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강책(제7부)

제 071 회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

금박(金舶) 2017. 11. 7. 11:36


"여진족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국은 만성들이 모두 일천이백만이라 합니다만, 여진들이야 고작 일백만이나 아무리 많아도 일백오십만 정도일텐데 우리 조선국은 육 아니 칠백만은 될테니 그것조차 감당못할 리는 없지요."


"여진이 쳐내려오면 백성들이 도망을 칠까요? 맞서서 싸울까요? 조선군병들이라고 있는데 도망을 칠까요? 맞서서 싸울까요? 여진은 지금 정병(精兵)이 육만 명이라 들었습니다. 북에서 쳐내려오면 맞서 싸울 우리 군병은 얼마나 될까요? 저의 생각으로는 맞서 싸우는 군사는 고작 일 이만이며, 나머지는 모두 도망칠 거라 봅니다. 지난 왜란(倭亂)에서도 그랬지만요..."


"고작 일이만... 자 그래서 그 방도란 무엇인가 그걸 들어봅시다."


"저의 의견은 침범을 해오는 외적에 맞설 백성 수를 늘리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백성들 수가 늘면 중원으로 쳐들어가서 중원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병사들을 많이 뽑자는 것입니까? 지난번 호패법을 실시하자는 적당놈들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데, 호패법을 실시해서 군병들을 많이 모집하자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호패법이란 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법을 공정하게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양반이나 지주나 양민이나 똑같이 적용한다면 그게 나쁠리가 없지요. 불공정하게 호패법을 실시하려니 군포(軍布 = 군역 대신 세금으로 내는 면포)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스스로 지주들의 노비가 되거나, 산속으로 들어가서 몸을 감춰버리니 어찌 호패법의 목적이 달성되겠습니까? 즉 무엇보다도 양반과 지주들이 노비를 해방시켜줘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결국은 백성들 중에 양민들의 수를 늘리고 그들 중에서 군병을 뽑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큰 문제이지요. 우리 조선은 백성의 절반이 노비입니다. 그러니 호패법 보다 열배 더 좋은 법이 있더라도 무용지물입니다. 그런데 여진족들은 군병이 되는 것을 아주 명예롭게 생각한답니다. 싸워서 이기면 그 상급이 아주 커서 자기 집안을 그것으로 먹여살립니다. 서로 군병이 되려고 아우성이라 하지요."


"그야 여진 놈들이 야만족이라서 그런 것이지요?"


"말로, 글로, 야만족의 화살과 총탄을 막을 수 있습니까? ... 저는 백성들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바로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입니다. 항민이란 항상 백성입니다. 명나라 백성이 되도 그만, 조선 백성이 되도 그만, 왜국 백성이 되도 그만, 원망도 품지못하는 그냥 노비일뿐이지요. 실제로는 조정의 신료이기도 하고, 오군영 산하의 군병이기도 하고, 저자거리에 상인이기도 하고, 벌판에 농사짓는 농부이기도 하지만 항상 어느 나라의 백성이어도 좋은 백성입니다. 원민은 항민 중에서 항민인 것에 불만이 있으나 어쩌지 못하여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서 살아가는 백성이지요. 이들은 백성 중에 섞여있을 때에도 불평분자가 되며, 시세가 어지러워지면 떼지어 방화하고 약탈하는 도적떼가 쉽게 됩니다. 반란군에 끼어도 잡병일뿐이고 나라에서 불러도 나라의 군병이 될 수가 없습니다. 원민은 항민이 조금 더 깨우쳐서 된 백성입니다. 마지막 호민은 세상과 나라의 형편에 맞춰서 행동을 시작하고, 원민들을 이끌어 호민으로 만들어 자기들을 뒤따르게 하며, 마지막에는 항민들마저 호민으로 점점 바꾸어 나라의 기둥으로 만드는 백성입니다."


"호민이 백성들을 이끌어서 나라의 일을 한다고요?"


"예. 호민이 바로 만성의 중심이고 나라의 중심입니다. 지금 여진의 대금은 호민이 십만 명이고 원민은 일백만 명인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 조선은 호민은 일만 명이고 원민은 십만 명도 못되리라 저는 그리 봅니다. 나머지 육백만 명이 항민이지요. 그러니 여진이 쳐내려오면 그야말로 몽둥이로 두부를 내려치듯 조선은 산산히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임진년 왜란 때에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한양에 도착하기까지 20 여일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보부상(褓負商 = 등짐장수)이 천리 길 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여진이 북에서 쳐내려오면 그놈들은 말을 타고 내려올테니 열흘도 안되서 한양까지 들이닥칠 것입니다."


[허균의 호민론(豪民論)의 요지를 옮겨왔습니다. 조선 시대 인조반정에서 역적의 멍에를 쓴 북인 중에서 마지막 한일합방 때까지 복권되지 못한 사람은 허균 한사람 뿐입니다. 정인홍, 이이첨은 거의 삼백 년 후인 1908년에 신원(伸寃) 복권(復權)되었으나, 허균만은 끝까지 신원복권 되지 못하였고, 1910 년 조선(대한제)국은 영원히 문을 닫았습니다. 그것은 조선 사회의 근간인 지배구조에 대한 도전을 철저하게 응징 하였다는 뜻입니다.]


"흐으...음..."


"제가 말씀드릴 방도란 호민을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원민을 많이 만들어둬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항민의 수를 줄여야 하는데, 그것은 노비를 해방시켜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국이 근본에서 변화를 해야한다는 뜻이며, 이렇게 되면 조선국도 호민과 원민으로 가득해져서 여진도, 왜국도, 명나라도 무섭지 않게 될 것입니다. 호민이란 재산이 너무 많아도 안되고, 너무 적어도 안됩니다. 재산이 너무 많으면 재산이 아까워서 호민이 되지 못하고, 재산이 너무 없으면 사람이 비루해져서 호민이 되지 못합니다. 그저 적당히 재산이 있어서 당당하게 태어나고 자라서 자기 몫을 살아나가는 백성들만이 호민이 될 것입니다. 태생을 구분하여 차별하는 신분사회는 결국 항민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런 배경에서 서얼(庶孼)에 대한 차별 역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방도 말고는 부국강병은 없습니다. 우리 조정 내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위해 주상을 위해 몸바쳐 죽을 생각하는 호민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알수 없습니다. 혹시 관송 대감은 몇 명이나 될지 아시겠습니까?"


"......"


"아까 말씀 하시길, 임진왜란 중 대감께서 6품 사무(事務)를 하고 있을 때에 어전회의에 참석해서 명국과 왜국이 서로 정전(停戰) 화의(和議) 조건을 따지는 일을 말씀하셨지요. 왜국에서는 한수(漢水 = 한강) 이남을 왜국에서 차지하고, 한수 이북을 조선이 차지하도록 하자고 조건을 걸었다는데, 당시에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대감은 왜 한마디도 못하고 입을 봉하고 있었을까요? 당시 선조께서는 신료들을 둘러보며, '경들은 무슨 의견을 말해보라' 하시며 자꾸 대답을 채근하셨으나, 열 몇 명의 대소신하들 중에 한 사람도 입을 여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셨지요. 신하들은 왜 벙어리가 되어 있었을까요? 그때에 관송 대감은 그 자리에서 왜 반대의 말씀을 토로하였습니까?"


"제가 당시에 그런 말을 한 것은 잘 모르고 어려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오늘 교산의 말은 잘 들었습니다만, 다시는 누구에게도 이런 말은 하지 말기 바라외다. 이 말은 유교의 근본을 깨뜨리고 있으며, 조선국을 공중분해시키고 말 그런 내용입니다. 그러니 꼭 내 말을 지키시오. 교산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으니 내가 전하께 한번은 말씀을 올리겠지만, 큰 기대는 갖지 마시구려. 교산, 오늘 교산은 내 부탁을 잊지말아야 하외다. 이게 누설되면 우리 북파는 모두 망하고 전하께서도 망하게 됩니다. 아시겠소? 내 말을 꼭 잊지마시요."


"유교의 근본을 깨뜨린다니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이 오히려 유교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일테지요."


"......"


"앞으로 말하지 않는 대신에 오늘 이자리에서 관송 대감께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말하시지요."


"저는 왜란에 피난을 가다가 처와 아들을 잃었습니다만...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당한 고통에 비하면 정말 사소하다고 할 정도였어요... 한양에서 파천이 있은 후에 한양의 궁궐은 모두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 불은 왜적이 한양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불이 붙어 반이상 타버렸지요. 바로 원민이 불을 지른 것이지요. 백성의 마음은 이미 이반되어 있었으며, 임금이 도망쳤다고 소식을 듣다보니 신분차별과 여러가지의 불만들이 해방감 표출로 바로 폭발하고 만 것입니다. 원민은 억누르면 그 때는 말은 듣지만 억압이 사라지면 바로 적이 되는 것입니다. 호민이 있어 원민을 잘 유도하면, 그것이 참된 백성의 힘이 되고, 나라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총포를 많이 만들어도 총포를 다루는 만성이 호민이 아니라면 총포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허균은 오늘 마지막으로 말하겠다고 하면서 호민에 대해서 자기의 생각을 몽땅 털어놓았다. 이이첨에게 장시간 열변을 토하고 난 후에, 앞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겠다 약속하고 돌아갔다. 이이첨은 허균이 돌아간 뒤로 호민(豪民)에 대해서 장시간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호민을 많이 만들 정책을 해야한다고 말한 허균의 뜨거운 눈빛이 생각이 났으며, 생각할수록 허균의 뜻한 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호민이란 한마디 속에는 지금 조선국을 지탱하고 있는 노비제도와 신분제 사회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생각이 들어있는 것임을 쉽게 알수 있었다. 여진이 침공해오면 현재의 상황에선 막을 수 없으므로 열흘만에 한성까지 적군이 당도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주상과 함께 남쪽으로 파천(播遷)을 해가야 할 것인가? 


이이첨은 바로 하나의 질문을 떠올렸다. 나라에서 모든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부국강병을 추진한다고 해도 과연 성공할 것인가? 부국강병은 정복전쟁을 하자는 것인데, 고생한 보람도 없이 실패할 가능성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이첨은 이제 환갑을 세 걸음 남겨두고 있는 나이였으며, 이미 백년대계를 생각하기에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그리고 늙으신 스승, 래암 정인홍 대감을 생각해보았다. 초지일관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새삼 스승이 존경스러운 분임을 생각하였으며, 자기가 부족한 제자임을 알게 되었다. 래암 스승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먼저 훌륭한 군주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훌륭한 신하가 있어야 한다. 이이첨은 주상전하를 독대하여 허균의 생각을 전하고, 주상전하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기가 먼저 나서서 부국강병을 위해 호민을 만들 정책을 추진하자고는 말하지 않기로 하였다. 즉 주상전하가 먼저 훌륭한 군주가 된다면, 그제서야 자기도 훌륭한 주군을 모시는 훌륭한 신하가 되기로 하였다.


유교는 공자와 맹자의 생각에서 출발하였으며, 모두가 하나의 책을 보고서 공부를 하는데 왜 이리 서로 죽이고 죽고 하는 당파싸움을 하게 되었나? 그것은 바로 재산 때문이라는 것을 이이첨은 오래전부터 뼈저리게 알고있었다. 입으로 무슨 말을 하던 사실 그것은 거짓말인 것이다. 백성을 위한다는 말도 거짓이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면 왕권이 강화되어야 한다거나 신하들이 권한을 많이 쥐어야 한다는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다. 재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노비였으며... 이이첨은 허균의 말이 맞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며, 호민을 많이 만들려면 노비들은 해방시켜주고, 땅도 모두 나눠주어야 함을 인정하였다. 즉 왕이나 신하들이 역시 재산을 줄이고 많은 것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과연 주상전하는 이렇게 하자고 할 것인가? 이이첨은 밤 늦도록 생각하였으나, 불가능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자꾸 기울었다.


이이첨은 허균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칠서지옥(七庶之獄)에서 죽을뻔한 것을, 집으로 찾아와 가랑이 붙잡고 애원하길래 살려주었는데, 이제 자기와 광해왕의 신총(信寵)을 다투게 될만큼 많이 컸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혹시 이게 허균이 주상의 총애를 더욱 받아보자는 술수로 만들어낸 것이지 않는가 의심해보게 되었다. 혼자 상소문을 써서 올리면 전하께서 읽어보실 건데 왜 그렇게 하지않고 날 찾아왔을까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는 자기에게 동의를 구하고 이런 방향대로 나의 의견을 합해 전하를 설득해달라는 것일테다. 그리고 '전하 ! 이것은 허균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주상께 말해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하께서 동조를 하신다면 그 공은 허균의 공이 더 크게 되고, 전하께서 비토를 하신다면 그 죄는 허균과 자기가 반씩 나눠지게 되는 것이다. '허균의 노리는 바가 이것이었군.' 하고 이이첨은 중얼거렸다.


이이첨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았다. 북인에 들어서 광해왕의 심복이 되었고, 그에 따라 이제 치부를 충분히 하여, 과거시험을 보려고 배고픔을 참으면서 글을 읽었던 시절도 마냥 좋은 추억이 되었으며, 지금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런 위치가 보장된다면 나라야 어느 나라가 되면 어떤가? 여진이 내려오면 여진에 붙어서 부자로 살면 되고, 왜국이 올라오면 왜국에 붙어서 부자로 살면 되는, 항민이라 한들 그 누가 욕할 것인가?  


허균의 이야기를 주상 전하에게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될 것인가? 전하께서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꾸중을 내리시면 한마디 그 말로 손해만 보는 것 아닌가? 차라리 이 기회에 전하의 총애를 뺏어가는 허균을 내쳐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것은 말하기에 따라서는 허균을 궁지에 빠뜨리는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허균을 욕하려면 먼저 칭찬을 열 번 쯤 한 후에 욕을 해야 그 욕을 믿어줄 것을 노회한 이이첨은 잘 알고 있었다. 허균의 생각을 주상에게 전하기는 하되 아주 조심해야 하리라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