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강책(제7부)

제 010 회 선계에 가더라도 다시 찾아오겠소

금박(金舶) 2017. 5. 23. 15:53


12 월 10 일 개봉부 기현의 이찬 외우로 부터 흑응장원 진원성 앞으로 편지가 도착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진원성은 편지를 읽고서, 기현의 그 땅이 어쩌면 정가장의 것이었으며, 복왕부에서 내놓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퍼뜩 하였다. 실제로 복왕은 정가장에서 나온 이만 경의 땅 중에서 하남부 낙양에서 가까운 일만 경의 땅만 봉지(封地)로 삼고, 나머지 일만 경은 각 부주현에 처분권을 돌려주었다. 마침 임기의 마지막을 맞은 지주, 지현들은 갑자기 들어온 공짜 땅을 당장 은자로 내는 사람들에게 절반 값으로 얼른 팔아치우고 자기들의 욕심을 채웠다. 물론 은자의 사용처는 어디를 수리하였고 어디 빈민들을 구제했다고 내역을 기록으로 남겼을 것이다. 


'대형님께 올립니다. 그동안 기현 내에 적당한 땅이 없어서 전토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가, 10 월에 맞춤한 땅이 값싸게 걸려서 300 경을 은자 3만 량에 구입하였습니다. 이로써 소작인 600 호를 두고서 경작하여, 내년 가을걷이에는 미곡 오만 섬을 수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주의 경운단 하소치 단주와 협의를 잘하였으며, 내년 가을부터는 미곡 오만 섬으로 하간부에 미곡저가판매를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창주 마고성과 북경의 왕준서 감승에게 미곡섬을 보내는 것은 많지않은 물량이니 내년 1 월 부터 시행을 하겠습니다. 이후 변화되는 일에 대해서 다시 서신으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이찬 씀.'


이로써 진원성은 하나의 돌맹이를 마음에서 내려놓았으며 다시 본업으로 돌아왔다. 부인들에게 아이를 하나씩 남겨두어야 부인들도 자기 자식들의 형제의 어미가 서로 되니 하나로 묶어지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진원성은 마유친의 마음 속 갈등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무기력할 때에 도움을 준 대상에게 무한히 신뢰를 갖고, 의존하게 되며, 여기에서 설정된 관계는 다시한번 절대적으로 무기력한 상태로 전락되어야만 그 관계가 재설정 변경될수 있는 법이었다. 이것이 모든 종교와 신앙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무기력 상태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신앙을 갖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마유친이 진원성에게 갖는 마음은 월이부인이 설이부인에게 갖었던 마음과도 비슷할 것이었다. 섬서성 진주 일대를 주름잡던 여걸 마유친이 진기를 잃었던 상실감은 설이부인을 잃은 월이부인이 겪었던 상실감 보다 훨씬 심대한 것이었다. 마유친은 힘든 무공수련으로 얻은 진기를 상실하고, 무기력 속에서 낙망하고 있을 때에 마침 눈 앞에 있던 진원성을 의지로 삼았으며, 그 이후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며, 이미 남여 관계를 벗어나 어떤 신앙과 같은 성격으로 격상되었다.


마유친은 옷을 벗기지만 않으면 진원성의 손을 거부하지는 않았으므로 진원성은 매일 밤에 마유친을 잠깐 만져주고서 잠이 들었다. 본인은 모르지만 마유친의 몸은 진원성에게 이미 어떤 냄새를 품어내고는 하였으므로 진원성은 마유친의 몸만은 진원성에게 교합을 허락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2 월 25 일이 되어 진원성은 마유친에게 수태하기에 아주 좋은 상태가 찾아왔음을 알았으며, 이번을 놓치면 다시 한달을 기다려야 하므로 무슨 수를 찾아야만 했다. 진원성은 할 수 없이 거짓말이든 겁박의 말이든 해서 마유친의 마음을 돌려보기로 하였다.


"유친, 내말 좀 들어보아요? 우리가 토번 땅에서 캉린포체산(岡仁波齊山)에 갔을 때 일인데, 벌써 꽤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하네요?"


"저는 모두 잘 기억하고 있는데 무슨 일 말입니까?"


"우리가 캉린포체산 코라를 돌다가 푹풍우를 만났고, 그것이 눈보라로 변하였지요. 그래서 우리는 길은 미끄럽고 날이 벌써 어둑해지고 상당히 곤혹스럽게 느낄 적에 우리는 신모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날 밤에 신모님의 기도하는 곳에 가서 안전하게 보내다가 그 다음날 무사히 산을 내려올 수 있었지요. 만약 신모님이 보내신 한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날 밤에 크게 욕을 볼뻔 하였지요. 나도 그 땐 좀 당황하였고 두려움을 느꼈었지요."


"예, 그때 전 몸이 완전히 지쳐서 한걸음 떼기가 천근만근처럼 발이 무거웠었지요. 아마 그런 상태가 조금만 더 지속되었다면... 나는 어쩌면 대형님에게 업어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중에 알고보니 신모님 말씀은, 우리를 신모님과 만나게 할려고 용신(龍神)이 조화를 부려서 날씨를 그렇게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 때에 우리는 오랜 시간 신모님의 기도를 듣다가, 갑자기 신모님이 나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에 나는 깜짝 놀랐어요. 그 때는 생각지 못하고 넘어갔는데 신모님은 결국 내 아버지의 혼령을 입고 말한 것이었지요? 그러면 나의 아버지가 바로 동해용왕(東海龍王) 용신(龍神)이라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요? 아니면 나의 아버지는 용신이 아니라 신모님이 단지 그냥 혼령을 불러오신 것인가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유친의 생각을 말해주구려. 이것은 물어볼 사람이 유친 밖에 없구려?"


"저는 그날 일을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돌아가신 시부(媤父)께서 용신이라는 말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 신모님이 말씀하실 때에는 스스로 돌아가신 아버지였어요. 그때에 신모님은 없어지고 용왕님께서 말씀을 직접하신 것은 확실하지요?"


"그건 확실한데, 나는 그 날 그냥 정신없이 넘어가서 원수가 누구인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지요."


"아버지가 확실하다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용신이 되셨다는 것이 되는데... 아, 알았다. 대형님이 물 속에서 그리 물고기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은 용신의 아들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참 대형님 원수를 갚으셔야 할텐데, 그래야 선계로 가실 때에 마음 편하게 가실 수 있을텐데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아버지가 신모님을 통해서 나를 어떻게 찾아오셨겠어요. 혼령에는 자식의 표식이 뭔가 남아있어 그것을 보고 찾아왔을 것이에요. 그렇지 않겠소? ... 유친, 내가 선계로 가 있다가 생각이 나면 유친을 다시 찾아올 수 있게 해주지 않겠소? 내가 이대로 떠나면 나는 유친을 찾아올 수 없어요. 나는 유친에게 아이를 갖게하여 그 아이를 표시로 삼아 유친을 찾아올 것이오. 내 아버지가 나를 찾아 멀리 토번 땅으로 오셨듯이...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고 유친만 알고 있어요. 나는 이미 집안의 원수를 갚았어요. 그러나 말이 자꾸 나오면 좋지 않으니 감추자고 부탁하는 것이오."


"예, 원수를 갚으셨다니 그건 다행입니다. 대형님은 저와 교합을 하자는 것이지요.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앞으로도 저와 대형님이 맺어질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에..."


"그렇지요. 나는 선계로 간다해도 유친 누이를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버려둘 수가 없단 말이에요. 그 아이가 태어나면 나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뭔가를 보고 어느 때고 유친을 찾아올 수 있게 될 것이오."


"그러면, 그렇다면 대형님이 저에게 아들 하나 낳아주세요."


진원성과 마유친은 이렇게 세상의 인연을 맺게되었다. 그리고 마유친은 등골이 있는 곳에 가려움을 좀 심하게 느꼈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이 여인으로 어머니로 걸어야할 새로운 길을 생각하였다. 이렇게 일을 치루고 보니 오래 전부터 자기는 진원성과 부부의 연으로 맺어질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진원성은 이미 잠들었으며, 내일 아침에도 인시에 일어나 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마유친은 진원성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보았다. 이렇게 진원성은 연 사흘 마유친과 만났으며, 해가 지나기 전에 숙제 하나를 더 끝낼 수 있었다. 


일이 있은 다음에도 진원성은 마유친과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관계가 없더라도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사흘 쯤 지나서 진원성은 소주총관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소주 부인, 유친, 혹시 딸을 낳으면 어쩌시겠소? 아들 낳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나는 아들과 딸을 구별해서 낳게 할수 없어요."


"예, 정 그러시다면 할수 없지요. 대형님이 의도적으로 딸을 주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저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유친은 아주 오랫동안 선계를 동경해왔고, 나와 함께 가려고 했는데, 지금도 거기에 아쉬움이 많소?"


"저는 이제 아이 엄마가 되니, 어떻게 선계로 갈수 있겠어요. 혹시 저와 애까지 데려가실수 있다면 따라 나서겠지만, 이제 그것이 안된다고 알았으니 다른 형제자매와 대형님의 자식들과 어울려서 흑응회에서 살아야겠지요."


"그렇소. 흑응회를 선계라 생각하고 사시요. 내가 여러가지 준비를 한다고 해두었어요. 나는 그걸로 웬만큼은 되었다고 보는데, 그것보다는 유친이 선계를 아쉬워하다가 흑응회에서 사는 생활이 즐겁지 않게 되면 어떨까? 유친은 선계를 잊어버리고 그냥 이곳에서 잘사시요. 나는 이곳이나 선계나 어떤 관련이 있고, 이 세계가 선계와 연결되어 있어서 이 세상살이가 잘 되면 선계에서 잘 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세상에 음지와 양지가 있듯이 선계에도 음지와 양지가 있고, 세상살이에서 덕을 많이 쌓으면 선계에서 덕을 많이 쌓는 것과 같을 것이요. 덕을 쌓는다는 일은 음지에 양지의 기운을 부어주는 것인데, 선계에도 음지가 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요. 선계가 유친이 생각하는 마냥 좋기만 한 곳은 아닐 것이란 거요. 아무튼 덕을 되도록 많이 쌓으며 되도록 즐겁게 생활하기를 노력하시오. 나는 어디로 가든 여기에 있던 유친을 잊지 않을테니 알겠소?"


그리고 12 월 28 일 해가 바뀌기 전에 북경총관에게서는 딸이 태어났으며, 흑응장원에 새로운 식구가 늘었다. 진원성은 처음으로 갓 태어난 핏덩이 아이를 안아볼 수 있었으며, 바로 딸의 이름을 성연(成蓮)이라 지어주었다. 다른 총관들은 원성(元成)의 성과 연연의 연에서 따와 이름으로 지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원성에게 만력 43 년, 이 한해는 참으로 뜻깊은 1 년이었다. 우선 원수를 갚았고, 집안의 내력을 알게 되었으며, 조상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황금 10만 량 전부는 아니고 4 만 량이지만 돈의 액수 보다는 의미로써 무척 큰 것이었다. 또 몸을 고쳐서 자식을 얻게 되었으니 자기가 인연이 되어 부인으로 맞은 부인들에게 할 일을 하여 떳떳하게 된 것이다.


진원성은 년말을 맞아 한 해를 마감하는 1 장원과 통물장원들을 사흘에 걸쳐 세세히 둘러보았다. 이제 자리를 잡아 년말 마지막 물동량을 처리하느라 각 점포마다 분주하였다. 통물장원 경비를 총괄하는 거복이는 진원성을 안내하며 통물장원의 일상을 설명해주었으며, 이곳에서 한 해에 거래되는 물목량이 은자 오십만 량은 될 거라고 하였다. 이 정도면 통물장원은 자리를 잡은 것이다. 


거복이는 진원성에게 말했다.


"형님, 저는 이제 통물장원 경비책임에선 물러나 대형님을 따라다니고 싶습니다. 제가 없어도 통물장원은 떨어지는 은자로 경비대원을 보강해서 경비가 잘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도 대형님을 보호 해드려야지요. 에 그리고요, 대형님이 자식을 몇이나 더 나으실려나 모르지만 대형님이 아들을 낳을 때마다 저도 아들을 낳아야 하니, 저도 첩을 들여야할 것 같아요."


"내가 아들을 낳으면, 너도 아들을 낳아야 하는 이유라도 있냐?"


"그것은 제가 대형님을 따라다니며 보호해 드려야 하듯이, 대형님의 아들을 저의 아들이 따라다니며 보호 해줄려면 저도 수에 맞춰서 아들을 낳아야지요. 그래야 짝이 맞지요."


"그래? 그럼 너도 새 아내를 맞거라. 내가 주선해 줘야 하는 건 아니겠지?"


"대형님, 총관님들을 모시던 처녀들 중에 둘만 내려주세요. 대형님의 아들이 5 명이라면 저도 마눌이 두 명은 더 있어야 할테니까요. 왠일인지 장유는 아들 하나를 낳고는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해요. 의원에게  보여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내가 해녕총관에게 말해보마."


"참 그리고요, 저도 월례를 좀 올려주셔야 해요. 아이들을 더 낳아 키우려면 은자가 많아야 되요. 저의 자식들은 두 배 이상 많이 먹거든요."


"아참, 그렇지. 에... 회의 규정이 정해져 있으니 내가 따로 은자를 삼백 량 주마. 부족하면 또 이야기를 하거라."


"역시 형님은 내 맘에 쑥 들어요. 그리고 저도 형님을 따라 배타고 멀리 나가서 여러가지 일을 하고 싶어요. 무역선을 타면 전쟁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던데 형님을 저의 큰 몸으로 보호해 드려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