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혼(沸流魂)

#23. 배신의 축제 - 3

금박(金舶) 2015. 7. 28. 16:03

 

  그것으로 여만의 입은 봉해졌다. 여만 자신은 이 사태가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모로 쓰러져 눈을 뜬 채로 죽었다. 여만은 청주자사가 되면 제일 먼저 왕통을 죽이려고 했는데 왕통의 치밀한 음모에 말려 먼저 기습당한 것이었다. 왕통의 전체 음모를 여만이 깨달았을 때는 자기자신의 눈꺼풀을 들어올릴 힘조차 남지 않았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배신자의 생명이 악인들의 손으로 거두어진 것이다. 여만은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칼을 뽑아들고 자기 집에 들어와서는 등 뒤에서 칼을 맞고 허무하게 죽었다. 청주사마 왕통이 부림에게 향했던 칼끝을 돌리며 여만에게 말했다.

 

  "나쁜놈. 배은망덕한 놈. 감히 공주님을 해치려들다니."

 

  목숨을 구원받은 부림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왕사마, 정말 때맞춰 잘왔어요. 아니면 우리 모자가 죽을 뻔했어요."

 

  부림은 이 모든 것이 왕통의 계략인 것을 모르고 왕통에게 감사했다. 왕통은 부림의 환심을 사면서 여만을 죽인 것이다. 이제 청주성의 이만 병력은 자기 휘하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여봐라, 저 역적놈을 끌어내다가 효수하여라."

 

  "예."

 

  왕통의 가병들이 죽은 여만의 목을 잘라서 밖으로 들고 나갔다. 그들은 여만의 목을 제왕부 남문에 걸어놓기로 하였다. 얼마후 부림이 숨을 돌리자 청주사마 왕통이  말했다.

 

  "여만의 일은 어쩔 수 없었소."

 

  "알았어요. 잘 죽였어요. 아버님이 돌아오시면 내가 본대로 사실대로 이야기해 드리겠어요."

 

  청주사마 왕통은 그렇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오늘 이 일을 수습하자면 공주께서 정청으로 납시어야 합니다."

 

  "왜요?"

 

  부림은 아직도 가슴이 떨려서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청주 제왕부 내원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안전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여만의 시체로 피범벅이 된 이곳에 더 남아 있기도 싫어졌다.

 

  "청주 이만 병사의 군권이 여만에게 있소이다. 군권은 하루밤이라도 공석으로 둘 수 없으니 어서 제왕부로 가서 이를 공식적으로 저에게 넘겨 주십시오. 오늘 밤에."

 

  "좋습니다. 본 공주가 왕사마를 임시 청주부장으로 위촉하고 군권을 넘겨드리지요. 그리고 오늘부터는 내가 제왕부 내원에서 거처하겠어요."

 

  부림이 계속 감사를 하며 왕통을 따라 일어났다. 왕통은 그 정도 치하에 만족하려고 작전을 세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혼자 웃음을 지었다. 왕통은 부림과 동행하여 청주부장관저에서 제왕부 정청으로 향했다. 그날 밤 청주의 대소신료들은 모두 제왕부 정청으로 부름을 당했다. 그들이 입궁하는 문루에는 이미 효수된 여만의 목이 걸려 있었다. 신료들은 여만의 목을 보며 등골이 오싹해져서 정청으로 들어섰다. 왕통은 부림을 옥좌에 앉히고 그 밑에 신료들을 줄세웠다. 그런데 신료 중에는 부림이 모르는 얼굴도 섞여 있었는데 이들은 왕통의 가신과 가병들이었다. 왕통은 부림의 입으로 사변을 밝히게 하였다.

 

  "부공주, 말씀을 해주시오."

 

  부림이 일어나서 청주 신료들에게  말했다.

 

  "지난밤에 간적 여만이 스스로 제왕이 되고자 대역죄를 꾸며서 효수하였소. 그래서 본공주는 오늘부터 청주 병사들의 군권을 새로운 청주부장으로 임명된 왕공께 맡기도록 하겠소."

 

  신료들이 술렁이는데 왕통이 옥좌 옆으로 올라갔다.

 

  "모두 보고 들으신대로 오늘부터 청주인들의 목숨을 본관이 책임지도록 하겠소."

 

  "그럼 수고해 주시오."

 

  부림이 왕통을 치하하며 다시 앉았다. 부림은 여만의 반란이 수습되었다고 안심했지만 실상 반란은 이제부터가 진짜 절정이었다. 왕통이 대소신료들 앞에 나서서 자기 계획을 포고하였다.

 

  "음. 나는 청주성에 이만 병력이 있는데, 공연히 겁먹고 동진군에게 항복하지 않겠소. 이 청주성에서 동진군을 몰아내고 지난날의 독립을 되찾아 새로운 황제국을 세워나가겠소."

 

  청주 신료들은 전쟁이라는 말에 얼떨떨해졌다. 부랑의 항복으로 전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날벼락이었다.

 

  "뭣이라고?"

 

  놀란 부림이 반문하였다.

 

  "그건 안될 말이다."

 

  그러나 연약한 부림의 목소리는 왕통의 큰 목소리에 눌려버렸다. 왕통은 본론으로 옮겨갔다.

 

  "사실 청주의 이만 병사들은 동진에 항복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소. 그래서 여만이 감히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먹었던 것이오. 그래서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이 기회에 청주인들을 위한 청주의 황실을 건설하는 것이외다."

 

  부림은 깜짝 놀라며 욕이 튀어나왔다.

 

  "무엇이? 네놈도 반역을 하겠다는 것이냐?"

 

  그러나 이제 왕통은 부림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도대체가 항복하러 떠난 부랑을 위해 청주인들이 청주자사 자리를 마냥 비워둘 수도 없소이다. 그러니 모두들 좋은 인물을 청주자사로 천거하여 주시오."

 

  신하들은 짜여진 각본에 놀아나며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어지러웠다. 그중 일부는 일찌감치 왕통에게 아부하였다.

 

  "왕공이 청주 제왕에 오르소서."

 

  "왕공이 제일 적임이외다."

 

  이때 숨어있던 왕륭이 뛰어나왔다.

 

  "여러분, 이사람 북해 사자도의 새도주 왕륭이요. 내가 보기에 청주를 위해서 제왕을 천거하자면 아무나 해서는 안되는 것이니 지난날 청구국을 부활하였던 청구왕 벽려울의 유일한 혈손인 벽려흥 공자를 모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그분이라면 인덕이 높아서 청주 원근의 청구국을 따르던 백성까지 포용하여서 동진군의 침략을  능히 막아내고 청주를  번영하게 할 것입니다."

 

  벽려흥도 왕륭을 따라 정청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거사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초저녁부터 만취한 상태였다. 벽려혼은 엉겁결에 옥좌로 올라갔다. 벽려흥은 백부와 숙부가 그를 제왕으로 즉위시킨다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벽려흥은 그의 바른팔이 허전한 것을 깨달았다. 왼팔 하나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이 거사를 그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결국 그는 허수아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본인은 사양하겠소. 차라리 왕백부가 제왕에 오르시오."

 

  벽려흥은 지금 바른팔을 잃어서 자기 목숨도 자기 스스로 지키기 어려웠다. 그러니 왕륭이나 왕통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기를 죽이고 제왕이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벽려흥은 이용당하다가 죽기 싫어서 사양하였다. 벽려흥이 가리킨 왕백부는 왕륭이고 왕통은 숙부였다. 왕륭이 그 말을 듣고 옥좌에 덥썩 앉았다. 깜짝 놀란 부림이 옥좌에서 일어나 피하였다.

 

  "조카의 뜻이 정히 그런가?"

 

  왕륭이 웃으며 좌중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왕륭의 눈을 피하였다. 그리고 동생 왕통을 보니 입을 다물고 있는 왕통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벽려흥은 되도 왕륭에게는 제위를 내줄 수 없는 왕통이 칼자루에 손을 대었다. 왕륭이 옥좌에 앉으면  당장이라도 베어버릴 기세였다. 두 형제가 검술 대결을 펼치면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왕륭에게는 사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이 되었다. 왕륭은 아직 때가 아닌 것을  알고 벽려흥에게 말했다.

 

  "흥아, 이제 너의 시대가 왔다. 어서 제위에 올라 아버님의 유업을 계승하여라."

 

  왕통도 벽려흥을 다시 불렀다.

 

  "벽공자, 사사로이는 내게 조카가 되니 숙부의 충고를 따라서 어서 제위에 오르시오."

 

  벽려흥은 왕륭에게 제왕을 권하였지만 여의치 않으니 이번에는 왕통에게 권하였다.

 

  "왕숙부. 뭐니뭐니해도 제왕감은 왕숙부 하나 뿐이오. 나는 팔을 다쳐서 사자도로 돌아가 요양을 해야한다 이 말이외다. 그러니 왕숙부가 제위에 오르시오."

 

  그러자 다른 신료들 중에서 왕통의 즉위를 권하는 아부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왕부장이 제왕에 오르시오."

 

  "왕부장이 청주를 구하시오."

 

  아예 왕통이 제왕으로 올라갈까 고민하는 차에 이번에는 왕륭이 말했다.

 

  "모두들 조용히 하시오. 우리 왕씨 형제는 우리 가문을 위해 제왕이 되고저 하는 것이 아니외다. 우리 왕씨 형제는 청주를 살리고 그옛날의 도리를 밝혀서 지난날 청구국왕이었던 벽려울의 후손 벽려흥을 제왕에 다시 오르게 하기 위해 거사한 것이외다."

 

  왕통도 고개를 끄덕이고 벽려흥의 손을 잡아 옥좌로 올렸다.

 

  "흥아, 마지막 권고이다. 청주 십만의 백성들의 목숨이 모두 이 순간에 달렸다. 어서 제위에 오르라."