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행(제4부)

제 060 회 주군(主君)의 역할

금박(金舶) 2016. 10. 18. 10:18


"그렇다고 해야겠지요. 내놓고 싫어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믿는 도교는 생활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서만 도교의 표시가 나고요, 또 불교에서도 그렇지요. 절집에 가서 법사님들을 만날 때에나 불교 또 도교 신자인 것을 알지 평상시에는 거의 표시가 나지 않지요. 그런데 회회교는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드리고요. 몇 일에 한 번씩은 성회를 열어 모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족이 달라도 회회교도 들만은 서로 형제라 부르면서 가까이 지내고, 종교가 다른 친척보다도 같은 교도들끼리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같이 살려면 교를 바꾸거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은 일이지요."


"그러니까 친척보다도, 같은 부족보다도 종교가 같은 것이 가장 우선이군요."


"예, 생활자체가 종교생활이니 모두 같은 시간에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하면, 그 나머지 시간들도 모두 비슷한 생활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모두 하나의 생각만 하고 하나의 행동만 하고 있는 꼴이라 할까요? 제가 공동파 들어가서 공부를 할 때에, 입교한 그 때에 초급반 교리를 배울 때에 되풀이 생활을 했던 것과 별 다름 없는 생활이었어요. 그러니 종교가 같지 않으면 같이 머물러 견디기가 쉽지 않지요. 떠나는 날 저는 그들이 믿는 신에게 저를 위해 축복을 빌어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를 지옥불에서 구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고, 그들에게 저는 이미 지옥에 갈 죄인으로 낙인찍힌 것이었지요. 저는 그들이 믿는 회회교를 믿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같은 신을 믿는 남보다 더욱 못한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친척들이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은 형제 대하듯 하면서 마 누이에게 마치 이방인으로 대우했다는 말이군요."


"예, 그것이 너무나 섭섭했지요. 무엇인가 아주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마치 내 집안의 안방을 종교에게 내주고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마음이 허탈하여졌고요 ... 그렇게 회회교에 고향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는 고향에 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대신 저는 대형활선님을 모시고 살았으면 해요."


"그래서 마 누이가 고향에 갔다온 후 좀 우울한 표정이 되었구만요. 나는 마 누이를 나의 친누나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마 누이도 나를 친동생으로 생각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그건 안되요. 저는 활선대형님을 그냥 모시고 살 거에요. 지금처럼..."


"마 누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회회교도들과 한 단체로 살아간다면 좀 골치가 아플 것 같네요.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 씩 예배를 꼭 올려야 하나요?"


"예, 그렇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교에서 정해주는 것들이 시시콜콜 많은데 생활을 해나가는 데에서 꼭 지켜야 한답니다. 여자는 집 밖으로 나갈 때에는 얼굴을 가려야 하고 ... 그 외에도 아주 많아요..."


"단체 생활에서 누군가 특별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눈총을 받을 수 밖에 없지요. 나는 요즈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그런 것에 대해 좀 생각하고 있어요. 예컨데 내가 적대형인데 적목단원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고서 나를 주군이라고 부를까? 적목단주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나는 적목단주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저의 고향은 이제 회회교 아닌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회회교 교당처럼 되고 말았지요. 그러니 저는 그곳에 갈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적목단주님이나 단원들 문제에 대형님이 그렇게 꼬치꼬치 따져서 상대가 무엇을 원할까 하는 식으로 구분하면 너무 삭막해지지 않겠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토번 구게왕국에서도 그렇고... 이번에 준갈이족들이 적목단원으로 귀순하고 나를 대형이라 부르겠다고 하니... 사실 나는 큰 부담을 느낍니다. 한 둘이 아니라 자그마치 이천삼백 여 명이라고 하는데... 정말 솔직히 부담되는 수에요. 구게 왕국도 십만 명이라고 하는데 그들이야 어디 빈땅을 찾아서 따로 살라고 소개만 해주면 그만이지만, 준갈이 적목단원은 이제 단원이 되었으니... 결국은 내 책임으로 되어졌는데..."


"그렇기는 하겠지요. 준갈이부족이 이천삼백 명이라면... 낙양에 가면 그들은 뭐를 하고 살아야 할까요? 초원에서 양이나 말이나 낙타를 키우는 일만 할 줄 알텐데..."


"생각해보니 제남에 흑응회가 남정만 육백 명은 될 거 같고요, 낙양 적목단에도 육백 명, 준갈이족도 팔백 명..., 정말이지 부담이 된다고요. 마 누이도 나와 같이 고민을 좀 해주세요?"


"아니에요. 그것은... 대형님은 활선이시니까 그런 일도 잘 해내실 것이에요. 저는 그런 데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고요, 대형님이 뭘 이리저리 하라고 하면 나는 그대로 따라서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호수(戶數)로 이천이면 일년에 한 호 당 은자 열다섯 냥은 있어야 살 수 있는데 적어도 우리 회가 삼만 량은 벌어야 하고 거기에다가 이런저런 세금과 비용은 더하면 사만오천이나 오만 량은 벌어야 하는데... 내가 우룸치에서 너무 생각도 없이 대뜸 허락하고 말았어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에요.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하였더라면... 구게 왕국이야 자기들이 먹을걸 스스로 찾을테니 문제는 아닌데..."


"오늘 따라 제가 고향에 가서 맘 상하는 이야기에 뒤이어서 대형님의 고민만 더 늘려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준갈이족이 없다고 해도 낙양과 제남  합하면 천이백 명 남정이니, 천 명이나 이천 명이나 별 차이 아닌데요. 일천 명, 두 배의 차이 밖에 아닌데..."


"이천 명... 아! 정말 큰 배를 구입해서 장사를 크게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구만... 초승달 바다 일 마친 후에 제남에 가면 그 때부터 잘 알아봐야겠어요. 그런데 우리 회에 회회교 신도들은 들이면 절대 안되겠구만요. 그들만 따로 모여서 예배드린다고 하면 단체가 흐트러지게 되니까... 회에는 종교가 통일이 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할 것도 같구만요. 쿠빌라이칸이 또 알탄칸이 홍교, 황교와 각각 최왼계약을 맺었던 것이 이렇게 종교를 통일하자는 그런 뜻이 있었던가 보네요... 흐음, 오늘 마 누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또 깨닫는 것이 있네요."


"최왼계약이 무슨 뜻인가요?"


"그것은 서로 상대방을 최고로 우대해주기로 하는 계약이랍니다. 나도 이번에 배우게 되었어요. 몽고의 알탄칸이라는 황제가 토번불교 황교법주와 계약을 하였는데, 알탄칸은 황교법주를 자기 나라의 유일한 종교로 인정하고요, 황교법주는 알탄칸을 몽고의 유일한 왕으로 인정하기로 서로 약속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마치 원앙새 한 쌍이 숫놈은 암놈을, 또 암놈은 숫놈을 유일한 자기의 짝으로 받아들이는, 서로서로 가장 아끼고 사랑하기로 하는 것과 비슷하네요. 그렇지요?"


"원앙새 설명이 참 알맞네요. 내가 마 누이를 좋은 사람과 만나도록 애를 쓰겠어요. 나의 부하들 중에서도 쓸만한 인재들이 제법 있음을 나는 이번 토번 여행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오."


"대형님은 처가 세 분이시지요. 참 회회교는 처를 네 명까지 얻을 수 있게 허용 한답니다. 회회교도라면 대형님도 처를 한 명 더 둘 수가 있을텐데... 중원에선 처첩 수에 제한이 없지요. 대형님은 왜 처를 세 명만 두겠다고 결심을 하셨나 물어봐도 될까요?"


"마 누이도 알고 있는 것인데, 난 아직 몸이 아픈 상태고, 또 부모님, 백부님, 형제들과 딸린 가족들 모두 몰살을 당하고 아직 원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다오. 게다가 나이가 어릴 적에 어쩌다 보니 뜻하지 않게 처를 받아들여야만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인데... 내가 아직은 혼인를 하거나 그런저런 것을 생각할 입장이 못되요. 그러니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 데에만 정신을 쏟아야 할 형편인 것이지요."


"대형님 미리 이야기 해 두겠어요. 제남에 나중에 오셨을 때에 저를 부하 중에 누구와 혼인시키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저는 손위 누이로써 대형님을 그냥 옆에서 지켜보면서 살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꼭 기억해 주셔야 합니다. 혹 대형님이 백일승천을 하시게 되면, 어쩌면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 때는 저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이미 약속하셨지요?"


"난 아마 백일승천하지 못할 것이에요. 그리고 이미 부인이 세 명이나 있는데 어찌 그들을 버려두고 떠나겠어요? 집안 원수도 갚아야 하고... 하지 못한 일이 이렇게 많은데... 백일승천은 도저히 할 수 없지요. 마 누이는 혼인하지 않고 혼자 살면 외로워서 좋지 않아요. 나도 처가 셋이 있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것이 위안이 되기도 하고 또 내가 제남에 꼭 돌아가야할 이유도 되고...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말하기로 하지요."


진원성은 마유친과의 대화를 끝난 후 혼자가 되어, 다시한번 대화를 음미(吟味)하다가 적목단원들이 자기를 주군이라 부르고 의지하는 것의 목적이 먹고 살길을 찾자는 것만은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마유친이 먹고 살 것을 걱정해서 적목단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과 같이... 또 안문관에서 온 늑대들, 청랑대의 준갈이부족, 구게왕국의 토번 청소년들 이들은 각각 먹고살 그것만이 아닌 다른 목적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되어졌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원성 주군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는 여기에 대해서 확실히 답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 답을 만들어 보았다. 그것은 단원들 모두 조금씩 다를 것이다. 마유친은 활선이라 생각하는 선인과 함께 살고싶다는 것이며, 준갈이부족과 토번 청소년들은 활불과 함께 살고 싶다는 것이다. 또 안문관 늑대들은 현명한 주군과 함께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진원성은 옆에 있는 마유친에게 말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친 누이, 적목단 단원들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뭘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활불로써 적목단을 잘 이끌어서 자기들에게 좋은 단체로,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달라고 그걸 기대하고서 나를 주군이라 부르는 것이에요. 아마도 그럴 것이에요. 유친 누이가 고향에 갔다가 실망을 하고 돌아온 것은 고향이 살기에 좋지 않은 환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울했던 것이에요. 종교는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또 현실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밖에 있는 죽음 이후의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현실 생활을 간섭하고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것이 틀렸기 때문이지요.'


진원성은 불교가 흥성하여 발생하게 된 토번 구게왕국의 문제도 이제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그 원칙을 정하게 되었다. 종교가 현실 문제에 너무 깊이 관여하면 반드시 종교과잉(宗敎過剩) 현상이 초래되며, 그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적목단과 흑응회의 회원들에게 회회교는 절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도교, 불교, 유교 역시 정도 이상으로 현실에 개입하는 것은 차단해야 할 것을 생각하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한계를 정하지는 못하고, 그저 원칙적인 생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