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23 회 보호사업을 빼앗기다
"목격자를 없애려고 모두 죽인 것 같습니다. 마차는 관도 동쪽 편으로 바퀴자국이 쭉 있는데, 아마도 마차에 반점에서 쓰던 이것저것 물건들을 장원으로 옮기려고 실었던 참이어서, 마차가 무거워 바퀴자국이 남은 것 같습니다."
"지금 단원들이 횃불을 준비해서 도착하면, 바로 추적을 해보자고..."
한참이 지나서, 단원들이 도착하자, 조단주는 남조수와 3 갑 11 명을 데리고 바퀴자국을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가끔씩 인가(人家)가 나타나면 마차 달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확인 할 수가 있었으며, 반 시진 쯤이 지나자 사위는 어둠 속에 완전히 갇히고 말았다. 횃불을 밝혔으나 자국은 희미하게만 보였다. 게다가 낙양성과 거리가 멀어지자 이제 인가도 거의 없었으며,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니 마차에서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은 길가에 모두 내던져버리고 마차를 달려서 계속 동쪽으로 달려갔음을 알 수 있었다. 건조한 땅이라 마차가 가벼워지자 이제 바퀴자국마저 찾을 수 없게 되었으며, 하는 수 없이 조단주는 남조수에게 3갑 6 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가면서 추적을 해볼 수 있는만큼 계속하라고 하고 3 갑원 4 명을 데리고 적목장원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이 되어 유총관은 오전에 조단주를 만나서 해녕총관 주모가 납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납치된 마차의 흔적을 뒤쫓아 갔던 남평 조수가 돌아오면 어떻게 된 사연인지 듣고자 기다렸다가, 유총관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오후에 마차를 타고 낙양성 동편에 있는 정가장을 찾아갔다. 떠나기 까지 직할조 남조수가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떻게 마차의 꼬리를 잡아서 계속 쫓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추적에 실패하고 돌아오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유총관이 정가장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내를 받아 정가장의 총관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반백(半白)의 머리칼을 두건으로 질끈 메고있으며, 기름진 얼굴에 어떤 자신감이 가득찬 표정을 짓으면서 유총관에게 말하였다.
"내가 본장의 총관 홍모(弘某)라 하오. 그대가 적목단의 총관이오?"
"예, 그렇습니다. 적목장 총관 유모(劉某)라 합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뭐 좀 좋지않은 일을 알려주어야 하게 됐소. 지금까지 적목단에서 낙양성 인근에 보호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우리 정가장을 중심으로 낙양성 지주들이 연합해서 그 일을 하기로 했소. 그동안 적목단에서 수고를 많이 했는데 이제부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그러니 4 월부터는 일을 우리에게 넘겨야 할 것이오. 4 월 한달 간 인수인계를 하고 적목단은 보호사업에서 손을 떼시요."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 일은 하남지부님에게 허락을 얻고, 아니 맨 처음에 조정의 어사님이 허락하셔서, 그래서 하남지부님도 허락을 하셨고, 그래서 적목단이 그 일을 맡게 된 것인데... "
"돌아가셔서 하남 지부님에게나, 하남 추관에게 물어보면 알게 될테지만, 전임 하남지부 자리도 어사님이 3 년을 하게 하라고 해서 작년 말까지 하게 되었고, 작년 말에 그래서 지부, 동지, 추관이 함께 갈리게 되었던 것이오. 그런데 낙양성 보호사업도 작년 말까지가 기한인데, 신임 지부님께서 아마 그것을 인수받지 못하셨다가 늦게야 알게 되셨는가 보오. 그래서 뒤늦게 이제라도 바로 잡으려는 것이오. 그것은 돌아가서 내일이라도 아문에 가서 알아보시요."
"그러면 아문에서 순검이나 누구를 보내서 적목단에 먼저 알려줄 것이지, 왜 정가장에서 이것을 적목단에 말한단 말입니까?"
"그거야 우리가 일을 이어받아야 하니까 먼저 알게 되었던 것이오. 그것을 내가 미리 불러서 알려준 것인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그 말을 누구에게 전해들었냐가 무에 그리 대수이겠소? 그렇지 않소?"
"......"
"아무래도 인수인계 일이 총관의 책임 소관이라, 유총관을 불러서 말해주게 된 것이오. 가급적 4 월 보름에 맞춰서, 우리에게 일을 모두 넘기도록 하시오. 그동안 3 년 해먹었으면 꽤나 챙길만큼 챙겼을테니, 경가장 전투에서 공을 세운 댓가는 톡톡하게 받은 셈일 것이오. 아니 그렇소?"
"내가 하나만 물어봅시다. 혹시 어제 황하변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 알고 계신 바가 있는지요?"
"무슨? 살인 사건이라고? 금시초문(今始初聞)이요. 좀 자세하게 말해보시요?"
"모르신다면 되었고요. 저도 아직 잘 모르는지라 뭐라고 말씀드릴 것이 없겠습니다. 또 다른 말씀 없으신가요? 오늘 하신 말씀은 제가 혼자서 뭐라 답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돌아가서 단주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이후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럼 모래까지는 답을 줘야 합니다. 4 월 보름까지 수금한 것은 적목단이 갖지만 4월 보름 이후 부터는 우리에게 넘겨야 할 것이오. 모래 우리 부총관을 적목장에 보낼테니 인수인계 받는 문제를 상의하도록 하시요. 이제 그만 돌아가보시요."
정가장의 홍총관이라는 장년 사내로 부터 퉁명스런 말투로 들은 바는 유총관이 생각해봐도 적목단의 유일한 수입원이 없어지는 중대사 인지라, 홍총관의 말투에 기분나쁠 여유조차 갖을 수 없었다. 정가장을 찾아가면서 생각한 것은 '주모님을 납치하여, 석방에 대한 조건으로 미곡저가판매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홍총관을 만나고 보니 짐작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수 있었다. 황하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라고 말하며 물었을 때에, 그때의 홍총관의 표정은 그가 대꾸했던 말과 같이 금시초문이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대지주 정가장의 총관이라는 신분은 적목단의 총관 정도는 아주 하찮게 볼 위치이기에, 무시하는듯 퉁명스런 말투도 감수하였던 것이지만, 그래서 홍총관 역시 굳이 하찮은 아랫 사람에게 거짓으로 표정을 지을 필요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총관이 적목장에 돌아오자, 직할조 남조수도 뒤따르듯 돌아왔으며, 각조의 조수들까지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 유총관의 이야기를 들은 단주와 조수들은 모두 적지않은 충격에 빠졌다. 이어서 듣게 되었던, 남조수가 뒤쫓아 갔다가 헛탕을 치고 돌아온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낙양 북쪽으로 황하변 뚝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지는 관도는 낙수에 닿으면 부교(浮橋)를 건너게 되는데, 그 부교를 건너면 거의 인적이 없이 잡목이 우거진 지역이 한참 계속 이어지고, 그 곳에서 말 네 필과 마차를 찾았다는 것이다. 마차를 끌던 말 두 필에, 직할조원 두 명이 타던 말 두필이 발견 되었으니, 그곳에서 뒤로 돌아 낙수 변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였을지 아니면 마차를 바꾸어서 계속 육로로 도망을 갔을지 모르게 되었으며, 남조수는 물길을 이용하였으면 더욱 알길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육로로 동쪽으로 가면서 수소문을 해보다가 결국 어떤 종적도 찾지 못하고, 말 4 필과 마차만 가지고 귀환한 것이었다.
여러 이야기 후에 내려진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납치의 목적인 주모님의 생명을 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조만간 적목단에 납치범들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려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비밀을 유지하고 얼마간 기다리기로 한다. 셋째, 주모 납치 사건은 보호사업 즉 정가장하고는 관련이 없다. 넷째, 내일 조단주가 하남추관을 만나서 보호사업 관련하여 홍총관이 하였던 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해본다. 그리고 하남 추관에게는 주모의 납치에 대해서 말하고 당분간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다음날 조단주는 하남 추관을 만나서, 보호사업에 대해 물을 수 있었다. 하남 추관에게서 들은 내용은 홍총관의 말한 바와 같았으며, 더욱 자세하였다. 즉 광감세사들이 보호사업에서 세금을 걷을 생각으로, 2 월 말에 이미 동창(東廠)에 확인하였던 바, 하남지부의 재직을 3 년 기한으로 하였던 것이며. 그에 따라 하남지부와 동지, 추관을 면직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적목단의 보호사업도 허가 효력이 다했다는 것이다. 아마 적대형은 이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적목단의 단주와 조수들은 이로써 보호사업에서도 손을 떼야 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하남지부의 3 년 제한 재직은 사실과 일치하였다. 그러나 보호사업 건은 하남지부의 재직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단지 진원성이 없었으므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을뿐이다. 조단주나 유총관은 적대형이 왜 십만 량의 은자를 남겨두고, 그것으로 미곡저가판매에서 생기는 손해를 메우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3 년이 지나면 보호사업을 그만 둬야 하기 때문이라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 3 년만 보호사업을 하기로 했다면, 주모인 해녕총관을, 사람 5 명을 죽이면서까지 납치할 이유가 없을 것이므로, 해녕총관 납치는 보호사업과는 무관한 것이며, 따라서 주모 납치는 또 다른 문제와 결부되었을 것이라 추정되었다.
(명나라의 관행을 보자면 관아에서 아첩을 받아 방을 열면, 해당 아첩은 국가에 반역을 하지 않는 한 취소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관장에게 많은 은자를 써서 영업권을 얻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지방관이 은자를 받고 아첩을 발행하는 것은 고유의 권리였다. 상인들은 관장이 정치를 잘해서 만성들이 살기좋아지면 그에 따라 비싼 값에 아첩을 팔 수 있어서 관장의 능력은 얼마 후 관장의 이익으로 돌아갔던 것이며, 이것은 관장의 영예가 되었다. 현재의 개념에서 보자면 뇌물이지만 명대에는 관아에서 돈을 받고 영업권을 파는 것이나, 세금을 많이 걷어서 중앙정부에 정해진 금액을 올리고, 나머지를 차지하는 것은 허용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만성들에게서 원성이 터져나오거나 민란이 일어나면 중앙정부는 어사를 동원하여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였다.)
이에 따라 적목단은 조직의 운용을 변경하기로 하였다. 수금조는 폐하여 없애기로 하였으며, 정가장에서 인수해갈 뜻이 있으면, 그 인원은 모두 정가장에 넘기기로 하며 인원의 인수여부는 정가장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4 월 1 일 정가장의 부총관이 적목장에 나타나자 단주는 자리를 피하고, 유총관이 응대하였다. 유총관은 그동안 수금조에서 일하던 방식을 모두 알려주고 수금 내역까지 모두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금조의 사람들을 인수해갈 의사가 있는지 물었으며, 일단은 정가장에서 모든 수금조를 인수하는 것으로 결말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수금조의 갑수들은 적목단에 남기로 하고, 수금조원 60 명 중에 57 명이 정가장으로 가기로 하였으며, 3 명은 그만두기로 하여, 적목단에서 그들 3 명에게 은자 3 량씩 위로금으로 지급하였다.
한편 기택의 총관은 손통 갑수에게서 맡은 바 일을 잘 처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 장주에게도 그대로 보고하였다. 적목단 사람 5 명을 납치하다가 죽이게 되었다는 것도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사람이야 일을 하다보면 죽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좀이나 적목단 단원이라면 최악의 경우 목숨값 몇 푼 물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장주나 총관의 평소 생각이었다. 기장주에게는 연판장을 갖고 있는 임향주의 딸이 손안에 들어온 사실만이 중요했던 것이다. 연판장이 자기 손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니 매우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