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산채의 결전 - 3
두 사람은 친나라 관군들을 뚫고 후미로 가서 현령 부종을 만나고 셋이서 함께 배후를 막고 있는 흑천왕을 마주 보았다. 그 옆에는 장천왕이 새로운 장창을 들고 서 있었다.
"어서 오게. 저승사자가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다네. 그리고 내 옆에 계신 분은 그대들을 판결할 염라대왕이시라네."
왕통의 처음 생각은 어제 장천왕과 공천왕을 상대할 때처럼 사부가 사대천왕 중의 둘을 막아주고 자신이 둘을 막으면 나머지 이천 명의 관군으로 산채를 점령할 계획이었는데 사부가 사대천왕 하나를 이기지 못하니 계획이 틀어졌다. 그러니 앞에 있는 염라대왕이라는 흑천왕도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 이번에는 병법을 쓰지요."
"어떻게?"
"부종과 그의 군사로 흑천왕의 산적들을 먼저 치게 돌격시키고 어지러운 틈에 우리 군사로 퇴로를 열어서 후퇴하는 것입니다."
결국 부종이 그의 불기현 관병들로 하여금 죽을 각오로 흑천왕 쪽에 덤벼들게 하였다. 그런데 흑천왕의 산적 부하들은 오합지졸이고 관군은 정예병인지라 비록 산적들이 유리한 위치를 미리 잡았지만 관군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흑천왕과 장천왕은 앞으로 나서며 관군들을 상대로 분전하여 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때 곧 종리가 다시 나서서 흑천왕을 찾아 공격하였고 왕통도 장천왕을 상대하였다. 그러다보니 다시 숫적으로 우세한 관군이 산적들을 쉽게 밀어내며 불기산 밑으로 퇴로를 뚫기 시작했다.
이때 싸움을 구경나온 여비와 홍학검을 잡은 사비공주가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은 후퇴하는 관군의 선두를 다시 막았다. 사비공주는 일단 홍학검에 피를 묻히자 눈깜작할 새에 수십 명의 관군을 베어 다시 관군을 계곡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사이에 여비는 불기현 현령 부종과 마주쳤다.
"이놈, 초선의 한을 갚아주겠다."
여비는 쌍절곤으로 장검을 든 부종에게 덤벼들었다. 종리와 흑천왕의 싸움은 체력에서 앞서는 흑천왕이 무쇠지팡이로 종리를 몰아부쳐 혼달구고 있었다. 그러나 왕통은 백지 한 장 차이로 장천왕을 능가하여 장천왕의 창법이 어지러웠다. 그 모습을 보고서 사비공주가 검을 들고 뛰어들어 장천왕을 대신하였다. 사비공주는 왕통과 맞서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장천왕은 물러나서 숨을 돌리자 여비를 도왔다.
어제 산 아래 숲속에서 부종에게 화살 세례를 받았던 장천왕이라서 부종에게 조금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장천왕의 장창이 마침내 뒤쪽에서 부종의 허벅지를 뚫었고 부종이 비명을 지르고 다리를 꿇자 여비의 쌍절곤이 무정하게 부종의 머리를 찌그러트렸다. 여비로서는 첫 번째 살인이었다. 여비는 쌍절곤도 이렇게 무정할 수가 있구나 살펴보았다. 사실 무정한 것은 쌍절곤이 아니라 초선 낭자에 대한 여비의 복수심이었다. 여비는 사람을 죽이고 나자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여비는 다시 쌍절곤을 어깨에 메고 눈 앞에 사비공주가 왕통과 싸우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장천왕은 기세를 몰아서 관군의 선두를 치러 내려갔다. 한편 독천왕도 결전의 함성을 전해듣고 관군의 후미를 공격하여 쳐내려왔다. 마침내 관군들이 하나 둘 씩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흑천왕의 왼손에 든 무쇠지팡이가 마침내 왕통의 사부인 종리의 가슴을 찔러 거꾸러트렸다. 종리는 갈비뼈가 부러져 우그러지자 입으로 피를 쏟으며 눈을 감지도 못하고 급사하였다. 왕통은 사비공주와 막상막하였으나 이미 관군의 전세가 기울어버린 것을 알고 있었다.
"이놈.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사비공주가 투항하라는 말을 던지자 왕통은 생각했다. 사부 종리도 죽었고 청주자사의 아들 부종도 죽었다. 자기가 끝까지 남아 그들을 따라 죽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자기가 죽으면 언제 다시 아들 왕손의 복수를 할까? 왕통은 즉시로 몸을 빼더니 산을 내려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사비공주는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마침내 관군을 이끌고 온 왕통이 먼저 도망가자 머리를 잃은 나머지 관군들도 항복했다. 이미 전사한 관군이 삼백여 명이었고 삼백여 명은 도망쳐버렸고 나머지 천사백의 관군은 모두 항복하였다. 산채의 식구도 어느새 이백 명이나 전사하였으므로 불기산에는 계곡마다 피냄새가 진동하였다.
한편 백제의 수병을 실은 배들이 청도 뒤에 숨어 있다가 청도를 돌아서 불기현 포구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열 척이 먼저오고, 뒤이어 열 척이 다시 오고 그 뒤를 이어 스무 척이 오고 다시 열 척이 들어와 모두 오십 척이었고 그 배에서 철갑을 두른 백제 수병 이천명이 내렸는데 아주 잘 조련된 병사들이었다. 불기현성을 지키던 장광군 태수 위창은 외적이 침입할 것은 짐작도 못했다가 낯선 병사들이 성문 앞으로 들이닥치자 자신의 천여 병력만으로 대적하기에는 어려우므로 불기현의 성문을 닫고 버텼다.
외적이 침입했다는 봉화를 피워 올린 뒤에 망루 위에서 위창은 백제군의 상륙을 눈뜨고 바라만 보면서 시간을 끌어 불기산으로 몰려간 관병들이 돌이오기를 기다렸다. 백제 함대의 선발대가 성문 앞에 다 도착할 무렵 백제군의 석성왕 여귀(餘歸)와 통역이 말을 타고 나타나서 장광태수 위창에게 불기성의 성문을 열도록 하였다. 위창은 멀리 불기산을 바라보았지만 불기현의 관군들이 돌아오는 기색이 없었다. 우선 백제 대군을 맞아 기가 질린 위창은 백제군이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고 위기를 모면할 심사였다. 위창은 불기현의 부성주 장화(張和)를 먼저 성문 앞으로 내보내 영접하며 시간을 끌게 하였다. 태수 위창은 본래 동래에서 온 인물이었지만 부성주 장화는 불기현 사람이었다. 장화는 여귀에게 물었다.
"나는 불기현의 부성주 장화요. 그대들은 대관절 누구시오?"
"우리는 백제군이요. 본왕은 백제 대방왕의 아들 석성왕 여귀라고 하오."
"그런데 백제 왕자가 본국에 어찌 들어오셨소?"
"우리는 17 년 전에 연국과 수교하러 사자로 왔다가 억류된 백제 사비왕 여울 황숙을 찾으러 왔소."
"아하, 그러시구료. 그렇다면 우리를 치러 온 것이 아니라 백제의 사신이었던 여울을 찾는다는 말씀이오?"
"바로 그렇소."
장화는 여울에 대하여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백제군들이 여울을 영접하러 온 것이라면 비록 성밖에 진을 쳐도 성을 공격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제군이 남쪽 동진으로부터 구원군의 파병을 요청 받고 들어온 것은 짐작하지 못했다.
"백제 왕자 여울은 연나라 폐황제인 모용위가 산기시랑이라고 관직을 주고 억류했었소. 그러나 우리 대친(大秦) 황제와는 아무 원한이 없소. 모용위의 치하에서 고구려 인질들과 함께 봉기하여 연나라 수도 업성의 성문을 열고 우리 친나라 황제를 맞이하여 포상까지 받았소."
여귀도 이미 그간의 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곡절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왜 사비왕을 돌려보내지 않았소?"
"그건 모르오. 본인이 돌아가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니오?"
"그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내 스스로 사비왕을 면담하여 알아낼 것이오."
"그렇다면 같이 온 백제 군대를 끌고 장안성에 달려가서 면담을 청하시오."
부성주 장화는 사실 기천 명의 백제 병력이 현성에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장안까지 쳐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므로 호기를 부렸다. 석성왕 여귀도 더 이상 객기를 부리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면서 소식을 듣고 싶소. 그러니 우리가 성밖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동안 군량을 공급해 주시오."
"그야 장광태수만 허락하신다면. 그러니 내가 성안으로 들어가 태수와 상의하고 돌아오겠소."
백제군은 단지 군량을 달라고 한다. 안주면 현성을 부수고 약탈할 기미이다. 장화는 그대로 태수 위창에게 보고하였다.
"옳지. 먼저 양식 거리를 내주고 술도 진탕 먹이자. 안주거리로 고기도 충분히 내주어서 위로한다 하고 시간을 끌어보자구. 봉화가 이미 올랐으니 장광군, 동모군에도 외적이 침입했다는 소식이 갔을 것이야. 불기산에 쳐들어간 관군들이 먼저 보고 곧 돌아올 수도 있구. 반나절만 버텨보면 수가 날 것이다."
위창 장광태수는 즉시 먹을 쌀과 고기 그리고 술을 내어 성 밖에 포진한 백제 진영에 보내도록 하였다. 한편 백제 진영에서는 대방왕 여계와 그의 아들 여귀 말고도 사비왕 여암이 상륙하여 해안에 포진하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여계는 근초고제황의 아들이고 여암은 근초고제황의 장자인 사비왕 여울의 아들이니 두 사람은 숙질간이었다.
"황숙, 왜 당장 불기현성을 깨트리지 않는 것이지요?"
젊은 여암이 묻자 여계가 대답했다.
"신중해야 한다. 여기는 이역만리다. 당장 승기를 잡을 수 있어도 끝까지 이길 수 없다면 너를 따라온 모든 백제인들을 이역만리에 묻어야 한다. 그들이 결국 모두 죽어버린다면 중원 사람들을 몇 배로 더 죽여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럼 왜 상륙했습니까?"
"그야 약탈을 하지 않고도 식량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 일단은 화평해 놓고 그리고 싸울 수도 있는 것이지만 먼저 싸움부터 해놓고 다시 화평할 수는 없지 않느냐?"
사비왕 여암은 당장이라도 불기현성을 쳐서 전쟁을 일으키고 몸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단지 젊은 혈기로 그러지 말라고 노회한 대방왕 여계가 백제군의 군통수권을 받아와서 지휘하는 것이었다.
"그럼, 황숙의 계획은 뭐지요?"
"우선 불기산 산채의 전황을 보자. 거기서 친나라 관군들이 별 피해없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그들과 싸우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가 지금 불기현성을 쳐버리면 당장 돌아오는 관군들과 맞서서 싸워야 하고, 설령 이기더라도 전력에 손실을 입을 것이고 그러면 장기적으로는 좋은 날을 장담할 수 없다. 즉 너나 나나 객지에서 멸망하는 것이다."
"그럼, 당장 현성을 때려부술 필요는 없다는 것이군요."
"그러니까 관군들이 산채에서 돌아오면 관군들과 화평하고 형님 소식이나 들어본 후에 동진으로 내려가 봐야지. 거기서 동진군과 연대할 길을 모색하는 거야"
"그것도 결국은 동진을 돕기만 할 뿐이지 백제에 무슨 실익이 있어요?"
"전공을 세우면 그만한 보답을 받아낼 수 있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지."
동진으로부터 작은 포상을 받는다면 여계는 만족할 수 있어도 여암은 만족할 수 없는 결과였다. 차라리 몇십명의 군졸을 이끌고 오는 사신으로서도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암은 산동지방을 약탈해서라도 부왕 여울의 복수를 원했다. 여계와 동진에서 사신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 지방을 약탈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었다.
"만일 산채 도적들이 관군을 이기면?"
"그때는 무척 다르다. 산채가 관군을 이긴다면 이곳의 기강이 흐트러졌다는 증거이다. 즉 민심이 관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이지. 따라서 우리는 부여조선 이래 동족의 해방군이 되는 것이고 또한 산채의 장정들을 우리 병력으로 전환할 수가 있고 때마침 장광군도 비어있으니 장광군까지 쳐서 우리의 기틀을 잡는 것이야."
"그러기를 바래야겠군요."
"장광군도 이곳이나 마찬가지로 민심이 관을 떠나 있을테니까 거기서도 병력을 모을 수가 있다. 그때 백제 수군은 청도 섬에 진을 치고 내가 남아서 본국과 연락하여 지원을 맡고 너는 대륙에서 백제의 선봉이 되어 우리 단군부여의 고토를 수복하는 것이야. 무척 어렵지만 그만큼 보람된 일이지"
"동생 상아(사비공주)가 산채로 갔으니 필경 산채가 이길 것입니다."
여암의 장담은 희망이었고 여계의 바램이기도 했다. 이때 불기성으로 갔었던 석성왕 여귀가 돌아왔다.
"부왕, 형님. 이곳의 백성들은 본래 래이족이라 하여 스스로 살길을 찾아온 데다가 대륙의 여러 왕조도 모두 이민족이니 우리를 보는 빛이 크게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선무하기 아주 좋습니다."
"역시 그랬구나. 그럼 먼저 민심을 수습할 수 있도록 양민에 대한 약탈을 절대 삼가고 군령을 엄히 하고서, 저들 관병으로부터 관군의 군량을 서둘러 공급 받고 산채의 소식을 들어보도록 하자. 너는 계속 현성 앞에서 위세를 보이면서 군량을 받아내라."
그러나 아직 불기현성에서는 군량을 공급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석성왕 여귀를 따라 사비왕 여암이 불기성 앞의 백제 장막으로 올라오니 불기산 어귀에서 먼지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