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55 회 문장(紋章)을 그릴 권리
1 월 18 일 오후 진원성은 해녕총관에게 이번에 낳은 아들을 안기우고, 제남부성(濟南府城) 안에 있는 처가인, 임향주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해녕총관이 자기의 친정 부모를 찾아가 뵙자는 요청을 하였으며, 새해가 되면 신년인사를 하러 가는 것이 관습이기도 하였다. 진원성은 임향주에게 신년 하례를 올렸으며, 준비한 작은 선물을 내려놓았다. 해녕총관은 자기가 아들을 직접 낳은 것처럼 천역덕스러웠다. 친아버지 임향주에게도 자기가 안고있는 것이 자기가 직접 낳은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고 진원성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실 난정의 친부모는 이미 난정의 몸이 상해서 자식을 얻을 수 없으며, 지금 아이는 언니 매옥의 몸을 빌러서 얻은 아들인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모두들 아픈 사연은 그대로 감싸안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자매가 한 남자를 만나서 이렇게 귀결이 되는 것이 숙명 지어진 그런 길인가 하며 받아들인 것이다.
"오, 이 아기가 나의 외손자로구만. 이름을 비(飛)라고 한다고?"
"예, 악비 장군과 같은 이름입니다. 우리 흑응회의 독수리가 되어 하늘 높이 날으라는 뜻도 있고요."
제남부 내에는 흑응회의 발전이 뒤에서 임향주가 도와준 덕분이라는 소문이 간혹 있었으며, 흑응회원들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다소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말 경부터 그런 소문은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정정되어 소문이 돌았다. 새로 소문이 퍼진 염인 이백만 매 구입 건이나 불용지 이만 경 불하 건 같은 엄청난 일은 임향주와 관련 되어져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향주는 남들 앞에서도 진원성을 이제는 제대로 사위라 말하게 되었으며, 사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결국 흑응회가 염인 200만 매를 은자 이백만 량 주고 매입하였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임향주 이렇게 된 과정을 알지 못하였기에 묻게 되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연 이번에 아주 큰 거래를 했다 하던데, 그것은 역시 전에 하남성 순무로 계셨던 분의 소개로 이루어진 것이겠네?"
진원성은 호국통정어사나 심의파, 준갈이족 청랑대 이야기를 할 수는 없기에 얼버무리게 되었다.
"예, 그 어르신께서 주선을 다 해주신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 다리를 놓아 주셨더랬지요."
"자네가 은자 이백만 량으로 염인 이백만 매를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염인이 십 년간 이십만 매 씩 나눠서 소금을 받게 된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예, 아버지도 정확히 어떻게 알고 계셨군요?"
"은자 이백만 량이라니, 아휴 그게 얼마나 큰 돈인가? 도대체 어떻게 그걸 얻었단 말인가? 누구의 심부름이었는가?"
"예, 누구라고 말할수 없지만, 그렇지요. 제가 돈을 맡아 대리해서 행사를 한 것일뿐입니다."
"그럼 그렇지... 자네가 그 많은 돈을 벌수는 없었을테니, 염인 이백만 매에 은자 이백만 량이라면 값이 좀 헐하게 쳐지기는 했지만, 은자 이백만 이라면 그걸로 그냥 소금장사를 나섰어도 일년에 삼 사십만 량을 쉬이 벌수 있을텐데... 무슨 사정이 있었던가?"
"예, 사실은 불용 황지 이만 경을 불하받기 위해서 그런 조건으로 한 것이지요."
"불용전토 황지 이만 경이라. 그럼 그게... 그렇게 조건 지어져서 된 거란 말이지... 그것도 엉터리야. 15 년 후에 세금을 육만 량씩 내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 터무니 없는 세금이지 않겠나 생각하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 둘 중에 하나는 흑응회주 흑대형이 한바탕 당한 것이라고들 한다네. 한바탕 사기를 당했다고 ... 내가 모르는 다른 이면(裏面)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문제는 그렇게 되어야하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쯤만 알아 주십시오."
진원성은 임향주와 반시진 남짓 이야기를 하며 제남부의 유지급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흑응회에 대한 여러가지 소문들이 어떤 것인지 들을 수 있었다. 흑응회는 배후에 나라의 어떤 세력이 있다고 알려졌고 앞으로 더욱 발전하리라 이야기 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진원성은 나름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떠나오면서 속으로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신년하례가 될것이 아마도 확실합니다. 오래오래 안녕히 계십시오.' 돌아오는 길에 진원성은 해녕총관의 얼굴에 나름 만족하는 표정을 보았으며, 본인 또한 인정받지 못하던 형편에서 이젠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다행스럽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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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20 일 진원성은 뜻밖의 편지를 하나 받아보았다. 겉에 쓰인 발신인을 보니 그것은 소주의 휘주회관 이병궐 관주로 부터 온 것이었다. 과거 2 년 반 전에 아린과 하미총관을 데리고 남쪽으로 여행을 갔을 때에 진원성은 소주의 휘주회관 관주님 장원을 찾아 갔었으며, 돌아올 때에도 찾아갔었는데 이관주님 장원은 이관주와 범대인의 실종 사건과 수습 문제 때문에 진원성을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으며, 또 그럴 여유가 없기도 하였음을 기억할 수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흑응회주 진원성 대인께. 새해에는 더욱 회무(會務)도 번영하시고, 댁내에도 만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번 뵈었을 적에는 불측(不測)의 사고에 의하여 선친과 대행수인 범 대인께서 행방불명 되시고 그에 따른 수습 문제로 정신이 없어 모처럼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헛되이 지나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소흘히 대한 것을 마음에 섭섭하게 여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직 기억을 하신다면 그점 너그럽게 해량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흑응회의 비단 필을 수집하고 있는 일에 소주 휘주상단은 흑응회 갈성 대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힘을 더하고 있으며, 약속된 7 월까지 일이 원만하게 마칠 수 있도록 우리 휘상은 더욱 모든 일에 각별하게 주의를 더할 것입니다.-'
진원성은 여기까지 읽고서 혹시 종살이 했던 놈이라 쉬피 보는가 하는 마음 속에 섭섭했던 감을 날려버렸다. 돌아가신 이관주님과 범대인을 생각하면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편지를 더 읽었을 때에는 다른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편지는 이어진다) - 이번 일에 한 팔을 거들고 있는 나유오(羅有五)는 우리 휘주회관과 자주 일로써 만나고 있는 사람인데, 그로부터 한 가지 소식을 듣게 되어, 진원성 대인께 부탁을 드리는 편지를 올립니다. 이번 교역을 하는 미쓰 선수는 과거에 우리 휘주회관과도 비단 거래를 몇 차례 하였던 사람인데, 그 사람의 소개를 받아서 포도아국 사람 미구엘과 도자기를 거래하게 되었다는 말을 나유오로 부터 우연히 전해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차 흑응회 항주지점에 있는 유래타 행수에게 도자기 물량을 예약하는 계약을 하고자 말을 연결하였으나, 이미 월상(越商) 중의 한 곳과 앞으로 일 년간 소출될 자기(瓷器) 전량을 넘기기로 예약하였다, 즉 구두로 약속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서 어쩌면 흑응회 총당에 월상과 계약 하겠다는 요청 서신을 이미 발송하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급히 이 서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우리 휘주상단은 여송국과 오래 전부터 튼튼한 거래 관계를 맺고 있으며, 포도아국은 이미 여송국의 본국인 애소바국에 합병 되었으며, 애소바 왕의 통치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즉 하나의 나라가 된지 오래라는 말입니다. 흑응회 항주지점 유 행수님과 월상과의 계약한 물목은 결국은 우리가 거래하고 있는 애소바국 상단의 누구와 계약이 될 것인 바, 조만간 그 계약이 변경되어 우리 휘주상단과 계약되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월상 중의 그 상방이 어딘지는 모르나 아마도 '마카오'에 있는 누구의 입에서 말을 듣고 욕심을 낸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것은 무엇을 모른 채로 일을 저지른 것일 뿐입니다.
진 대인께서는 자기 접시에 그려 넣어지는 그림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는지요? 그 그림은 애소바 국의 왕과 귀족들의 권리를 표시하는 그림이며, 당연히 왕이나 귀족에게 허락받은 지정된 사람만이 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며, 그림그릴 권리는 여송국의 총독(總督)의 재량에 따라서 결정될 일이라 할 것입니다. 여송국에는 본국인 애소바 국에서 보낸 지배인 총독이 주재하여 왕을 대신하여 통치를 하고 있으며 모든 교역을 감찰하고 있습니다. 미구엘이라는 포도아국 사람은 오랫동안 이국(異國)에 나와 살면서 나라의 상황이 바뀐 것을 모르고, 그저 자기 혼자서 공을 세우려고 일을 서둘러 처리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진 대인께서는 월상과의 계약을 좀 미루어두시고, 전후의 사정을 잘 살핀 후에야 계약하는 것이 나중의 번거로움을 피할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소주 휘주회관 관주 이병궐 씀.'
진원성은 이 편지를 서 너 차례 읽고 또 읽어보았다. 그 다음에 항주지점을 맡게된 조무웅 부회수를 불러서 읽어보게 하였는데, 유래타에게서 오는 편지 중에 월상 중의 누구와 계약을 하겠다는 그런 내용의 편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기다려봐야만 일의 내용을 알 것 같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다음 날 유래타가 보낸 편지가 도착하였으며, 조무웅 부회수와 구찰 부회수가 함께 유래타의 편지를 들고 내장원의 빈청으로 들어섰다.
"대형님, 유래타의 편지가 도착하여 가져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십시오. 유래타가 항주에서 보낸 것은 29 일 만에 도착했는데, 소주 휘주회관에서 보낸 것은 18 일 만에 도착했군요."
"제가 읽어볼 게 뭐 있습니까? 그냥 말을 해주시면 되지요. 참 구 부회수님은 일이 좀 가닥이 잡혔습니까?"
"예, 우선 멀리 있는 염구부터 사람을 뽑아서 방도를 가르쳐주고 출발을 시켰습니다. 당장 2 월 1 일에 염운사사에 얼굴을 보이고 인사라도 하면 좋은데, 운남, 섬서, 하동, 광동, 복건, 사천, 요동은 2 월 1 일은 힘들고요, 양절, 양회, 장로, 산동은 소금량도 많고요... "
"여기 산동 염운사사는 제남부성 안에 청사가 있으니 제일 편하군요."
"염운사사와 각 성의 행정 관할 범위가 다르니 그것을 조정하는 데에 애를 좀 먹었지요. 요동은 물목 량도 적은 데다 산해관에서 어떻게 나올지... 어쩌면 요동 염정(鹽政)은 조만간 폐쇄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요동의 만성 50만 명은 어찌되려나 모르겠는데요. 그 물목 량은 다른 염운사사로 합해질텐데, 제가 회음에 도착하면 바로 알아보고 어떤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요동의 명국 만성이 50만 명이라... 산해관이 막히면 요동은 바로 고립되는군요. 구 부회수님은 몇 일에 회음으로 출발하십니까?"
"내일 출발하려 했는데, 어쩌면 모래에 ... 모래에는 꼭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음의 양회 염운사사에서 2 월 1 일에 모이는 염상 들의 모임에 참석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