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14 회 주문(呪文)으로 봉인(封印) 되다
진원성 일행은 쪼모랑마봉이 가까이 보이는 곳의 곰파(소수의 승려들이 사원의 규칙이나 제약에서 벗어나 맘껏 수행을 해갈 수 있도록 한 작은 사원, 한국의 독채 사원정도)를 한 곳 만나서,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 주변으로 '참 수행'을 하는 참파(=면벽수행승, 참파라는 토번 말은 보릿가루라는 의미의 동음이의어로 더 자주 쓰이고 있다)들이 있는지 알아보고서 물어물어 찾아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참 수행'이란 단독 수행을 말하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지식이 웬만큼 되었다고 보면, 제자에게 과제를 내주고 혼자서 수행하면서 과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그럴 때에 '참'이란 수행장소를 정해주고 그곳에서 수행을 시키는데 이것을 '참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 수행을 하는 사람을 '참파'라고 부른다.
참이란 방 두칸 짜리의 작은 집 또는 작은 굴이며, 스승이 제자를 수행시키려는 의도에 따라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게 한다든가, 아주 어두운 빛만 들어오게 한다든가, 작은 창을 내어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하는 등의 차이가 있으며, 다른 방 한칸은 수행을 하는 사람의 생활 시중을 들어주는 시중꾼이 묵는 공간이었다. 찾아오는 손님과의 면회 여부는 물론이고, 시중꾼과 참파의 관계도 스승이 정해준 대로 따라야 하는데, 참파가 시중꾼에게 말을 할 수 있다든가, 아니면 시중꾼만 참파에게 말을 할 수 있다든가, 아니면 시중꾼과 얼굴을 대면할 수 있다든가 또는 없다든가 하는 세세한 것까지 스승의 지시에 따라야만 한다. 곰파 즉 작은 불교사원의 주위에는 오 리에서 십 리 전후의 거리를 두고서 이런 참이 여러 개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높은 산간에서 참은 땅에 굴을 파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겨울철의 추위를 막아내는 것도 중요하였고, 각종의 소음(주로 바람 소리)을 막는 데에도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참에는 시중꾼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시중꾼을 두는 것은 꽤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므로 시중꾼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시중꾼이 없다면 참파 본인이 시중꾼이 거들어줘야 할 일들을 스스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미라레파를 추종하는 참파들이라면, 즉신성불의 길이 장구한 세월을 요하기 때문에 시중꾼이 없을 경우가 더 많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원성은 소제만을 데리고 등에는 원차를 열 개씩 짊어지고 먹을 것도 좀 챙겨넣은 다음에 곰파에서 소문을 듣고서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미라레파의 나로파 6 법을 수행하는 참파를 찾고 있으니 알면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하며, 원차 하나씩을 내놓고는 돌아다니는 것이 일이 되었다. 그리고 왠만큼 주위를 뒤졌다고 생각되면 거점을 옮겨서 또 다른 곰파를 찾아나서고, 곰파를 거점으로 정한 다음에 또 다시 근처의 참파를 찾아다니고, 하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이것은 서안에서 도관을 찾아다니던 때와 거의 같은 형편이었다.
진원성과 소제는 많은 참파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토번에는 산등성이마다 참파가 많이 있었으며, 그들은 많은 종류의 교의(敎義)를 수행해가는 사람들이었다. 때로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위해 수행을 하기도 하고, 주술법을 수행하기도 하며, 때로는 서 너 해 잠깐 기이한 수행을 하는 승려로 보였다가 이름을 좀 얻게 되면 곰파를 하나 내어서 그것으로 호구지책을 삼으려는 마음으로 참 수행을 하고 있는 사이비 참파도 있었다. 진원성은 점차로 더 높은 지역으로 오르게 되었는데, 높은 지역으로 오르면 오를수록, 인적이 뜸해질수록 정말 법문을 수행하여 무엇인가 이룰려는 그런 치열함을 갖는 참파들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탐색작업을 한달 여 한 다음에야 진원성은 나로파의 6 법을 수행하는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높은 곳에 있는 그들은 산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도통 무관심하였다.
협곡 사이를 지나치며 보게 되는 멀고 가까이에 있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 반짝이는 빙호(氷湖 얼음호수)들을 점점이 흐트려놓은 채로, 만년설을 머리 위에 얹고서, 당당하게 버티어선 수많은 봉우리들 사이에서 듣게 되는 태고의 정적(靜寂)은 침묵이 아니라 사람에게 가르침을 내려주는 소리없는 설법이 되었다.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라 산 봉우리마다 신이었던 것이다. 진원성 일행은 모두 다 말(언어) 이전에 정적의 소리로 느끼게 된 설법을 듣고서 신들의 품안으로 귀의하였다. 그리고 만난 참파들 중 하나에게서 미라레파가 살아있을 때 수행하였던 동굴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으며, 며칠 높은 산등성이를 넘어서 전전한 후에 그 동굴을 찾아가서 마침내 그 근처의 미라레파 6 법 수행자들 중에서 가장 법문을 높이 깨우친 레파(= 면포만을 걸친 승려라는 뜻, 생명열 즉 최소한 1 법은 깨우쳤다는 의미임)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상닥레파라고 하였다. 소제의 부족한 통역으로 진원성은 대화 할 수 있었다. 진원성은 자기의 신분을 소개하고, 불과 스님이나 캄바라괸키 스님의 이름을 말해보았으나 그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다음 자기가 찾아온 이유를 말하게 되었다.
[그림 미라레파 동굴 위치, 현재는 네팔 영토에 있는 마낭에 있다. 현대의 마낭은 안나푸르나 등반의 고소적응 지점이다]
진원성이 이미 똑같은 내용을 다섯 번째로 말을 해보는 것인데, 그러나 한마디라도 뜨거운 진심을 담아서 말하였으며 그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저는 중원의 땅에서 온 사람입니다. 어려서 부터 병을 앓고 있는데, 미라레파의 법문을 얻어 수행을 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듣고 여기에 와서 미라레파의 제자를 찾아왔습니다.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병은 어렸을 때에 동해(凍害)를 입어 왼쪽 팔이 병신이 될뻔 하였으나, 한 승려에게서 비법을 받고 호흡법을 공부하였으며, 결국 왼쪽 팔은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승려가 나의 자지와 항문 사이에 있는 경혈을 어떤 이유에선지 막아놓았으며, 아직도 그것이 꽁꽁 얼어있듯이 막혀있습니다. 이것을 풀어낼만한 법문이 즉신성불을 이루는 미라레파의 6 법이라고 하여 듣고 찾아왔는데, 그 법문을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는지요?'
진원성의 이야기를 들은 상닥레파는 곰곰 생각하더니, 진원성을 마주 앉히고서, 주문을 외우고 한참 어떤 기공을 운용하는듯이 보인 다음에야 말을 하였는데, 소제의 부족한 통역으로 들은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진시주의 병은 나로파의 6 법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로파의 6 법은 우리의 몸에 있는 일곱 군데의 깨달음이 머무는 장소를 깨달음으로 채워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진시주의 몸을 지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결과 막혀있는 그곳은 '물라다라 차크라'라고 부르는 곳인데, 그곳이 바로 깨달음이 맨 처음 일어나야 할 곳입니다. 제가 만져보니 막힌 곳이 만져지지도 않았으며, 그러나 뭉쳐진 곳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곳이 주문(呪文)으로 봉인(封印)이 되어있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저의 능력으로는 그것을 풀 수 없었습니다. 6 법은 맨 처음의 장소를 깨달음으로 채우지 못하면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시주에게는 그곳을 봉인하고 있는 주문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먼저 주문을 해소할 사람 즉 날졸파(naljorpa = 주술사 呪術師를 지칭하는 말)를 찾아가야만 합니다. 어쩌면 주문이 심령 전체를 얽어멨을 수도 있으니, 파오(pao = 남영매 男靈媒)나 파모(pamo = 여영매 女靈媒)를 찾아가서 주문을 풀어달라고 하는 것이 맞을거라 생각합니다.'
진원성은 미라레파의 6 법을 배워서 정말로 즉신성불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으므로, 상닥레파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 원차 열 개와 따로 준비한 은자 삼십 량을 내려놓고 물러나왔다. 그동안 참파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상닥레파와 마주 앉았을 때에 느꼈던 마음 속의 어떤 격동은 전에는 느꼈던 적이 없었으며, 또 자기 하복부의 경혈이 뭉쳐있는 곳에서 어떤 기미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로써 진원성은 상닥레파의 도력(道力)이 아주 높아서, 그가 이미 뭉쳐진 혈맥을 직접 보고 확인하였다고 인정하였으며, 그래서 그의 말을 믿을수 있었다.
소제는 토번 말을 제한적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날졸파, 파오와 파모의 말뜻을 몰랐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이럴 것 같으면 지아쿰렉이라는 의원승려를 붙잡아 놓을걸 하며 아쉬웠으나 어쩔수 없었다. 진원성은 들었던 말들을 일단 잘 기억해두고 나중에 중원 말을 잘 아는 토번 승려를 만나거나 찾아가서 뜻을 확실히 하자고 말하였다. 진원성의 일행들 여섯 명은 이때 쯤에는 진원성의 병이 치료될 것인지 여부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들 활불 또는 마유친은 활선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자기가 걱정할 범주의 일이 아니라며 관심을 거두었던 것이다.
진원성 일행은 다시 얄룽장뽀 강변으로 내려왔다. 이때는 초 여름이라 할 수 있는 계절인데, 만년설이 쌓여있는 희말라야 산맥에서 녹은 물이 모여들어 이루어진 강물은 아주 차가웠지만 진원성은 매일 아침 다시 강물 속에 들어가서 물 속 수련을 맘껏 할 수 있게 되었다. 진원성은 자기의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오색 영롱한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를 톡톡하게 볼 수 있었다. 이즈음부터 진원성은 자기가 보는 그림 속에서 스쳐지나는 그림에서 오색빛의 달려가는 속도가 줄어져서 점차로 명료하게 보이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진원성은 참 신기하여 물속 수련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진원성 일행이 강변에 자리를 잡자 이미 대형활불의 이름은 꽤 유명하였으므로 다시 주위에 금방 병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찻물공양 부터 시작되었으며, 행각승들의 방문도 간간히 있었다. 소제는 행각승들로부터 시가체(日喀則, 밭이 풍부한 동산이란 뜻, 해발 3900 미터, 티베트 제 2 도시)에 있는 타쉬룬포(札什倫布)사원(복덕이란 뜻, 달라이라마 1 세가 1447 년 창건한 사원)의 유래를 들을 수 있었고, 타쉬룬포사가 큰 절이기 때문에 중원 말을 능숙하게 할 줄 아는 학승 라마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기에 찾아가서 진원성의 의문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타쉬룬포사는 얄룽장뽀강변의 농지들 덕분으로 백성들이 많았으므로 큰 절을 이룰 수 있었으며, 이번에는 이름을 감추고 접근하여 중원말을 하는 학승을 수소문 하였다. 대형활불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조금 망설여지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중원말을 잘 아는 학승을 만나서 모르는 뜻을 설명들을 수 있었다. 학승의 이름은 카탄파(克丹必)라고 하였으며, 무상도인은 어떤 기공(氣功)으로 혈맥을 막아놓은 것이 아니라 주술법(呪術法)이나 부적(符籍)으로 막아놓았으며, 혈맥을 푸는 것 역시 주술법이나 신력(神力)으로 풀어야 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