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신제(제5부)

제 021 회 11 년 만에 아우 왕준서를 만나다

금박(金舶) 2016. 12. 12. 10:14


진원성은 반점에 하루를 더 묵겠다고 하고서 기다렸으며, 저녁 무렵이 되어 객실에 찾아온 왕준서를 만날 수 있었다. 편지를 받은 왕준서는 일이 끝나자 정신없이 황성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왕준서는 진원성을 보자 얼굴을 확인하더니 대뜸 품으로 안겨들었다. 그리고 진원성을 꼭 껴안았으며, 소리를 내어 엉엉 울었다. 자기 방안에서 둘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누가 보았더라면 오해를 할 정도로 왕준서는 막무가내였으며, 두 사람의 가슴 사이에서 무엇이 부러지는 소리가 뿌드득 하고 들렸다.


그러자 왕준서는 얼른 떨어져서 가슴 속에서 세 조각으로 쪼개진 얇은 나무판을 꺼내었다. 그것은 진원성이 왕준서에게 전해달라고 맡겼던 바로 그 기념 나무패였다. 조각을 맞추어보니 '진원성, 왕준서를 만나 형제를 맺었다. 만력 30 년 모월 모일' 글씨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너무 오래되고 닳을데로 닳아서 글씨도 희미해졌으며, 그림도 손때가 많이 묻어서, 왕준서가 그동안 얼마나 이 나무패를 아껴서 만져왔는가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앗, 이를 어떻게해? 내 보물인데..."


"내가 다시 만들어 줄께. 이번에는 은으로 만들어 줄께. 어디보자. 그 동안 잘지냈냐?"


"나는 형을 다시는 못만날 줄 알았어. 편지라도 보내주지?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나도 그동안 여러가지 일이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지 않았냐? 오늘부터 밀린 이야기를 실컷 하자구나."


"형, 나는 내일은 황성에 들어가지 않아도 돼. 오늘은 밤새워 이야기를 해줘..." 


"그래, 그렇게 하자. 네 얼굴은 여전히 이쁘구나."


"형, 이쁘다고 하지마. 아니 형이니까 괜찮아. 나 오늘 정신이 없어서 깜박한 것이 있어... 걸레를 바꿔야 하는데, 형. 내게서 찌린내가 나지?"


"응? 찌린내 냄새? 모르겠는데..."


"우리들은 오줌을 흘리는 경우가 많아서 걸레를 차고 있다가 하루에 몇 번씩 바꿔야 해. 아니면 찌린내가 나거든. 잠깐 나 걸레 좀 바꿀께."


"아니 오줌을 흘린다는 게 무슨 말이냐?"


"형은 모를거야. 환관이 되려면 고추랑 불알을 잘라내야 하거든. 그러면 오줌을 흘리는 일이 많아져... "


                                                                     [그림 왕준서의 몸]


"으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자식을 둘 수 없다는 것이지."


"응. 그래도 나는 형이 있으니까, 나중에 형이 아들을 많이 낳아서 그중 아들 한 아이만 나에게 양아들로 줘. 나도 아버지라고 불리워보게. 그래도 될까?"


"흐...음. 그것은 내가 아들을 둘 만 낳으면 그렇게 하기로 하자. 알았지?"


"역시 형은 내 맘에 쏙 들구만. 형은 지금 어디에서 살아?"


"나는 지금 산동성 제남에서 살아. 제남부 흑응회라고 상방(商幇)이야. 회원이 한 오백 명 쯤 되고, 내가 대형이다. 우리는 회주 대신에 대형이라고 부른다. 너 상방이 뭔줄은 알지?"


"그럼, 그정도는 알지. 형이 제남 흑응회의 회주라고... 그럼 잘 된건가? 제남이면 아주 멀지는 않구먼. 그동안 형은 어떻게 지냈어? 나야 황성이니까. 뭐, 맨날 그날이 그날인데... 형 살아온 이야기좀 해봐."


"그럴까? 참 네가 봉어라는 벼슬을 한다고 하드라. 그게 무슨 벼슬이냐?"


"응, 그거는 우리들 한테는 가장 처음으로 얻는 벼슬이야. 품계 중에 가장 낮은 벼슬이지. 이제 한 십년 쯤 지나면 벼슬이 한 품계 올라서 감승(監丞)이 되면 그 때에는 진짜로 힘을 낼 수가 있어, 지금은 형이 상방을 해도 내가 도울 수는 없어."


"나는 네게 도움을 바라고 그걸 물은 것은 아니고, 내가 너를 도울 일이 없을까 하고 물었던 거야. 나는 따로 도움을 얻을 사람이 있으니 네가 그 걱정은 안해도 된다. 그럼 넌 이제 맨 밑바닥은 벗어난 것이냐?"


"맨 밑바닥은 진작 벗었지. 환관들은 절반 이상이 아무런 품계가 없어. 그러니까 나의 봉어라는 벼슬이 벌써 절반 이상의 높이란 것이지. 그래도 황성이란 위험이 많아서 항상 긴장해야해. 우리 환관들 중에 높은 벼슬은 정말 위험해. 태감이란 벼슬이 제일 높은데, 태감들 중에서 적어도 한 달에 세 명이나 다섯 명은 죄를 얻어서 죽게돼."


"야! 정말 무시무시하구나. 너 정 위험하면 환관 그만두고 내게로 와."


"아냐,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우리 환관은 황제의 명을 받거나 또는 죽어서, 경성 밖으로 나가는 것이 원칙이야. 그러니 내 맘대로 나갈 수가 없고, 내 맘대로 했다가는 쫓겨야 돼."


"쫓기더라도 죽는 것 보담은 낫지. 무슨 일 있으면 내게로 와. 여기 북경에서 대운하 끝머리 통주로 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제남으로 와, 제남 선착장에 내려서 흑돈을 타고, 흑응회로 가자고 하란 말이야. 알았지?"


"흑돈? 흑돈이 뭐야?"


"그것은 혼자서 타는 마차고, 말 대신에 사람이 끌고가는 거야."


"흠. 그런 게 있었구나. 그런데 사람이 끌어... 말이 값이 더 쌀텐데..."


"사람은 남정 노예가 값이 은자가 열 량이고, 말도 열 량이지 아마? 북경에서는 말 값이 얼만 줄 모르겠다. 말이 끌더라도 마부가 있어야 되고, 그렇게 되면 한사람이 타고 움직이기에는 너무 비싸고, 그래서 흑돈에게 유리한 점이 있는 것이야."


"형, 내가 일하는 곳이 병장국이야. 그래서 주로 전쟁에 관한 물건을 많이 다루지. 말도 그 중에 하나야. 북경에선 말값이 상등마가 일곱 량 정도고, 보통은 넉 량이라 보면 돼."


"내가 변경의 차마사에서 보니 좋은 말 한 필에 비단 40 필인가? 준다고 들었던 것 같아 그러면 그게 은자 열다섯 량 정도라 할텐데..."


"그것은 형 말이 맞아, 변경 가는 비단은 질이 좀 낮아서, 은자로 치면 열 량 정돈데, 우리 명나라가 그들에게서 말을 일부러 비싼 값으로 사오는 거야. 왜냐하면 그들 유목민들에게 우리 변경을 시끄럽게 하지말라고 은자로 달래는 것이거든..."


"일부러 비싸게... 그런 일이 있단 말이지?"


"이것은 명나라를 세우신 홍무제, 또 영락제 께서 그렇게 달래는 것이 더 값이 싸게 먹힌다고 오래 전에 정하신 거래."


"흐음, 그래도 값을 두 배나 쳐주다니 그건 좀 심한 것 같다만... 내가 지나온 길을 이야기 할께. 나도 그동안 네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어. 11 년 전 북경에서 너와 헤어진 다음에 나는 심양까지 갔었다. 그리고 다시 북경에 돌아왔는데, 그 때는 너에게 연락할 기회가 없었어. 나는 산동성 제남으로 가서, 반점에서 점소이 생활을 하고, 그 다음에 흑돈을 끌다가, 운이 좋아서 흑돈회의 회주가 되었거든..."


진원성은 얼마 전 범문정에게 털어놓았던 지난 과거를 다시 한번 왕준서에게 좀 줄여서 털어놓았다. 이야기의 내용이 좀 재미도 있고, 지나는 곳마다 새로운 풍물도 나오고 워낙 광대한 지역을 휘둘러 여행을 한 것이라 제법 들어줄만큼 이야기 꺼리가 되었다. 왕준서는 이야기를 듣고서 자기의 형 진원성이 엄청나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다는 말을 듣고서, 다른 사람들이 진원성을 활불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생각하였다. 진원성은 심의파, 쇄음수의 일과 전국옥새의 일은 감추고서 말하지 않았으며, 또 한가지 자기의 병은 얼마 후면 모두 치료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왕준서는 자기를 활불이라 믿고 있는데, 자기 몸에 있는 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말을 어찌 할 수 있었겠는가? 또 자기가 신선이 될 것이란 말을 하면 왕준서에게 아들을 하나 주기로 한 약속도 거짓말이 될터이니 얼마나 실망할까 생각을 싶어 차마 그 얘기를 못하고 넘어갔다. 새벽 인시가 되어서야 진원성은 긴 이야기를 끝낼 수가 있었다. 


진원성은 평시와 같이 잠시 좌정을 하고서 호흡을 하다가, 왕준서가 잠든 것을 보고서 아침수련을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반점의 뒷편으로 작은 정원이 있었으며, 그 사이에는 작은 오솔길도 있었고, 조그만 연못과 작은 정자도 지어져있는 앙증맞은 정원이었다. 수련을 하기에 좋은 연무장 같은 것이 있다면 좋으련만 생각하며, 다른 길을 보았으나 그쪽은 마굿간들과 창고들이 있는 곳이라, 정자에 그냥 앉아서 진기로 무공을 만들어 그것을 내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결국 마유친이 말해준 내용을 떠올리고 한 호흡에 1000 보를 움직일 수 있나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몸은 가만히 좌정을 한 채로, 일기창법의 각 세를 차례대로 마음으로 펼치면서 보를 세어보았다. 12 세 중에 10 세만 펼칠 수가 있으니, 처음 1 세부터 시작하여 10 세까지 하면 160 보요, 이것을 여섯 번 하면 960 보가 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다음 몸으로 직접 시도를 하였다. 10 세 까지 연이어 두번 하고서 다음 세 번째의 5 세에 이르니 단전에서 칼로 찌르는듯 통증이 일어났다. 그리고 온몸에 꼼짝할수 없게 마비가 몰려왔다. 그제서야 진원성은 '이게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진원성은 마비된 몸으로 정자에 엎어져서 반시진 이상 혼천일기공을 하다가 겨우 마비가 풀려 일어났다. 진원성은 속으로 나쁜 말을 좀 하였다. '제기랄, 쉬운 게 하나도 없구먼... 하마터면 활불이 그대로 석불(石佛 =돌부처)이 되어 죽을뻔했구만.'. 이것은 우격다짐으로 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무댓보로 해서 척척 될 수 있다면 그 누가 스승님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아쉬운 소리하며 배우겠는가? 마유친의 이야기는 명문정파인 공동파에 장로들의 기명제자가 되려면 먼저 체격과 재질과 성격을 타고났더라도 최소한 은자 백 량은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부자집의 자제가 아니면 공동파의 기명제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파의 기명제자라면 그 코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진원성은 이 말 때문에 마유친의 몸값으로 치더라도 적지않을 황금 일백 량을 마유친의 사부에게 전하였었다.


하지만 진원성은 무력을 위해서라면 지금 혼자서 배우려는 이런 무공을 배울 필요가 전혀 없었다. 진원성은 천뢰심공을 갖었으므로 2, 3 장 쯤의 거리에서도 사람을 죽였다 살릴 수 있는 엄청난 고수가 되었는데, 고작 송판을 부수는 발경이라고 하는 것을 배워 무엇에 쓸 것인가? 진원성은 그것을 공격하는 데에 쓰려는 것이 아니라 몸안에 들어있는 진기를 그냥 내뱉어버리는데 쓸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부처가 될뻔한 실패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곤히 자는 왕준서 옆에서 잠깐 잠을 자고, 늦게 일어나 방으로 식사를 가져오라고 하여 왕준서와 같이 밥을 먹었다. 왕준서는 너무나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의 형과 밥을 먹는 것이 너무 기뻣던 것이다. 그 동안은 혼자이거나 아니면 아무 관계도 없으며, 언제나 자기에게 지시를 하거나 또는 벌을 내릴 수도 있는 사람과 식사를 하였었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왕준서가 자기의 생활에 대해서 진원성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원성은 이때에야 환관이란 것이 황궁에서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진원성은 왕준서에게 황궁과 환관의 일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하였으며,그래서 황궁 내의 각 건물 이름과 배치에 대해서 또 환관들이 황궁 내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환관들의 조직과 업무내용도 대충 듣게 되었다.  당시 환관들의 조직은 11감(監), 4사(司), 8국(局)이 있었다. 이것을 23개 아문(衙門)이라 불렀으며, 여기에 황제의 잠자리 시중을 드는 경사방(敬事房)을 더하여 24 개의 조직이 있었다. 환관의 가장 높은 품계는 태감(?監)이며 24 개의 조직에 태감의 숫자는 이백오십 여 명에 다다르며, 그 중에 중요기관의 수장은 병필태감(秉筆?監)이라 하여 5 - 6 명을 두게 하였고, 환관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가 있어 사례감이라고 하였으며, 사례감의 총수(總帥)를 사례태감이라 불렀다. 사례태감 혹은 병필태감 중에 한 사람을 특무 감찰조직인 동창(東廠)의 제독(提督)을 겸임하게 하여, 황제는 동창을 제어할 수 있었다.


왕준서는 병장국의 가장 어른인 병필태감의 심부름을 하는 역할이었으며, 그의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진원성이 알게 된 것은 환관의 목숨은 파리목숨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환관들 스스로도 자기들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또 환관들 끼리는 은자를 많이 거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은자를 주고 부탁을 하며 은자를 받고 일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소한 것 때문에 환관들끼리 서로 다툼이 많음도 알았다. 환관들의 세상도 인생살이이니 크게 다를 일이 없겠으나, 그들에게는 옳고그름의 기준이 없고, 하루하루의 안녕을 위해 살아가는 불나방 인생 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진원성은 왕준서와 같이 밥을 가져다달라고 해서 먹고는 평생에 처음으로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도 않고 객점의 방안에서 뒹굴거리며 실컷 이야기를 하였다. 그 다음날은 왕준서는 황성으로 일을 하러 들어갔으며, 진원성은 옛날의 유리창거리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은항(銀行 = 은 세공품 상점)을 찾아서 왕준서에게 줄려고 은 메달 목걸이를 하나 만들었다. 너무 패에 있던 것처럼 소나무와 독수리의 모양을 새길 수 있나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을 새겨달라하고 글자도 새겨달라고 하였다. 은자 한 량 반의 무게인데 세공료와 함께 은자 두 량을 주고 가져왔다. 글씨의 내용은 전과 같았다. '진원성, 왕준서를 만나 형제를 맺었다. 만력 30 년 모월 모일'. 진원성은 물어서 천단을 찾아가보았다. 군병들이 천단을 지키고 있어서 멀리서 구경하였으나 제남의 천단과는 모양이 전혀 다름을 알수 있었다.


왕준서를 저녁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하며 은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왕준서는 무엇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선물을 준비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왕준서는 헤어질 것을 생각하는지 소매를 붙잡고 자꾸 울먹였다. 다음에 둘이는 편지를 주고받기로 하였으며, 편지보내는 방법은 이곳 반점의 점소이에게 맡겨두면 이곳 점소이가 왕준서에게 편지가 왔다는 연락을 하게 하며, 왕준서는 편지를 써서 제남부 흑응회 대형 앞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이렇게 편지 약속이 되고서야 왕준서는 좀 마음에 위안을 얻은 것 같았다. 진원성은 낮에 생각한 것을 왕준서에게 말했다.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환관의 생활이라는게 하루하루 강물 위의 얇은 얼음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 부디 조심하되 누가 무슨 일을 부탁하면, 왜 그일을 부탁하는지 알아서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면 은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하지말거라. 은자는 내가 많이 벌테니 너는 위험한 일을 하지말고 목숨을 꼭 지키도록 하여라." 


진원성은 왕준서에게 은자가 아무리 많아도 남에게 해되는 일은 하지말라는 말을 3 번 반복해서 말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은자 오십 량 꾸러미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것은 형이 네게 주는 상금이다. 받아라."


"이게 은자네, 오십 량인가? 형 나도 은자는 있어요. 하지만 이제부턴 은자는 가급적 받지 않고서 ... 형이 내린 은자는 받아서 귀하게 모셔둬야지. 그런데 무슨 일에 내린 상금인가요? 난 잘한 일이 없는데요?"


"아니야, 너는 참 잘했어. 뭘 잘했느냐 하면, 몸 어디 다치지도 않았고, 건강하게 살아있으니 잘한 일이지. 다음에 날 만날 때에 그 때도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나를 만나면 그 때는 내가 상금으로 은자 천 량을 주기로 하지. 어떠냐? 내 말을 잘 기억할테지?"


"그럼요, 이제는 푼 돈에 연연하지 않고서 위험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요. 형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요. 또 북경에 빨리오셔요. 은자 없어도 빨리 오셔야해요. 그리고 제남에 가시면 도착하자마자 저에게 편지를 보내주세요. 저도 편지를 받으면 바로 답장을 쓸테니까요."


진원성은 헤어지는 마당에 어쩌면 자기의 병이 왕준서의 입장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안쓰러운 기분이 솟구쳐서 자기도 모르게 왕준서를 꼭 안아주었다. 왕준서는 아주 익숙한듯 안겨서 가만히 있었다. 그 상태에서 진원성은 왕준서에게 말했다.


"동생아 잘있어. 굳세게 살아야 해, 알았지?" 


"형아, 고맙다. 세상에서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형 밖에 없어. 형, 나한테 편지 꼭 빨리 해야 해."


그리고 진원성은 왕준서를 뒤로 하고 경성의 우안문을 나섰으며, 날짜를 세어보니 10 월 27 일인 것을 알았다. 북경에서 제남까지는 말을 마구 달리면 4 일이면 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그냥 천천히 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말을 빨리 달리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