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체(제3부)

제 022 회 난정 다시 낙양에 오다

금박(金舶) 2016. 7. 7. 05:45


난정은 한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는 11 월말의 어느 날 두 몸종 운아와 하아를 데리고, 제남 낙양 간의 정기운행편 마차를 타고서 낙양 적목장에 도착하였다. 진원성이 허락을 할거라 믿고서 미리 출발하였던 것이다. 적목장에서는 이미 난정이 장래 적대형의 본처가 될 사람임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난정을 깍듯이 모셨으며, 당분 간은 빈 곳으로 있을뻔한 안채에 머물게 하였다. 난정은 흑응회에서 활발하게 일하던 습관이 들어있던지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여 일거리를 찾아나섰다.


적목단에서는 지난 6 월 황하변에 빈땅 700  무를 구입하였으며, 급한대로 한쪽에 미곡 창고를 지었었다. 그리고 나머지의 땅에는 단원들이 살집을 짓기 위해서 설계를 하고, 토목공사를 하기 위한 측량을 하고 있었다. 새 봄이 오면 땅을 파고 하수관을 묻은 다음 샘을 파고 도로를 내서 주택을 지을 기반을 만들기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미곡창고 노부와 작업 인부 40 여 명을 위한 선방이 운영되고 있었다. 난정은 이 선방을 점령하여 대뜸 적목반점이라고 간판을 붙인 다음에 인부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 일은 제남에서 이미 충분히 숙달되어 있었으므로 난정이 운아와 하아를 지휘하면서 감당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난정은 흑응반점에서 하는 것처럼 값싸고 실속있게 밥을 챙겨줄 수 있었으며, 즉시 인부들에게서 호평이 쏟아졌다. 


그리고 적목단 단원들의 내자(內子)들의 상태를 파악해내고는 부인네들을 동원하여 여러가지의 일을 해내기 시작하였다. 공사장 인부들의 모자와 수갑을 만들어서 겨울철에 보온을 하게 만든다던가, 공사장 인부들의 숙소를 청소하고 숙소 안에 있던 침구들을 세탁하는 일 등, 그런 것은 흑응장에서 부인네들이 하고 있었던 것을 이미 보아서 알고 있기에 난정은 거침없이 해낼 수 있었다. 처자가 있든 아니면 미혼의 장정이든 간에 공사장에는 홀몸으로 있었기에 좀 삭막하였었던 것이, 이로써 공사장에는 한겨울에 갑자기 훈풍이 부는 듯 하였다.


그러면서도 난정은 제남에서 무슨 소식이 없는가 하고 주의를 하였다. 제남에서 정기운행 마차가 도착하면 편지도 도착하므로 혹 무슨 소식이 없을까 하며, 신경을 썼다가 무소식에 다시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하였던 것이다. 아버지 임향주가 자기 딸이 가출하여 흑응회에 몸을 숨기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을 터인데, 혹 다시 돌아오라는 그런 소식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난정으로써는 흑대형과 제대로 된 혼인이 되려면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흑대형이 청혼해 오기를 기다려야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내들이 흔히 저지르는 기생과의 하룻밤 같은 야합(野合)일뿐, 이런 상태로의 난정이 흑대형의 본처가 될 수 없는 것이 당시의 법도였던 것이다.


== 서기 1610 년 ==


이렇게 되어 난정은 적목단이 매월 초하루에 하는 회의에도 참석하며, 적목반점의 일을 회의 중에 보고도 하고 단의 또 다른 소식들도 들어 알게되고는 하였다. 3 월이 되어 제남에서 온 소식통에는 난정이 기다리는 소식 대신에, 좀 놀랄 일이 전해져왔다. 등주부 식민지에서 가져와 제남부의 빈민들에게 공급하는 미곡 운반 차량이 운송 중에 습격을 받아서, 미곡 300 섬이 탈취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조무웅 단주는 즉시 간부회의를 소집하였으며, 이 소식을 조수들에게도 전하게 되었다. 빈청에는 조 단주와 유총관, 해녕총관(=난정), 그리고 5 명의 각조의 조수 총 8 명이 자리하였다. 밀인재를 지킨다는 선서가 있은 다음에 단주는 말을 이었다. 


"제남의 흑응회에서 전해온 소식이, 좀 나쁜 소식이 있는데 ... 조수(組首)들은 알고 있어야 될 것이에요. 2 월 초 4 일에 등주에서 미곡 300 석을 마차 열 대에 나누어 싣고 오던 흑응회 미곡운송대가 마차를 강탈당하고, 사람들도 세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고 하는 소식이 있습니다. 흑응회는 우리 적목단과는 달리 미곡운반을 빈민들 중에서 사람을 사서 운반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이야 강도가 나타나서 겁을 좀 주면 무서워서 모두 다 가져가라고 할 수 밖에 없을테지요."


"좀 자세하게 말씀을 해주시지요?"


"지난 2 월 4 일에 교주에 40 리 정도 못미친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 하고요, 말탄 오십 여 명의 복면 강도들이 나타나 위협하였으며, 마차 열한 대를 모두 끌고 갔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마차들은 이틀 후에 노산(努 한자 없음 山, 산동성 교주만 청도 바닷가에 있는 산)어귀에서 발견되었으며, 미곡만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하네요. 다섯 명이 반항을 하다가 얻어맞아 부상을 당하였지만, 모두 큰 부상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럽니다. 낙양에서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할 수는 없기에 우리 적목단도 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조 조수님들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미곡조수로써 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흑응회도 지난 가을부터 우리가 쓰고 있는 군용 마차(이것은 바퀴 네 개가 달린 좁은 마차 산길 등 좁고, 사정이 좋지 않은 도로에 적응된 좁은 마차이며 군대에서 많이 쓰고 있는 방식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적목단이 하는 운반 방식을 그대로 쓰게 된 것입니다. 한번 움직일 때에 마차 열한 대가 함께 움직이고, 그 중 열 대에 미곡 30 섬씩을 싣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 호광성에서 미곡을 가져오고 있는데, 이미 직할조에서 조사하여, 혹 습격을 받을 만한 지점을 잘 연구해두었는데, 흑응회에는 사전에 그런 준비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준비가 없었다는 말은 무슨 뜻이지요?"


"만일에 준비가 있었다면 강도들이 마차를 끌고 어느 길로 어떻게 갈 것이며, 그래서 빈 마차는 어디 쯤에 있을 것이다 하고 금방 그 마차들을 찾아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이틀이나 걸려서, ... 들어보나마나 인근 마을 에서 누가 흑응회 마차라고 하며 알려주어서 알게 되었을 것이에요."


"흐음, 그럴수도 있겠네요."


"직할조수님, 우리가 지금 한구진에서 미곡을 싣고 오는데, 그 길목들이 이미 다 조사해서 계획이 준비되어 있지요?"


"예, 그렇습니다. 한구진에서 낙양까지는 약 일천육백 리 길입니다. 그 중에서 강도들이 마차 열 대를 노릴 지점으로, 취약한 작은 곳이 열세 군데있고요, 강도들이 마차 오십 대나 백 대까지도 노릴 전장이 될만한 큰 곳은 두 곳이 있습니다. 큰 곳 중에 호광성 지역에서 한 곳이 있는데 이것은 미곡을 빼앗은 다음 대별산 속에 들어가거나, 다시 호광성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 용이한 지점입니다. 또 하남성 지역에서 한 곳 있고요, 이곳은 복우산 을 타고 넘어가는 길목이며, 이곳에서 강도들은 마차를 빼서, 뒷걸음을 얼마간 하다가 남양으로 해서 섬서성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고요, 아니면 복우산을 넘어서 하남 낙양쪽으로 옮겨와 어디에 숨기는 것이 둘다 가능합니다. 이 두 곳은 사건이 나면 미곡 이 삼천 석이 강탈당할 수도 있는 곳입니다."


"작은 곳은요?"


"우리가 대별산 자락을 타고서 북상하다가, 결국 복우산 자락으로 옮겨 붙어서 복우산을 넘어 낙양으로 오는 길인데, 작은 곳은 곳곳에 많이 있고요, 이미 미곡조 전원에게 그런 일에 대비하여, 강도들이 나타나면 무조건 미곡을 내어주고 생명을 지키도록 교육하였습니다."


"예, 그렇게 해야하지요. 생명이 우선입니다. 그 험한 안문관 넘어 산 중에서 십중 팔구의 죽음 속에서 건져온 생명인데 쌀 몇 섬과 바꾸기에는 너무 아깝지요."


"그건 그렇구요. 그래 흑응회에선 어찌한답니까?"


"흑응회에서는 지금 우리 적목단에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직할조 남 조수(南 組首)님이 바로 내일 출발하셔서 흑응회의 미곡 운반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예, 단주님 그리 하겠습니다. 어떨지 모르니 직할조 1 갑을 데려갈까 합니다. 어쩌면 사람이 좀 필요할지 몰라서요. 현장에도 가보아야 할 것 같고, 어쩌면 등주에서 제남까지의 길도 한번 쭉 살펴보고 와야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적대형님과도 지난해에 이미 이야기를 좀 한바가 있었지요. 분명 우리가 하는 미곡 사업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그냥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준비를 해야한다고 그리 말씀을 하셨지요."


"그렇다면 흑응회에서도 우리처럼 운반에서 사람을 사서 쓸게 아니라 우리처럼 단원으로 고용해서 직접 운반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산동과 우리는 지형이 좀 다릅니다. 산동은 바다로 둘러쌓여 있어서 미곡을 훔쳐도 도망갈 데가 없다 그리 생각한 것이겠지요."


"교주에 있는 노산은 산대왕(山大王 = 산적 山賊)이 자리를 잡고 있나요?"


"산대왕이 있을 턱이 없지요. 관군이 포위하고 덤비면, 바다로 기어들거나, 두 손들고 나오는 수 밖에 없는데 ..."


"그러면 마차를 거기에 버린 것은 일종의 경고의 의미라 할 수 있겠습니다."


"......"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넣어버리겠다는 그런 협박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거야 어떨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들은 지금 흑응회에서 어찌하나 신경을 모아 살피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적목단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미 언제 어디서 터질까 하는 것이지, 이건 시간 문제입니다."


"정탐조 포(包)조수님, 잘 부탁드립니다."


"자, 다시 한번 말해두겠소. 우선 미곡을 달라면 모두 주시고 목숨을 아낍시다. 둘 째 그들을 죽거나 다치게 해서도 안됩니다. 어찌하나 한번 두고 보아야 합니다. 이제 혹한기가 지나서 섬서성 쪽으로 올라가는 군량미가 계속 움직일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미곡을 빼앗아 군량미 쪽으로 섞어버리면 감쪽같이 강도짓을 할 수 있을 것이니, 그들은 아마도 복우산 큰 곳에서 일을 도모할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신중하게 기다렸다가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잡는 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절대 피아간에 인명 살상은 없어야만 합니다. 아시겠지요." 


[서기 1610 년 이즈음은 둔병제가 유명무실하여진지 오래 되었으므로, 당시에 변방의 군병들에게 강남북에서 생산된 미곡을 운송하여 공급하는 일은 대량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개략적으로 보자면, 가장 많은 것은 북경성, 또 북직예성과 만리장성에 주둔하는 군병들 약 5, 6 십만 명과 그에 딸린 가솔들의 식량으로 매년 4백만 석 전후의 미곡이 경항대운하를 통해서 수운되었으며, 또 장강 하구 인근에서 요동으로 직접 해운하는 것이 매년 약 이십만 석 그리고 산동성에서 요동으로 해운하는 것이 매년 약 십만 석이며, 육운으로 실어나르는 미곡은 산서와 섬서성에 주둔하는 군병들의 군량미로써, 하남성에서 산서성으로 가는 매년 삼십만 석과 호광성에서 섬서성으로 가는 매년 오십 만 석이 있었다. 이때 호광성의 미곡 생산은 이미 절정에 이르러서 자체 소요를 제하고도 매년 오백만 석 이상의 수확을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명말 시기의 하남북은 자연재해가 다발하였으며, 그에 따라 미곡 생산량은 해마다 들쑥날쑥하는 일이 많았다. 다만 산동성 동부지역은 자연재해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던 다행한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