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26 회 불교흥성(佛敎興盛)이 가져온 난제(難題)
"선비족은 본래 저 북쪽 흑룡강 아래, 흥안령산에서 발생한 부족이라 합니다. 점점 세력이 커져서 다시 여섯 부족으로 나뉘게 되었고, 여섯 부족 이름은 족장의 성씨를 따라 구분하는데, 탁발, 모용, 우문, 단비, 걸복, 독발 6 개 선비부족 중에 탁발 선비가 가장 세력이 강성했지요. 그 탁발 선비 부족들이 바로 북위 나라를 건국하였습니다. 원래 선비족은 고구려의 부여족과는 친척과 같은 사이입니다. 그래서 북위의 지배층에는 고구려의 왕족인 고씨들도 귀족으로 많은 수가 참여해 있었습니다."
[그림 서기550년 경 중원세력도]
"북위라는 나라는 지금 섬서성에 있었던 나라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때의 장안은 지금의 진주이구요, 낙양은 지금의 흥평이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요, 북위의 백성이 되는 하족들은 이곳 토번 땅에서 오래 전부터 흘러나간 부족과 다른 여러부족의 혼혈족입니다. 황제는 불교를 통하여 두 개의 족속이 하나로 뭉치고 하나의 나라가 되기를 바란 것이었지요. 그런데 북위국에서 불교를 우대하다보니 실제로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불교의 사원이 나무 커지게 되었으며, 불교의 신자가 너무 많아졌고, 황제의 신하들 중에서도 불교의 신하가 많아져서 황제보다는 불교의 대종사가 더욱 힘있는 존재가 되고 말았지요. 이렇게 되니 황제의 명령보다는 불교 대종사의 명령이 더 힘을 내게 되는 현상이 생겼지요."
"으음. 그렇게 되면 황제가 불교 대종사의 부하가 되어야 하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북위의 3 대 태무황제(太武皇帝)이신 탁발도(拓跋燾) 황제께서는 불교에 엄중한 탄압을 실시합니다. 절을 파괴하고, 불경을 불태우며, 승려를 강제로 환속시키고, 불사(佛寺)에서 가지고 있는 사전(寺田)을 몰수하고, 불사(佛寺)에 소속된 노예를 해방시켜줍니다. 이로써 불교의 세력은 크게 약화됩니다만, 이것은 곧 다음 황제에 의하여 원위치 되고 맙니다. 즉 신앙의 힘은 그 저력이 대단한 것이었단 말이지요. 즉 불사의 요청을 무시했다가는 황제의 권력마저 위태로워지는 결과가 내다보이니 황제로써 할 수 없이 원위치 하게 되었지요."
[북위 3 대 황제 태무제 : 성은 탁발(拓跋)이고 이름은 도(燾)이다. 묘호는 세조(世祖)이며 시호는 태무제(太武帝)이다. 명원제(明元帝)의 맏아들로 성격이 용무엄혹(勇武嚴酷)하였고, 즉위하자 외몽골의 유연(柔然)을 쳐서 큰 타격을 준 뒤, 이어 하(夏) ·북연(北燕)을 멸망시켜 북위의 화북통일을 완성하였다. 또 동서교통의 요지인 감숙(甘肅) 지방을 확보하여, 사마르칸트 ·페르가나 등 서역에서 입공(入貢)하는 나라가 20여 국에 이르렀다. 한편 그는 도교(道敎)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였다. 그의 불교금단은 이른바 삼무일종(三武一宗)인 사대법난(四大法難)의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며, 446년 조서를 내려 사탑불상을 파기하고 승려를 갱살(坑殺)하였다. 452년 환관 종애(宗愛)에게 피살되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잠깐만..., 3 대 황제가 탁발도 황제란 말인지요? 대신님의 성씨가 원씨라고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아, 그리고요... 서하라는 나라를 아시는지요? 서하라는 나라의 황제가 이씨인데 원래 성은 탁발씨였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예, 우리 원씨는 본래 성씨는 탁발씨가 맞습니다. 또 서하 나라를 건국한 이씨도 역시 우리 탁발씨가 맞고요, 그들은 우리 원씨 중 서위의 황족으로 좀 더 서쪽 땅으로 피난을 가서 살다가 당나라 왕성인 이씨로 바꾸게 되었으며, 나중에 다시 하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우리는 선비족의 여섯 부족 중에 하나인 탁발씨였고요... 태무황제의 30 년 뒤에 황제에 오르신 7대 황제 효문황제(孝文皇帝)는 지배층과 백성들간의 차이를 없애는 방법으로, 불교보다는 먼저 선비족이 하족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정책을 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족의 말과 풍속을 받아들이기로 하며, 황제의 성씨도 탁발에서 중원식인 원(元)씨로 바꾸게 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황제의 성씨는 원씨로 바뀝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성을 바꾼 것으로 선비족의 위나라는 멸망한 것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지요. 이로써 북위의 지배층이었던 선비족들 사이에서는 분란이 야기되며, 하족의 중원문화를 받아들일거냐 말거냐로 지배층 간의 분열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결국 동 서 두 개의 위나라로 쪼개어집니다."
"예, 그렇다면 동위가 중원문화를 받아들이고, 서위는 중원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겠군요. 아무튼 옛날 역사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만, 그것이 지금 여기 구게왕국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요?"
"좀 이야기가 깁니다만,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서위(西魏)의 나라에서 신하의 눈치를 보며 마지막 공황제(恭皇帝)는 황제노릇을 하던 중에 결국 우문각이라는 신하에게 황제위(皇帝位)를 넘겨주고 그것으로 서위는 망하게 되었지요. 그 때(서기 557 년에 북주가 시작됨)에 서위에 있던 황제의 직계 세력들은 다시 서위를 떠나서 더 서쪽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으며, 그 황족 세력 중 하나는 따르는 일만 명 정도의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토번의 라싸 아래에 있는 지역에 자리를 잡습니다. 힘을 키워서 60 년 만에 토번 전체를 통일하여 장악하게 되었지요. 중원에서 한가닥 하였던 일만 명 세력에게는 토번의 작은 왕국들을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당시에 토번은 각 지역이 작은 나라로 쪼개져 있었으며, 가장 큰 세력은 샹숭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본(bon)교의 종교세력이었습니다."
"......"
"이 때에 토번을 장악한 제 1 대 송첸캄포왕은 바로 서위 공황제의 후손입니다. 조용하던 토번 땅에서 대세력을 거느렸던 원씨의 세력이 단번에 위력을 나타낸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원씨와 토착세력과의 연합도 많이 있었음은 당연하겠지요. 여기에서 다시 한번 동일한 문제가 나타납니다. 송첸캄포왕은, 지배층은 서위에서 내려온 선비족인데, 토번 백성들과 어떻게 잘 화합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토번에서 기존에 백성들을 장악하고 있던 본교의 세력을 정리를 해야만 강력한 왕권을 확보할 수 있겠기에, 북위의 폐불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고 우대하며, 그 대신에 토착종교인 본교를 박대하는 정책을 펴게 됩니다."
"그러니까 송첸캄포왕이 불교를 부흥시킨 것은 본교를 억누르기 위해서였군요."
"예, 본교를 억누르지 못하면 왕권의 강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판단하신 것이지요. 결국 본교는 불교와 적당히 융합되고 또 새로 유입된 불교는 지배층의 권력에 잘 순응해오며, 이로써 나라는 통일된 모습으로 발전해 갈 수 있었지요. 그래서 토번은 한 때는 당나라 마저 두려워할만큼 강대해집니다. 그리고... 다시 불교가 너무나 힘을 득세하여 왕권마저 위협하는 그런 상황이 도래하게 됩니다. 원치 않는 그 예상대로 송첸캄포왕 사후 일백오십 년만에 불교에 대해 일제히 탄압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불교 쪽에서도 맹렬하게 저항하였고요. 그 결과 내란(內亂)이 되고 제 6 대 무네찬포 왕은 내란의 와중에 죽음을 당하지요."
"불교를 이용해서 위기를 벗어났으나 다시 불교 때문에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는 말씀이군요."
"토번 제 7 대왕 치데쏭찬 왕은 내란을 평정하고, 불교와의 화해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견제의 조건도 남겨둡니다만, 일단은 사태가 봉합 되어집니다. 그 이후 40 년이 채 되지 않아서 제 9 대 랑다르마(郞達瑪) 왕 때가 되어 불교도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때에는 불교도들이 나뉘어 각각 왕자와 한편이 되어, 왕권에 도전한 것이고 왕위를 걸고서 왕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되는 것이지요. 이로써 토번 왕조는 없어지고, 지배층이었던 선비족 원씨들은 많이 죽고, 또 흩어지기도 하고, 토번의 서쪽으로 이주하여 랑다르마의 아들인 지더니마(吉德尼瑪)왕을 중심으로 작은 왕국을 세웁니다. 그리고 다시 지더니마의 셋째 아들인 더짜오(德朝)왕은 이 구게왕국을 유업으로 받아서 지금까지 약 칠 백년 간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뭐 구게왕국은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만..."
"예,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만, 그래서 뭐가 문제입니까?"
"지금 우리 구게왕국은 다시 한번 불교를 탄압해야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탄압 정책을 실시한다고 해도 과연 그것으로 잘 수습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저는 구게왕국의 대신으로써, 또 현 왕의 숙부로써 과연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해야 왕국의 영속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지금 ... 그러니까 지금 구게왕국에서 불교신자들이 어떤 반란 조짐을 보였습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문제가 있는지요?"
"지금 왕국 내 불교 사원들의 좌주(座主)들은 좌불안석일 것입니다. 즉 어떤 균형상태가 무너진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이런 것이지요. 양을 키워내는 백성이 한사람 있다고 해봅시다. 그 사람은 양을 일백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년에 농사가 잘되어 년말에 세어보니 양의 숫자가 일백삼십 마리로 늘었습니다. 과년의 예로 보면 이중에 열 마리는 왕국에 세금으로 냅니다. 또 이중에 열마리는 사원에 시주를 하고요. 나머지 열마리는 자기 식구들이 먹을 것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해에는 왕국에서도 열두 마리를 세금으로 내라고 하지요. 사원에서도 열두마리를 시주를 하라고 하지요. 이렇게 되면 그 농부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요?"
"......"
"어떤 백성은 나라에 먼저 열두 마리를 세금으로 내고, 나중에 여덟 마리만 사원에 시주를 합니다. 나라에 적게 바치면 곧바로 나라의 징계를 얻어맞기 때문에..., 그러나 많은 백성은 백 삼십 마리를 몽땅 갖은 채로,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노예가 되어 사원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나라에 열마리 세금내고, 사원에도 열마리 바치는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게됩니다."
"불교 사원들이 백성들과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왕국은 사원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왕국은 이 사태를 개선하려면 군병을 동원하여 사원을 없애고 사원의 재산을 몰수하는 식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천 여년 전에 북위의 태무제가 했었던 방법이고요, 팔백년 전에 토번의 무네찬포왕이 했었던 방법이며, 칠백년 전에 당나라 라고... 당나라 아시는가요? 당나라에서도 불교를 탄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만 ..., 그 당나라 무종(武宗) 황제 시절에 있었습니다. 불교탄압은 어느 나라든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당(唐)나라는 송(宋)나라 보다 더 일찍 있었던 나라인가요?"
"예, 송나라 바로 전에 있었던 나라가 당나라입니다. 당 무종 때에 불교를 탄압하였는데, 그 때에 폐쇄시킨 큰 절이 무려 4,600 개 랍니다. 큰 절이란 절 집이 다섯 채 이상 되는 절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작은 절을 40,000 개 폐쇄시킵니다. 또 승려를 강제로 환속시킨 숫자가 26 만 명이고요, 각 사찰에 속한 노예를 해방시켜서 자유민으로 만든 것이 15 만 명입니다. 아마도 노예로 기록되지 않은 반 노예들까지 합하면 적어도 오십만 명은 되었을테지요. 큰 절들이 가지고 있는 사전(寺田) 60 만 경을 몰수하였습니다. 사전이란 것이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는, 절이 소유한 논밭이고요, 이 논밭은 절에 속한 노예들이 농사를 짓는 것인데 60 만경을 농사를 지을려면, 절반은 소작(小作)을 놓더라도 노예가 아무리 적어도 60 만명은 있어야 합니다. 승려가 손수 밭갈이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당나라가 중원대륙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당 무종의 불교탄압의 규모, 즉 강제환속 26만 명, 노비 15만 명 해방, 사전 60만 경 몰수 등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나라 때의 중원대륙 전체 규모는 인구 육천만 명, 전체 전토 600만 경으로 추산됨으로 불교의 폐해가 골수에 미쳤다고까지 평할 수 없습니다. 중원대륙 동부를 고구려, 백제, 신라가 차지하고 있으며, 서쪽만을 당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그 때에야 불교를 폐한 무종의 정치행위가 이해 될 수 있지요.]
"60 만경이라니... 그거 정말 엄청나구만요."
"예, 당나라가 큰 나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불교 사원들이 나라의 국력을 빨아가버리면 큰 나라도 버티기가 만만치 않는 것이지요. 결국은 이렇게 되어 황제는 불교 사원을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잠깐만, 그러면 당나라는 왜 처음에 불교를 그렇게 숭배를 하였을까요? 제가 낙양에서 떠나기 전에 용문석굴 대불에게 불공을 올리고 왔는데... 당나라 때에 만들었다고... 참 엄청나게 큰 석불이었지요. 그렇게 큰 불상을 만들려면 그것도 은자가 엄청 들어가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