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16 회 갈성과 추인걸이 찾아오다
진원성은 1 월 달 내내 마유친과 잠을 잤다. 마유친으로서는 이 한 달 기간이 신혼인 셈이었으며, 자기의 배 속에서 아들이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번은 진원성의 손을 끌어서 자기의 아랫배를 만지게 하였으며, 말을 하였다.
"대형님, 배 속에서 아들이 잘 자라고 있나 보셔요?"
"배 속에서 잘 자라고 있군요. 그런데 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아들을 넣어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어떻게 하신 것인가요?"
"그게 내 마음 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유친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니 틀림없이 아들일 것이에요."
"그렇지요? 아들이 맞지요. 대형활선님은 아들을 골라서 넣어주실 그런 법술을 가지고 계실 거에요. 다만...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곤란해지니까 감추실 뿐이지요. 그렇지요?"
"에 ... 정 그러면 그렇다고 해두지요. 하지만 입조심을 해야하오."
진원성의 요즈음 생활은 아침 인시에 일어나서 수련을 두 시진 한 다음, 내장원의 빈청에 앉아서 생각하면서 오전의 나머지를 보내고,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빈청에서 찾아오는 회원들과 손님들을 만나는 것이 일과였다. 때로는 오후에 외출을 하기도 하였으며, 1 장원과 2 장원을 해녕총관 등 한 두 명을 데리고 말을 타고 순찰을 하기도 하였다. 관고가 은자와 동전으로 넘칠듯 있는 것이 자꾸 마음 한쪽을 억눌렀다. 몇 년 전 만들 때는 그게 언제 채워지려나 하는 생각이었겠지만, 이제는 좀 더 크게 만들 걸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흑응은자는 하나도 없고 각종 모양의 조각 덩어리 은만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진원성은 이제 자기가 선계로 떠날 시간이 2 년 정도 남았으려나 하는 짐작을 해보았다. 그 전에 흑응회를 어떻게 만들어 놓고 떠나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2 장원의 각 점포들은 이미 자리를 잡아서 산동성 각지로 나가는 물목들이 연일 마차로 실려나가고 또 들어오고 있었으며, 처음에 입주를 거절했던 큰 상방들도, 이미 입주한 산동성의 지주들과 어떻게 말을 잘해서 함께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흑응회는 2 장원의 각부들만을 공급할 뿐으로 그 이상은 개입하지 않았고, 임차인들이 혹시나 하고 눈치를 보이자, 점포세도 올리지 않기로 미리 발표를 하였다. 이렇게 진원성의 머리 속을 제외한 나머지는 정상궤도를 순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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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말이 가까이 되자, 진원성이 혼자 앉아있는 빈청으로 해녕총관이 찾아왔으며, 입을 열었다.
"대형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아, 무슨 일인가요? 앉으시구려."
"저녁에 대형님과 단 둘이 있을 시간이 전혀 없으니 이렇게 따로 찾아온 것이지요."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 울음소리며, 부인들끼리 서로 말과 웃음 오가는 소리며... 나는 요즈음 사는 재미를 느낀다오."
"저는 대형님과 단둘이 말할 시간도 갖지못하니 우리가 부부의 인연이 다 끝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하고만 얼굴을 대하고요... 제 얼굴을 바로 쳐다보신 게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흐음, 그 말은 듣고보니 좀 그렇구려... 그래 할 말을 해보세요."
"대형님, 방금 전 마음 속으로 '해녕총관이 자기만 자식을 낳을 수 없으니 그것이 서운해서 그러는구만' 이렇게 생각을 하셨지요."
"아니에요. 그동안 내가 해녕부인에게 좀 소흘히 했나보나 하고 반성을 하였소."
"요즘 소주총관의 얼굴은 행복이 주렁주렁 열렸던데, 자식을 갖는다는 것이 그리도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저는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말아야지요."
"흐음, 그건 나로서도 참 안타까운 일이요."
"대형님도 안타깝다니... 아린총관이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은 아린총관 몫이고요, 이제 제 몫으로 아린총관에게 아들 하나 낳게 해주세요. 아린 아우가 내 몫으로 하나 더 낳아주기로 했답니다. 그리 해주실 수 있지요? 이것은 제가 몸이 좋지않아서 된 일이니 꼭 받아주셔야 합니다."
"해녕부인 몫으로 아린부인에게서 아이를 하나 더 낳도록 해달라?"
"예, 아이가 아니고 아들입니다. 싱글벙글하는 소주총관에게 살짝 물어보니 자기의 뱃 속에는 아이가 아니고 아들이 들어있다고 그러던데, 대형님은 아들을 골라서 낳게 해줄 수 있지요? 무슨 이유로 그것을 감추고 있지만."
"아니에요. 나는 그런 능력이 없어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내 말을 믿어주세요."
"예, 그 말을 믿겠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아들을 낳게 해야 되고요, 만약에 딸이면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해야 됩니다. 제가 그 동안 강짜를 안부리고 참았더니 제가 사람이 변한 걸로 아시는 것 같은데... 꼬마 활불님, 저는 항상 난정이에요. 이 문제만은 강짜를 끝까지 부릴테니 그리 아세요. 이번 달 소주총관이 끝나면 까만 돼지 활불님은 아린총관과 두 달 보내시고, 그 다음 항주총관으로 가세요. 제가 할 말은 이제 다 했어요. 대형 활불님 그럼 수고 하세요."
진원성은 이제야 똑똑히 알았다. 자신이 대형 노릇을 편하게 잘 해내려면 해녕총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을... 또 아린총관과는 오래 전에 이렇게 되기로 서로 이야기가 되어있었다는 것을... 2 월 부터 진원성은 아린총관에게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날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여, 아린총관의 몸이 되기를 기다렸다. 아린총관도 아무 말없이 진원성의 기다리라는 말에 따랐다. 친정어머니가 아들이 없어서 세월이 지날수록 찬밥이 되어간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매옥과 난정, 두 자매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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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 11 일 오후 흑응내장원 앞으로 흑돈 4 대가 달려와서 멈췄다. 그리고 장정 두 명과 아낙 1 명 소년 1 명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내장원으로 들어간 그들은 오랜 여행 끝에 제대로 찾아 도착한 것을 알게 되었다. 진원성은 활짝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맞이하였다.
"갈성 형, 어서오십시오. 추인걸 형도 오랫만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진 회주님 오랫만입니다. 여기는 내자(內子)와 열넷 먹은 아들놈입니다. 진 회주님께 인사 올려라."
"갈기담입니다. 안녕 하십니까, 처음 뵙습니다."
"진회주님 오랫만입니다."
빈청에서 둘러앉아 찻물을 나누고 바라보니 지난 번의 소주 항주의 여행길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특히 해녕에서의 큰 성벽 같이 몰려오던 바닷물 생각은 정말 장대함 그것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진회주님, 새벽시장에서 비단 일이 다시 시작될려면 3 월 말이 되어야 하니, 그 사이에 제남을 들러보고, 이번에 아들놈 북경 구경도 시켜주고 할려고 함께 왔습니다. 추인걸 아우가 지난 여름에 가자고 하는 걸, 비단 일이 없는 겨울철에 가자고 미뤘다가 이제야 오게 된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비단 일은 겨울 철이 되어야 한가해지는 것인데... 제남에서 숙소를 어디에 정하셨습니까? 아참 지금이 용호상박을 하는 때라 객점마다 빈 방이 없을 것입니다. 좀 불편해도 우리 장원에 묵도록 하십시오. 유래타 ... 유래타. 방 두 개를 마련해서 여기 갈 형님 내외가 한 방을, 아들과 추인걸 형이 한 방을 쓰시도록 준비 좀 해주라. 제남까지 오시는 길에 불편은 없으셨나요?"
"별 어려움은 없었는데... 운하에 배들이 거의 없어서 빨리 올 수 있었지요. 누구에게 물어보니, 예년에는 2 월이 되면 소금을 실은 배들이 운하를 가득 채웠다는데, 금년에는 소금배들이 한 척도 없어서 운핫길이 한가롭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마도 소금에서 무슨 사고가 났나 봅니다."
"운하에 많아야 할 소금배가 없다는 것은 분명 무슨 사고가 난 모양이군요... 우리 흑응회 구경부터 하셔야 할텐데... 오늘은 여장(旅裝)은 푸시고... 내일 오후에는 장원을 한번 둘러보시지요.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진원성은 우선 숙소안내와 식사문제 등을 유래타에게 맡겼으며, 다음 첫날, 갈성 가족과 추인걸을 직접 안내하여 1 장원과 2 장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2 장원의 상가들은 이미 활기찬 모습으로 흑응회의 각부들과 흑돈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것이 보였으며, 각방에는 점포 마다 각종 물목들이 많이 들어 있어서 구경거리가 될만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진원성은 갈성의 부인을 내장원의 해녕총관에게 안내하여 총관들이 하는 일과 생활을 보여주게 하였으며, 진원성은 갈성과 갈기담 부자, 추인걸을 흑돈에 태워서 데리고 자기가 제남의 반점에서 점소이를 하였던 제영반점부터 보여주었다.
흑돈이라는 이름이 왜 생겼는지 하는 이야기를 하자 모두 재미있게 들었다. 마침 용호상박 보인을 파는 곳 앞을 지나다가 모두 은자 한 푼 씩만 맘에 드는 쪽 보인을 사기로 하였다. 15 일에는 백사도에 가서 용호상박을 구경하기로 하였으며, 용호상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흑응회와는 절대 뗄수 없는 관련이 있었던 것도 이야기했다. 그 다음은 간단하게 섬서와 토번, 타클라마칸, 우룸치, 막북, 요동을 여행하였던 이야기도 하였으며, 어떻게 하여 부인을 열 명이나 두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집안의 원수니, 혼천일기공이니, 쇄음수니 하는 이야기는 빼고서 보통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범주에서 대충 흑응회가 오늘이 있기 까지의 과정을 말했다. 갈성 등은 이제 흑응회의 대강을 알게 되었으며, 자기들의 짐작했던 것에 비하여 실체가 더욱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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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 13 일 오후, 진원성은 내장원의 빈청에서 회수부의 3 명을 불러 회의를 하였다. 회의의 내용은 갈성과 추인걸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늘 초 회수님, 구 부회수님, 백회우님을 모신 것은 우리 회에 오신 두 분에 대해 말씀드리자는 것입니다."
"강남에서 오신 4 명을 말하시는 거죠?"
"예, 지난번 강남행에서 만난 분들인데, 우리 회에 아주 필요한 인재라서 제가 영입을 할까 하고 회수님들과 상의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회가 무역을 크게 하자면, 무역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자기와 비단인데요. 손님 두 명은 각자가 비단과 자기에 대해서 아주 높은 능력을 갖춘 분들입니다. 저는 이 두 분을 제남에 오시라고 초청을 했었고, 이제 오신 것입니다."
"대형님께서 그렇게 보셨다니 영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환영해드려야지요. 그런데 두 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성함이 갈성이라는 한 분은 제가 노예로 있을 때에 휘주회관 소속 직방(織房)에 계셨던 직장(織匠)이십니다. 처자를 동반해서 강북 유람으로 오셨다네요. 소주에서는 비단짜기 경연이 펼쳐지는데, 갈성 형은 거기에서 1 등을 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명나라 전체를 통털어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지요. 초 회수님이 주먹으로 최고 수준이라면, 초 회수님과 동격이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한 분은 도자기를 오래 해온 집안의 후예로써 황실에 들어가는 전용 자기를 만들 도장(陶匠)이세요. 황실에 들어갈 자기를 만드는 수준이니 이 또한 자기로썬 최고의 수준입니다. 저는 이 두분을 우리 회에서 무역을 하는 비단과 자기를 총괄하실 분으로 적임이라 여겼습니다."
"흐음,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처자와 함께 오신 분은 나이도 들고 연륜이 있어뵈는데, 다른 분은 아직 나이도 많지않고요... 어떻게 자기로 최고수준이라 하실 만 하나요?"
"그 분은 이름이 추인걸인데, 몇 백년 전부터 집안 대대로 자기를 만들어왔던 도공의 후예인데, 자세한 내막은 제가 말하지 않기로 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황제 전용 자기를 굽는 가문 후예이며, 나이로 탓할 것은 아닙니다. 10 년 공부면 배울만한 것은 다 배우며, 그 다음부터는 자기할 탓이니 나이가 꼭 적다 할 수는 없지요."
"예, 대형님의 사람보는 안목을 믿습니다. 그 다음은 요?"
"두 사람 모두 시련을 충분히 겪었으며, 회에서 품으면 충분히 역할을 해주리라 봅니다. 지금 커얼친, 하미, 토번으로 갈 무역 물목이 잔뜩 준비 중인데, 그 중에 비단과 도자기 들도 다량입니다. 물론 잎차도 상당량입니다. 잎차에 지식이 많은 분은 나중에 인연이 되면 추가로 영입해야겠지요. 우선 두 분을 데리고 비단과 도자기를 점검하는 데에서 참여시켜봅시다. 저는 소주나 항주에 회의 지부를 만들어 도자기, 비단, 면포, 잎차, 미곡 등을 총괄 매입하는 체제로 가는 것이 길하다 보는 것입니다."
"내일 제가 자리를 만들어 두분을 소개하고, 우리 회의 장기적 문제를 이야기해보렵니다. 내일 함께 이야기를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