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사인묘(제6부)

제 016 회 감생들을 상대로 한 실험

금박(金舶) 2017. 2. 14. 12:58


이날부터 식구가 둘이 늘었으며, 두 아이들은 본래 부실한 데다 큰 수술을 받은 이후 사실 상 아직 몸이 다 회복하지 않은 셈이라 다음날 부터 먹고 자고 회복을 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배려해주었다. 북경총관과 진입본, 해대로 3 명은 객점에서 나오지 않고 하루종일 객실에서 뒹굴거리며, 배 고프면 점소이를 불러 무엇을 시켜 먹고는, 서로 이야기 하면서 사나흘을 지내게 되었다. 그 사이에 북경은 두 아이가 이미 천자문은 모두 알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 두 아이는 북경에게서 진원성이 흑응회의 대형이며, 부하들이 이천오백 명이며, 진짜 활불이며, 또 좋은 일을 많이하는 엄청나게 훌륭한 사람이란 것을 이야기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북경은 모든 이야기의 끝에 자기는 훌륭한 활불의 부인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아이 둘을 데려온 다음 날 오후에, 진원성과 해녕 둘이서만 객점을 나와 북경 시내를 걸어다니며,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황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점이다. 황성의 문을 통과하려면 별표(別表)가 있거나, 수문병 들에게 무슨 일 때문에 들어가며, 어디의 누구를 만나려 하는지 말하고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둘이서 구경하는 첫날에는 성 남쪽의 여러 곳을 기웃거리며, 활기차게 움직이는 만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뒷골목 시장을 헤메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만나는 작은 상점을 스쳐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슨 부(府 관청들이 산재하여 많았음)라고 현판이 걸린 큰집들도 지나치기도 하면서 해녕은 나름대로 해방감을 만끽하였다. 


다음 날 오후에도 둘이서만 함께하게 되자 해녕은 진원성에게 뜻밖의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이날은 둘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말들은 큰 의미는 없었으며, 그저 순간순간 느낌을 주고 받으며 바로 잊어버리는 그런 말들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더욱 가치있는 것은 순간순간 느낌을 주고 받으며 바로 잊어버리는 그런 말들일 수도 있었다. 필요한 의미있는 이야기는 그 필요가 없어지면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의미없는 그 이야기들은 해녕의 먼 훗날에 어쩌다 한마디 씩 뜻밖의 기억으로 떠오르고는 했던 것이다.


"진랑, 우리 말을 타고 황성을 한바퀴 돌아볼까요? 아마 우리 부부가 말타고 황성을 한바퀴 돌아본 최초의 부부가 될지도 모르는데..."


"난정 그대의 생각은 가끔 특별해요... 참 좋은 생각이네요. 그런데 이거 한바퀴 돌려면 시간이 얼마 걸리려나 모르겠네요. 그래도 돌아봅시다."


"진랑, 대형이라는 대신에 진랑이라 부르니 듣기에 더 좋은가요?"


"듣기에 좋으니 앞으로 둘이 있을 적에는 그리 불러주시구려."


"북경총관이 기념은표에 아들 셋을 낳게해달라 그랬는데, 그것은 진랑이 지킬 수 없는 약속이지 않나요?"


"북경은 아들 셋을 하나로 바꾸었오. 내게만 살짝 말하는 게 욕심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는가 보오. 하지만 하나라 해도 해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요. 그러니 그것은 가급적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보자는 희망을 약속한 것이라 봐야지요. 미래의 모든 약속은 사실 다 그런 뜻이라 생각합니다."


"듣고보니 그 말이 맞네요. 그러면 나는 은표에 다시 바꿔 새길까요? 대장군감 아들 열 명으로..."


"그것은 너무 무리한 이야기요. 대장군이라면 우리 명나라에 아마도 열 몇 명 밖에 없을텐데, 그 대장군들이 모두 나의 자식들로 채워질 수는 없지 않겠소?"[명나라 군제에서 대장군 이상은 300 여 명이라 할수 있습니다.]


"호 호 호, 생각만해도 재미있네요. 저는 은표를 그냥 그대로 놓아두겠어요. 하지만 대장군감 아들을 북경총관에게만 줘서는 안된단 말이에요? 아시겠지요? 참 진입본 이라는 아이는 권술을 배우게 하려고 사온 것이지요? 진랑의 양자가 아니고요?"


"그렇소. 양자가 아니요."


"그런데 왜 성을 진씨로 붙여주셨어요?"


"흑응회의 근본을 세우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길 바라기 때문에 내가 나의 성씨를 주어서 본인도 그 뜻을 충분히 알도록 하였던 것이에요. 나의 부인들을 잘 지켜내는 것이 근본을 세우는 것의 첫걸음이요. 호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난정 그대 때문에 알게 되었어요."


이날 오후에 둘이서 말타고 황성을 한바퀴 도는 데에는 두 시진이 넘어 걸렸으며, 수많은 눈총을 받으면서도 말 두필 위에 두 사람은 서로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난정은 하루 지나면 생각나지 않을 수많은 이야기를 쫑알거렸으며, 아주 지쳐서 객점에 돌아와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북경총관은 그걸 보고 놀라서 어디 아픈거냐고 물었다가 해녕의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을 하였다. 먼 훗날 해녕총관은 이 때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때는 아무 것도 없는 시간이었어. 무엇을 보았는지 말했는지 기억에도 없고 진랑과 둘이서 함께 있다는 것만 기억나네. 아 나의 평생에 가장 행복했던 때가 있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느꼈던 그 순간 그 때라고 말할 수 있겠지'. 


누구에게나 행복해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순간적으로 욕구를 망각함으로써 짧은 동안 전적으로 충족감(充足感)을 느끼게 되는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치열한 욕망을 달성하였을 때에 그 순간 느껴지는 성취감(成就感)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그 순간은 바로 지나가버린다. 충족으로 잊혀졌던 욕구는 다시 일어나 공복감(空腹感)이 되며, 성취감 역시 순간 더 큰 결핍감(缺乏感)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어져 가는 것이 생의 실상(實像)이라 할 것이다.


다음 날 저녁이 되자 왕준서가 객점에 돌아와서, 여섯이 함께 식사를 마친 후 얼마쯤 지나니, 점소이가 와서 손님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방문을 붙인지 며칠이 지난 오늘에야 임영후가 그것을 보았으며, 친구를 하나 데리고 찾아온 것이다. 삼층의 객실에 와서 서로 얼굴을 본 후에 2 층에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진원성이 나이 한 살이 위인 처남에게 처음으로 내는 술자리였으며, 북경총관과 두 아이들을 뺀 5 명 즉 진원성, 왕준서, 해녕총관, 임영후와 친구, 들은 2 층의 마련된 자리에 둘러 앉게 되었다.


난정은 멀리 와서 동생을 만나게 되어 무척 기뻐하였으나, 동생 임영후는 진원성을 썩 좋아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처음 보는, 나이 어린 매형이라 그것이 어색하였는지 몰랐다. 그래도 오랫만에 보는 누이는 반가웠는지 눈빛에 그것이 나타났다. 임영후는 경성에 올라와서 예감생이 된지 3 년 째이며, 이제 다음의 회시에는 참가하여 꼭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어야 할 처지였다. 진원성은 점소이 출신인지라 임영후와 친구의 표정을 보고서 저녁을 먹지 못하였음을 알았으며, 말없이 알아서 적당한 요리 네 가지와 술을 주문하였고 좌석을 가만히 경청하고 있었다. 이 자리는 난정과 영후의 반가움이 가장 우선이며, 그 다음이 자기와 영후의 친분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임영후가 입을 열어 친구를 소개를 하였으며, 난정이 나서서 이쪽을 소개하였다.


"이 친구는 경성에 와서 사귄 친구입니다. 이름은 이찬(李燦)이고요, 하남성 개봉 출신이며,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위인 용띠고요, 저와 같은 감생 3 년차 입니다."


"이찬이라 합니다.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여기는 영후 네 매형이시고, 이름자는 으뜸원자 이룰성자다. 여기는 매형의 의동생이 되시는 준걸 준자 상서로운 서자이시고, 지금 황궁에 태감으로 계신다." [당시 경성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환관들은 대부분 품계가 태감이었으므로 만성들은 모든 환관들을 태감이라 부르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진원성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왕준서라고 하고요,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형을 처음 뵙는데, 이야기로 듣던 것과는 다르게 ... 호남이신데요?"


"내가 얼굴 모습이 좀 변하기도 했지요. 이렇게 멀리와서 처남을 만나게 되니 반갑네요. 또 이찬이라는 친구 분도 개봉에서 오셨구만요? 저보다 두 살 년상 이신데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글 공부는 거의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이 배우신 분에게 좋은 말들을 잘 배우려 합니다."


"예, 글공부가 과연 배울 가치가 있는가... 요즈음 우리 감생들 사이에서는 글공부가 과연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런 토론을 하는 분위기 랍니다. 글공부가 오히려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런 말이지요."


"농담하시는 것이죠?"


"농담 아닙니다. 사서삼경을 깊이 공부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어 출세를 한 사람들을 보자면 하나같이 사리사욕에 가득찬 그런 사람들만 있으니, 과연 공부가 어떤 효용이 있느냐? 하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사람을 개량하는 진정 가치 있는 것이라면, 과거에 급제한 것만으로도 아니 감생이 된 것만으로도 훌륭한 품성이 되어야 할 터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 뜻이지요. 오히려 하나같이 탐욕 가득찬 사람이 되어버리니 공부가 오히려 사람을 망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은데 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셔야 알겠군요."


"매형은 난데없이 이 이야기를 들어서 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요즈음 감생들 사이에서 한참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오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공부로써 더 훌륭해질 수 있느냐 아니면 오히려 더 악해지도록 만드느냐? 이런 논쟁입니다."


"공부는 꼭 필요하고,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본성을 나쁘게 하다니 말이 이상합니다."


"진 형이라 부르겠습니다. 진형은 아마 모르실 것입니다. 도학이 본성을 좋게 만든다면 아니 그보다도 ... 본성 자체가 착하다면, 그리고 도학이 본성을 더욱 착하게 만든다면... 오늘날은 도학이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 높이 밝아져 있으며, 도학이 나라를 다스리는 핵심 이념이 되어있습니다. 과거 시험 자체가 바로 그 증거이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당연히 밝은 치세에서 살아가고 있어야 할텐데, 진형이 보시기에 지금의 형편이 정말 그런가요?"


[맹자(孟子)는 본성을 선이라고 보았다.(性善說) 그는 그 근거로 사람이 누구나 남의 불행을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고 이로부터 4단(四端)과 4덕(四德)을 이끌어내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실마리이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의 실마리이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의 실마리이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형께서 말씀하는 설은 본성은 착하나, 주위 환경과 배움이 악하니 악에 오염되어서 결국 지금 이 세상이 악하게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가서 본성이 착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즉 본성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말이지요. 이 세상이 그리 만들어진 탓이라는 겁니다."


"임 형의 말씀을 진형은 아시겠습니까? 과거에 국자감의 사부님들 사이에서 이게 논쟁이 된 적 있습니다. 사부님들의 의견이 두 개로 나뉜 것입니다. 한 쪽은 본성이 착하므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착한 그대로 살게된다는 것이고요, 다른 한 쪽은 본성이 악하므로 공부를 해야만 옳바르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쪽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 또 공부를 하면 더욱 좋아진다는 것과 같고요, 다른 한 쪽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선악을 구분하지도 못하며, 공부를 열심히 해도 그 효과가 크지않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본성이 착한지 악한지는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사람이 악하게 되는 것은 분명 환경과 주변의 영향 때문이라 할 근거가 있습니다. 사부님들 몇 분이 감생들을 데리고 실험을 하였습니다. 실험 대상을 포함한 다섯 명에게 아주 억울하게 송사(訟事)를 당한 만성의 예를 들면서 만성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냐 아니면 그 만성에게 벌금을 내려 은자 열 량을 거둘 것이냐를 묻게 하였고, 먼저 말을 맞춘 감생들이 한 사람씩 대답을 하게 합니다. 첫 번째로 미리 말을 맞춘 감생이 대답을 합니다. '만성이 억울하다고 확신합니다만, 그래도 만성이 은자 열 량을 벌금내도록 판결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말을 맞추지 않은 감생은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게 됩니다. 분명 이것은 잘못된 판정이며, 지방관이 이렇게 판정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감생들은 나라의 관장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감생들의 관심을 크게 끌 수 있는 사안(事案)이지요. 이어서 제가 말을 하지요. 그 다음에 대답을 하는 감생 역시 사전에 말을 맞춘 사람이며, 대답은 더욱 가관입니다. '은자 열 량을 벌금으로 내도록 해야하며, 장을 열 대 정도 때려서 다시는 본 건으로 송사를 하지 못하게 표본을 세워야 합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말을 맞추지 않은 감생은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입까지 벌리며 놀라게 됩니다. 속으로 어찌 이런 판정을 내린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지요. 이런 식으로 세 번째, 네 번째 사람의 말을 듣고난 다음 자기 차례가 되어 말을 해야합니다. 그는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참 재미있네요. 어찌 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