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응회(제1부)

제 040 회 추관(推官) 풍청남(馮靑男)

금박(金舶) 2015. 12. 30. 01:23


산동성 성청(省廳)에서 해마다 8 월 1 일에 열리는 회의는 이제 각 부주의 세량(稅量) 들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고, 작년 금년에 있었던 이런 저런 사건 들이 이야기 되고 있었다. 좌포정사가 입을 열었다. 


"지난 해에 가장 수고가 많았던 것은 아마도 좌참의가 허액분을 모조리 없이했던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부터는 허액분 때문에 발생하는 미징분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제남지부는 옆자리의 등주지부에게 궁금하여 목소리를 줄여서 묻게 되었다.


"등주지부님, 무슨 방법을 쓴 것인지요?"


"제남지부님, 이것은 소문 낼 일은 아닙니다. 그냥 모른 체 넘어갈 일입니다."


"허 허 허, 등주지부님, 그렇습니까? 저는 무슨 좋은 방법이 있으면 배워둘까 하고 물어본 것뿐입니다."


"궁즉통(窮卽通), 궁하면 통한다고 하였지요. 마는 궁해서 생각해낸 방법이 마냥 좋을 리가 있습니까? 그러니 먼저 궁해지지 않는 것이 백 번 더 좋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동안 미징으로 남아 있던 것들 처리하자면 몇 년은 족히 채워야 할 테지요. 등주부 미징이 산동성 전체 미징의 삼분지 일이 넘지요."


"등주 제남지부께선 사담(私談)은 그만 하시구려…… 그리고 지난 1 년 등주부, 내주부에서 남군(南軍)을 다섯 차례에 걸쳐서 총 25000 명을 절강성으로 보낸 것은 그 중 다행이었습니다. 기운에서 5만 량을 빼내서 한 일입니다만, 그것으로 산동성에 남아있던 남군들의 동태(動態)도 점잖아졌다고 하니 다행이고요, 앞으로도 1 년 동안 25,000 명을 더 보낼 것입니다. 기운에서 자꾸 돈이 빠지는 것이 맘에 걸리지만 ...... 기운에서 빼서 남군들 군병수송에 썼다 하면, 아마 조정에서도 산동성에 감군어사(監軍御使)를 내려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헐어터진 군복입고 칼 차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주지부님, 어떻습니까? 남아있는 남군들 숫자가 얼마나 되지요?"


"우리 내주부에 2만, 등주부에 1만 정도 될거라 짐작합니다. 문제는 선단이 큰 배 다섯 척 편성이 되어 한 번에 오천 명 씩 강남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25000 명이면 다섯 차례를 수송하게 되는데요. 선주들이 남는 게 없다고 자꾸 딴소리를 합니다. 1 인당 동전 삼백 문 전후 운임을 받는 계산이 됩니다만. 즉 한 배가 평균 300 량을 받고 한달 반(바닷길이 운하길보다 시간적으로 훨씬 절약이 됨) 가량 시간을 들여서 절강 항주까지 갔다 오는데 이게 너무 헐하다는 것이지요. 포정사님 그래서 ..."


"딱 딱 딱" 


좌포정사가 좌석 옆에 달린 팔걸이를 세 번 때려서 말을 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배에서 밥 지어 팔고, 술도 팔면서 거기서 떨어지는 고물도 있는데... 그 떡고물이 아마도 평균 배 한 대에서 적어도 삼백 량은 될 거라 생각해봅니다. 자꾸 딴소리하면 안돼요.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어요. 선주들을 불러 다시 채비를 조여놓으세요. 남군만 다 처리되면 기회가 오면, 나중에 군병 수송선 제공한 선주 들에게 따로 보상을 줄 생각도 있으나 미리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어요. 워낙 술은 안마시고, 안주 국물부터 마시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에요. 이것만은 ... 산동성의 최우선 업무입니다. 이것 잘못되면 ... 안됩니다. 감군어사(監軍御使) 오면 이것부터 들추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만 아세요."


"예 포정사님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일은 등주부 복산현 위국현 지현과, 청주부 익도현 지현 오종효가 2월에 파관(破官)이 된 점은 참 두고두고 아쉽네요. 다들 열심히 봉관(奉官)하느라, 나름 노력을 다했는데... 그러나 하늘의 응보인지 뭔지, ...  7 월에 온 저보(邸報)에 보니 진증 광감세사가 병으로 갑자기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추관 있잖습니까? 정 뭐지요? 정, ... 


[저보(邸報) = 官報 = 조정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조정소식지이며, 인사명령과 조정의 대소사가 간추려져 기록되어 있는 책자, 조선에서 명나라로 가는 사신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재필사본 저보를 돈을 주고 빌려서, 필사를 하여 조선 조정에 보내는 것이었다고 함. 북경에는 저보를 필사하여 파는 장사치가 있었으나 고용된 필사자들의 공부가 낮아서 저보에 오자탈자(誤字脫字)도 아주 많았다고 하며, 이에 의하여 조선에 잘못된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함. 저보를 목판인쇄물로 바꾸는 일은 숭정제 때인 서기 1638 년에서야 실시됩니다.]


"아마, 이름이 정수훈 일겁니다."


"예, 그 정수훈이라고 진증 환관이 데려온 무관인데, 그 놈도 파관이 되었다 합니다. 그 놈들이야 파관될 이유를 찾자면 한 열 가지는 금방 줄줄이 나올텐데..."


"진 환관이 죽었다고요? 어떻게 그런 일이..."


"지난 해에 세 왕부에서 2만 량씩, 도합 6만 량을 뜯어갔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좀 된 모양입니다. 왕부(王府)에서도 황성(皇城)에 어떤 나름의 연줄이 있었을 것이고, 그 연줄로 인하여 진 환관에게도 어떤 작용이 있을 거라 생각을 하였었는데, 뜻밖에 병으로 죽었다고 나와 있네요."


"그러면 후임 광감세사가 누구랍니까?"


"아직 그것은 안 나왔습디다. 7 월 저보(邸報)가 아직 부주(府州)로는 안 갔을텐데, 조만간 내려갈테니 보시면 압니다."


"그러면 몇 달 간이라도, 징세리 없이 지낼 수 있겠군요."


"그래도 또 금방 내려올 텐데요..."


"몇 달 아니 한 달간 이라도 맘 편히 지내는 것이 그것만이라도 어딥니까?"


"저기 동창 지부님. 5 월에 대청하가 또 크게 범람하였으니,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예, 내주지부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해가 일어나 만성들의 농사가 몽땅 날라가 버린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은 작은 문제이고요, 그들 중에 얼마 간의 뼈대가 굵은 만성들이 칼 들고 도적으로 변해서, 부중(府中) 이곳 저곳에 떼 강도가 출현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구휼미도 풀지만, 그것이 먹고 살기에 충분하지가 않은지라, 극빈층에게는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크게 심려가 계셨겠습니다. 제남부도 뚝이 터져서 전답이 많이 잠겼지요. 제남지부님." 


"예, 우리 부도 동창부처럼 피해가 컸지요. 그런데 제남부에서는 강도들이 전혀 힘을 못 썼습니다."


"예? 좀 자세히 말씀하여 주시지요."


"제남부 역시 동창부처럼 수해가 커지면 열 명씩 또는 스무 명씩 도둑이나 강도가 떼로 일어나는데, 아니랄까 봐서 지난 6월에 강도 떼가 제남부 부성 밖에 민가를 덮쳤어요. 그런데 백호파라고 무관을 운영하는 방파가 있어요. 그 백호파 만성들이 민병대 같은 것을 만들더니 떼 강도들을 금방 제압해버렸어요. 그래서 걱정할 사이도 없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야. 대단하군요, 그 백호파라는 방파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십시오. 처음 듣는 방파이네요."


제남지부는 백호파를 설명하기 위해서, 풍추관으로부터 들었던 내용 즉 작년 9 월부터 2 월의 무술대회까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 길다란 이야기는 이미 알고있던 포정사를 제외한 모든 참석자가 흥미진진하게 듣게 되었다. 그리고 도박소를 개설하여, 용(龍)과 호(虎)가 찍힌 보인을 판매하여 수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히야, 그런 재미난 일이 있으면 1 월쯤에 미리 연락을 해주셨어야지요?"


"저도 나중에 추관한테 들은 이야기 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일이 되리라는 생각은 못했었지요. 아마 내년에도 대회가 벌어질 것 같은데, 그 때에는 꼭 미리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야, 정말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저야 잘 모르지요, 우리 제남부에 풍추관이라고 있는데, 회의 끝나면 제가...... 다들 원하시면 들어오라 해서 만나 뵈오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그렇게 부탁 드리겠습니다."


모두들 비룡과 백호의 비무가 재미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보인을 팔고 수수료를 받았던 것이 재미있다는 것인지, 아무튼 재미있어 하고 있는데, 좌포정사가 다시 말을 했다.


"참, 제가 이 말은 할까 말까 망서리다가 말을 하겠습니다."


"예, 포정사님 말씀하시지요."


"작년에 미징분을 처리하느라 지부 내고에서 꺼내서 충당하신 분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재작년에 세수 총액이 80만 량이었는데 작년 세수 총액은 97만 량으로 엄청 늘었습니다. 그래서 금년으로 넘어온 미징분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한편으로 걱정이 됩니다. 원래 관무(官務)가 아래에 괴인 돌 빼다가 위에 세워 막고, 위에 세워진 돌 빼다가 다시 아래에다 괴고 하는 일도 있기는 합니다만, 거기에도 어떤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부분의 한계를 잘 알고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지요. 제 말을 듣고서 잘 생각해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 "  


"오늘은 회의한다고 멀리서 다들 오셨는데, 제가 모시고 저녁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향일원(香溢園)에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유(酉)시에 향일원으로 다들 오시지요. 그리고 오랜만에 보신 분들도 많을 터이니, 서로 말씀 들 나누세요. 저 먼저 뒷방으로 가겠습니다."


"예, 다들 수고 하셨습니다."      


어떤 관청이든 대청 뒤에는 고위관(高位官)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뒷방이 준비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좌포정사가 뒷방으로 떠나자, 지부, 지주님들 간에 홍소를 터트리며, 자유롭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다. 제남지부는 등주지부에게 아까 궁금하였던 것을 조용히 물어보았다.


"등주지부님, 아까 하던 말씀인데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방법이라는 것......"


"예, 제남지부님만 알고 계세요, 단척(短尺)을 썼답니다."


"예, 단척이라면?" 


"땅은 없는데, 세량은 줄일 수가 없으니, 기왕에 있던 땅을 넓게 만드는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답을 조금 짧은 자를 사용해서 다시 측정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다시 황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달리 방법이 없어요. 좌참의가 찾아낸 방안이지요."


"참, 그 방법 밖에는 없겠습니다 그려......"


잠시 후에 풍추관이 불려 들어왔다. 그리고 제남부의 비룡과 백호의 무술대회는 제남지부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생동감이 넘치게 되풀이 되었고, 백호파가 강도를 제압한 일도 말해졌으며, 다들 풍추관의 이야기를 못 들었다면 크게 아쉬울 뻔 했다고 생각하였다. 또 풍추관의 무뢰들을 제도하는 능력은 더욱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6 월에 발생한 떼강도 사건에 대해서도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2월 15일 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백호파라는 문파가 원래 산서성 어느 산에 있던 한 마을 사람들이더군요. 그 마을 이름이 백호리(白虎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에게 떼강도가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마을에서 자경대를 조직하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무술 수련도 해오며 그렇게 지내오다가, 십여 년 전 몽고족들이 침입한다고 소문이 돌아서, 그 때부터 산에서 내려와 태원 등지에서 어떻게 발붙이고 살아보려고 하다가, 밀리고 또 밀리고 하여, 제남에 오게 되었다 합니다. 그런데 백호리에서 만들었던 자경대를 제남에 와서 무술관들 중심으로 다시 조직을 하였는데, 매일 밤 자경대 중의 2 개조 4 명이 성 밖을 순찰 돌았고요, 그러다가 그들이 강도를 발견하여, 호루라기를 불고,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자경대가 즉시 모두 모여 강도들을 물리친 것이지요. 그것이 소문이 돌았는지, 그 다음부터는 떼강도가 나타나지 않았고요, 부민(府民)들 모두가 백호파를 칭찬했다고 합니다." 


"예,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다음에 무술관들 중에 백호파에 새로 가담한 무술관들이 나오고, 거기에 대항해서 기존에 녹수방, 비룡방에 의존하던 무술관들은 비룡방, 녹수방과의 연관을 끊고 청룡파로 새로 개편하여 황보세가(皇甫世家)에서 권사를 모셔와서, 백호파와 실력대결 양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황보세가가 또 어디지요?"


"예, 태산 밑에 있는, 수백 년 아니 2백 년 이상 된 무림세력입니다. 원래 권법 수련을 하면서, 세상 일에 그다지 개입하지 않았는데, 원래 권술을 주법(主法)으로 하는 황보세가에서 나온 누가 제남에 무술관을 열었나 봅니다. 그래서 권법을 지도 받는다고 황보 가에서 권사 한 명을 모셔온 것이 계기가 되고, 그러다가 청룡파가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결국은 이러한 움직임이 모두 2 월에 있었던 권술비무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돈을 내고 권술을 배우겠다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백호파도 옳다구나 하고요, 그에 맞춰서 비룡방에서 이름을 따와서 청룡파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요. 객점이 손님 끌려고 내부수리, 새단장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러면, 결국 백호파와 청룡파 간에, 어떤 흉한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그런 걱정도 해야 할텐데요?"


"그렇지요, 그래서 제가 백호파와 청룡파 양쪽을 불러들여, 아예 서면으로 약정을 받아두었습니다."


"어떤 약정입니까? 둘이서 싸우면 벌금을 내도록 하셨습니까?"


"그게 아니고요, 우선 제남부성 인근을 4 분으로 구역을 나누었습니다. 대청하에서 제남로까지를 '갑' 이라 하고요, 여기에 무술관 12 곳만 허가합니다. 그리고 제남로 남쪽으로는 제영가와 부성을 중심으로 동쪽을 '을'이라 하고요, 여기에 무술관 12 곳을 허가합니다. 그리고 서쪽을 '병'이라 하고요, 여기에도 무술관 12 곳을 허가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성 안을 '정'이라 하고 여기에는 무술관 4 곳을 허가합니다. 그러면 제남에는 총 40 개의 무술관이 있게 됩니다."


"뭘,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게 처음에 다잡아 놓지 않으면, 나중에 결국 쌈박질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처음에 잘해야 하지요. 그리고 한 무술관은 최대 90 명 만 무술수련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백호파나 청룡파 각각 20 개의 무술관 만을 허가합니다. 백호파의 200 명은 한 무술관에 10 명씩, 전원 200 명이 무술관에 종사해서 먹고 살도록 하였지요."


"아, 그렇게 심오한 뜻이 들어있었군요."


"그래서 무술관도 관에 허가를 얻어야 하고, 허락 받은 무술관에서는 한 곳당 가르치는 사람 열 명에 총 100 명의 민병 들이 있게 되는 셈이지요. 40 개 무술관이니 유사시에 제남부는 4000 명의 민병대를 금방 조직할 수 있는 밑바탕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들은 열심히 훈련을 할 테지요. 왜냐하면 매년 2 월에 열리는 비무대회를 준비해야 할 테이니까요."


"4000 명의 민병대라 ... "


"유사시에 그들을 모아서, 군령수수(軍令授受)와 군사진법(軍士陣法)만 훈련시키면 훌륭한 군대가 될 것으로 봅니다. 아직은 처음이라 앞으로 상황을 보아가며, 적절하게 변화에 대응하면서 이렇게 되기를 노력해야 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아무튼 오늘 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2 월에 보인을 팔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수수료를 받았다면서요? 그래 수수료가 얼마나 들어왔나요?"


"맞아요, 그것도 궁금한 내용입니다."


"예, 보인이 6만 량 어치가 팔려 나갔고요, 수수료를 2 푼씩 받았으니까, 은자 1200 량이 수수료이지요."


"오, 그것도 짭짭한 맛이군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끝나자 내년에도 대회가 열리면 꼭 며칠 전에라도 연락을 해 주기를 다들 풍추관에게 부탁하였다. 내년 2 월 15 일에 대회를 한다고 하면, 그때에 가서 참석하고 구경하면 될 일을 왜 굳이 풍추관에게 미리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인지 풍추관에게는 그것이 좀 생각해볼 문제였다. 그래서 풍추관은 나중에 오지회의 임향주에게 무슨 좋은 생각이 없는지 하는 것을 물어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