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강책(제7부)

제 023 회 문장(紋章)이 그려진 자기 대접시

금박(金舶) 2017. 6. 20. 15:56


"조선국 이야기를 두어번 들었는데, 제가 알게된 것은 조선국 백성들은 노예로 부리기에 아주 좋다는 것입니다. 또 조선국에서는 백성들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므로 잡아와서 노예로 삼아도 아무런 뒷탈이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노예 한 명당 은자 다섯 량만 잡아도 10만 명을 잡아오면 은자 오십만 량 벌이가 된다는 계산이며, 왜국에선 25만 명을 잡았다니 전쟁 비용 일백만 량을 벌었군요."


"전쟁을 해서 노예를 잡아오고, 노예로 팔고 하는 일은 도의적(道義的)으로 하지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미쓰 님의 말씀에는 깊은 뜻이 있군요. 나라를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도의를 말하시는 거군요. 나라의 백성이기 전에 사람으로써 도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 저는 남만인들과도, 명국 사람들과도, 그리고 종교가 각기 다른 여러 사람들과도 30 년 가까이 무역을 해왔지요. 제가 겪은 바로는 모든 사람들은 겉모습은 다르지만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에요. 진회주님은 아직 젊고 앞으로 무역에서 큰 일을 많이 하실 분이니 ... 제가 드리는 말씀이 귀에 거스리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무역 장사를 오래 했던 선배의 참고사항이라 들어주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정도로 그치기로 합시다."


"미쓰님의 말씀에서 저는 우리 명국의 만성과 나라에 관계없이 사람으로의 도리를 구별해서 생각해봐야 하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점차 생각을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미쓰님의 말씀이 귀에 거스린 것이 아니라 저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이지요. 앞으로 더 생각해보겠고요. 오늘은 장사 이야기를 해보지요."


"예, 양피와 마피, 우피 거래 외에도 견직과 면직 들도 좀 있는데, 피혁말고는 구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피혁 거래하는 데에 붙여서 함께 거래하면 될 거라 봅니다. 에... 그리고 지난 번 제가 얻은 죄를 갚을려고 선물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노부시게 장군으로 일으킨 말미암아 분란은 제가 동전 거래로 끌어온 것이므로 그 점이 채무로 남았기에 가져온 것인데, 이게 선물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군요."


"노부시게 장군 관련해선 이제 마음에서 내려놓으십시요. 그런데 무엇인가요?"


"말씀드렸다시피 야소교 때문에 지금 왜국에 나와있는 남만인들은 모두 강제 출국을 하였고, 지금 저의 배에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십 여 년 전 포도아(= 포르투칼)국에서 무역을 하러 온 사람인데 자기 접시를 전적으로 사들이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쫓겨나서 고국에 돌아가려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 포도아국 사람의 문제는 이제 왜국에서 도자기를 살수 없으니 명국에서 자기 접시를 사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쓰 선수는 소매에서 그림이 그려진 한폭의 베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탁자에 펼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를 보십시오. 문제는 도자기에 이 그림을 그대로 그려 넣어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해결한다면 왜국에서 얻었던 이익을 진회주님이 끌어올수 있을텐데요."


                                                [그림 1 왕국의 방패에 그리는 문장들]


"이게 어떤 그림인가요?"


"이것들은 남만인들의 나라에서 왕국의 표시로 사용하는 것들인데 문장(紋章)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화려하고 세밀한 그림인데 이것을 도자기에 그려 넣을 수만 있다면 직경 한 자 반 짜리 자기 접시 오십 장에 은자 한 량 하는 것을 접시 다섯 장에 은자 한 량으로 열 배 값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이 화려하고 우람한데 무슨 뜻인가요?"


"이것은 남만인들 군대에서 장수(將帥 = 중세 유럽 기사들을 말함)들이 자기 방패에 그려넣는 그림이라 합니다. 일종의 왕국의 부대식별 표시일테지요. 왕이 장수로 임명하면서 내려주는 것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생긴 모양이 방패와 비슷하지요. 또 이것을 보세요? 이것은 군대의 깃발에 그려넣는 표시인데 역시 왕국의 표시이지요."


"흐음... 그러니까 이 그림이 명예로운 뜻이고요, 이 그림을 도자기로 구운 접시나 밥그릇에 그려넣으면 가치가 있다는 것이군요."


                                                   [그림 2 왕국의 깃발에 그리는 문장들]


                                [그림 3 루돌프1 세의 초상과 방패의 문장, 사자 모양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표시임]


"예, 왜국에서 조선 도공들이 이것을 만들었으나 이제는 불가능해졌으니 포도아국에선 어떻게든 명국에서 이것을 만들어 가져가야 할테지요. 그런데 이 그림을 도자기에 그려넣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에요. 저는 자세히 모르지만 도자기를 말려서 그림을 그리고 또 끌로 파네고 그 사이에 다른 색갈의 진흙으로 메우고 하면서 그림을 완성하여, 다시 약을 바른 후 불에 굽는데 나중에 보면 색이 제대로 안나오고 때로는 색이 번지고, 잘 깨지고..."


"그러면 진즉 중원의 도공에게 와서 물어봐야 했을 것을 ..."


"이것이 도자기에서는 아주 고급의 어려운 기술인 모양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곳은 황실에 전문으로 도자기를 만들어 바치는 도공들이나 할 수 있나본데, 명국에서는 황실에서 아예 그 도공들에게는 일반인들에게 나갈 도자기는 만들지 못하게 금하고 있으므로 만들수 없었다 합니다. 명국에서 이걸 만들어낼 사람은 빼낼수가 없어서, 왜국에선 조선국을 침범했을 적에 도공(陶工)을 다수 나포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작품은 만들지 못하고 뭔가 부족하였으므로 계속 연구를 하고 있었고 저와 함께 있는 포도아국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흐음... 이 그림은 총 여덟 장이군요. 한번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군요. 이 그림을 제게 맡겨주시면 어떨까요? 일이 안되면 나중 돌려드리겠습니다만..."


"만들어보라고 어디 말해볼 사람은 있는가요? 이것은 황궁의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 외에게는 말해도 불가능입니다."



     [그림 4 문장이 그려진 자기 접시, 명말 경덕진에서 만들어져서 무역선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지금은 박물관에 소장되어있음]


[명나라 만력제는 사치가 극에 달하여 경덕진 도요(陶窯) 중 몇 곳을 지정하여 황실 전용 도자기를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이상한 모양의 도자기 물품은 물론이고 도자기에 음화(淫畵)를 포함한 희안한 그림을 새기도록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도요들은 아예 황실용과 비슷한 도자기를 굽지 못하도록 금하였지요. 만력제 사후에 그동안 황궁에서 쓸 자기(瓷器)들을 전담 생산하였던 경덕진 도요(陶窯)들은 황실의 수요 급감으로 금제가 풀리자, 자기 생산을 민수용으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고급 민수용 자기와 함께, 문장(紋章)이 새겨진 홍모귀 수출용 도자기도 많이 생산합니다. 이후 명나라가 망하는 명말 청초 근간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돌연 수출이 중단되며, 그에 따라 유럽 제국은 다시 왜국으로 수출용 도자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게 되며, 왜국의 도자기 산업은 이때에서야 급 발전 성장하는 계기를 맞이합니다. 이것이 일본 도자기산업 태동이지요. 유럽으로써는 공급선 다변화 전략이기도 하고요. 왜국은 이때에 자기 생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다음으로는 왜국뿐이며, 조선은 청국과 왜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라고 유럽인을 속여서 조선을 따돌리는 데에 성공합니다. 이 때의 조선국은 은자(隱者)의 나라가 되어, 해외의 소식에는 깜깜이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갔다가... 가만, 미쓰 대인께서는 두 달 아니 석 달 쯤 후에는 어디에 계실려나요? 혹 여정이 정해지셨습니까?"


"이것을 시험적으로 만들어 도자기 굴에서 구울려면 넉 달쯤은 걸려야 한다는데... 그보다 먼저 피혁 무역의 아퀴를 짓지요. 양가죽 30만 매와 말가죽 3만 매를 내년 9 월에 교주(膠州)에서 실을 수 있을까요? 손을 대는 김에 상품(上品) 견포(絹布) 5만 필하고, 상품(上品) 면포(綿布) 10만 필 하여 합하면 배 두 척 분량을 맞추는데 왜국 은자로 15만 량입니다. 이렇게 되면 역시 이전에 동전을 거래했던 그런 방식으로 교주의 섬에서 거래하는 것으로 해야되겠구만요. 왜국으로써는 진 회주님이 거래 상대로써 최적입니다. 여기 교주만에서 왜국 나가사끼(長崎 = 도쿠가와 정부의 대외무역항)까지는 하절기에는 스무날, 동절기에는 열흘이 걸릴 뿐입니다. 영파에서 바로 동해(東海)를 건너는 것보다 덜 위험하고요. 게다가 진 회주님은 은 장방(匠方)을 갖추고 있으므로 왜국은자라 해도 문제가 없으니 진회주님께서 어떻게든 다리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죽은 우리 상가로 가서 보면 몰목이 적당한지 알 수 있지만 비단이나 면포는 소주나 항주로 가야만 물목을 확인할 수 있는데... "


"만일에 거래를 하기로 한다면 올해 강남으로 가서 함께 물목을 정해야 하지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실 저로서는 강남에 가서 거래를 정해놓고, 진 회주님께 왜국은자를 명국은자로 바꾸는 거래를 하자고 들리려 했다가, 노부시게 장군 건이 마음에 걸려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 먼저 들렸습니다만..."


"견포나 면포는... 그러시면 7 월에 소주에서 뵙는 것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이곳 제남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 이 일이 끝나야만 몸을 뺄 수 있어서..."


"그러면 소주에서 7 월 언제 만날까요?"


"7 월 15 일 소주성 서문 밖에 은광객점에서 뵙기로 하시지요? 서문 밖에 얼마 떨어진 곳에 은광객점이라고 있지요."


"7 월 15 일 소주성 서문 밖, 은광객점에서... 좋습니다."


진원성은 회수부의 구찰 부회수를 불러서 미쓰 선수와 같이 2 장원 상가에 가서 펼쳐져 있는 있는 가죽들을 살펴보았다. (털이 붙은 가죽은 모피라 부르고, 털이 없는 가죽은 피혁이라고 부른다.) 흑응회의 피혁은 하미와 커얼친에서 온 것들이 있었는데 무두질이 잘되어 있었으므로 큰 문제가 없었다. 구찰 부회수는 가죽의 상품기준에 대한 확인의 목적으로 동반한 것이었다. 진원성은 구찰의 말을 듣고 문제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유목민에게는 가죽을 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죽을 제남까지 보내는 것이 더 큰일'이라는 는 것이었다. 양고기를 주식(主食)으로 하기 때문에 양가죽은 많이 나오는데 길이 멀기 때문에 운송비가 문제인 것이다. 미쓰 선수는  8 장의 문장 그림을 진원성에게서 7 월 소주에서 돌려받기로 하였다. 미쓰 선수는 광동성의 월상회관이 발행한 일십만 량짜리 회표를 무역 보증금으로 내놓았다. 이것은 나중에 왜국의 은으로 대금 정산이 끝난 후에 돌려받고자 하는 보증용 회표였다. 


미쓰 선수는 흑응은자를 찍어내는 작업 모습도 구경하고, 통물장원 구경을 두루한 후에 흑응회에 대해 신임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객방에 있는 객점에 들어 하룻밤을 지내고 흑응회를 떠났다. 미쓰 선수가 떠난 날 오후, 진원성은 회수부 3 명을 불러서 회의를 하였다. 내년 9 월 초에 피혁을 미쓰 선수에게 넘길 준비에 대해 말하자는 것이다. 진원성은 미쓰 선수에게서 받은 회표를 초 회수에게 넘기고, 왜국과 무역을 하기로 한 내용을 자세히 전달했다. 회의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하미와 커얼친에 각각 사람을 보내 하미에서 말가죽 5000 장, 양가죽 5만 장, 커얼친에서 말가죽 2만5천 장, 양가죽 25만 장을 준비하여 내년 8월 중순까지 제남에 도착하도록 요청하고, 그에 대응하여 어떤 물목을 원하는가 하는 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또 견포와 면포는 진원성이 강남으로 가서 다시 미쓰 선수와 만나 물목을 정하기로 하였다는 것도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