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86 회 전쟁의 3 원칙
"아차, 왠지 너무 쉽다 생각을 했는데, 그 답이 무엇일까요? 유래타 너는 무슨 생각나는 게 없냐? 있으면 한번 말해봐라."
"저는 ... 제가 그렇게 어려운 것을 알 수는 없지요? 저는 징기스칸의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듣는데요, 저는 알기 어렵지요."
"대형님께서도 대답이 어려우신가요?"
"난 아직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항복하고 싶지않으니 조금 시간을 주시요... 많은 병사들이니 아마도 하나의 부대처럼 움직이기가 어려울 것이오. 아 그렇다. 많은 군사들을 하나의 작은 부대처럼 한번의 군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 즉 통일된 군령 하에 하나의 전쟁으로 만드는 것, 서로 약속에 따라 하나의 전술로 움직이는 것, 함께 사기를 끌어올려서 모두 사기 충천할 때에, 즉 사기가 극에 다달았을 때에 적과 부딪치도록 만드는 것..."
"대형님은 정말 뛰어나시네요. 대형님을 따르게 된 것이 행운임을 알겠습니다. 방금 대답하신 내용이 징기스칸이 자식 형제들을 모아두고 가르침을 내리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대형님은 어찌 이걸 아셨습니다. 혹 전에 누구에게 들으신 것은 아니지요?"
"요즈음 내가 흑응회원들의 수가 늘고, 대가 여럿으로 나뉘니 그에 따라 생각이 복잡해지고... 그것이 퍼뜩 생각이 나서 징기스칸의 전쟁도 군대 수가 늘어나면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 것이오. 처음에 유래타가 어렵다는 말을 했고, 다시 부회수님이 어렵다는 말을 해서 나는 어렵다는 말을 입으로 따라하다가 갑자기 내가 내장원에서 혼자 어렵다는 말을 입으로 중얼거리던 생각이 난 것이에요. 난 근자에 회의 규모가 커져서 판단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곤 했어요. 그렇게 우연의 일치로 답을 하게 되었군요."
"예, 그렇군요. 우연의 일치로... "
"저는 대형님이 맞추실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대형님은 활불이시니까요."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전술, 적으로 적을 치는 전술, 약한 소수의 군병으로 적을 치는 전술, 강한 소수의 군병으로 적을 치는 전술, 강하고 많은 군병으로 적을 치는 전술... 전장에서 막상 접전이 이루어질 그 때에 군병들의 사기가 최고조로 올라 있다면 일당 십이 될 수 있다 합니다. 그러므로 진격의 북을 치라고 언제 명할 것이냐가 승부를 결정하는 것이죠."
"대규모 접전에서 양쪽 진영이 마주보고 있을 때에, 진격 북을 언제 쳐야 하느냐? 어떻게 상황을 만들어 놓고 접전을 시작하느냐? 구 부회수는 혹시 만량전이라고 구경한 적이 있나요?"
"백사도에서 용쟁호투를 한다고 소문만 들었지요. 실제로 본 적은 없습니다."
"그 만량전에서 이기는 수법이 일종의 그런 전술일 것이오. 개인간의 박투에서도 거의 마찬가지요. 나는 권술로 40 번 정도 생사대결을 했었는데, 공간장악실력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쌈박질을 하면 상대의 두 손, 두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지 않고 다 알아야 하지요. 눈으로 보고 피하려면 이미 늦거든요. 공간장악이 되어야만 상대의 두 손, 두 발과 나의 두 손 두 발이 훤하게 보이는 것이요. 그래야 이길 수가 있어요. 징기스칸이 자식들에게 말하는 것은 양편 군병들이 대적하고 있을 때에 그 전장 전체를 장악하여 군병을 운용해야 한다고 그것을 가르쳤을 것이오."
"대형님께 이 말이 어떤 도움을 드렸다면 되었습니다. 이 전술원칙 다음에 군병들을 움직이는 데에서 징기스칸은 다섯 가지의 용병원칙(用兵原則)을 지키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징기스칸의 전쟁기술을 모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첫째, 도망갈 길을 먼저 확보해라. 징기스칸은 군병들에게 모두 알려줬습니다. 이리저리해서 안되면 모두 도망가라. 그리고 다시 어느 곳에 모인다. 생명을 아껴라. 우리의 목적은 승리이지 죽음이 아니다. 그러나 징기스칸도 도망갈 길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전쟁을 하기도 했고, 그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여 죽을뻔 하기도 합니다. 또 도망가지 않고 둘 중에 하나가 살아남을 때까지 끝까지 소모전을 해야하는 최악의 전쟁을 치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쟁은 그러한 막판에 다다르기 전에 전술을 잘 구사해서 도망갈 길을 마련한 다음에 전쟁을 시작합니다."
"도망갈 길이라, 징기스칸 자신이 도망갈 길이 아니라 병사들을 아껴서 병사들 희생을 줄이려고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흐음."
"둘째, 적을 속이는 것입니다. 속이지 못한 적을 이길려면 아군의 희생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속여야만 몰래 적에게 심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이지요. 징기스칸은 반드시 적을 속이는 방도를 생각하여 전투를 했습니다. 속일 수 없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는 거죠. 이것은 약하고 작은 수의 군병을 동원하여 이길 방법을 찾는 것과도 관련이 큽니다. 셋째, 신속성 즉 신속하게 전장에 도달하여 신속하게 전쟁을 끝내는 것입니다. 징기스칸의 전쟁은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전쟁이 대부분이었으며, 적들은 자기 땅에서 전쟁을 하는 잇점이 있었지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적은 유리하고 아(我)는 불리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신속하게 해야만 했습니다. 우선 적이 예상치 못한 시간에 적을 공격합니다. 적이 사흘 후에 징기스칸이 이곳에 도착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 이미 전장에 나타나 공격을 합니다. 이것은 속이는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죠. 또 군대를 유지하는 데에 드는 각종 물자를 절약하는 데에도 유리합니다."
"신속성도 적을 속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맞짱뜰 때에 기습으로 주먹질을 먼저 하면 상대가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는 것과 같구만요."
"넷째, 다양성입니다. 적을 공격하는 방법에서도, 도망가는 데에서도 다양하게 변해야만 적을 무찌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징기스칸은 전술에 대해 아주 세밀하게 장수들에게 사전에 설명을 해줍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 하에서도 하나의 군령에 움직이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도망가다가 일제히 뒤돌아서서 역공을 펼침으로써 적을 대규모로 살상할 때도 있었고 그 다양함은 전투마다 각각 다르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것을 잘 훈련된 많은 군병을 움직일 때에 할 수 있는 다양함이지요. 다섯째, 마지막으로 잔인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징기스칸은 반드시 먼저 적에게 항복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예고없는 공격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권고에 따라 항복하면 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저항을 하면 아주 잔인하게 학살 하였습니다. 이 잔인한 학살이 소문나서 전해듣고 많은 적들은 저항하지 않고 항복을 하였으며, 이것도 전쟁을 하지않고 이기는 하나의 전술이었지요. 이것으로 징기스칸의 용병원칙을 끝냅니다."
"도망갈 길, 속임수, 신속성, 다양성, 잔인함. 이 다섯 가지네요."
"무엇보다 우선은 징기스칸은 입으로 꺼낸 말을 지켰으므로 신하들에게 신뢰를 얻었습니다. 노획물도 공평하게 나누었고요. 징기스칸은 전쟁 종료가 되기 전에 전열을 이탈하여 개인적으로 노획하는 병사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전쟁 종료 후 적을 모두 처리한 후에 노획물을 모두 모아서 공평하게 나누었죠. 하나로 뭉치면 강해집니다. 상하좌우가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은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이렇게 징기스칸의 전쟁원칙은 생각원칙, 전술원칙, 용병원칙 열다섯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구찰 부회수가 나에게로 왔으니 참 나는 마음이 든든 합니다. 나에게 좋은 말을 놓치지 말고 많이 해주세요.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고, 나쁜 말은 귀에 달다'는 한마디는 항상 잊지 맙시다. 유래타, 이번에 들은 부회수님의 말씀을 종이에다 옮겨 적어서 부회수님의 감독을 받고 나에게 주도록 해라. 생각원칙, 전술원칙, 용병원칙. 내가 잊지 말아야할 좋은 이야기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형님, 최근 북경 정탐대에서 도착한 소식 중에 동북방 소식이 있습니다. 요동도사(遼東都司 = 요동도지휘사사의 준말) 관할에 변고가 거듭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회와 커얼친 부족과의 내년도 2 월 무역에 어떤 장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가요?"
"여진족들 중에 분란이 커져서 결국 명국이 개입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이로써 동북방에는 전쟁 기운이 커졌습니다. 전쟁에서 잘하면 큰 장삿거리가 만들어 질 수도 있지요. 그래서 계속 동북방 소식을 올려달라 지시를 했습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정리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북방이라면 여진족 누르하치에 대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누르하치가 아무래도 명국과 대적을 할 결심을 하지 않는가 그렇게 예상할 수 있는 단초(端初)가 보입니다."
"지금 동북방의 난리에 관여되는 부족과 나라들은 어디 어디인가요?"
"우리 명국과 달단 차하르족, 여진의 예허족, 여진의 만주족 그리고 아직 불투명하지만 조선국이 있지요. 이 4 개의 부족과 나라가 전쟁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선은 국병(國兵)이 아예 없다고 말했지 않았나요? 왕이 갖고 있는 군대 말입니다."
"조선은 왜국의 침공을 물리친 후, 왕이 죽고, 습봉(襲封)하여 신왕(新王)이 즉위하였습니다. 신왕이 첫 번째로 한 일은 귀족 신하들에게 돈을 걷어서, 불타버린 궁궐을 다시 짓는 일이었습니다. 전왕은 10 년 동안 전쟁에서 타버린 궁궐을 한 채도 새로 짓지 못하여 전쟁이 끝난 후에도 꺼멓게 불탄 자국이 그대로 궁궐 곳곳에 남아 있었던 거죠. 신하들의 사택(私宅)들은 이미 다 수리되거나 새롭게 지어졌는데... 이러니 신하들은 불평불만을 많이 쏟아냈지만, 궁궐을 짓는다는 것에서 감히 돈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지요. 신왕은 이 핑게로 걷은 돈의 절반을 뚝 떼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철포조총을 만들었으며, 화약(火藥)을 대량으로 제조하였습니다. 화약원료가 되는 유황과 염초를 우리 명나라에서 대량으로 구입해갔지요. 명국 조정에선 알면서도 눈감고 모른척 해주었습니다. 아마 조선국에서도 이젠 조총부대가 얼추 몇천 명이나 일만 명쯤 만들어졌을 것이에요."
[서기 1608 년 즉위한 광해군은 1609 년, 1610 년 두 해에 명나라에서 화약 재료를 대량을 수입해 왔으며, 이것으로 10 년간 조총부대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광해군 11 년, 서기 1619 년 사르후 전쟁이 발발하자, 명나라는 조선의 군대 양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광해군에게 참전을 요청하여, 조선군은 역사상 최초로 타국의 전쟁에 개입하여 국외 파병을 하게 되었다. 사르후 전쟁은 명군과 몽골군, 여진부의 예허부족, 조선군이 연합하여 금의 누르하치 군을 대적하였으며, 총 이십만 명 이상의 대군이 접전한 대 전투였다. 이때에 조선군 조총부대는 일만 명 이상이었고, 강홍립 장군이 도원수로 출전하였으며, 대패하여 누르하치 군에게 항복하였다. 필자는 광해군이 어려운 나라살림 중에 매년 은자 일만 량 이상을 군대양성에 투자 하여, 10 년에 조총부대 일만 명을 키워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니 그런 정보까지 정탐대가 뽑아낸 것이요?"
"이것은 대형님께 귀부하기 전에 있었던 사실입니다. 그리고 뽑아낸 것이 아니라 명국 신료들 사이에 동창에서 알려주는 군사정보인 거지요."
"흐음, 정탐대가 1 년에 5천 량 값을 나타내줄 때가 있을 거요. 만일 동북방의 무역로가 막힌다면, 가장 값이 크게 오를 물목이 무엇일까요? 내가 어려서 무역상을 따라 심양에 갔다온 적이 있었소. 그때는 돌아오면서 인삼을 몽땅 사와서, 북경에서 풀어놓으니 큰 돈을 벌었다고 말을 들었는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군요. 참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그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