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혼(沸流魂)

#35. 얼음위에 타는 사랑 - 4

금박(金舶) 2015. 9. 18. 10:30

 

  "입을 닥쳐라. 불경스럽게 어미를 거역하려고 들어?"

 

  "."

 

  벽려혼이 기가 죽어서 움찔하였다. 가야부인 김총의 각본이 순차적으로  읽혀졌다.

 

  "내 아들이 되려면 먼저 내 뱃속에 들어갔다 나와야하는 의식을 치러야 된다."

 

  벽려혼은 김총의 양아들이 되는 새로운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그 의식이라는 것이 기상천외하고 왠지 부정한 일 같았다.

 

  "그럼 제황도 당신 아들이요?"

 

  "그럼, 그렇지. 제황은 내 동생의 뱃속에도 들어갔다 나왔으니 내 동생의 아들이기도 하고, 또 여기 있는 다른 애들 뱃속에도 들어갔다 나왔으니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다 제황의 어미가 된단다."

 

  벽려혼은 이들의 사정을 알 것 같았다. 모두 제황에게 자신을 바쳐야 되는 할렘의 여인들이었는데, 그러다보니 불만도 크고 그것을 이런 식으로 발산하는 것이었다. 집단 모성애가 갸륵하군. 벽려혼이 생각을 할 새가 없이 황부인 김총은 각본대로 듣도보도 못한 의식을 실연(實演)시켰다.

 

  "자 너도 이제 얌전하게 내 아들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 뱃속에서 출생해서 나오는 신고식을 치러야 돼."

 

  벽려혼은 김란이 꼭꼭 쥐어짜듯이 손질을 해서 이미 그것을 잔뜩 흥분시켜 놓았는데 김총이 덥석 그 물건을 잡아끌자 욕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벽려혼이 욕조에서 벌떡 일어나자 황부인 김총이 그의 가슴을 쓸었다.

 

  "아가, 성급하면 안돼지? 어미 뱃속에서 들어가서 꼬박 열 달을 채워야 겨우 햇볕을 보러 나오는 거야."

 

  벽려혼는 김총에게 이끌려 옆방의 침대로 끌려갔다. 열 달이 길기도 하지. 벽려혼이 눈을 감았다가 뜨고 보니 아직도 그녀의 배 위에 있었는데 김총은 눈을 감고 흥얼거리다가 말했다.

 

  "얘들아, 도무지 서투른 것 같다. 태기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어미 뱃속에서 한번도 안 커봤나? 두 번 하는 일도 이따위로 서투르단 말이야?"

 

  황부인 김총이 짜증을 부려서 시녀들이 다가와서 벽려혼의 아래에 있는 김총의 팔과 다리를 양쪽에서 애무하였다.

 

  "태동(胎動)이 도무지 약해."

 

  김총이 불만인듯 한 사내의 기를 죽였다. 벽려혼은 너무 지켜보는 여자들이 많아서 몸놀림이 위축되고 야룻하게 흥분은 되면서도 어쩐지 전력을 다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벽려혼이 여자를 먹이감으로 노리고 덤벼든 적은 있었지만 거꾸로 자신이 유부녀의 사냥감이 되어서  노리개로 시달리는 신세가 되고보니 좀체로 흥이 나지 않았다.

 

  "응야"

 

  벽려혼이 재미를 포기하고 고고한 괴성을 내었다. 이제 나는 햇볕을 보겠다, 출생하겠다는 첫울음이었다. 황부인 김총이 혀를 차면서 물었다.

 

  "쯧쯧쯧. 벌써 나갈려고? 열달은 아직 멀었어."

 

  "여덟달 반. 조산(早産)이옵니다. 어마마마."

 

  벽려혼이 대꾸하고 그만 일어나자 황부인 김총도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제멋대로군."

 

  황부인 김총은 아직도 무엇이 아쉬운지 도무지 옷을 입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벽려혼과 황부인이 금단의 열매를 가지고 노는 사이에 욕실에 남아있던 청운검 장영은 다음 차례로 옷을 홀랑 벗기워져서 김란의 손에 의해서 향나무 욕조에 끌려들어가 깨끗이 씻기워졌다. 황부인 김총은 비로소 장영이 생각났는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아직 다 못 씻겼어?"

 

  "거의 다 됐는데."

 

  황부인 김총은 다시 향나무 욕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욕조에 앉아 있는 청운검 장영 앞에서 자신의 몸을 씻는 척 하다가 장영의 아랫도리를 꽉 잡았다.

 

  "오늘은 필히 쌍둥이를 낳아야겠어."

 

  황부인은 홀딱 벗겨진 장영을 데리고 침대로 끌고 나왔다. 벽려혼은 김총을 피하여 그제서 욕실로 들어가 옷을 찾았다. 그런데 김란이 옷을 벗은 채로 대나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그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너, 이리와서 앉아 봐."

 

  너? 가야국, 방년 15세 김란공주의 말버릇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칭 제황의 어미들이니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여자들이다. 차라리 어울리지 않는 것이 체면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옷 좀 입고."

 

  벽려혼이 고개 숙이고 옷을 줏으며 말했다. 그러나 김란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누가 네 맘대로 옷 입으랬어?"

 

  "?"

 

  "다시 깨끗이 씻어."

 

  시녀들이 김란의 명령에 따라서 벽려혼의 양팔을 잡고 다시 향나무 욕조에 처넣었다. 벽려혼이 그들의 팔을 후다닥 뿌리쳤다. 그러자 나동그라진 시녀가 비명을 질렀다.

 

  "으악."

 

  이때 옆에 있던 시녀가 말했다.

 

  "조용히 해. 밖에 금위군이 있잖아."

 

  시녀가 시녀를 야단치는데 야단맞는 시녀보다도 벽려혼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그 말은 벽려혼에 대한 협박이었다. 이건 대역죄다. 제황의 욕조안에 들어있는 자체로 대역죄다. 이들이 소리를 지르면 꼼짝없이 죽는다. 설사 같이 죽더라도 내가 죽는 건 나한테 손해다.

 

  "너 조용히 말들어. 까불지 말고 가만 있어. 욕조에 누워."

 

  김란이 벽려혼에게 호통을 쳤다. 시녀들이 다시 다가와서 그를 욕조에 다시 눕히더니, 이번에는 시녀들이 옷을 다 벗고 알몸이 되어 하나는 그의 머리 맡에 허벅지를 받쳐주고 그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신음을 참으면서 흥분하려 하자 김란공주가 욕탕에 잠긴 그의 가운데로 올라앉았다. 김란이 말안장을 고쳐 붙들어 매고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벽려혼은 어린 마부의 탄탄한 엉덩이를 채찍질을 하였는데 또다른 시녀가 그의 손을 끌어서 김란의 가슴을 쥐게 하였다.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가슴이 그의 손에서 흐물거렸다. 김란이 그의 가슴에 엎드렸다.

 

  "나, 너 찍었어. 너를 제황에게 달래야겠어."

 

  "제황이 꽃같은 그대를 놔주고 싶을까?"

 

  벽려혼은 난생 처음으로 여자를 사양하였다.

 

  "아니겠지, 하지만 문제없어. 언니에게 달라고 할거야. 언니는 나를 내쫓고 싶을테니까. 그러니 모든 것은 언니가 알아서 해주겠지."

 

  벽려혼은 오늘밤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전혀 자기 의지 없이 시달리는 신세였다.

 

  "응. 그럼 큰 어머니 뱃속은 다시 안 들어가도 되겠군."

 

  "우리 언니 싫어? 언니가 실상 더 미인인데."

 

  김란공주는 어느 틈에 중평제황과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서 언니와 같은 여자로서 경쟁상대가 되었는데 아직은 언니에게 늘상 패배하는 입장이었다. 누가 보아도 언니인 김총이 가야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도 혈통의 미인이었고, 게다가 백제의 황후는 못되었어도 황부인이었다. 반면에 김란, 그녀는 아무 것도 아닌 황부인의 동생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황부인과 다시 잠자리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벽려혼의 태도에서 여태까지 느낄 수 없던 새로운 희망이 생기고 자기를 더 좋아하는 모양이니 쉽게 맺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김란 그녀는 얼마전부터 중평제황이 황부인 김총보다도 아담한 김란 자신을 더 총애하고 있다는 그 속마음을 몰랐다. 벽려혼 조차도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김란공주 쪽이었다. 벽려혼은 그들 놀음에서 작은어머니가 된 김란을 깨우쳐 주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가 하필이면 자기를 찍었는데 더 좋다고 말했다가는 뒷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벽려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결혼 안해봤지? 해보면 말이지 사실 한 남자는 한 여자도 힘들어. 보통 그래서 한 여자와 한 남자면 족하지."

 

  "보통은 그런 것이지. 그런데 왕실이란 것이 좀 복잡해서. 아무튼 난 빨리 왕실을 떠났으면 좋겠어. 언니 곁도 떠나고. 빨리 자기 따라가고 싶어."

 

  벽려혼은 김란의 꿈은 이해하지만 그가 들어줄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게다가 난 이제 막 태어난 옥동자가 아냐."

 

  그제서 김란이 벽려혼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럼, 딴 여자가 있어?"

 

  벽려혼은 이미 임자가 둘이나 정해져 있었지만 대꾸하지 않고 욕조 밖으로 나와서 옷을 입었다.

 

  "그래, 너 잘났다."

 

  김란은 벌거벗은 채로 욕실을 나가서 침대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장영이 아직 벌거벗은 채로 하늘 보고 누워 있고 만족한 황부인 김총이 다시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아, 개운해. 쌍둥이를 풀어놓으니 무겁던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졌어."

 

  벽려혼이 역시 옷을 다 차려입고 침대방으로 나오자 그새 김란이 장영을 타고 올라 애무하고 있었다. 벽려혼은 그만 밖으로 나와버렸고 그 뒤를 따라서 황부인도 나왔다.

 

  "이제 너의 역모가 용서되었어. 내 양아들이 되었으니까. 앞으로도 종종 어마마마께 문안 인사를 와야 한다. 알았냐?"

 

  벽려혼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후원에 서서 장영을 기다렸다. 얼마후 장영도 후원으로 나왔는데 김란이 같이 따라 나왔다.

 

  "영오라버니, 나 제황한테 영오라버니에게 시집가게 해 달라고 할거야."

 

  "그래, 알았어."

 

  무언가 도둑맞은 기분이 드는 장영은 김란을 뿌리치고 내당을 나섰고 벽려혼도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