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사인묘(제6부)

제 040 회 아린촌은 오랫만이었다

금박(金舶) 2017. 3. 4. 12:18


9 월 3 일 진원성은 새벽 공부를 마치고 사시(巳時)에 등주를 향해 출발하였다. 일행은 진원성과 유래타, 경비인력 2 명, 석도, 소주 총관과 두 총관조 등 여덟 명이었으며, 말 여섯 필과 총관조 두 명이 타고, 기타 이것저것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싣고가는 마차 한 대였다. 일정 계획은 한달 반에서 두 달이며, 먼저 교주 아린촌을 들려서, 그 다음은 등주부 산미대에 들린 후, 마지막에 등주부 남동쪽 끝 석도에 가는 것이었다. 관도는 아주 잘 정비 되어 있었으며, 가을 하늘은 드높기만 하였다.


                                                         [그림 산동성 행로]


진원성은 뜻하지 않은 일로 고향을 떠난지 만 13 년 하고도 8개월 만에 태어나 자랐던 아린촌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마음 속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회가 소용돌이쳐 울렸다. 그동안 바쁘기도 하였으며,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하였고 또 집안을 몰살한 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찾아보기를 포기해왔던 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집안을 박살낸 그들이 아직도 아린촌에 감시의 눈길을 주고 있을까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근처의 노산 구경을 간다고 말하면서 아린촌의 살던 집과 아버지가 배를 타고 나갔던 선착장 일대만을 둘러보는 그 정도라면 큰 문제가 될리 없을거라 생각하였다.


진원성은 또 자기의 몸상태로 봐서 이제 더이상 기다리기 곤란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으나 사실 이것은 진원성이 좀 민감하게 반응한 셈이었다. 기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단기간에 만들어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거 사부용의 시강 중에서도 말해졌지만, 사람의 수명이 단축되었던 것이 신선이 되는 데에 제약조건이 될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원성은 시강내용을 구체적으로 자기의 몸안에서 일어나는 것과 결부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바빠졌으며, 매사에 서두르는 감이 생겼던 것이며. 진원성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혼자서 판단을 해야만 하였는데 현재 자기의 몸상태를 보자면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농사는 막바지로 들어선 가을걷이 끝자락이었으며, 보이는 들판은 추수가 끝나서 텅빈 곳에 간혹 새들이 먹이를 찾아 날아드는 모습이었다. 진원성 일행은 하루에 세 시진 씩 동쪽으로 나가기로 하였으며, 날씨가 활동하기에 좋은 계절이니 좀 많이 걸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석도와 소주 총관에게 북경행과 강남행에서 느긋하게 움직였던 데에 반해서 서두르는 것에 대한 해명인 셈이었다. 그러나 진원성의 마음에 초조함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일에 메달려왔던 두 총관에게는 마음이 한가로워지는 좋은 여행이 되어졌다. 진원성은 두 총관에게 잘 대해줄려고 노력하였으며, 가는 데마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즐거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진원성은 워낙 많이 떠돌아다녀서 보고 들은 것이 많았으므로 머리 속에 먹물이 많이 든 석도총관도 말발의 재미로는 진원성 보다 한 수 아래일 수 밖에 없었다. 두 총관조들 역시 갇혀 지내다가 새장 밖에 나온 새처럼 날마다 총관들 옆에서 같이 좋은 시절을 보내고 좋아하였다.


객점에 들 때는 객실을 크기 다른 방 네 개를 얻어서, 하나는 진원성과 두 총관, 하나는 두 총관조, 다른 하나는 두 경비원, 다른 하나는 유래타 혼자서 쓰기로 정하였다. 석도와 소주는 이미 여행을 먼저했던 다른 총관들에게 들었으므로 의당 그러려니 하였다. 석도는 오래된 습관에 따라 이틀에 하루 씩 이상한 베게를 사용하여 이층으로 진원성의 위에서 잠을 자는 반면, 소주는 한번 포옹을 하고는 그냥 나란히 누워 잠을 잤다. 총관조 들이 눈치가 보여 진원성은 총관들과 함께 목욕을 하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석도 역시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소주총관은 더욱 더 조심을 하는지라 오히려 진원성이 섭섭함을 느낄 정도였다.


진원성의 마음은 진원성도 알수없는 부분이 있었다. 소주총관이 진원성을 내외하며 멀리하는 것에는 진원성의 몸이 병중임을 알고서 주의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가끔은 소주총관이를 자기를 따뜻하게 대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하였다. 그러나 소주총관의 속셈은 다른 것이 있었으니, 언제부터인가 진원성의 태도에서 자기가 언제 쯤 선계로 떠나게 되며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힘껏 애쓰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떤 때는 그렇지 않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지만, 다시보면 머지않아 총관들을 내버려두고 떠날 것으로 여겨지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소주총관은 그 마지막 순간에 다른 총관들 몰래 진원성을 따라나서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진원성의 기공이 도교의 진기이며, 자기가 공동파에서 얻어들은 전설에서, 진기가 극에 이르면 기체가 형성되어, 선계로 스스로를 이끌어가는 것이라 들었기에, 이것은 총관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소주총관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그리고 또 진원성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만, 그의 뒤를 따르는 데에 성공할 수가 있기에 극도로 조심해야할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진원성의 아이를 갖게되면 실패하기 때문에 그래서 몸의 접촉에서 부터 미리 조심해야만 하였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진원성 선계행에 동행하기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진원성은 7 일 만에 교주(膠州)에 도착하였으니 하루에 팔십 리 길을 매일 달려온 셈이었다. 교주에서 잠을 자고 진시가 지나서 출발하여 오시 경이 되자 진원성은 유래타에게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도록 지시하였다. 남쪽에는 교주만을 관리하는 군병들의 천호대가 머물고 있었으며, 해안을 경계하는 군병들은 산동성 해안을 빙둘러서 얼마 간의 간격을 두고 연이어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군대의 보급품을 전달해 주는 도로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주만 입구 동쪽에 있는 노산(勞山)에 가려는 사람들도 이 길을 이용하게 되었다. 유래타는 선두에서 진원성의 말대로 방향을 남쪽으로 바꿨으며, 그렇게 얼마간 가다가 허름한 반점이 나와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간판조차 떨어져 없는 허름한 이 반점이 진원성에게는 잊지못할 곳이었다. 어릴 적에 집에서 나와서 연대로 가는 군대의 마차로 숨어들었던 바로 그 자리였던 것이다. 다행히 없어지지 않고 있어줘서 고마울 뿐이었으며, 이 반점을 보니 다시금 속이 아파왔다. 다른 사람들은 점심 식사를 주문하는 동안 진원성은 근처를 잠시 둘러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아랫녘에 수십 호의 민가가 옹기종기 붙어있으며, 다시 그 아래로 조금 가면 금방 교주만의 바닷가가 있는 풍경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이나 이 바다를 보아야 했었는데... 진원성은 반점의 주인에게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저 아래 마을이 있군요. 마을 이름은 무엇인가요? 참 한가롭고 평화롭게 보입니다. 살기좋은 곳임을 알 수 있네요."


"저 아랫 마을은 아린촌(阿隣村)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열심히 사는 마을이라 살기좋은 마을이라고 할수 있지요."


"여기는 바다가 가까우니 고기잡이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을테지요?"


"고기잡는 배가 너무 비싸니, 가난한 ... 농사짓는 사람들이 더 많고요, 고기잡는 집은 얼마 안되요."


"나도 나중에 일선에서 물러나면 이런 곳에 와서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구먼요."


"손님은 아직 젊은 분인데 그런 말씀하시기엔 너무 이르지요."


"하아, 그렇기도 하군요. 마을이 하도 그림같이 펼쳐져 있어서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하였나봅니다. 밥먹고 잠시 둘러나 봐야겠군요. 길눈금이 그리 바쁘지 않으니..."


"손님은 어디에 가시는 길입니까?"


"우리는 등주부(登州府) 문등현(文登縣)까지 가야합니다. 우리는 제남 흑응회라고 상방(商幇)인데, 문등에 있는 회원들을 만나러 갑니다만, 아마 돌아올 때에도 길눈금이 맞으면 여기에 들리게 될런지 모르겠군요. 여기 교주만을 지키는 천호대가 저기 산 아래에 주둔하고 있지요?"


"제남에서 오셨구만요. 흑응회라고요? 무슨 물목들을 취급하는 방인가요?"


"돈되는 거라면 가리지 않는 편인데, 어이, 래타 아우, 혹시 주머니에 응자(鷹子) 가지고 있으면 좀 줘보게... 이게 우리 흑응전장에서 만든 것입니다."


"팅... 팅... 은자가 순분이 좋네요. 여기 교주에는 순분이 좋지않은 은자도 많이 돌아다닙니다."


"그거야 어디에든 악전(惡錢 순분을 나쁘게 만든 은자)들이 있지요."


"여기 교주에는 한 이십 여 년 전부터 악전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순분이 좋지 않으니 그것을 마냥 돌려쓰고, 순분이 좋은 은자가 손에 들면 그것은 집에 가서 부뚜막 옆에다 파묻어 보관한답니다. 그러니 자꾸 악전들만 돌아다니는 것이지요."


"그건 그렇지요. 어느 누가 양전과 악전 둘 중에 악전을 먼저 쓰지 양전을 먼저 쓸리는 없으니까요? 혹시 악전이 있으면 한번 보여주세요. 구경이나 해봅시다."


"자, 여기 보세요. 색갈부터가 틀려먹었지요. 생김도 매끈하게 동그랗지도 못하고... 이게 왜넘들이 만든 것이라 하데요. 왜국 넘들은 은자 순분을 좋게 만들지 못하나봐요."


"이게... 텅... 텅... 순분이 정말 좋지않군요. 이것은 동전 몇 개나 쳐줍니까?"


"우리들 끼리는 650 개 씩 쳐줍니다만... 외지에서 온 상인들은 650 개 못쳐준다고 그럽니다. 그래도 이게 제대로 친다면 700 개나 많이보면 750 개 까지도 쳐줄 수 있을텐데..."


"그게 왜국에서 어떻게 이리 들어왔을까요?"


"왜국의 큰 무역선들이 어쩌다가 태풍에 밀려서 교주만으로 피해 들어오면, 교주만을 지키는 천호대에 태풍 피하는 값으로 얼마 간 내고, 천호대 군병들이 이 은자를 이리저리 풀어내는 것이지요. 또 무역선들이 이 은자로 필요한 생필품 물목 들을 사기도 하고요. 또 조선국의 무역선들도 왜국에서 받았다면서 이 은자를 가져와서 물목들을 사가기도 하고요. 물목들이 대단한 량은 아니어서 군병들도 한쪽 눈 감고서 대충 넘어가고 말지요."


"흐음 그런 일이 있군요. 이런 악전들은 흑응전장에다가 맡겨서 호전으로 다시 만들면 좋겠구만요."


"아무리 그렇다고 여기서 제남까지 어느 누가 갈 수 있겠어요? 수 백 량이나 된다면 모를까?"


"행수님이 악전들을 모은다면 얼마나 모을 수 있겠어요. 내가 동전을 많이 가져와서 바꿔드리면 되겠는데요. 동전이 싫다면 은자로 바꿔드리던가 하고요?"


"흐음, 그렇다면 한번 알아봐야지요."


"그럼, 제남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잠깐 들려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네요."


"제남 흑응회라고 하셨지요.돌아가는 길에 놓치지 말고 꼭 들리겠다고 약속을 하세요. 저도 잘 알아볼테니..."


"그럼 가는 길에 꼭 들리기로 약조합니다."


진원성 일행은 점심을 먹고 좀 낮은 곳에 있는 아린촌으로 내려가서 마을을 둘러보았으며, 진원성은 자기가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냈던 그 집이 서있던 자리를 확인해볼 수 있었다. 재수없는 자리라고 누가 다시 집을 짓지 않은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맨 땅으로 있었으며, 십 수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땅의 어느 부분에는 거무죽죽한 불탄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자국은 미리 알지 않았더라면 불탄 자국이라고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희미하였지만, 진원성은 그 거뭇한 자국이 희미할수록 마음 속에서는 더욱 기억이 또렸해져왔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으면 그 때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었지만 그들은 살인자들의 신분은 물론이고 그림자조차 본적도 없을 것이 분명하였다. 또 관아에 가면 당시에 사고의 현장을 조사하여 작성한 문서가 창고 어디엔가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면 살인자 들에 의하여 그런 문서들이 이미 없어졌을지도 모를 것이다. 어쩌면 관아에 있는 그들이 살인자들의 끄나플일지 모른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었다.


어머니는 살아난다면 나중에 위패가 모셔져있던 자리를 파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그들이 파보고 없음을 알았던가 아니면 ... 아마도 어머니는 그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을 불태웠다는 것은 이미 이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갔거나 없음을 확인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버지는 교주만 밖의 어느 섬에 가신다고 말한 것까지 기억할 수 있었다. 어느 섬이라고 말하셨지만 그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무엇을 하였을까? 왜 교주만 밖에 나가야 했을까? 누군가가 교주만 안으로 들어오면 여러가지로 편할텐데... 진원성은 아버지가 밀무역 같은 일을 했을 거라고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진원성은 노산 쪽으로 좀더 높이 가서 교주만을 바라보았다. 교주만 바다는 먼바다를 향해 십 리도 못되는 조그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항아리의 모습이었으며, 아가리에는 가로막이 부표(?票)가 설치 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부표란 해안경비대 천호소에서 배들이 교주만에 출입할 때에 반드시 천호소가 위치한 쪽으로만 출입을 하도록 쇠줄로 물 속을 막아놓은 것이었으며, 아버지는 교주만 밖으로 나갈 때에 이 경비 군병들에게 알리고, 무엇인가 상납을 하고 나갔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 군병들이 아버지가 탄 배를 침몰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진원성은 여기까지 현장을 확인하고 되돌아섰다. 당장 교주의 관아에 사람을 통해 알아보려는 조급증도 생겼으나, '이번에는 여기까지' 라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진원성 일행은 그날 조금 무리하여 래주부(萊州府) 즉묵현(卽默縣) 까지 나아갔으며, 누가 보기에는 정말 스쳐 지나가는 일행으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진원성은 즉묵현 현성 밖에 객점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 객실에서 함께 차를 마시는데 석도총관이 입을 열었다.


"대형님, 마음이 좀 착잡하신가요?"


"그렇소. 나는 아린촌을 둘러보니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 더욱 ... 잡석과 잡초가 우거진 우리 집터만이 언뜻 거뭇한 것이 그것이 불탄 자국일 것이오. 아직은 어찌해야 할지 생각이 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빠르게 지나친 것이에요."


"십 년 이상을 기다렸으니,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 됩니다만..."


"십 년을 기다렸는데, 섣불리 움직여서 뱀이 도망치게 만들 수는 없어요. 나는 오늘은 이걸로 넘어가고 조만간 다시한번 혼자서 아린촌에 와야하겠어요. 아니 좀더 생각을 잘 정리해서 수단을 만든 후에 와야지요. 생각을 하다보면 좋은 생각이 날테지요. 소주총관은 원수를 갚을 때에 마적들을 이용했다고 했었지요."


"예, 저는 그 때에 혼자였고, 워낙 도와줄 손이 없었으니 하는 수 없이 마적들에게 부탁을 한 것이지요."


"나는 나의 원수가 누군지 모르는데 흑응회를 연계시킬 수는 없어요. 누군지 알고난 다음에 흑응회도 탈이 없고 나도 탈이 없도록 방도를 찾아야만 할 것이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오늘은 좀 ... 그렇구려. 가슴이 답답한 것이 ... 말로는 부족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