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응회(제1부)

제 036 회 제남 3 방회 단합회(團合會)

금박(金舶) 2015. 12. 26. 06:43


12 월 9 일, 한 겨울의 막바지 한풍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제영반점에도 손님 들이 많이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오늘은 제영반점에서 큰 행사가 치러지는 날이었다. 저녁 유시(酉時) 초가 되자, 왠 젊은 사람들이 열 명씩 또는 열다섯 명씩 들어오기 시작하여 1층의 자리를 모두 메웠다. 그들은 옷차림으로 보아 제남을 장악하고 있는 3 곳의 방회 갑수(甲首 = 10 명의 대장) 들인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유시 중간쯤이 되자 다시 3 곳의 중간 급의 보수(堡首= 10 갑의 대장) 들이 7-8 명씩 나타났다. 그리하여 2 층으로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에 3 곳의 총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거의 같은 시간에 제영반점에 들어서서 2 층으로 올랐다. 오늘은 제남부의 3 개 방회(幇會)의 단합대회가 열렸던 것이다. 갑수(甲首= 10 명의 대장)급 들은 1층에, 보수(堡首= 갑수 10 명의 대장)급 들은 2 층에 오른 것이었다. 각 방회는 각 70 명으로 참석인원을 제한하기로 하였고, 제영반점 1, 2 층을 통째로 빌렸던 것이다. 이러한 날은 갑조 을조니 본채 별채니 따질 것도 없이 모든 점소이가 본채 1 층과 2 층에서 손님들을 응대해야만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손님들은 접대에 조심해야만 할 상대였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제남부의 밤을 장악하는 실세 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방회라 할 때의 방(幇 = 현대의 상법 상 회사와 같은 뜻)은 재물을 얻기 위해 함께 움직이는 단체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회(會 = 비밀결사의 뜻이 포함됨)란 어떤 목적(그 목적 중에서 재물을 얻는 것도 포함될 수 있음)을 위해서 모인 곳인데, 내부적으로 어떤 비밀을 유지하게 하는 강한 결속을 갖는 단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떨 때는 문(門)이나 파(派)라는 말도 사용하는데, 문의 경우 어떤 주장하는 바를 내세우고, 내세운 것(내세운 것이 무술일 경우 무문(武門)이 되고, 어떤 약일 경우 약문(藥門)이 되고 어떤 법일 경우 법문(法門)이 된다.)을 확장하기를 고집하겠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었으며, 파(派)란 어떤 조종(祖宗)이 있으며, 그 조종의 일맥(그것이 어떤 기법일 수도 있고, 어떤 종교나 이념이나 주의일 수도 있다.)을 이어받아서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뜻하는 말 들이었다. 이들 방회문파(幇會門派)와 상대를 할 때에 가장 주의할 점은 방회문파를 전체로서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너는 나쁜 놈이다." 라는 말은 그 한 사람만 욕보이는 것이지만, '너의 파는 나쁘다'라고 하면, 그 파에 속한 누구인지도 모를, 얼마인지도 모를, 다수의 사람과 원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남부에는 지금 3 개의 큰 방회가 있었다. 오지회(五指會)와 녹수방(綠水幇)과 비룡방(飛龍幇)이 그들이었다. 오지회는 홍루와 청루를 장악하고 있는 하오문(何烏門)의 지파였으며, 제남의 홍루나 청루를 지키는 나름대로의 무장인력이 적어도 3-400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녹수방은 원래 장강의 각 성시에서 화물(貨物)을 배에 싣거나, 배에서 내리는 각부(脚夫 = 부두 막 노동자를 말함)들의 연합체였다. 또 비룡방은 원래 황하의 각 성시에서 화물(貨物)을 배에 싣거나, 배에서 내리는 각부들의 연합체였다. 녹수방과 비룡방의 사이에는 한 때 경항대운하의 영업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합을 하였던 과거사가 있었다. 장강은 일년 내내 수량이 풍부하여 하운(河運)이 년 중 왕성하였으나, 황하는 년 중 강수량이 계절별로 차이가 많아서 하운 역시 불규칙적이었고, 그로 인하여 물동량 역시 장강에 비하여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그 대신에 북쪽에는 말을 이용하는 화물 운송이 더욱 발전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사람들은 남선북마(南船北馬)라고 말하였다.


경항대운하는 그 근본적인 수요가 군량미의 조달이라는 데에서 출발하였고, 그러다 보니, 미곡의 대량 생산지인 남쪽에서 화물이 실리고, 북쪽 지방에서 내리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에 군량미는 조운선을 이용하였으며, 처음에는 군이 직접 운송하고, 민간인은 군량의 운송에 일체 개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군이 하는 일의 범위가 점차적으로 축소되고, 민간은 점차 하는 일의 범위를 확장하게 되는데, 그것의 처음이 바로 배에 미곡을 싣고 내리는 일에서부터였고, 이 때부터 화물의 승하착에 동원되는 각부들 경영을 위한 조직이 태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녹수방이 선제의 효과로 경항대운하 북경 구간 까지 장악한 듯 하였으나 결국에는 비룡방에 어떤 선까지의 양보를 하게 되어, 지금의 균형 상태로 유지되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남부 부성 선착장 인근에 있는 각부 인원의 총수는 3-4000명 선에 이를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그러면 반씩이라고 하면, 적어도 녹수방과 비룡방은 자기 인원을 적어도 1500 명 이상씩 보유하고 있는 거대조직이라는 것이었다. 


[영락제 때에 경항대운하가 소통이 된 후 상황은 운군(運軍 = 군량을 하운하는 군대) 13만 명이 천선 6500 대를 이용하여 매년 군량 500 만 섬을 운하를 통해서 북송하였으며 명말의 경우에는 군량 운송은 7할 이상이 민간에게 위임되었습니다. 이 때에 경항대운하를 운행하는 천선 왕래 횟수는 년간 2만에서 2만5천 회 이상의 왕복이 있었으며, 그 중에 4할 정도가 관선(官船)이고, 나머지는 민선(民船)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운송 물목은 미곡, 소금, 견직, 마포 순으로 많았습니다. 운하 전용 천선은 수명이 약 10 년으로 년 중 조선(造船) 수요가 7백 척 전후였으며, 천선을 짓는 크고 작은 조선소는 대운하의 중간 지점인 회하(淮河) 상류 쪽에 약 70 개소가 모여 있었고, 명나라의 장인(匠人)제도에 의하여 관민의 성격이 반반 정도였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천선보다 큰 대형선은 대부분 장강에 이어진 파양호나 동정호에 있는 민간 조선소에서 지어졌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오늘과 같은 단합회는 비록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였으나, 보수 갑수 급까지 한 자리에 모여서 밥 한 그릇 같이 먹었다는 것은 그들 사이에 어떤 동질 의식을 심어주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작용이 됨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의 주선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사람은 4 년 전부터 제남부의 순검이었던 풍청남(馮靑男)이었으며, 그의 발의(發意)에 따라 지부의 재가를 얻은 후에 시행되어, 금년까지 년 말에 4 년 째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거친 무뢰들의 집단인 3 곳의 방회들 간에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여 주면서 가급적 분란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지난 4 년간 제남부 안에서는 사건사고가 대폭 줄어서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부수적인 효과로 조무래기들이나 뜨내기 무뢰들은 다른 데와는 달리 제남에서는 행세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부성 안에서는 어떤 분란도 자제시키는 것이 서로의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여, 3 방회의 협조를 얻었으므로 부성 안에서는 한밤 중에 아녀자 들도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풍청남은 이러한 공로로써 지난 해에 승급하여 이제 제남부 추관(推官 제남부의 경찰 총책임자)이 되었다. 당시 추관이란 관직은 과거시험의 회시(會試)에서 급제하여 관직을 얻는 초임자들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순검이 승급하여 되는 일은 좀처럼 드문 경우였다. 풍청남은 그만큼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원래 이런 대규모 단합회 자리는 밥 한 그릇 먹고 인사 술 한잔 먹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각 방의 갑수는 갑수들끼리, 보수는 보수들끼리 통성명이나 하고 목례도 하고, 세 곳의 좌장들이 나서서 석 잔의 건배를 하여 자리를 파하고 돌아갔다. 참석하는 그들 역시 이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보다는 자기 조직 내에서 참석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 보다, 자기가 참석하게 되었다는 그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기도 하였다. 2 층에는 1 회 2 방의 대장들만 남아서 풍청남 추관이 오기를 기다렸다. 때가 되자 풍 추관이 2 층으로 올라왔다. 점소이 누가 얼른 나서서 자리를 안내 하였고, 기다리다가 일어서는 일행 세 명을 향해 풍 추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오랜만입니다. 그 동안 다들 강녕하셨지요."      


"어서 오시지요, 풍추관님."


"참 오랜만입니다. 어서 오십시요."


"예, 어서 오시지요." 


바로 풍추관이 좌정을 하자, 다들 자리에 앉았고, 미리 준비된 요리 두어 가지가 바로 식탁에 차려졌다. 그리고 일각 정도가 지나자 배도 웬만큼 채웠고, 잡담도 얼마만큼 되어오고, 껄껄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술도 한 잔씩 권하고 받는 때가 오자, 풍추관이 얼굴색을 바꾸고 말을 하였다. 자리에 있는 세 사람 모두 여기가 단순하게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님은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지난 중추절 이후로 제남부성 주변에서, 세 번의 소란이 있었습니다. 민간들이야 전혀 모르고 있지만, 그것을 수습해보니,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4 년 조용하게 지내 왔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은 필시 무슨 일이 암중(暗中)에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 아시는 것이 없는지요? 임향주(林鄕主)님, ...... 혹 아시는 것이 없는지요? "


"아니, 왜 저를 꼭 집어서 물어보시는지요? 혹 오지회가 관련되었을 무슨......"


"그런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들 아실 만큼 아시는 분들이니까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만, 사건이 발생한 지역이 제영가(濟榮街)에서 동쪽이고, 유흥가 지역이니까 먼저 말씀 드려본 것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


"혹 이렇게 생각해볼 수 없을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예, 여기에 당과(糖菓 과자의 한 종류) 한 봉지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당과 한 봉지를 세 명이 사이 좋게 나눠먹고 있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한 사람이 좀 같이 나눠 먹자고 그런단 말입니다. 지금 제남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한 봉지를 세 분이 사이 좋게 나눠 먹고 있는 그런 모양세 아닙니까? 혹 누군지 짐작이 되시는 바가 없습니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게 무슨 일이며, 우선 단순한 사고인지, 아니면 누군가 고의적으로 도발을 하여, 사건화 시키고 결국 땅을 뺏으려고 하는 것인지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정(鄭) 향주님은 어찌 보십니까?"


"녹수방이야 고작 각부들 몇 명 부리고 있는 것이 고작인데, 여기서 뭘 빼앗아먹을 거리가 있다고...... 하는 생각으로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좀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상(湘) 향주님은 어떠십니까?"


"뭐 우리 비룡방 역시 녹수방하고 거의 같은 처지인데요, 뭐 고민할 거 있습니까? 전쟁을 하자면 해야지요. 그냥 달라고 한다고 인심 쓰듯이 턱 내줄 수는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정 향주님."


"그러니까 지금 정 향주님과 상 향주님은 누군가 지금 전쟁을 하려고 허실을 탐지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쑤셔보고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그것이 아니라, 쑤셔보는 것이든 아니든 간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런 말씀이지요."


"임 향주님, 지난 9 월에 잡은 그놈들은 어떤 놈 들입니까?"


"세 놈인데, 모두 다, 임청에서 흘러온 놈들입니다. 근본은 산서성 놈들이구요. 배고파서 먹을 것 찾아서 나왔는데, 참 먹고 살 것이 안 보인다면서 좀 살 길을 열어달라고 말하는 것이 단순한 좀도둑이나 조그만 동네 거렁배 들이 아닌듯하여 지금도 메달아 놓고 있습니다마는...... 좀 달았어도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지난 10 월에 부에서 포쾌(捕快 = 순검 밑에서 범인 체포를 주도하는 직급) 한 명이 정용(丁庸 포쾌의 지시를 받는 직급) 애들 서너 명하고 지나다가 때마침 성 밖 안령객점(安寧客店)에서 시비를 벌이던 3 명을 포박하게 되었습니다. 그 놈들 하는 이야기는 선착장에서 각부로 일하려고 했더니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결국 일을 못하고, 나중에 돈을 벌어 투숙비를 줄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결국 시비가 붙었던 것입니다만, 그들도 임청에서 넘어온 애들이고, 근본이 산서성 놈들이에요." 


"풍추관님 그래서 그 놈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장을 스무 대씩 때리고, 은자 한 량씩을 주어서, 고향에 돌아가라고 하였지요. 다시 한번 제남에서 눈에 띠면 그 때는 끝장이라고 말해주었지요."


"지난 해에 산서성 어느 쪽에 큰 재해가 있었나요?"


"산서성에 재해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것은 없습니다. 하남성의 개봉에 큰 물이 져서 둑이 터지고 물난리를 크게 겪었다는 말은 있었지요."


"혹 산서성에서 조왜전쟁 때 모병으로 간 애들이 돌아왔다가, 정착을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것은 아닐런지요 ...... 등주에서 들려오는 소식 중에 조왜전쟁에서 돌아온 군병들이 가끔 사고를 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말입니다."


"조왜전쟁에서 돌아온 군병들과는 아직 무슨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 그런데요, 열흘 전 다시 일곱 명이 안령객점에 나타났습니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만, 11 월 은자 한 량씩 주고 돌려보낸 아이들 있잖습니까? 그 놈들이 시비가 붙었던 데가 안령객점인데, 제영가 양편으로 객점이 삼십 개도 더 되는데 그 많은 객점 중에서 하필이면 안령객점에 또 그런 일이 생기겠습니까? 그리고 돈이 없다고 하며, 각부로 일해서 틀림없이 갚아줄테니, 그 동안 외상으로 해달라고 해서 지금도 안령객점에 붙어있답니다. 외상 달린 채로 말이지요. 아문 형조에 연락이 오기는 했으나 돈을 갚겠다는 사람을 잡아다가 가두면 돈도 못 받게 되고, 그렇게 일만 헝클어질 뿐이라 일단 두고 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 두 세 사람이 각부로 일을 해서, 얼마간씩 돈을 내기도 한다 합니다만, 부두에 일이 많으면 그런대로 자투리 일감이라도 걸리겠지만, 일이 부족해지면 그들은 바로 외상더미에 올라 앉는 것 밖에는 다른 수가 없지요.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가 되겠습니다."


"......"


"녹수방과 비룡방이 얼마간 일을 나눠주시겠다면 어떤 답이 될지도 모르지만요,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골치거리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추관님, 상향주님, 일단은 그들을 한번 만나보고, 다시 상의를 드리기로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게 하시지요.'


"그게, 내일이라도 정향주님과 상의해서 그들을 일단 만나보고, 다시 추관님에게 상의를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예, 그럼 모래나 한번 다시 이곳에서 유시에 뵙기로 할까요?"


"예, 모래 유시에 다시 뵙기로 하십시다. 임향주님도 같이 뵙기로 하시지요?"


"예, 저도 당사자인데요. 응당 같이 만나 뵙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