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45 회 대한 누르하치의 재가를 얻다
10 월 1 일 회의는 몽골 정세 이야기로 시작되어 흑응회와 교역 문제로 마감을 하게 되었다. 몽골 정세도 중요한 주제였지만, 나라의 물목 결핍 사안은 무엇보다 중요한 의정처의 당면 문제였고, 가장 해결이 어려운 사안이기도 했다. 이 때에는 다이샨이 차기 후계자 물망이었으며, 다이샨은 최소한 의정대신 두 명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다른 한 대신의 호의를 받고 있었다. 다이샨을 지지하는 의정 대신 중 하나는 이 중요한 흑응회와의 교역 문제를 가장 나이어린 홍타이지가 중심이 되어 이끌고 가는 것이 좀 불편하였다. 이 의견이 차기 후계자 물망인 다이샨(누르하치의 2남)의 입에서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란 현재 다이샨의 위치도 굳건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누르하치에게는 늦게 들여온 비첩이 있었으며, 이름이 아바하이(阿巴亥)였다. 이때 아바하이는 누르하치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또 시집오자마자 아들을 연달아 3 형제(서기 1605 년 아지거, 1612 년 도르곤, 1614 년 도도, 아지거는 이미 12 살로 어머니 아바하이로 부터 들은 말이 있었고, 누르하치에게도 들은 말이 있었다.)를 낳아주었으니, 누르하치는 아바하이의 세 아들을 더욱 아꼈다. 이때에는 왕자들마다 하나의 세력을 갖추는 것이 관례인 상황에서 한 배에서 태어난 3 형제가 있다는 것은 결코 무시못할 잠재력을 갖는 것이라 볼수 있었다. 다시 한번 시끄러운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의정대신들의 입장에서는 빨리 차기 정권이 안정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즉 다이샨의 권위가 훼손되지 말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때에 다른 세 의정 대신들은 누르하치의 의견에 따르자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홍타이지는 당연하지만 5 대신 중에서 자기를 확고하게 지지해주는 대신을 한 명도 갖지 못하였다. 홍타이지는 그래서 남다른 생각을 해내야만 할 위치였던 것이다. 또 다이샨은 회의가 끝난 후 자기를 지지하는 대신들과 의논을 하고 다음 날 누르하치 대한 앞에 설 것임도 짐작하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공을 세우고도 그 공을 모두 다이샨에게 넘기려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눈치를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다음날 누르하치 대한 앞에 다이샨과 홍타이지는 나란히 서서 전날 회의 즉 각국 정세와 흑응회 교역을 하는 문제를 보고하게 되었으며 홍타이지는 어떻게든지 누르하치의 앞에서 다이샨의 얼굴을 세워주도록 노력을 하였다.
"폐하, 흑응회에서 우리의 인삼과 초피를 받고 미곡과 견포, 면포를 주기로 응락을 하였습니다. 홍타이지 아우, 폐하께 편지를 올리게."
"예... 폐하, 사흘 전에 도착한 편지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대금국 홍타이지 왕께... 우리 회는 기꺼이 요청을 접수 ... 내년 9 월 1 일에 대양하구에서 교역이 이루어지도록... 주실 물목은 인삼 5천 근, 초피 5천 장... 드릴 물목은 미곡 6만 섬, 견포 7만 필, 면포 7만 필... 각부(脚夫)는 귀국에서 제공... 각부 1 인 1 일 당 동전 25문... 4백 명이 5 일 일해야 ... 무게돌 이십 근 짜리 2000 개... 총비용으로 은자 150 량...'
"폐하, 아우의 말대로 내년 9 월 1 일 미곡이 육만 섬이 들어오고 견포가 7만 필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나라의 살림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흑응회가 아주 자세하게 각부들 쓰는 것까지도 말해 놓았구나. 이번 일이 잘되면 홍타이지의 공이 크다."
"저의 공이 아니고, 여기 다이샨 형님과 또 다른 의정대신 님들이 함께 수고해주신 덕분이지요. 문제는 앞으로 일을 잘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다이샨, 네가 길을 내고, 창고를 짓고, 부두를 짓는 일을 맡아 하도록 해라."
"폐하, 근래 명국과 차하르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소자는 아무래도 그쪽 일에 눈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이 일은 홍타이지 아우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홍타이지 네가 맡아 하거라."
"예, 폐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각 기에서 니루 한 개 씩 차출하겠으며, 이에 대한 수고료는 국고에서 따로 지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기 별로 인삼 800 근, 초피 800 장 씩 마련하라고 하겠으며, 교역이 끝난 후 분배는 국고에 먼저 비축량을 떼놓아야 할터인데 그것은 폐하께서 결정하여 주십시오."
"비축량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이샨, 네 생각을 먼저 말해보아라."
"예, 제 생각에는 ... 미곡 2만 섬, 견포 3만 필, 면포 3 만 필로 정하면 어떨까 합니다."
"홍타이지, 너의 생각은 어떠냐?"
"저도 다이샨 형님의 의견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각 기별로 각 5000 씩 나누어 가겠구만... 그렇게 하도록 해라."
"폐하 이번 거래는 커얼친의 소개로 거래가 성사된 것과 같으니 약간의 소개료는 주는 것이 옳을 것이고요. 또 다음부터의 거래는 대금국과 흑응회가 직접하도록 우리도 흑응회주에게 공주 중 한 명을 시집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커얼친부의 자이상 왕이 딸을 흑응회에 시집보냈으며, 그래서 서로 정기교역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맞아, 홍타이지가 말을 잘했구나. 우리도 흑응회와 정기교역으로 하면 좋겠단 말이지? 패륵들 중에 적당한 공주를 하나 골라보거라. 그리고 커얼친에 소개료를 주되... 그것을 이렇게 쓰라고 의견을 말해주도록 하거라. 소개료는 미곡 4천 석이라고 ... 미곡은 무거워서 운송에 애를 많이 써야할테니... 이 물목은 커얼친이 주변 부족들에게 선물로 나눠주라고 해... 자루터부에도 좀 나눠주도록 하고... 이것이 나중에 보탬이 될 것인즉..."
누르하치는 의정처에서 의견을 통일하여 국가의 시책을 만들어가는 것을 만족하여 받아들였다. 대한이 커얼친부에서 미곡 4천 섬을 주변부족들에게 선심쓰고 그것을 부족간 함께 운송해 가면서,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결국 자기 부족의 울타리를 만드는 작업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임을 홍타이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본래 커얼친 물목도 많은 데다가 미곡 4천 섬만 따져도 마차로 130 대 이상의 량이 된다. 그러므로 길의 주변 부족들에게도 뭔가를 흘려주어야 될 정도였다. 홍타이지는 대한의 의중을 이해하였다. 어떻게 하든 커얼친과 주변의 사이에 평화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맹장이라 할수 있는 다이샨은 이런 것을 이해하였을지 홍타이지는 알수 없었다. 홍타이지는 대한의 말을 되뇌었다.
"예, 주변부족에게 나눠주라고... 미곡 4천 섬..."
다이샨은 입을 열었다.
"폐하, 혼인을 하기는 하되... 우리는 황제국이고, 흑응회주는 중원의 만성일 뿐인데, 우리의 공주를 보내는 것보다는 흑응회주의 딸을 우리 왕들에게 시집 보내오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흐음. 다이샨 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그럼 그것은 첫 거래가 끝난 후에 다시 말해보기로 하자."
십여 년 전(서기 1603 년)에 죽은 홍타이지의 생모는 예허부족의 출신이었고, 지금 예허부는 대금의 적이었으므로 홍타이지는 몸조심을 많이 해야할 그런 입장이었다. 또 의정대신 중에서도 홍타이지를 허물없이 대하는 사람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몽골과 요동의 정세를 이야기할 때면 홍타이지는 더욱 조심을 해야 하였다. 만일 지금 홍타이지의 마음 속에 있는 정세판단 말을 털어놓게 한다면, 듣는 사람 중 누구는 예허부족 즉 적을 편드는 것이라 오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홍타이지는 정세 이야기에서는 거의 침묵하는 편이었다.
홍타이지의 속마음은 예허부족을 어떻게든 무혈(無血) 굴복시키고, 몽골 제 부족도 가급적 적은 피를 흘리고, 평화적으로 굴복시켜서 만성 수가 적은 여진 부족의 세력을 증대시켜야만 훗날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가장 큰 적은 명국이며, 명국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무력화시켜야만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음을 홍타이지는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이다. 여진 부족끼리, 몽골 부족끼리, 여진과 몽골이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라는, 분열시키는 전략에 말리면 지는 것임을...
홍타이지는 커얼친 출신의 처를 통해 리그덴 칸이 힘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노획물자를 공평분배 하지 않아서 몽골부족 중 절반은 고개를 돌린 것이며, 다시 원수인 명국과 화친을 택하게 되니 남아있던 절반의 반이 외면한 것임을... 홍타이지는 몽골 차하르부의 리그덴칸이 지금이라도 명국과 결사항쟁을 한다고 선언하며, 몽골의 제부족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고 평등하게 대한다고 선언만 하면 정세가 180도로 바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만일 리그덴 칸이 그렇게 노선(路線)을 수정하는 일이 벌어지면, 모든 상황은 일시에 바뀌고, 대금국은 다시 무너지고 그 다음엔 몽골의 노예국이 될수도 있음을 예상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금의 입장에서는 리그덴칸이 지금처럼 계속 바보짓을 해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또 예허부족이 아직 적으로 남아있기에 명국이나 차하르의 리그덴 칸이 대금을 쉬이 여기고, 경계를 덜하며 숨통을 덜 조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열린 숨통이 있을 동안 대금국은 힘을 키우고 물목을 비축하여 예허부를 접수한 뒤 바로 몽골과 명국과도 대등하게 대적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그러므로 대금국이 힘을 얻을 동안은 예허부를 손대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홍타이지는 마음 속에 정리해두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아버지 누르하치 폐하의 뜻을 살피고 있었는데, 누르하치는 일부 대신이 주장하는 예허부 침공을 계속 허락하지 않고 있었으니, 홍타이지는 어쩌면 자기가 아버지 누르하치의 심중을 제대로 읽은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누르하치는 홍타이지를 좋게 보았는지 의정패륵으로 인정해주었으며, 8 기 중의 하나를 관할하도록 했다. 이 때의 대금의 군병 8 기는 누르하치의 장남 추잉이 물러난 후, 누르하치가 양황기(兩黃旗 정황기 正黃旗 와 상황기 廂黃旗)와 상백기(廂白旗) 3 기를 직접 관할하고, 다이샨(代善, 2남)은 양홍기(兩紅旗 정홍기와 상홍기) 2 기를 관할하고, 망구얼타이(莽古爾泰, 누르하치의 5남)는 정남기(正藍旗)를, 아민(阿敏 누르하치의 동생 수르하치의 2남)은 상남기를, 홍타이지(皇太極 누르하치의 8남)는 상백기를 관할하고 있었다. [얼마 후 사건이 일어나 홍타이지는 상백기를 누르하치에 넘기고 정백기의 기주로 옮아간다. 상백기는 누르하치가 직접 관할하다가 4 년 뒤 아지거(阿濟格 아바하이와 사이에 태어난 누르하치의 12남)에게 넘겨주었다. 상(廂 행랑 상 - 깃발 외곽에 테를 둘렀다는 의미임) 대신에 동일한 뜻의 양(金 + 襄 )을 써서 상?기 대신 양?기라 쓰기도 한다.]
[그림 8기 깃발]
홍타이지가 누르하치의 다른 아들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중원문자를 배웠다는 것이었다. 누르하치의 16 명 아들 중에 중원 글을 배운 사람은 홍타이지 뿐이었다. 여진족들에게는 글을 아는 것이 결코 자랑이 아니었으며, 전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넘는데, 글을 배워서 무엇하냐, 내일 죽으면 그만인 것을 하는듯, 글보다는 활쏘기 연습을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만일에 의정처의 사람들이 중원 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홍타이지는 이번 회의에 편지를 꺼내서 모두들 읽어보라고 하였을 것이며, 교역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나 의심하는, 그들이 갖고 있을 일말의 의구심을 없애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중원 글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그들 앞에서 편지를 꺼낼 수는 없었다. 또한 홍타이지는 공을 세우고도 지금은 그 공로를 다른 형들에게 양보해야할 입장인 것이었다. 누르하치에게는 전부 16 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이때 즉 서기 1616 년은 막내 아들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홍타이지가 중원 글을 배운 사연은 다음과 같다. 여진족은 원나라 시절에는 몽골의 노예국으로 지배를 받았으며, 원나라 패망 후에도 사실상 몽골의 예속체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명나라의 2 중 예속 하에 오래 지내게 되었다. 여진족 각부는 몽골의 영향을 많게 또는 적게 받아왔으며, 예허부는 여진부족 중에서, 또 해서여진의 부족 중에서 가장 몽골과 근접해 있는 지역의 부족이었으며, 지리적 요인으로 일찌기 몽골과 피가 많이 섞이고, 몽골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예허부의 사투리에는 몽골말의 단어와 억양이 많이 들어있었다. 또 중원의 책에 담긴 문화유산을 맛본 몽골의 왕족이면 중원의 글과 말을 자식에게 가르쳤으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배우고 익혔던 중원의 글과 말을 예허부의 왕족들도 배웠던 사람이 많았다. 홍타이지의 생모는 예허부 공주(公主) 출신으로 중원의 말과 문자를 배워 알고 있었으며, 어린 홍타이지에게도 가르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