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신제(제5부)

제 022 회 6 년만에 흑응회에 돌아오다

금박(金舶) 2016. 12. 13. 09:16


북경성에서 제남까지의 관도(官道)는 대운하를 따라서 설치되어 있는 것과 그것과는 별도로 각 성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관도가 있었다. 진원성은 산동성 덕주(德州)까지는 운하의 옆길을 따라가면서 역참이나 객점을 이용하기로 하였고, 덕주에서는 제남을 향해 곧장 열려진 관도를 타기로 하였다. 관도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서 말을 빨리 달리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레 걷게 되었다. 또 처음 길이므로 서행하면서 주변을 잘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덕주의 반점에서 하룻밤을 자려고 눕다가 진원성은 북경에서 갖고 있던 의문점 하나를 해결하였음을 알았다. 자기의 속사람이 혼자서 의문점을 계속 연구하여 깨우친 것이라 여겼다.


북경에서 왕준서에게서 들었던 설명 중에서 홍무제가 마시(馬市 = 차마사, 견마사)에서 말 값을 두 배로 쳐주라고 했다는데 그것이 어떻게 해서 변경의 유목민들을 달래는 것이 되면서, 전쟁을 방지 또는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일까? 진원성은 연구 끝에 이 문제의 답을 찾아내었다. 이것은 진원성이 넓은 유목민들의 지역을 여행하면서 유목하는 현장을 보았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초지(草地)는 크기에 따라 짐승을 키울 수 있는 숫자가 한정이 되어 있으며, 그곳에 말을 많이 키울 것인가, 양을 많이 키울 것인가 하는 것을 유목민들은 어떻게 결정할까? 홍무제의 조치는 유목민들에게 결국 말을 명나라에서 사들이는 정도만 키우고 그 이상은 키우지 않게 되도록 마음 속에 금제(禁制)를 심어준 것이었음을 진원성은 깨닫게 된 것이다. 전쟁은 말이 없으면 할 수 없으므로 이로써 전쟁은 예방되는 것이다.


몽골 내부에서는 말 한 필이 은자 둘 혹은 석 량 정도였다. (그나마 유목민들 사이에서 서로 말을 사고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행 중이던 진원성 같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서야 어쩌다 한번 팔 수 있을 뿐이다.)  또 씨를 뿌리는 좋은 종자의 숫양이나,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암양은 은자 한 량에 둘 혹은 세 마리 였으며, 다른 양들은 은자 한 량에 다섯 마리 또는 일곱 마리였다. 말은 풀을 대충대충 엉성하게 뜯어먹으며, 그 대신에 아주 넓은 곳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 양은 풀을 거의 뿌리까지 뜯어먹는다. 말은 차마사에서 팔면 아주 좋은 값에 팔 수 있지만, 그 숫자가 한정되어 있으며, 일상적인 탈 것 그 이상은 아무리 많아도 결국 잡아먹기 밖에 할 수 없다.


식량으로 쓰려면 말보다는 양이 훨씬 효율적이며, 어떻게 하여 말을 잡아먹어야 할 때마다 유목민은 말없이 가슴아파 할 것이다. '아 이걸 마시에 팔면 은자 열 량인데, 이걸 잡아먹어야 하네, 제기랄, 말고기가 양고기보다 맛있기는 하지만...' 생각하면서 한탄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지갑이 얇은 사람이 배는 고픈데 주위에 고급음식점 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평소에 먹던 것보다 네 곱절 비싼 값으로 사먹어야 하는 것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므로 유목민들은 말 사육은 가급적 제한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목족의 전쟁 수행능력은 자연히 위축될 것이다. 진원성은 이렇게 이해를 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참으로 교묘한 계책이라 생각하였다. 토번에 차를 처음에는 값싸게 풀었다가, 나중에는 차값을 비싸게 하여, 토번 만성들을 통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것이다.


[명나라의 조선국 우대조치는 또 하나의 교묘한 책략이었다. 명나라는 동일한 상등마의 경우에 여진족에게는 비단 30 필, 조선국에게는 비단 50 필로 값을 쳐주었다. 조선국 상인들은 여진족들에게 말을 사서 곧 바로 명나라에게 팔면 아주 쉽게 말 한 필당 비단 20 필을 벌게 되었다. 물론 수량에 제한이 따랐다. 이런 제도는 결국 여진족과 조선족 사이에 갈등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이것이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수법이다.]


이때의 진원성은 명나라에서 마련하여 움직였던 밀정(密偵)과 감합(勘合 명나라가 주변 국가에게 혜택을 배풀었던 공무역 허가 증서임)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홍무제와 영락제에 의하여 준비된 계책이었다. 만약에 유목민 중에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전쟁을 일으키려면 적어도 오 년이나 십 년 전부터 양 대신에 말을 많이 키워야 할 것이며, 그런 변화를 명나라에서 미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몽골 부족들 곳곳에 밀정을 숨겨두는 것이었다. 게다가 감합제도를 도입하여 무역의 이권을 각 부족 간의 경쟁과 견제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때때로 명나라는 감합제도 마져 폐쇄하여, 말을 팔아야만 하는 유목민들을 괴롭하기도 하였다. 감합과 마시 제도는 참으로 교묘한 전쟁 억제책의 소산이었다. 


진원성은 덕주에서부터는 제남에 도착하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병 문제였다. 부인들이나 회원들이 물어보면 이것은 '아직 치료를 하지 못하였으나 이미 치료방법을 알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치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 꼭 치료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다' 이렇게 답변을 하기로 정하였다. 또 선녀가 되겠다던 마유친 누이를 부인으로 만들고, 우룸치의 준갈이족과 함께 있었던 음교녀 3 명도 부인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들 4 명은 천애 고아이며, 자기가 선계로 떠나면 그야말로 의지할데 없고 오갈 데도 없는 처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음이다. 커얼친 부의 공주는 아직 어리므로 나중에 커얼친부에 들려서 혼인을 무효로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자기가 앞으로 남은 5 년 동안 해야할 일은 만성들의 피난처를 만들며, 그것을 잘 해내도록 처들 8 명과 흑응회와 적목단 사람들을 단결시켜서 하나의 굳건한 단체로 만드는 것으로 정하였다. 자기가 없더라도 최소한 오십 년이나 백 년은 유지될 수 있는 그런 단체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또 진원성은 흑응회에 도착하면, 하루 날을 잡아서 가급적 많은 인원을 모아놓고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사부용이 교육을 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하려는 것이었다. 제남에 가까이 오니 옛날 일이 많이 생각났다. 얼마만인가? 곰곰 기억을 더듬어보니 제남을 떠난 것은 만력 36 년(서기 1608 년임) 4월 이었다. 그리고 낙양을 떠난 것은 만력 37 년 3월 이었다. 지금이 만력 41 년(서기 1613년임) 11월 이니, 6 년 만에 제남에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별로 오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며, 참으로 긴 세월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다들 어떻게 지낼까 혹시 무슨 변을 당하여 ... 잠시 걱정을 하다가 어쩌면 더 잘되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위안을 삼았다.


11월 3일 신시(申時) 무렵 진원성은 대청하(大靑河)의 부교를 말 두필의 고삐를 잡고 걸어서 넘었다. 이렇게 마침내 제남에 도착한 것이다. 눈을 가늘게 하여 둘러보니 모두가 진원성의 기억 한켠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진원성은 선착장에서 다섯 대의 흑돈들이 손님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는, 흑응회가 아직은 건재하다는 것을 알았다. 진원성은 말을 타고 또 한 필을 메달고서 제남의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다. 그 동안 얼마나 변하였는가 하는 것이 궁금해서였다. 그리고는 해가 붉어지고 햇빛이 누울 무렵에 흑응장원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진원성은 흑응내장원의 닫혀있는 대문을 두드렸다. 그 때에는 하루 종일 대문을 열어두었는데, 이제 닫혀있는 것은 왜 일까 생각하였다.


대문을 열고 나온 것은 진원성이 모르는 남정이었다. 진원성은 젊잖게 말을 하였다.


"여기가 흑응회가 맞습니까? 오랫만에 오게되니..."


"여기는 흑응회의 내장원이고요, 흑응회에 볼 일을 보시려면, 저기 1 장원으로 가셔야 합니다만... 얼마 전에 여기에 있던 집무실과 빈청이 모두 1 장원으로 옮겨갔답니다."


"그래요. 그러면 총관을 좀 불러주시겠소?"


"예, 잠깐 들어오시지요..."


진원성은 빈청으로 들어가 안내해준 곳에 말 등에서 내린 물건들을 내려놓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잠시 후에 해녕총관이 방에 들어왔으며, 참으로 오랫만에 서로 얼굴을 대하게 되었다. 해녕총관 아니 난정은 그 순간 발을 멈추고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인가 해야 하는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진원성이 다가가서 난정의 손을 잡으면 말을 하였다.


"난정 누님, 나 이제야 돌아왔어. 그동안 잘 있었어요? 얼굴이 좀 적어졌는가? 아니면 너무 오래되서 내 기억이 ..."


"대형님, 어서오세요... 하지만 너무 오래 되었어요. 조금 더 빨리 오셨으면 ... 아니지, 이건 아니고요.   마유친. 아린, 석도, 하미 총관을 빨리 오라하고, 앞에 당번에게 말해서 회수부에도 대형님 오셨다 전하라고 해요."


"아! 마유친 누이도 여기 있었구만. 어서 말 전해주세요.  난정 누님, 여기가 좀 바뀐 것 같네요. 그렇지요?"


"여기는 이제 회주부에서 사용하게 되었어요. 오랫만에 오셨으니 바뀐 것이 많을 것입니다. 우선 흑응회 조직이 바뀌었고요. 초무량 회수는 1 장원의 의사당으로 옮겨 갔어요."


"음, 오랜 시간이니 바뀐 점이 많을테지요. 바뀐 것은 시간을 내서 천천히 알아가면 될 것이고... 흐음, 이제보니 난정 누님의 몸이 수척한 것 같구만요. 어디가 아픈가요?"


"예, 좀 아파서 고생을 하였고 이제는 거의 나았습니다. 대형님도 모습이 꽤 많이 변하셨습니다. 가만, 제가 차 한잔 가져오겠습니다."


"나도 나이를 먹고, 공부를 더해서 그런지 털이 많이 빠지고 근육과 몸집도 많이 줄었소. 흐음... 내가 오늘 밤에 난정 누님을 자세히 살펴봐야 하겠어요."


"......"


잠시 후 허겁지겁 내장원 빈청으로 3 명이 뛰어들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초회주님, 조단주님, 그리고 이분은..."


"이분은 전 하남포정사께서 소개해주셔서 오신 회우님이십니다. 거인(擧人 향시에 급제하여 회시를 볼 자격을 갖춘 사람)이신데, 우리 회를 이끌어주고 계시지요."


"처음뵙네요. 진원성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형님 처음 뵙습니다. 백시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초회주님, 그동안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근처를 한바퀴 돌아보았지요. 눈에도 이렇게 바뀌었으니 속으로 바뀐 것도 더 많을테지요. 참 조단주님께서는 낙양에 계실 것으로 생각하였는데...여기에서 뵙네요."


"그게... 아, 이걸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나?"


"그것은 제가 말씀을 드리지요. 낙양의 적목단은 모두 제남 흑응회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럴 일이 있었고요, 좀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해드리겠습니다. 대형님도 모습이 많이 바뀌었네요. 참 긴 시간이었지요."


"흐음 그럼 그렇게 하지요. 이렇게 건강한 얼굴만 뵈어도 저는 만족합니다."


"대형님께서 9월 말에 오신다고 하라하슨에게서 연락을 받았으나 오시지 않자, 회원들 모두 다 기다렸습니다. 이제 오셨으니 되었고요,.. 여독(旅毒)을 푸시자면 사흘 간 쉬셨다가, 오는 7 일부터 대형님이 일을 보기 시작하면 어떨까요? 그동안 우리들도 대형님께 보고할 것을 준비하고요."


"예, 그것이 좋겠군요."


"그럼, 7 일 오후부터 뵙기로 하겠습니다. 오전에는 제가 수련을 해야하니 ... "


"자, 그럼 쉬십시오... 우린 나갑시다."


"아, 이제 오는구만, 아린총관, 석도총관, 오랫만이요. 여기는..."


"여기는 쿠몰국에서 오신 공주님이에요. 그리고 여기 네 명은 시녀들이고요... 임시로 하미총관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흐음... 이름이 탓렁이지요? 하미총관 쿠몰국에서 여기에 ... 먼길인데 고생이 많았을 거요. 고생이라고는 해보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좋아보입니다."


"예, 타틀리윰입니다. 2 년 만에 뵙습니다."


"대형님, 몸은 건강하신가요?"


"아린총관이 내 몸 건강을 묻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겠소. 내 몸은 아직도 치료 중이요. 이젠 방도를 알았으니 조만간 치료가 끝나게 될 것이오."


"아! 그렇다면 오랜 여행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군요? 우리들이 애타게 기다린 것이 ..."


"대형님의 모습이 꽤 많이 변해서 밖에서 보면 몰라볼뻔한 정도이니 무슨 일인가요? 얼굴에 흉터가 있었는데 이젠 흉터도 없어지고요."


"내가 오 년 전에는 양기가 가득차고 넘칠 정도가 되어 얼굴과 눈빛마저 붉고, 온몸에 털도 많이 있었지만, 그 후로 음과 양이 균형이 맞춰지니 붉은 기운이 가시고, 털도 많이 없어지고 또 내가 저녁식사를 안먹고 있어서 그런지 근육과 몸집도 많이 줄었어요. 그러나 옛날의 진원성이 바로 여기 있는 진원성이오. 잘 보시오, 눈 아래에 있던 흉터도 아직 가늘게 흔적이 남아있잖아요?"


                                                                    [그림 진원성 모습]


"대형님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아닌데..."


"자, 오늘은 저녁을 모두 함께 먹읍시다. 이곳 빈청으로 가져와서... 난 먼저 좀 씻어야 하겠어요."


"대형님 이곳에는 따로 선방이 마련되어 식사는 선방에서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