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목단(제2부)

제 036 회 낙양 보호사업을 손에 쥐다

금박(金舶) 2016. 4. 5. 09:53


"원성아, 만성이 굳게 서면 나라가 튼튼하고, 만성이 허물어지면 나라도 허물어지는 것이다. 홍무제께서는 50 무에서 100 무를 갖고 자경(自耕)해먹는 만성을 힘있는 만성이라 하셨다. 그리고 700 무 이상 갖은 부자들을 나라의 우환(憂患)이라고 하셨지. 힘있는 만성이 많으면 나라가 어려워졌을 때에 만성이 나라를 붙들어주지만, 만성이 말라 비틀어지면, 그 때에는 어지러운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태는 만성이 있을리가 없겠지. 네가 홍무제의 이말을 잘 기억하거라. 나의 뜻을 알테니 잘할거라 믿는다. 너는 2, 3 년은 여기 낙양에 머물러서 몸도 보살피고, 하남지부가 잘하는지 어떤지 살피다가 정 안되겠거든 직접 쳐죽이든가 아니면 보인이에게 연락을 하거라."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 홍무제는 재위 시에 2 차례의 옥사, 즉 1380 년 호유용의 옥사와 1393 년 남옥의 옥사를 집행하여, 반역죄로 대지주들 10 만 명을 학살한다. 그리고 1396 년 호부에 명하여 전토 7 경(1 경 = 100 무, 1 무 = 200 평) 이상 갖은 만성 수를 파악하여 보고하게 한다. 1397 년 호부의 보고 지료에 나온 수치는 전국에서 7 경 이상 소유자 수는 14,341 명 이었다. 홍무제는 이들에게 세금 납부 외에 별도의 과업을 맡게한다. 즉 부자 누구는 마을 하천의 다리를 책임지고 유지보수하게 한다든지 이런 식이었다. 또 채무의 이자를 1 년에 최고 3 할로 정하고, 기간이 아무리 길어졌더라도 이자는 원금의 5 할을 넘지 못하게 법으로 정하였으며, 이렇게 부자들의 재산증식을 막도록 하였다. 이것이 명태조 주원장의 죽기 전 마지막 통치 행위였다.]


"예, 어르신 잘할게요."


"보인아, 원성아, 이제 내가 눈이 어두워졌구나. 이리와서 내 손을 한번 잡아보거라."


"응, 원성이 네 몸은 음기가 극성이구나.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 배운 바대로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거라."


"예, 어르신이 걱정입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시구요."


"보인이, 너도 그동안 열심히 하였구나. 그래 열심히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예, 사부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원성이는 나가고, 보인이는 남거라."


다음날이 되자 동창 당두는 와서 모든 일을 듣고, 자세하게 기록한 후에, 통정어사 승계보고서와 회표를 받고서 바로 북경을 향해 길을 제촉하였다. 이같은 일은 한시라도 빨리 동창의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화급(火急)의 사안이었다. 그 다음 날은 화장터에서 쇄음수를 쓰던 고수들을 모두 불 태웠으며, 호 어르신은 이날 돌아가셨고, 그 다음 날은 백마사의 스님을 불러서 간소한 장례식을 치룬 후, 심의파의 죽은 고수들 78 명을 모두 불태웠다. 


또 그동안 적목단원들 중에서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연락하여 시신을 돌려주었으며, 죽은 사람들의 장례비로 한 사람에 은자 이백 량 씩을 지급하였다. 이것은 낙양 인근의 일급 무사들의 장례비보다 훨씬 많은 금액으로 유족들이 불행 중에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머지 경상자들에게는 약간의 위로금과 휴가를 한달 씩 주는 것으로 하였다. 이미 경가장은 수습이 되어 전투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지고, 평온한 모습이 되었다. 


경가장을 청소하고, 북망산 화장터에 시체를 실어나르느라 적목단원들과 심의파 제자들이 수고를 하였으나 그 일이 오히려 마음을 추스리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크고작은 일이 정리되자, 진원성은 채권장부를 살펴보고 그것이 모두 만성들 어깨에 얹혀진 돌덩이임을 알아서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경가장에서 나온 62만 1900 량 중에서 심의파 15만 량, 동창 당두 15만 량, 이리저리 쓰고 남은 은자 중 몫지어진 하남지부 10만 량을 빼니 회표와 은자 21만1천 량이 남게 되었다. 진원성은 그 중에 20만 량의 회표는 따로 챙겨 혼자만 알 수 있는 곳에 보관 하였으며, 나머지 은자 1만1천 량을 유총관에게 맡겨 적목단과 장원 살림에 쓰게 하였다.


그 다음 날 대보인 신임어사는 하남지부를 경가장으로 불렀고, 지부는 동지와 추관을 대동(帶同)하고 나타났다. 


"이번에 호국감찰통정어사(護國監察通政御使)께서 돌아가셔서, 제가 뒤를 이어 받았습니다. 대보인(戴寶引)이라 합니다."


"예, 신임 어사님을 처음 뵙습니다. 제가 하남지부(河南知府) 박림(朴林)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하남부 동지(同知)이며, 여기는 추관(推官)입니다."


"예, 어사님을 처음 뵙습니다. 제가 동지 조 모입니다."


"예, 어사님을 처음 뵙습니다. 제가 관 모 추관입니다."


"예, 경가장 일이 다 정리가 되어 이제 지부님에게 마무리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참 여기 적목단주님 입니다. 우리 일 때문에 여기에 와서 금번에 가장 큰 공을 세웠습니다. 또 앞으로 삼 년은 낙양에 머물면서 하남부의 동태를 계속 살피기로 하였습니다.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예, 적목단주님 안녕하십니까? 지부와 동지와 추관입니다. 삼 년간 계신다니 앞으로 종종 뵙겠습니다."


"예, 적목단주 진원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 어사님 말씀하십시오."


"돌아가신 전임(前任) 어사(御使)의 분부를 그대로 전합니다. 이번 경가장과 오가장은 달단족의 간도(間徒)들이 모여있는 소굴이었기에 일망타진(一網打盡)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경가장에서 칠십 여 명, 그리고 오가장에서 삼십 여 명을 척살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성들에게는 달단족 말은 감추고, 개인적인 은원에 의하여 일어난 보복 살인극이며, 관에서 개입하여 모두 정리하고 끝난 것으로 하라 하셨습니다. 이미 이번 사건은 동창 제독에게 보고되어 아마 지금쯤 폐하께 상주 되었을 것입니다. 또 오가장, 낙양단은 지부에게 처리를 맡기고, 경가장의 모든 것은 적목단주 진원성에게 물어서 처리하라 하셨습니다...... 또 지부에게 은자 십만 량을 주라 하셨습니다. 성곽이나 관도나, 황하(黃河)나 낙수(洛水), 이수(伊水) 둑들도 보수(補修)가 몇 년은 안된 것 같다 하시면서, 십만 량은 꼭 수리에 쓰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하남지부가 눈이 아직 살아있는 것이 일을 제대로 할 것 같다 하셨고요, 또 그 밑에는 모르니까 쇳소리도 좀하여서 은자가 딴 데로 새지 못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경가장 전답들도 모두 하남지부에게 주어서 그것을 땅을 잃고 떠도는 만성들에게 좀 가볍게 세를 받고서 경작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삼 년 간 세를 낸 만성들에게 그 땅을 나누어 주라 하셨습니다. 제가 계속 하남부를 지켜볼 것이니 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예, 잘알겠습니다."


"여기 회표 십만 량입니다. 그리고 장부들과 전답의 각종 문서는 저기 마차에 실려 있습니다. 가져가서 살펴보시고 전답은 땅이 없는 만성들에게 잘 나누어 주십시오. 이것으로 어사의 전언을 마칩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어사님 명을 받들어 만성들에게 유익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적목단주님께서는 무슨 가르침이 없는지요?"


"예, 지부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경가장을 적목단의 소유로 만들어주시고요, 적목단이 낙양성 인근 모든 업장에서 보호세를 받고 보호를 하려 합니다. 보호세는 가능한 한 적게 책정하기로 하며, 낙양성 인근에 있는 모든 무뢰들도 이번에 다 정리하여, 무뢰들이 없는 낙양을 만들려 합니다. 그러면 만성들도 누구든 맘 편하게 다닐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일간 한번 아문으로 오시면 자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 금번 전투에서 저 역시 중대한 내상을 입어 출입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수 일 내로 저 대신에 총관을 보내어 한번 찾아뵙게 하겠습니다."


주변 정리가 끝나고 진원성은 신임 호국감찰통정어사인 대보인 형과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서로 연락하는 방법은 조천표국을 통하기로 하였으며, 진원성이 하남지부의 행정을 살피기로 하였다. 또 경가장에서 거두어들인 전답을 만성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잘 지켜보라는 부탁도 받았다. 또 심의파와 쇄음수를 쓰는 달단족 적도들과의 관계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쇄음수는 달단족이 들여온 라마승의 악랄한 수법으로써 만성들에게 몰래 펼쳐서 죽이거나 살리는 묘용으로 악용되었다. 이렇게 라마승들의 권력을 강화 유지하고, 달단족들을 통일하는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왔었다. 심의파는 쇄음수에 전문적으로 대항하기 위하여, 원나라 중기 무렵 소림사(小林寺)의 속가파(俗家派)로 출범하였으며, 출범 후 지속적으로 쇄음수와 격돌하며, 300 년 동안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한으로 엮여왔다. 명나라 개국 후에 심의파 장문은 호국감찰통정어사로 임명되었으며, 명나라를 보호하고, 쇄음수를 색출 멸절시키는 일을 해왔던 것이다. 쇄음수에 대한 자세한 역사 서술은 나중에 다시 거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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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월 초가 되자, 낙양성 인근에서는 적목단이 경가장을 접수하여 이미 현판을 적목장(赤目莊)으로 바꿔 달았다는 소식이 전하여졌다. 지부는 경가장 장원과 전답 일체를 관에서 몰수하여, 장원은 다시 적목단에게 은자 일천 량을 받고 불하(拂下)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다음에는 낙양 인근의 유력자들을 불러서 낙양성 인근 삼십 리 안 모든 업장은 적목단에서 보호를 하며, 적목단에 보호세를 내기로 하였음을 통보하였다. 이것은 관에서 적목단을 밀고 있으니 협조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낙양성 사람들은 보호세를 낸다는 점에 불만을 갖다가 보호세의 금액이 적은 데다가, 다른 일체의 무뢰들의 패악질로부터 보호가 된다는 것을 알고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체 경호조직이 충분한 세력가(勢力家)들과 보국, 아행 등도 모두 적목단의 보호를 받기로 하였다는 것이며, 대지주 장원들은 물론 비룡방 총당 역시 적목단의 보호를 받기로 하였다는 소식이었다.


경가장과 오가장이 하루 아침에 멸망하였다는 소식은 하남성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만성들에게는 이런 겁란이 또 다른 어떤 파국을 이끌고 오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주었으며, 부유한 층에게는 경가장의 파멸이 부자들에게 다시 다가올 어떤 재앙의 시작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주었으며, 다른 여섯 세력에게는 낙양단의 괴멸이 무뢰들에게 몰아칠 어떤 흉겁의 사례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일으켰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점점 충격에서 헤어나오게 되어 일상감을 회복하게 되었으며, 다시 평온을 되찾아 갔다. 


오로지 상대를 멸절시키고자 하는 열망으로만 이루어진 이 대혈투가 적목단의 모든 단원들에게도 어떤 충격을 주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1, 2급 단원들이야 현장에 참여한 탓으로 현장의 목격자로써 가장 큰 충격을 경험하였으며, 그들의 정신 세계가 상당히 묵직하게 변화하였다. 높은 하늘을 한번 본 사람은 땅 위의 무척 높은 산에도 별 감흥이 없게 되는 법이었다. 또 현장에 없었던 3, 4, 5 급 단원들에게는 불과 반 달 사이에 달라진 적목단의 위상으로 다가왔다. 낙양의 강호를 일통한 적목단에게 모든 업장이 보호세를 바친다는 것은 낙양의 역사상 한번도 없었던 초유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낙양의 모든 업장에게서 보호세를 받게 되었음이 확실해지자, 적목단원들을 바라보는 낙양 만성들의 시선에는 반쯤의 존경과 반쯤의 부탁이 녹아있었다. 낙양에서 더이상 무뢰들의 횡포를 볼 수 없게 되기를 기대하는 그런 호의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적목단 1, 2급 단원은 지난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시 3 명씩 짝을 만들게 되었다. 이들은 총 10 갑에 30 짝이 만들어졌으며, 새로운 전투조로 편성이 되었는데, 그것은 총 103 명으로, 전투 1 조 4 갑 41 명, 전투 2 조 3 갑 31 명, 전투 3 조 3 갑 31 명 이었다. 짝을 된 3 명은 지옥을 경험한 전우가 되었고 친형제보다 더욱 깊은 사이가 되었으며, 거기에서 싹이 트고 자라난 의리는 다시 적목단에게 충성을 바치는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삼인협격술은 그들의 자부심이 되었으며, 자발적으로 계속 숙달해간다. 낙양성 사람들은 적목단의 전투조 1급 2급 무사들이 등에 짊어진 포대 속에 3단창이 접혀있는 것도 짐작하지 못하였으며, 세 명이 항상 함께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적목단이 낙양을 제패하였음을 확인하자, 진원성은 우총관을 시켜서 성 남 쪽에 있던 임시 본부를 적목장원으로 옮겨왔다. 또 적목단을 낙양 인근 전체의 보호에 맞도록 조직을 개편하였다. 총관 아래에 직할조를 신설하여 장원을 경비하며, 단주와 총관을 보좌하게 하였다. 또 낙양단의 동서남북 4 행을 참고하여, 4 방으로 바꾸었으며, 전투조와 수금조와, 정탐조를 나누어 맡게 하였다. 이렇게 하보니 적목단은 장원직에 26 명, 직할조 44 명, 전투조 136 명, 정탐조 44 명, 수금조 180 명을 더하니 총 430 명으로 구성되었다. 보호 활동은 새해부터 실시하기로 하였으며, 그 준비로 낙양성밖 인근을 동서남북 4 방역(方域) 24구역으로 나누어서, 곳곳에 적목단의 거점을 확보하는 일을 하였다. 유총관이 정탐조 단원들을 동원하여 가장 적당한 곳을 골라서 거점을 만들게 되었다.


또 총관은 진원성이 이번 싸움에서 자신이 아주 중대한 내상(內傷)을 당하여 치료를 장기간 해야하며, 그래서 적목장원에서 거하지 않고 낙양성 서북 쪽의 이름 없는 야산에 토굴을 파고 그 속에서 살기로 하였음을 단 내의 일부 사람들만 알게 하였다. 그래서 유래타를 연락책으로 하여서 중요한 일은 적목귀에게 보고하고 처리하게 하였으며, 나머지는 유총관의 재량 하에 처리하도록 하였다. 


유래타가 토굴에 사는 적목단주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명령은 백마사 앞에서 구걸하는 다리병신 거지를 적목장원으로 데려와 키우도록 한 것이었다. 유래타는 이미 이 거지에 대한 사연을 들어서 알기 때문에, 잘 돌봐주도록 조치를 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받은 명령은 낙양 4방역에서 거지들을 관리하였던 낙양단 동서남북 행의 행수와 부행수 등을 찾아죽이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이 두 번째의 명령은 수행할 수 없었다. 벌써 심의파에 의하여 오단두 휘하의 직속부하들은 모두 제거된 후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낙양단 휘하의 거지들은 해방되어 순수한 거지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