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79 회 천하의 큰 주인이 나타난다는 예언
"저도 입안에서 말이 나올듯 말듯 하지만 뭐라고 말하기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아무래도... 혹시 커얼친의 공주님들에게 대답할 기회를 드릴테니 한번 말을 해보시지요."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알아맞추라고 하시다니요?"
"황후께서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홍타이지 왕은 평소에도 생각이 막히시면 주위에 아무에게나 마구 묻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저에게 말할 기회를 주셨으니 저도 귀중한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억지로 말을 하겠습니다. 저는, 답이 아니고, 질문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엉터리 라고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대형 활불께서는 힘을 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 이렇게 물으셨는데, 저는 이렇게 바꿔 물어봅니다. 힘을 모으려면 흩어지게 할 짓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요, 그러니 힘을 흩어지게 할 짓이 무엇이냐를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힘을 모으려면 힘이 흩어지게 할 짓을 하지말아라..."
"저저왕비께서는 생각을 아주 자유롭게 하시는군요. 흐음 생각이 자유롭다는 것은 아주 좋은 점입니다만, 더하여 깊게 하는 습관을 함께 해야 진짜로 득을 봅니다. 저는 리그덴 칸이 앞으로 4 년 정도 더 지나도록 힘을 모으게 되는지 아닌지를 보고서 판단하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힘을 모으는 방도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힘을 흐트리는 것도 여러가지이니 나중에 결과를 보면서 판단해보자는 것입니다."
"차하르부의 리그덴 칸은 알탄 칸의 후손이 아니니, 그렇다면 예언은 '활불님께서 치료해준 달라이 라마의 후손이거나 그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천하를 휘어잡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달라이라마 라면 황교의 법주일텐데 전세영동으로 다시 태어나는 분이니 자식을 둘 리는 없고, 결국 그 달라이라마가 인정하는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을 주목해야 하겠군요. 이것은 토번의 라싸에 사람을 보내서 꼭 알아봐야 하겠군요."
"달라이라마가 누구를 인정해주었는지 알아봐야 될 것입니다. 황교와 접촉하고 있는 몽골의 왕족들이 누구일지 궁금하군요."
"그 때에 달라이라마를 치료할 적에 며칠 머물면서 차분히 치료를 했어야 하였는데 치료가 어설펐어요. 그 땐 쇄음수 기운이 숨겨져 있을수 있음을 몰랐어요.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이지요. 웬만큼 가까우면 다시 찾아가련만 왕복 2만 리라 너무나 멀어서 가볼 수도 없지요. 휴우 ~~~"
진원성은 달라이라마를 치료하던 때를 추억해보며, 치료가 미흡했던 점을 안타까워 하였다. 진원성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눈을 잠시 감았다. 이때에 진원성은 달라이라마 4 세가 당시 부상에서 완쾌하지 못하였고 얼마후 부터 다시 앓기 시작하여 몇 년간 혼자서 투병하다가 28 세의 젊은 나이에 운명하였다(서기 1616 년 임)는 것을 이때는 모르고 있었다. 진원성은 당시 통역을 통해서 달라이라마와 잠깐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해내었다.
'법주님께서는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어 금번에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중원에서 오신 활불께서 부처님의 준비해주신 길을 따라와서 목숨을 건져주셨으니 참으로 부처님의 안배(按排)가 오묘하다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다행이라 말씀드립니다. 사실, 하하의 라브랑사원에 계시는 캄바라괸키 라마의 소개로 드레풍사원에 오게 되었습니다만, 그것에 이런 깊은 부처님의 안배가 숨어있으리라 짐작하지는 못했지요.'
'법주님께선 캄바라 라마 이야기를 들으시고,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라브랑사는 4 년 전 불에 탄 이후로 아직도 천막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홍교의 신도들이 자꾸 황교의 영역을 치고 들어와서 신도들의 하소연이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법주님께서는 앞으로 홍교의 괴롭힘이 더욱 심해질 것이나 결국 끝은 좋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법주님의 신변에 닥친 적괴(敵傀)의 손속이 아주 독한 쇄음수라 하는 수법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혹 적괴에 대해서 무엇을 아시는지 여줘봐 주십시오.'
'법주님께서는 쇄음수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들의 뒤에 바로 홍교가 있다고 그러십니다. 다 같이 부처님을 모시는 사람들이 못할 짓을 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말씀하십니다.'
'법주님께서 많이 다치셨으니, 그만 누워 쉬시도록 우리는 물러가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법주님께서 축복의 법문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서 만다라(曼茶羅)를 보아라.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만다라 탕카(불화 佛畵)를 보여드리라 그러십니다.'
(진원성 일행 7 명은 탕카가 걸려있는 다른 방에 와서 만다라 탕카를 보게 되었다. 진원성은 그림의 뜻이 궁금하여 묻게 되었다.)
'이 그림이 무엇을 뜻합니까?'
'이것은 깨달음이 완성되어 우뚝 서있는 신성한 탑(塔 = 제단 祭壇)의 모습입니다. 또 모든 망상을 제거한 후에 남는 본질을 취집(聚集 모아들임)한 형상이라 합니다. 간단히 한마디로 줄여서 마음 속의 연꽃(蓮花)이라고도 하지요. 법주님께서 이 말을 전하고, 탕카를 꼭 보시라 하셨습니다. 다른 말씀은 없었고요. 두려워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지요.'
'깨달음의 완성... 깨달음의 완성이 무슨 뜻인가요? 저는 공부가 부족하여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라마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벌써 사시가 넘어서 배가 고프실테지요. 산문을 나서기 전에 뭐좀 드셔야 합니다.'
'깨달음의 완성이 배가 고프니까 뭐좀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자신이 부처인데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누가 그것을 가르쳐줄 수 있겠습니까? 마음 속에 연꽃이 있다고 믿으십시오.'
진원성은 이말이 달라이라마가 자기를 활불로 인정해주는 한마디 그것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리 속을 스쳐갔다. 진원성은 만다라의 모형이란, 심체에서 일어나는 변화 즉 기체가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것임을 최근에서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깨달음의 완성이란 각원(覺苑)이 만들어지는 것 즉 만다라 그 자체이다. 하지만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야 할 몸이니 무슨 소용일 것인가? (진원성은 후일 몽골족 황교 라마에게서 달라이라마 4 세가 자기에게 치료받은 후 홀로 수련에 들어갔으며, 몇 년 투병을 하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로써 달라이라마 4 세가 인정해준 유일한 사람은 즉 예언에 합당한 천하의 큰 주인은 자기 뿐인 것을 알게 된다.) 마침 눈을 뜨니 홍타이시가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하려는 눈치였다.
좌중은 좀 심각한 이야기를 화제로 하여서인지 분위기가 좀 무거워졌다가 시간이 좀 지나자, 홍타이지는 기분을 전환하고 다시 준비해왔던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은 앞으로 명나라가 산해관을 폐쇄하여 교역이 완전히 끊어진다면 결국 금국은 조선과 몽골과의 무역, 그리고 명국과의 밀무역을 통해서, 이번에 흑응회와 했던 방식으로 교역을 하여 필요한 물목을 얻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몽골이나 조선은 물목이 풍성하지 못하니 량도 적거니와 물목의 질도 나빴으므로 어떻게든 흑응회를 잘 구슬려서 교역을 계속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이것을 위해 홍타이지가 준비한 것은 저저왕비와도 잘 상의하였지만, 가장 효과가 빠른 것은 역시 혼인정책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렇게 한 가족이 되면 서로 말하기에 얼마나 수월한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만일에 그냥 상거래만을 위해 만난 사이라면 아무리 친해진다 해도 이런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수는 없을 것이다.
진원성은 금국에서 혼인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많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며, 자기가 도저히 혼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또 백일승천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으므로, 혼인 요청에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대비책을 가져왔다. 그것은 상대가 혼인 말을 꺼내기 전에, 더 이상의 혼인이 필요 없을만큼 충분히 친해지는 것이었다. 즉 혼인을 요청받으면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더 어려워지므로 선수를 쳐서 그런 요구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홍타이지의 입을 보니 좀 느낌이 달라서 진원성은 얼른 헛기침을 한번 하고 입을 열었다.
"허험... 홍타이지 왕야께 우리가 서로 무역을 잘 해갈 수 있는 맹약을 제안하고 싶습니다만. 오늘 이 자리에 자이상 왕야도 와 계시고, 하나의 가족이 되어 친밀한 분위기가 너무나 마음에 흡족합니다. 저는 홍타이지 왕께서 허락을 해주신다면 의형제를 맺자고 청을 드리겠습니다. 전번에 저저 왕비께서 주신 편지에는 혼인 이야기가 언뜻 비치기도 했으나, 제가 득도를 추구하는 도인으로써 부인을 더 맞아들이는 것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혼인보다 더 좋은 의형제를 맺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어떠신지요?"
"대형활불께서 의형제를 먼저 말하셨으니 저도 그 청을 따르기로 하겠습니다. 혼인 문제로 말할 것을 준비해 왔는데, 다음에 좋은 날이 오면 다시 말하기로 하고요. 진대인은 생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는 갑오년(서기 1594 년임) 생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임진년(서기 1592 년임) 생입니다. 내가 진대인보다 2 년 빨리 태어났군요. 내 생일은 11 월 28 일인데 그래서 공짜로 한 살을 더 먹은 거나 같습니다. 대형활불 아우님은 생일이 몇 월 몇 일인가요?"
"에... 내 생일은, 그게 새해가 된 다음에 얼마 있다가 생일이었는데... 정확한 날자는 모릅니다. 에... 저는 일곱 살 때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어요. 그래서 정확한 날자는 모르고 갑오 년 봄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진 대형활불에게 뼈아픈 과거가 있었구만요."
"그런데 다행입니다. 홍타이지 형과 생년이 달라서 제가 생일을 정확히 몰라도 형과 아우를 정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구만요."
"하 하 하... 대형활불은 역시 활불입니다. 9 월 1 일 가까운 산 위에 제단을 만들어서 나와 진원성 아우가 함께 올라 제단 앞에서 양의 피를 뿌리고 하늘에 고하고 맹세를 하세. 어떤가?"
"예, 형님 좋습니다."
저저왕비가 말했다.
"대형활불님, 그래도 그렇지요. 생일을 정확히 모르면 대충 2 월 1 일이라든가 해서 임의로 정해서 말을 하는 것이 사는 요령이지요, 생일을 모른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울 때가 있을텐데요."
"그것은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제 과거를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더 쉬웠습니다. 사실은 제가 왕비의 편지를 받고 한번 더 혼인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어, 내가 먼저 의형제를 맺자고 선수치기로 마음을 먹고 이 자리에 왔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든든한 형님 한 분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정말이지 좋습니다. 활불님의 진면목을 알게되니 그것도 좋습니다."
"대형활불님, 누구나 많은 여자를 부인으로 맞기를 바랄텐데 왜 그것을 거절하시는 가요?"
"저는 이미 충분합니다. 부인들 숫자가 충분해서요."
"활불아우님은 부인이 모두 몇 명인가요?"
"저는 자이상 왕야의 딸까지 합해서 아홉 명입니다. 아니 열하나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이젠 그만이에요."
"자식들은 몇인가요?"
"아들, 딸, 네 명 씩입니다. 저는 지금 혼인하는 대신에 홍타이지 형님을 모시게 되어서 기쁩니다. 이제 충분히 친해졌으니 일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요동 지역의 정세가 어떻게 될지 좀 궁금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역에도 큰 영향이 미칠 것이고요. 명국과 몽골, 조선국이 주위에 있는데, 그 사이에 가장 약한 세력이 금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될런지요? 여진부족이 누르하치 대칸께서 금국이라고 나라를 세워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