 투구를 쓰고서 공격하는 다섯가지 권각수련을 마치고 여비는 여섯 번째 죽간을 펼쳤다.
"무기의 첫째는 검인데 반드시 맨 손으로 취운검(聚雲劍)을 뽑아라. 취운검을 운용하려면 천부경 81자의 내공심결을 써야 한다. 그리고 앞 굴에서 그림으로 본 [허이청교], [정이결구], [지이이물], [덕이제인], [개물교화] 다섯 초식을 사용하라. [개물교화]에 이르려면 벼락이 치는 날, 높은 산에 올라야 한다. 그런 다음 [무라구모](취운의 우리 고어; 모여라 구름이라는 뜻.)를 외치면 벽력진기가 취운검의 검신에 준비된다. 사방에서 구름(雲)이 모여들어(聚) 벼락이 취운검의 칼 끝에 모여지기를 기다려 벽력기를 검신에 충분히 간직하여야 한다. 그러나 [개물교화]는 오기조원의 경지에서 가능하니 여기서는 [개물교화] 이전의 사초식 검법만 익혀라. 궁."
여비는 시키는 대로 맨 손으로 취운검을 잡았다. 그런데 취운검이 바위 속에 단단이 박혀서 쉽게 뽑히지를 않았다. 태조대왕이 꽂은 것이니 도로 빠져 나와야 마땅한데. 여비가 한나절 이상 취운검과 씨름하면서 끈질기게 내공을 운용하니 손바닥이 검자루에 박히듯이 달라붙으면서 취운검이 부르르 떨었는데 어느새 검자루를 쥔 손바닥에서 붉은 피가 나기 시작하여 검자루 안으로 피가 흘러들어갔다.
"그래, 내 피를 빨아먹고 싶어서 맨 손으로 뽑으라고 했군. 실컷 빨아먹어라."
여비는 다시 정신을 통일하고 내공심법을 다시 외우며 검을 뽑았는데 검이 부르르 떨기만 할 뿐 바위에서 빠지지 않았다. 여비는 손을 바꾸어서 잡았는데 역시 왼손바닥에서도 피가 나기 시작하여 검자루 속으로 피가 배어들어갔다. 검자루가 울긴 우는데 빠지지를 않으니 포기할 수도 없고 여비는 양 손으로도 잡아보고 하루 종일 검자루에 매달려 피를 흘렸다. 그런데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취운검으로부터 300 년간 굳어있던 검은 피가 거꾸로 올라오는 듯했다.
단목(檀木)으로 만들어진 검자루에 녹아있던 치우와 유방과 태조대왕의 말라붙은 검은 피가 녹아서 여비의 손바닥을 타고 여비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세 기운은 서로 다르게 각각 그의 경락 경혈을 파고 들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돌제단이 부서져 벌어지고 취운검의 검신이 드러났다. 검신은 넉자 정도 길이였는데 그의 붉은 피로 물든 것이 마치 혈운(血雲)처럼 아롱졌다. 검자루를 타고 들어간 그의 피는 검신에 배어들어갔던 것이다. 쪼개진 바위 틈에서 두 선인의 쪽지가 나왔다.
"너는 내 피를 받았으니 이제 내 자식이다. 내 피 속에 들은 일갑자의 내공이 너의 유중혈(乳中穴; 젖꼭지)에 들어갔다. 너의 유방이 먹음직하게 커질 것이다. 방."
한고조 유방의 선물은 두 유방(乳房)이었다. 여비가 가슴을 만져보니 전보다 불룩해졌다. 그래도 여자로 보이지야 않겠지. 여비는 계속 읽어나갔다.
"너는 운이 좋다. 치우 환웅의 일갑자의 내공이 수소음심경을 통하여 너의 극천혈(極泉穴; 겨드랑이 한가운데) 속에 들어갔다. 따라서 너의 두 팔은 물론 치우의 날개가 자유자재로 힘을 쓸 수 있다. 또 나의 일갑자의 내공은 족소음경의 용천혈(湧泉穴; 발바닥)에 들어갔으니 너의 두 다리를 지켜 줄 것이다. 세 사람의 삼갑자 내공은 너의 진신 내공이 삼갑자에 이를 때에 너의 삼갑자의 내공과 합쳐져서 육갑자의 내공이 될 것이나 지금은 서로 합쳐지지 못한다. 궁."
세 선인의 내공이 내 내공과 합쳐지지 않으면 영원히 따로 놀겠군. 팔 따로, 다리 따로, 유방 따로? 여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마치 아교처럼 손바닥에 달라붙은 취운검으로 허이청교부터 익혀나갔다. 이미 신법은 앞굴에서 배운 바가 있어서 검법만 보충해서 익히면 되었다. 여비는 일곱 번째 죽간을 펼쳤다.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은 들어온 길을 거꾸로 나가면 된다. 유황천의 폭발 때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유황물이 범람하면 함께 나가라. 온 몸에 흙을 바르고 교룡의 가죽으로 만든 치우갑으로 연약한 곳을 보호하고 나머지는 전신 내공으로 보호하면 된다. 방."
"이제 스스로 자강불식(自强不息)하며 만인에게 후덕재물(厚德財物)하라. 궁."
여비는 취운검을 들고 투구와 장갑을 쓰고서 굴을 거꾸로 빠져나갔다. 여비는 등용문의 동판을 밀어내고 다시 유황천이 흐르는 동굴 입구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다시 나온 동굴 입구의 모습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벽려울의 시체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 동굴 안에 들어온 것이다. 여비는 흥분되었다. 여비는 이곳에서 또다른 산 사람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다.
"누구에요?"
"어디 있나요?"
그러나 여비의 목소리는 동굴 안에서 자기 혼자 메아리쳤다. 어떤 대꾸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비는 직접 찾으러 나섰다. 이곳저곳을 잘 찾아보니 벽려울의 시체는 멀지 않은 어두운 구석 동굴에 두 발만 내놓고 처박혀 있었다. 그러나 또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