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행(제4부)

제 017 회 예리한 단도(短刀)

금박(金舶) 2016. 9. 5. 12:38


"제가 한 말씀 드립니다. 서기들이 각 대에 파견나가서 각종 기록을 해가고 있는데, 때로는 어떤 비밀이라 할 것들이 있는지, 좀 껄끄럽게 우리 서기를 대하시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기들이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대장님들이 직접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시던가 서류로 제출을 해주세요. 기록을 남기는 것은 우리의 잘잘못을 모두 기록해 나가는 것이고,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게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서기대가 그 한가지 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임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의원님이 가까이 있고, 의료 학숙도 있으니, 회원들이 아프더라도 즉시 치료를 받을 수가 있어서 모두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의원 사부님은 북경에서 어의를 지내신 분이라 그러던데요? 모셔오느라고 은자를 많이 들였겠지요?"


"우선은 은자가 별로 들지 않았지만, 앞으로 자기의 제자들을 양성할 수 있게 배려를 잘 해 드리기로 하였으니, 우리 흑응회와 서로 바라는 바가 딱 맞아 떨어진 경우입니다. 의원학숙에 있는 학생들은 한달에 닷새 씩은 근처 산으로 약초를 캐러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것 같던데... 의원이 될려면 산에 가서 약초를 채집하는 그런 공부부터 해야하나 보더라고요."


"학숙에 집짓는 공부하는 것도 있나요? 어차피 우리가 매년 지어야 할 집이 백 채씩은 될 터인데, 가르쳐서 흑응회가 직접 집을 지으면 어떨까요?"


"지금 학숙은 철공, 서기, 농사, 의원, 경호 이렇게 하고 있는데..., 철공은 당장에 사람이 더 필요치 않으니 대신 목수 공부를 시키도록 하지요."


"아참,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전장업은 진상이 최고라고... 산서성의 상인들을 진상(晋商)이라 부르는데, 흑대형이 계신다면 진상회관에 부탁을 하여, 전장을 하는데에 어떤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백호파에 있을 때에 흑대형이 진상의 높으신 분과 함께 백호무관에 오셨었지요. 그리고 ... 아무튼 잘 통하시는 것 같았는데 ... 대형이 지금 계셨다면 전장업을 하는데 도와달라고 그런 부탁을 드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대형님은 휘주상단에 잘 아시는 분이 있어서, 우리 철공품도 휘주상단 신안견직포 비단가게에다 먼저 통했지 않았습니까? 휘주상단에다 다시 한번 부탁을 드리고 유능하신 분을 모셔다가 가르침을 얻으면 어떨까요?"


"대형님은 참 대단하신 분이야. 휘상, 진상과도 친하다니, 남 북으로 통하지 않은 데가 없는 것 같아..."


"그것은 어쩌면 좋지 않을수도 있을 것 같기에... 쉽지가 않군요. 진상과 휘상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으니 어떨지... 좀 생각하면 도와달라하는 게 마냥 쉽지 않음을 짐작하시겠지요. 즉 그것이 우리 흑응회의 활동에 어떤 제약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지요. 이 일은 저도 열심히 생각하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합시다."


"철대장님, 오늘 선물로 주신 단도를 살펴보았더니 작지만 아주 예리하여, 꽤 값이 들었을 것 같더군요. 면도(面刀 얼굴의 털을 다듬는 도)로 쓸 수 있겠던데요?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어떤 물건인지 설명 좀 해주시지요."


"그것은 우리 흑응회에 풍로가 세워진지 꽤 오래 되었는데, 한번도 기념될만한 선물이 없어서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회주님께 보고를 하였고요. 아마도 응철점에서 만들어진 철공품들이 이렇게 좋은 품질이라는 것을 각 대장님들도 아셨을 겁니다. 좋은 쇠로 만들어진 꽤 성의가 들어간 물건입니다. 오래 보관하실 때는 사용 후 기름칠을 한번 해서 보관해 주시면 칼날에 좋고요, 예리하니 칼집에 꼭 넣어서 ... 위험하니 어린 아이들 손 닿지 않게 보관해야 합니다. 손가락 하나 정도는 쉽게 잘립니다."


"칼날에서 마치 찬바람이 나오는 것 같더군요. 이걸 열 자루는 낙양으로 보내서 그쪽 대장들도 받으면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제가 받은 칼을 빼서 보니 칼날 위쪽에 육(六)이라 숫자가 새겨져 있네요."


"칼에는 일에서 이십까지 각기 번호가 메겨져 있습니다."


"흐음, 내 것에는 칼날 손잡이 쪽에 작은 글씨로 십칠(十七)이라 새겨져 있네요."


"흑대형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궁금하네요."


"아마도 토번 땅 어디 쯤에 계시겠지요. 어쩌면 지금 쯤 법문을 얻어서 열심히 도를 닦고 계실 것입니다. 신선이 될 도를 배우려 가셨으니..."


"그러다가 정말 신선이 되어서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리면 어떻게 하지요?"


"그럼 축하해 드려야지요. 얼마나 잘 되신 일입니까? ... 앗! 제가 말 실수를 했나봅니다. 취소합니다. 대형님은 병을 고치시고 돌아오실 것입니다."


"신선이 될려면 수십 년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아마 일 이 년 아니면 삼 년 정도 도를 닦고서 병만 고치시면 내려오실 거라 석도총관의 편지에 써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년이나 저 내년에는 오실 것이지요."


"대형이 어떤 사람인 줄 아세요? 제가 주군과 대련을 한 후에 들은 한마디는 '지지 않으면 결국은 이긴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공격을 해도 주군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지지 않았으나 진 것이나 다름 없게 되었고요. 다들 대형님을 기다리지 마세요. 기다리지 않을 만큼 때가 지나면 그 때에 밤중에 누가 나타나서, 장원의 문을 두드려서 나온 사람에게 '지금 흑대형이 오셨으니, 총관님에게 보고해 주시오.' 라고 말할 것입니다."


"회주님 말씀은 기다릴수록 애만 타니까 차라리 잊어버리고 기다리지 말자는 말씀이지요? 총관님,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대형님에 대한 것은 마음 속에 정한 것이 있으니, 대형님 이야기를 하시면서 제 눈치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첩을 세 명이나 기다리게 해놓고, 설마하니...... 잠깐 흑돈 사업에 대해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반점에서 보니 흑돈을 운행하는 회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들이 이런 저런 지출을 빼고나면 이익을 내지못하는 일을 한다고 다들 맥이 좀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오래 계속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흑돈을 끄는 일 자체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예컨데 흑돈들이 손님들에게서 전해들은 다른 지역 소식이나 제남부 내에서 유력자들의 동정이나 이런 소식을 얻어오는 것도 중요한 가치이니 회원들은 손해나 이익 등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을 주지시켜 주었으면 합니다. 서기대에서 흑응대에 오시는 서기님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전달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라, 그런 점이 ... 눈치가 다들 있으니, 어느새 그런 것을 알아챘던가요? 흑응대에 가는 서기들에게 잘 이야기해서 표나지 않게 전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흑돈들이 모아오는 소문을 우리가 알게되는 것은 은자 못지않게 가치가 있습니다. 총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한가지만 더... 흑응대 흑돈 운행자들이 집에 은자를 모아두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회에서 은자를 맡아 보관해주면 어떤가 하는 말을 합니다. 등주부에 식민 간 사람들의 은자를 맡아준다는 것을 알고, 자기들 은자도 맡아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전장업은 나중에 하더라도 우선 흑응회원 중에 맡아주기 바라는 사람들 것만이라도 맡아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은자(銀子)란 이름표가 붙어있는 것이 아니니 잃어버리면 그것으로 그만인데, 그것을 회에서 맡아준다면 고마워할 것입니다. 등주부 식민들처럼 보관증을 써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모두 해서 고작해봐야 은자 이 삼천 량이나 될 것입니다. 어차피 경호하는 것에 차이가 없으니... 총서기님, 이 일은 일단 서기대에서 주관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회주님, 그렇지 않아도 이 말씀을 드려야할지 말지 그런 생각을 하였는데, 지금 우리가 미곡저가판매를 하면, 백은이나 동전들로 대금이 들어와서 장원 관고(館庫)에 입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전도 그렇지만 은자의 경우는 그 생김새와 순분(純分) 품질이 천차만별이어서 골치아픈 문제가 되지요. 은자들마다 제조원이 각각 다른 지라 그 은이 얼마나 섞여있는지 순도가 걱정되는 때가 많습니다. 가급적 순도가 높은 백은을 장기보관하는 것으로 하며, 질이 떨어지는 것들을 다시 내보내고는 있습니다만... 흑응회원들의 은자를 받아들여 보관해준다면, 이것은 처음부터 순분을 잘 따지고 저울질을 엄하게 해야할 것입니다. 모두 한 식구들인데... 그래야만 나중 은자를 되찾아갈 때에 시비를 없앨수가 있을테지요."


"제가 한 말씀 드릴까요?"


"용대장이 좀 아시겠구만요. 한번 들어봅시다."


"부주(府州)의 관아(官衙)에서는 세은(稅銀)을 들여오면, 아문(衙門)에 속한 용융로(鎔融爐)에다 맡겨서 보통 오십 량 짜리 아니면 백 량 짜리의 은괴(銀塊)로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거기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은자들이 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기운(起運 = 중앙정부로 올리는 것)으로 올릴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은(銀)은 철이나 구리보다도 낮은 온도에서 녹기 때문에 다루기는 훨씬 수월합니다. 다만 관아에서 은괴로 만들면서 부과(賦課)하는 화모(火耗 = 불을 접촉시킬 때에 소모되어 없어진다고 하는 량)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생각을 잘할 필요가 있지요. 관에서는 많으면 2 할, 적으면 3 푼 정도의 화모를 더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화모라는 게 ... 정말로 불에 닿으면 쇠나 은이나 구리가 녹아서 달아 없어지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것을 핑계삼아 세리들이 만성들을 매웁게 다루는 것인가요?"


"은전들이 각각 순분이 다르니, 그것을 나라에서 정한 법대로 순분을 높일려면 화모가 평균 5푼으로 부족할지 모릅니다. 오래 되어서 검게 변한 은(銀)은 묵은(墨銀)이라고 부르며, 이것은 주로 중원에서 만든 것인데 이것은 순분이 아주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홍모족(紅毛族 = 서양인)들이 가져오는 백은(白銀)을 양은(洋銀)이라고 부르는데, 그것들은 순분이 아주 좋아서 백성들이 그것을 선호해서 잘 내놓지를 않아요. 동쪽의 왜국(倭國)이나 조선(朝鮮)에서 들어온 회은(灰銀)은 순분이 떨어져서 일 이 할은 화모를 쳐야 맞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모를 핑계삼아 세리들이 더 챙기는 일도 허다할 것입니다." 


                                                                  [그림 명대의 금화은]


[당시 명나라에서 정은(正銀)이라고 하는 것은 순도 90 %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화폐로 주조되어 있는 것이 아닌 채로 거래에 사용되었다. 즉 상거래는 쇄은(碎銀 = 조각난 은 덩어리)을 저울로 무게를 재어 거래하였다. 그 때에 중국 남동 해안 즉 광동성, 복건성에서 스페인이나 네덜란드를 통해서 중국에 들어오는 양은은 페소라는 은전이며, 개 당 무게 27.5 그람의 은전으로써 순도는 90% 이상 이었다. 조선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은은 순도가 좋은 것은 80% 정도이고 70% 이하인 것들도 많았다. 당시 은으로 세금을 받으면서 화모라 하여 추가로 더 징수하였는데, 당시 세리들은 화모를 수탈 수단으로 악용하여 그 폐해가 심하였다.]


                                 [그림 명대의 등자, 은을 거래할 때마다 상인의 필수품 저울]


"정말 이게 골치아픈 문제군요. 아무래도 전장업을 잘 아시는 분 모셔다가 일을 맡기든가 아니면 배워오든가 대책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제가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또 다른 의견은..."


"회주님, 의원을 개설하여 외부인을 치료하고 있는데, 회원이 아닌 외부인들의 치료를 하는 일이 좀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외부인들에게 너무 과다한 당례를 받는 것도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또 회원을 공짜라 하여 외부인과 달리 홀대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의원들도 사람인지라, 치료의 댓가로 당례를 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아무래도 달라지는 모양입니다."


"의원들의 문제는 마대장님께서 어떤 방안도 찾아주셔야 합니다. 그 문제는 의원님들과 상의를 하시는 것도 필요할 것 같고요...  우리 흑응회는 뚜렷한 회의 지침이 있으니 그 지침에 따라주시도록 청탁을 하시고, 저간의 사정을 잘 파악하셔서 의원들의 입장도 충분히 검토가 되어야 하겠지요."


"......"


"2 월 부터 새로 학숙이 시작되는데, 기존 30 명에, 낙양의 적목단에서 보낸 아이들이 약 60 명이고, 등주에서 23 명, 흑응회원 자제들이 45 명이 지원하였습니다. 열 달에 은자 석 량이면 만만치 않은 학비일텐데... 갑자기 인원이 늘어나게 되어 준비가 착실하게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번에 건축이 다되어 입주할 합숙소는 모두 4 채인데, 방이 부족해요... 그래서 회원님들 집에 기숙할 수 있으면 가급적 그렇게 하고, 4 채로 감당을 해 보십시다. 먹는 것, 입히는 것, 재우는 것, 가르치는 것이 다 함께 진행이 잘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남 인근에서는 학숙비가 너무 비싸다고 하는 편입니다. 하기야 벼슬 길에 오를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뭐하려고 글을 배우냐는 사람들도 허다한 판인데 그런 생각도 한편으로는 마땅하지요... "


"합숙소에 어린 아이들만 놓아둘 수 없으니, 백호대에서 아직 성가(成家)를 하지 않은 총각대원들을 한 숙소에 두 분씩 감독으로 지원을 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숙소 방 하나에 6 명씩 들이면 한 숙소에 동생(童生)들이 22 명 씩 머무르고 감독이 일 이층에 한 사람씩 있도록 하면 될 것 같군요. 학숙사업이 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 그리 생각하시고, 마대장님과 총관님께서 수고를 많이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 소소하고 긴요한 일들이 의논되어 가면서 제남의 흑응회의 새해 첫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